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50
50화
버베나의 제안이 있던 그날 밤, 길드마스터 마제스티로부터 레기온 전체 길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마제스티 : 죽은 모래사막 레이드 관련으로 공지 드립니다. 이른 시일 내로 ONE 길드와의 합동 레이드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목표가 A급인 만큼 참여 기준 확인 후 참여 의사가 있으신 분은 제게 답장 부탁드리며, ONE 길드와의 레이드 조율을 위하여 시스템 시간 기준 10월 28일 오전 10시, 길드 성 내빈실 1호로 오시기 바랍니다] [마제스티 : 참여 기준―딜러, 탱커 75레벨 이상 / 바드, 다템 73레벨 이상 / 세인트 70 이상]* * *
그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진짜 괜찮겠어요? A급이라 저번 마녀 무덤 때랑은 엄청 차이 날 텐데.”
ONE과 레기온의 임시 모임 당일이었다.
리디안은 크라이그와 함께 여느 때처럼 아침 일과를 끝내고 미드가르드로 진입한 참이었다.
이미 마제스티에게 참여 의사를 밝혔고, 그를 위해 길드 성으로 향하고 있었기에 리디안은 잠시 멈춰 크라이그를 바라봤다.
“언제는 한 번 죽어 보는 것도 도움 될 거라고 하시더니…….”
크라이그는 제게 닿는 뚱한 눈초리에 눈을 깜박였다. 설마 그때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줄 몰랐는데. 크라이그는 엉뚱한 기억력이 어이없어 실소를 터트렸다.
“장난이었죠, 당연히.”
놀려 먹는 재미가 다분한 그의 표정에 리디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기회를 주시는데, 제가 언제 경험해 보겠어요. 사실 좀 부담스럽긴 한데, 그래도……. 힐러가 한 명이라도 더 많아야 성공할 확률이 높고, 무엇보다 아이템을 얻을 기회잖아요. 이런 기회는 절대 못 놓치죠!”
“흠… 벌써 클리어를 생각하고 계시네요.”
“클리어를 생각해야 집중력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물욕으로 높아지는 게 아니고요?”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고 있지만, 사실 크라이그는 그 결정이 의외였다.
죽은 모래사막은 헬하임 맵 중에서도 상위에 속했다. A급 난이도에 대한 공포, 부담은 물론이거니와 맵 특성상 힐러들의 막중한 책임감이 주어지는 곳이라 당연히 리디안이 꺼리거나 깊게 고민할 줄 알았다.
리디안보다 레벨 높고 경험 많은 앵두군이나 무니도 하루 내내 고민한 문제였다. 그런데도 리디안은 전체 메시지가 온 그날, 잠시 멈춰 30초 정도 생각하는가 싶더니 바로 “하고 싶어요.”라고 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던전을 돌리며 아이템에 대한 욕심이 생긴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레이드를 두려워하지 않는 확고한 의지는 칭찬받아 마땅했다.
게다가 도륵이 레벨 미달을 이유로 불참, 럭키가이가 부담스러움을 이유로 불참의 의지를 밝혀 예상보다 힐러의 인원이 부족해진 만큼 리디안의 적극적인 참여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와~ 저 내빈실 열리는 거 처음 봤어요.”
길드 성의 내빈실은 노르드 월드의 대표적인 대여 시스템이다. 재화 부족으로 길드 아지트의 수용 공간이 적은 길드를 위해 만들어진 편의 기능이기도 했다.
내빈실은 신청 인원에 맞게 공간이 자동 조율되는지라, 그 외에도 플레이어들끼리의 이벤트용으로도 쓰이는데 기본 대여 시간과 비교하면 대관료가 턱없이 비싸 그다지 이용률이 높지는 않았다.
그랬던 내빈실이 오늘, ONE과 레기온에 의해 대여가 된 상태였다. 각 길드 아지트에 개입할 수 없는 상태고, 그렇다고 사방이 오픈된 공간에서 모여 회의를 진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마제스티와 레온이 거금을 쓴 것이다.
[미드가르드 길드 성―내빈실 1호 : 대관 중]길드 성을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은 높이 떠있는 안내 메시지를 목격하곤 저마다 수군거렸다.
누가 빌려 쓰는가에 대해서는 1분만 지켜보면 알 수 있었다. 그 근처로 ONE과 레기온 길드원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웬만해서 전투 길드 둘이 모일 일이 없으니 무성한 소문이 퍼질 수밖에 없었다. 리디안과 크라이그는 그런 플레이어들을 지나쳐 내빈실 입구로 향했다.
담당 NPC의 안내에 따라 길드 인증을 하자 커다란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눈앞에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는, 의문의 게이트가 나타났다. 푸른 빛이 소용돌이치는 공간으로 들어서자 곧장 풍경이 바뀌었다.
호텔의 연회 홀을 닮은 내부는 먼저 온 길드원들로 인해 어수선했다.
얼굴이 익숙한 레기온의 길드원은 물론, 익숙하지 않은 ONE의 길드원들이 직업별로 나뉜 테이블에 앉아 호의적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레기온과 ONE이 대체적으로 원만한 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모여 있는 모습을 보니 또 감회가 새로웠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동맹 길드 같기도 했다.
“세인트는 저쪽이네요.”
크라이그는 전체를 크게 둘러보다 안쪽을 가리켰다. 화려한 내부 풍경에 정신없던 리디안은 처음 보는 세인트들이 가득 모인 곳을 보자마자 긴장했다. 어서 가보라는 크라이그의 손짓에 리디안은 심호흡하며 조심스레 다가섰다.
“리디안 님 오셨네요.”
자리 위치상, 제일 먼저 리디안을 발견한 이모탈의 미소에 모두가 대화를 멈춘 채 반가운 얼굴로 일어섰다. 이모탈의 옆으로는 익숙한 앵두군과 무니가 있었다.
리디안은 처음 보는 ONE 길드의 세인트들을 흘깃 바라봤다. 세인트 랭킹 1위인 캐티스를 중심으로 그레이스, 드림드림, 규호. 그리고 페페가 있었다.
페페는 리디안이 테이블과 가까워지기도 전에 미리 달려 나와 싱긋 웃었다.
“오랜만이에요, 리디안 님. 잘 지내셨어요? 연락 드리려고 했는데…….”
페페의 미소엔 미안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하지만 페페가 바쁜 걸 알아, 리디안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바쁘실 텐데 어쩔 수 없죠. 페페 님도 잘 지내셨어요?”
방글거리는 리디안 덕분에 칙칙했던 세인트 테이블이 밝아졌다. 30대 후반인 캐티스가 특히나 좋아했다.
“반가워요, 리디안 님. 페페님 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이쪽은 저희 길드 힐러들이에요.”
이어진 캐티스의 손짓에 그레이스, 드림드림, 규호가 차례대로 인사했다. 대부분 얼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로, 레기온처럼 힐러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었다.
모두와 첫인사를 마치니, 페페가 직접 의자를 끌어 제 옆자리로 안내해 줬다. 별거 아닌 매너에 수줍어하면서도, 리디안은 레기온 방향에 남는 두 자리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삼켰다.
“그나저나 벌써 72 되셨네요.”
마치 자신이 레벨 업을 한 것처럼 페페는 몹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리디안 님 활약이 대단하다고 하던데요?”
방글거리던 리디안의 덜컥 당황했다. 활약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그 물음이 그대로 표정에 드러나자 페페가 슬쩍 이모탈을 곁눈질했다. 다행히 그는 캐티스와 대화 중이었다.
“이모탈 님 통해서 가끔 전해 들었거든요.”
“어? 잠깐.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먼저 말한 거 아니에요. 만날 때마다 페페 님이 맨날 캐물었어요.”
귀 밝은 이모탈이 냅다 끼어들어 은근한 웃음을 지었다. 리디안이 동그랗게 눈 뜬 사이, 페페는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땀을 흘렸다.
사실, 그의 말대로 이모탈에게 먼저 리디안의 안부를 물었던 건 항상 페페였다.
왜 직접 연락하지 않았냐고 한다면, 페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나마 알고 지내던 헤른이 떠나고 혼자 남아 레기온에 납치되다시피 했는데, 아무리 레기온이 좋은 길드라 해도 나름 오래 알고 지낸 지인으로서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걸 가지고 자꾸 연락했다가는 한도 끝도 없어질 것 같았다.
어찌 됐든 리디안은 이제 한 길드의 길드원으로 자립한 상태고, 충분히 그들과 잘 어울리며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솔직한 말로, 타 길드원인 페페가 간섭할 자격은 없었다.
물론 전과는 달리 멀어진 거리감이 다소 아쉬운 데다, 더는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는 리디안의 달라진 모습이 시원섭섭한 것도 사실이었다. 또 그것과는 별개로 본인 스스로도 정의할 수 없는. 묘한 감정에 머리가 복잡해지기도 했다.
그 때문에 리디안과의 연락에 있어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별 뜻 없는 단순한 안부라 하더라도, 짧은 대화에서 비롯될 여러 이야기가 문제였다.
당장은 당사자에게 이 모순적이고 불확실한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묘해진 분위기에, 눈치 빠른 그레이스가 난입했다.
“아니, 근데 페페 님. 너무하네~ 이렇게 푸릇푸릇한 제자 있으면 빨리 데려왔어야지. 왜 내버려 둬서 레기온에 뺏겨요?”
장난스러운 그 목소리에 잠시 붕 떴던 분위기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연령 비슷한 세인트들이 신이 나 떠드는 동안, 리디안은 반사적으로 실내를 둘러봤다. 그러다 문득, 세인트 자리만 넓은 곳에 동떨어져 있는 데다 다른 직업 자리를 등지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뭔가 세인트 자리만 상석 같은 느낌이었다.
“참, 이모탈 님도 연락받으셨죠? 과일 놈한테.”
“아. 프루츠맨이요? 받았죠. 저도 하이 랭커다 보니…….”
달갑지 않은 이모탈의 한숨에 리디안의 고개가 돌아갔다. 갑작스레 바뀐 화제에 다들 한결같이 혀를 차고 있었다.
“장난질하려는 거 뻔히 보여서 저는 그냥 바로 손절했어요.”
무슨 얘기인가 싶어 옆에 앉은 페페를 바라보니, 페페가 쓰게 웃었다.
“예전에 헤른 님 있을 때, 얘기 나왔던 스카디의 영광이요.”
“아! 그거요.”
“물망초 님이 아이템 다 두고 길탈했거든요.”
지난번 요정의 미로에서 테세우스를 통해 언뜻 들었기에 리디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걸 프루츠맨이 자기 아이템이라고 소유권 주장해서 그래요.”
“네? 그분이 선물로 준 거 아니었어요? 근데 그걸 다시 가져가겠다고요?”
그런 게 어디 있어?
보통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또,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럴 것 같기도 하고……. 더욱이 그런 상황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려나?
파고 들어가니 점점 복잡해지는 상황에 리디안은 곧장 눈가를 찌푸렸다.
“그거 때문에 태양이랑 과일박스랑 꽤 오래 신경전 벌였나 봐요. 프루츠맨은 자기가 개인적으로 준 거니까 자기가 다시 돌려받는 게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태양은 길드 창고에 넣었으니 자기네 소유가 맞다고 주장하고. 근데 잠적했던 물망초 님이 프루츠맨한테 그냥 돌려준다고 한마디 하는 바람에…….”
“결국, 프루츠맨이 돌려받긴 했는데. 그걸로도 서로 신경전 장난 아니었죠. 프루츠맨도 성격 더럽고, 태양 애들도 한 성격 하니까. 거의 태양이랑 과일박스랑 진흙탕 싸움 될 뻔했는데, 태양 길마가 먼저 손 내리더라고요.”
저마다 투덜거리는 분위기에 리디안도 별일이라며 신기해했다.
그 욕심 많은 따거가 가만있지 않았을 텐데, 순순히 돌려줬네? 그 생각을 할 무렵, 가만히 듣고 있던 드림드림이 불쑥 끼어들었다.
“대장군이랑 핑크푸크도 그냥 미안해서 포기한 거 같아요. 솔직히 다른 아이템은 태양 아재들이 알아서 갖다 바친 거니 태양이 받는 게 맞고, 스카디는 물망초가 프루츠맨한테 진짜 개인적으로 받은 거잖아요. 태양도 그동안 물망초 따돌린 거 퉁 치려고 그냥 깔끔하게 포기한 거 아닐까요? 자기들끼리 그렇게 왕따를 시켰는데, 무기까지 날름하겠다는 건 도둑놈 심보죠.”
그 의견에 모두가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디안은 프루츠맨에게 아이템이 가있다는 사실에 설마, 하며 읊조렸다. 그에 페페가 바로 긍정했다.
“맞아요. 프루츠맨이 지금 스카디 가지고 랭커 세인트들 간 보고 있어요.”
“에이, 그건 간 보는 게 아니죠. 농락하는 거지. 억대를 불러도 더 생각해 볼게요~ 이 지X 하던 새낀데요.”
한창 프루츠맨과 흥정을 하다 말싸움까지 빚은 그레이스가 성을 냈다.
“장담하는데 그거 절대 안 팔걸요? 지금 현금으로도 못 팔고, 골드로는 부르는 게 값이라 지금 시세도 애매하고. 자기 딴에는 희소성 때문에 팔기 싫은 건지 자랑하겠다는 심보인지 랭커 세인트들한테 슬쩍 찔러 보면서 갑질 희열 느끼고 있어요. 좀 숙이고 들어가면 팔 것처럼 굴다가 막상 제시하면 마음에 안 든다고 칼 거절. ‘응~ 안 팔아~’ 그 지X 떨고 있어요, 지금.”
“아~ 이번 레이드에서 스카디 하나 더 뜨면, 과일 놈 엿 먹일 수 있는데…….”
“하여튼, 그 새끼도 진짜 인성 쓰레기라니까요. 몇 달 전만 해도 자기가 물망초 공식 노예라고 전챗으로 자랑하던 놈이 제일 먼저 나서서 매장하고… 아이템 가지고 갑질하고 있고.”
“근데 뭐, 안 팔면 자기만 손해죠. 랭커 세인트들이야 어지간한 템 다 갖고 있는데. 스카디 아니어도 회복 계열 방어구에 브라만 증표나 미스틸테인 정도 들면 회복력이야 충분히 커버할 수 있잖아요. 물론 스카디가 있으면 더 좋기야 하겠지만, 어차피 옵션도 오픈 못 하는 깡통이고. 그런 놈한테 굳이 고개 숙여 가면서 구할 필요까지는…….”
무니의 의견에 모두가 격하게 동조했다. 리디안도 전적으로 그들의 말에 깊게 동의했다. 아무리 필요한 아이템이라도, 아무리 돈이 많이 있어도 그런 악질적인 사람에게 굽신거리며 구매하고 싶진 않았다.
“차라리 제사장 풀 세트 맞춰서 회복력 80% 맞추는 게 훨씬 낫죠.”
페페가 내놓은 의견에 캐티스가 바로 난색을 보였다.
페페가 장비한 대제사장 시리즈는 극악 난이도로 유명한 ‘신전을 지키는 자’ 보스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직업당 한 명씩 입장 가능한 바로 그곳. 어지간한 세인트는 감히 발도 못 붙이는 곳…….
그래서 세인트 중에서 대제사장 풀세트를 맞춘 이는 페페밖에 없었다.
“어우, 전 페페 님 같은 컨트롤에는 소질이 없어서. 신전 지킴이 클리어는 꿈도 못 꾸겠어요.”
“아녜요. 오히려 게임 때보다 지금이 더 쉬운 느낌이던데요? 몇 번 익숙해지면 어렵지 않아요.”
방긋 웃는 페페의 모습에 모두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어느 유명 화가가 고퀄리티의 그림을 그려놓고 ‘참 쉽죠?’하고 묻는 것 같았다.
테이블끼리 떠드는 사이, 약속 시각인 10시 정각이 되자 각 길드의 간부들이 나타났다. 마제스티와 백검, 레온과 신사가 들어서자 장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정숙해졌다.
내빈실을 가득 채운 무게감에 리디안은 슬그머니 주변을 살폈다. 어느 직업 할 것 없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75레벨 이상의 플레이어였다. 세인트가 부족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 쳐도, 혼자만 72레벨인 상황은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같은 테이블에 앉은 세인트들 역시 전부 노련한 고수들이었다.
‘내가 너무 자신감 있게 참여한 건 아니겠지? 이러다 실수라도 한 번 하면…….’
짧은 찰나에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주눅이 들어 고개 숙이려는 찰나, 페페와 눈이 마주쳤다.
이리저리 구르는 리디안의 어색한 눈짓을 보자마자 페페는 다정한 웃음을 보였다. 리디안은 그 미소를 바라보며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점차 마음을 놓았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우선, 페페는 든든한 아군임은 물론이고 오래전부터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에 작은 용기가 솟았고, 페페를 통해 더 배울 수 있을 거라는 현실적인 판단에 욕심이 생겨났다.
또 굳이 페페가 아니어도, 이만큼의 고레벨 세인트가 있는 자리니 배움의 기회는 더 컸다.
그래, 요점은 아이템이 아니라 경험이지. 아이템에 눈이 멀어 그 중요한 걸 잠시나마 잊고 있었다니. 요즘 하도 고레벨과 어울린 탓에 제게 중요한 게 뭔지 잠시 까먹은 모양이다.
물론, 아이템도 능력인 시대니 바라서 나쁠 건 없지만. 그래도 경험과 실력은 중요했다. 그게 바탕이 되어야 뭐든 할 수 있으니까.
마음을 갈무리한 리디안은 페페를 향해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에 잠시 페페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길드 마스터들의 발언으로 바로 앞을 바라본 리디안은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