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18
217화. 용패갈이2 (2)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보아도, 요한은 오지 않았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지.
결국 유리가 먼저 요한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수련장에 있으리라 여긴 것과는 달리 요한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이 인간 어디 갔어?’
설마 다시 떠났나 싶어 이리저리 뒤지고 다니던 유리.
한참 뒤, 그는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인물과 함께 있는 요한을 찾을 수 있었으니.
“크하!”
“크흐!”
서로 마주 앉아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는 요한과 세경.
술병만 덩그러니 쥔 그들은 유리를 안주 삼아 떠들어 대고 있었다.
“천재란 종자는 왜 이리 재수 없는 거냐? 천재성을 얻는 만큼 인성을 잃는 게야?”
“흐흐, 요한 네놈 입에서 그딴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만?”
“나는 그 새끼만큼은 아니었다! 시부럴 놈의 애새끼. 에잉, 퉷!”
“하긴, 그놈 싹퉁머리가 네놈 어릴 때보다 더 지랄 맞긴 하더구만.”
“그놈에 비하면 난 사람이지. 그건 아주 짐승이야, 짐승!”
“짐승까진 모르겠고, 사람 새끼가 아닌 거 같긴 하더라.”
열심히 유리를 씹어 대면서 목을 축이는 두 사람은 부쩍이나 가까워진 듯싶었다.
아니면 공공의 적이 생겼기에 휴전을 한 건가?
그런 둘의 모습에 잠시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낸 유리가 다급한 현 상황을 깨닫고 둘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영감!”
쩌렁쩌렁한 외침에 슬쩍 유리를 흘낏거린 둘은 이내 고개를 돌리며 수군거렸다.
“하여간 저 새낀 조용히 술 한잔도 못 하게 해요.”
“꽁술아, 네놈 제자 아니냐? 가서 조용히 좀 시켜 봐라.”
“저게 왜 내 제자냐? 네놈 제자지!”
“저놈이랑 나는 그냥 계약 맺고 서로 이것저것 주고받는 사이일 뿐이다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난 내기에 져서 기술 삥 뜯기는 노예나 다름없다만?”
“사실 나도 네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신세다. 아니지? 내가 더 심하지! 난 이제 저놈한테 이딴 것도 못 하냐고 구박받는 중이다? 칼질 때려치우고 가서 네놈한테 기술이나 배우라고 하드라.”
“허… 저주받은 주둥이로다.”
당사자가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쏟아지는 험담.
평소였다면 당장에라도 대거리를 했을 유리지만, 지금은 달랐다.
“영감! 꽁술 영감도 마침 잘 왔네, 이거 봐 봐!”
유리는 쪼르르 둘에게 달려가 고이 들고 온 금속을 보여 주며 설명했다.
그로부터 잠시 뒤.
요한이 넘겨받은 금속을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
“흠… 그러니까, 이게 네놈 몸에서 튀어나왔다?”
“그렇다니까! 내가 그 귀신 진짜라고 했잖아! 내 말 안 믿더니.”
“네 말을 안 믿은 적 없다만?”
“…….”
“난 귀신이 없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요한의 떳떳함에 유리는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그랬나?’
확실히 요한은 자신의 말이 거짓이라고 한 적이 없었다.
또한, 귀신이 없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괜히 머쓱해진 유리가 볼을 긁적이는 사이, 요한은 넘겨받은 금속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흠… 언뜻 보면 일반적인 금속인 듯싶은데?’
자세히 살펴보아도 별다른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하여 그는 들고 있는 금속을 세경에게 넘겨주었다.
“네가 보기에는 어떻냐?”
“흠, 어디 보자…….”
세경은 품에서 길쭉한 안경을 꺼내 한쪽 눈에 착용했다.
그리고 세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기도 하고.
두드려도 보고.
냄새를 맡거나 귀를 가져다 대 보기도 하고.
한참을 관찰하던 그가 안경을 벗고 유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이게 그 잘린 팔 귀신이 주고 간 금속이다?”
“어!”
유리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잘린 팔은 흑룡고에 있었고?”
“어어!”
“호오.”
세경의 눈에 흥미가 가득 깃들었으니.
이에 유리가 기대감을 담아 물었다.
“뭔지 알 거 같아?”
“솔직히 말해서… 난생처음 보는 종류다. 내 지식 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조와 기운을 가지고 있어. 도대체 이게 뭐지? 통상적으로 이 정도 질량이라면 어느 정도 무게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가벼워도 너무 가벼워.”
“그럼 꽁술 영감 말고 알 만한 사람은 없나? 물어볼 사람 없어?”
“금속의 구조뿐 아니라, 물질 구조를 분석하는 지식이 나보다 뛰어난 이들은 워커나 라멜 학파의 마이스터 정도뿐이다.”
“그런데 그런 영감도 모른다고?”
“그러니 신기한 거다! 세상에 이런 물질이 있다는 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요게 분명 ‘금속’의 부류에 들어가는 물질이라는 건데… 정말 이게 액체로 변해서 네놈 몸에 들어갔다고?”
“그렇다니까!”
“어디 넣어 봐라.”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데?”
“에잉, 그런 것도 못 하냐?”
세경의 게슴츠레한 시선을 받은 유리는 발끈하여 금빛 금속을 낚아채 손바닥에 올렸다.
이에 세 사람의 시선이 손바닥 위 금속에서 고정되었다.
하지만.
“…….”
“…….”
“…….”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손바닥 위 금속은 사라지지 않았다.
계속되는 적막 속에 참다못한 요한과 세경이 한마디씩 던졌다.
“에잉, 쓸모없는 놈.“
“천재면 뭐 하누, 그깟 금속 하나 손바닥으로 흡수도 못 하는데.”
“헛똑똑이였구먼. 저깟 놈이 천재는 무슨.”
두 사람의 억지에 유리가 발끈했다.
“이 빌어먹을 늙은이들이 진짜……!”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스르륵-.
금빛 금속이 다시 액체로 변해 유리의 손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
“흡?!”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유리를 놀리던 두 사람이 그대로 정지했고.
반면 유리는 신나 떠들었다.
“봐 봐! 진짜잖아!”
할 말을 잃어버린 세경과 요한.
“…….”
“…….”
그 둘의 표정은 단단히 굳어진 상태였다
세경은 유리의 말이 거짓이 아니고, 정말로 단단했던 금속이 액체로 뒤바뀌어 인체에 흡수되었다는 사실에 놀랐으며.
요한은 무언가를 알아차린 얼굴이었다.
그가 세경을 향해 물었다.
“…야 꽁술아, 저거 확실히… 금속이었지?”
“물질의 본질을 파악하는 눈은 골족 중 나를 따라올 녀석이 없다고 자부한다. 그런 내가 장담컨대 저거… 확실히 금속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굳은 얼굴을 풀지 않은 요한이 유리에게 말했다.
“그거, 다시 한번 빼낼 수 있겠냐?”
“…일단 해 볼게.”
짧게 고개를 끄덕인 유리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걸… 어떻게 뽑아냈더라?’
손 위에 금속이 나타날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 보면 흑룡고에서 잘린 팔에게 액체 덩어리를 넘겨받는 장면을 떠올렸던 것 같았다.
이에 똑같이 그 장면을 떠올려 보았지만, 금속 덩어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뭐야? 왜 안 돼? 뭐가 문제지?’
그렇게 얼마나 끙끙거렸을까.
구르륵-.
마침내 유리의 손에 액체가 솟구치며 예의 그 금속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됐다.”
또 한 번의 성공에 유리는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대충… 이런 느낌인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심상을 그려 몸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느낌.
그리고 그 감각은 유리가 익히 아는 것이었다.
‘화신을 꺼낼 때랑 비슷한 방식이다.’
그 누가 가르쳐 준 적이 없음에도 어린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익힌 감각.
조금 다른 느낌이기는 했으나 지금 이것도 그 감각과 얼추 비슷했다.
하여 유리는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다.
구륵 구륵-.
유리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금속을 꺼냈다 집어넣었다를 반복했다.
그가 조금 전의 경험을 체화하는 사이, 요한은 그 과정을 보고 완벽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허?!’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를 반복하는 금빛 금속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응시하던 요한.
그의 입에서 신음과 같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믿을 수 없군.”
“응?”
“네놈의 그거… 결코 일반적인 금속이 아니다. 일종의 영체지.”
“영체?”
“…화신이라는 소리다.”
“역시 그런가…….”
어쩐지 몸에서 빼내는 감각이 비슷하더라니.
유리가 그리 고개를 주억이는 사이.
요한의 눈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이건… 이건 말이 안 되는데? 하지만 눈앞에 버젓이 그 결과물이 있으니, 안 믿을 수도 없고. 허참… 도대체…….”
“이게 그렇게 이상한 거야?”
순진무구한 유리의 질문에 요한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영혈을 통해 외부로 발현시킨 영체. 즉, 화신은 현세에 물리적으로 간섭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도 엄연히 비물질에 속하지. 그런데…….”
요한이 잠시 말끝을 흐린 사이 세경이 불신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말도 안 된다! 아까 그건 분명 금속이었다!”
이에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다. 그건 확실히 물질이었지.”
심지어 금속이 되었을 때는 요한조차 화신임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금속 물질이었다.
“그래서 말이 안 되다는 거다. 비물질의 화신이 물질이 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쉽게 비유하자면, 귀신이 사람으로 변했다는 말이네?”
“그래, 단순히 비유하자면 그런 셈이지…….”
유리의 찰진 비유에 고개를 끄덕인 요한.
그는 기가 찬다는 눈으로 유리의 손바닥을 응시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비물질계에 속한 화신은 절대 물질이 될 수 없다는 그의 상식이 오늘… 유리가 귀신에게 받아 온 어느 물건으로 인해 무너졌다.
‘심지어 저건 비물질과 물질을 자유로이 오가고 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인가.
더욱 놀라운 점은 현재 유리의 영혈을 자신이 닫아 놓았다는 거다.
그럼 저 화신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란 말인가.
요한이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유리를 바라보았다.
“너… 뭘 주워 온 거냐?”
“그걸 내가 알면 영감들한테 이걸 보여 줬겠어?”
유리의 억울함이 가득한 눈빛을 할 때.
턱-.
세경이 유리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으니.
“…연구다.”
“…….”
“그걸 연구해서 원리를 알아낼 수 있다면… 어쩌면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야금술 분야든, 혹은 연금술 분야든.
비물질과 물질을 자유로이 오가는 금속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면 이는 천지가 개벽할 혁신으로 이어지리라.
그리고 그런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골족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하여 세경의 눈이 연구욕으로 활활 타오르던 순간.
턱-.
유리의 반대쪽 손을 요한이 잡아챘으니.
“그 연구… 나도 좀 같이하자꾸나.”
화신을 연구하기에 좋은 실험체가 등장하였기에 요한 역시 오랜만에 연구욕으로 불타올랐다.
그렇게 양 손목을 두 사람에게 붙잡힌 유리.
‘사… 살려 줘.’
정말로 해부당할지도 모를 상황에 직면한 그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 * *
당장 실험대에 묶여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유리를 구해 준 건 마왕성을 찾은 의외의 손님이었다.
“호오? 이게 그 소문으로만 듣던 마왕성인가? 이 커다란 걸 몇 개월 사이 뚝딱 만들어 내다니, 대단하구려.”
부목을 댄 팔과 이리저리 붕대를 감은 몸뚱어리.
심지어 다리까지 쩔뚝이면서 목발을 짚고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보라색 대가리, 괴츠 뢰턴이었다.
그는 자신이 알던 장소에 떡하니 올라간 마왕성을 보고 신기하다는 듯 목을 쭈욱 뺐고.
그런 괴츠를 향해 유리는 뚱하게 물었다.
“그쪽이 직접 왔어?”
“의견을 제시한 당사자가 직접 가서 협상까지 해 오라고 등 떠밀렸다네. 뭐, 말이 협상이지 사실 귀찮은 일 대신 처리하라는 게지.”
“그 말은 혼자 왔다는 뜻?”
“그렇다네.”
괴츠가 고개를 끄덕이자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
“…….”
그사이 마류의 실을 뽑아내 사방으로 퍼뜨린 유리.
정말 괴츠의 말처럼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가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임무는?”
이에 괴츠 역시 주변을 휘휘 둘러보고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완벽히 처리했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의 시선을 마주했고.
“훌륭하군.”
“별말씀을.”
턱-.
그들은 흡족한 얼굴로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그와 함께 괴츠의 뇌리로 며칠 전의 기억이 되풀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