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33
33. 광고의 효과(2)
돌아오는 길.
노파는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이 없다기보다는 얼이 빠져 있었다.
내 바구니엔 등뼈, 과일, 과자, 개 사료 등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덕분에 나는 개줄에 채워진 채 터벅터벅 노예가 앞장서 짐을 끌 듯 무거운 유모차를 끌어야 했다. 유모차 양 귀퉁이에 공병이 가득 든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매단 노파는 이게 꿈이냐, 생시냐는 표정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왈! 왈! 왈!”
‘아, 뒤에서 좀 밀어요! 힘 좀 줘요!’
나는 헥헥대며 노파를 향해 일갈한 후 집 방향으로 계속 움직였다.
– 차라랑!
그때 벨 울리는 소리와 함께 앞 점포의 문이 열렸다. 깜짝 놀라 위를 올려다보니 내가 환생하며 눈을 뜬 곳, 그 동물병원&애견샵 이었다.
“어머, 할머니! 우리 해피!”
“왈! 왈! 왈!”
‘이곳, 이곳이 이 저주받은 견생이 시작된 곳이다! 염색 진하게 해주는 곳!’
내 울분은 무시한 채 직원은 내가 너무 반갑다는 듯 날 쓰다듬고는 노파에게 다가가 호들갑스럽게 떠들었다.
“할머니, 우리 해피 TV에 나온 것 봤어요! 맞죠? 해피!”
“그, 그게 왜 느그 해피여? 내 해피지.”
“말이 그렇다는 거죠, 호호호. 할머니, 우리 해피 사진 좀 찍어서 바깥에 인쇄해서 붙여놔도 될까요? 기념으로!”
“잉, 그리여.”
역시 내 초상권은 안중에도 없었다. 곧이어 안경을 쓴 날카로운 인상의 원장과 직원 셋이 나와 나를 번쩍 들고 사진을 찍었다. 여러 각도로 다양하게 찍고 셀카 모드로까지 담은 후에야 나는 다시 바닥에 놓여졌다.
“A4용지에 인쇄해 놓으려고요. 공익광고에 출연한 해피는 우리 샵에서 미용했답니다!”
‘아니, 이 귀와 꼬리 색깔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는데 누가 오겠어!’
역시 사람들은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하는 듯했다. 그때 원장이 무엇인가 지시를 했고 한 직원이 안으로 들어갔다가 고급스러운 사료와 캔 고기, 간식 등을 들고 나왔다.
“아유, 뭘 이런걸!”
“아니에요. 우리도 해피를 미용시킨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서요. 어르신, 받아 가십시오. 해피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끼이이잉.”
‘내 초상권을 쓰겠다는 거지, 뭐.’
그래도 당분간 그 말표 사료를 안 먹어도 된다는 것, 그리고 간식이 생겼다는 것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눈으로만 실컷 보던 저 캔 고기, 무언가 통조림 햄 같아 보이는 기대되는 외양이었다! 간식 중에 고구마말랭이는 이미 맛나게 먹은 경험이 있는지라 너무나 반가웠다.
‘대단해, 오늘 아침에 방송이 시작되었는데 벌써 이렇게나!’
물론 내 빚태창의 숫자는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아니, 미미하게 나아지고는 있었다. 촬영으로 번 500만 원까지 시드머니가 되어 주식에 투자되었고 조은이는 착실하게 수익을 내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전체적인 금액에서는 얼마 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2,918만 1,230원]‘하아, 언제 플러스 전환하고 30억을 버나.’
앞이 막막했다.
그러나 이번 건이 무언가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노파는 개 사료를 실으며 ‘아유, 개한테 이렇게 좋은 것 주는 거 아니여. 사람이 먹어도 되것네’하는 세상 어이없는 소리를 중얼대고 있었지만, 내 진정한 주인인 조은이는 이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내야할지 분명 알아차릴 것이었다.
간신히 무거워진 유모차를 끌고 집에 도착했을 때,
“개령님!”
“왈!”
깜짝 놀랐다. 도화선녀가 한쪽 눈으로 싱글싱글 웃으며 앞에 서 있었다. 여전히 한 손엔 맥시봉을 든 채 입으로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흔들어댔다. 그 쫀쫀한 소시지가 탱글탱글하게 흔들렸다.
“내가 아침 기도 끝내고 TV를 보려는데, 세상에! 우리 개령님 맞죠? 이것 봐. 개운이야 개운. 운이 열렸어. 대운이 들어오신다니까?”
“왈! 왈!”
‘정말이요? 어떻게? 좀 디테일하게 설명해 봐!’
나는 애가 타서 꼬리를 흔들었다. 그런 내 앞에서 맥시봉을 손으로 나눠 하나씩 먹여주는 도화선녀! 오늘만큼은 선녀가 맞았다.
– 촵! 촵! 촵!
“개한테 그런 것 주면 못 쓴다니까유? 주려면 나를 줘! 그리고 우리 집에 나타나지 말랬잖어유!”
“아유, 보살님. 그냥 이웃끼리 얼굴 보러 온 것이지! 우리 개령님 대운 터진 모습 보며 기라도 받아 가려고. 이거 봐요, 웃는다 웃어!”
“왈! 왈!”
‘더 주세요!’
그러나 도화선녀는 노파의 등쌀에 이기지 못하고 물러서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손에 남은 반절을 뺏어 자기 입에 넣은 노파가 빈 비닐 껍질을 도화선녀에게 쥐여주었다.
“가유, 가! 우리 해피 안 팔아!”
“언제든 연락 줘요? 기다릴 테니까. 개령님의 똥꼬가 엄청난 금전을 물어올 거야! 내 말 잊지 말고.”
또 이상한 말을 남긴 도화선녀는 입으로 방울 소리를 내며 사라져갔다.
“쳇, 다시 나타나기만 해 봐라!”
노파는 혀를 차며 대문 앞에 유모차를 세웠다. 그리곤 가득 쌓인 선물들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거실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그 캔 고기, 통조림 햄 숲햄을 연상시키는 그게 당장 먹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왈! 왈! 왈! 왈!”
‘어서! 어서 그 캔을 따서 고기를 주시오! 뜨끈한 밥 위에 따악 얹어서 한 입만 먹게! 어서!’
내가 팔짝팔짝 뛰고 오줌까지 찔끔거리자(물론 소변에 관해선 절대 내 의도가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노파가 알겠다는 듯 비닐봉지를 내려놓았다.
“그래, 우리 해피. 해피 덕분에 뭘 이렇게나 많이 받아왔네. 뭐 주랴?”
정말로 보기 힘든 저 인자함! 노파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나는 재빨리 캔 고기를 앞발로 짚고 부지런히 꼬리를 흔들었다.
“아유, 눈 어지러워. 점집 가서 커피 한 잔 마셨다고 꼬리에 귀신이 붙어왔나? 왜 이리 흔들어대!”
노파는 살짝 타박을 하곤 캔 고기를 꺼내 접시에 담았다.
‘오오오, 저 영롱한 자태! 숲햄과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또 크게 다른 것은 아냐!’
나는 공장에서 명절 때마다 받아오던, 식용유 두 개에 양쪽으로 세 개씩 숲햄이 들어있던 그 선물세트를 떠올리며 재빨리 접시로 다가갔다.
-촵! 촵! 촵! 촵!
‘으음, 음? 에?’
“캑! 캐액, 캑! 퉤!”
“아유, 요 똥개가 이런 것을 먹어보지를 못해서 그런겨? 왜 갑자기 뱉어내!”
“끼이이잉…”
아, 기름투성이의 그것은 무지하게 느끼했고, 또 무지하게 비렸다. 간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뭐라 말할 수 없을 지독한 풍미가 느껴졌다.
숲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고, 내가 먹어본 그 어떤 고기나 햄의 가공품과도 맛이 달랐다. 아마 영국의 특산물이라는 장어젤리를 잡고기로 만들면 이런 맛이 아닐까, 싶었다.
분명 겉표지에는 [Beef]라고 쓰여 있었는데, 도대체 쇠고기의 어떤 부위를 어떻게 만들면 이런 맛이 나는지 믿을 수 없었다.
“이 귀한 것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네. 촌놈 티 내면 안 되는 겨! 이 캔 하나도 돈 주고 사려면 2천 원 가까이 하더라!”
노파는 접시를 뺏어 ‘이렇게나 맛있어 뵈는데’ 하며 궁금한 표정을 지은 채, 손가락으로 캔 고기를 살짝 찍어 입에 넣어보았다.
“카악! 퉤! 퉤퉤퉤퉤퉷! 아유, 아유! 김치, 김치!”
냉장고를 열어 쉰 김치를 손으로 찢어 한입에 우걱우걱 씹고 나서야 노파는 살 것 같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개가 먹을 것은 개가 먹고, 사람이 먹을 것은 사람이 먹어야 하는겨. 아유, 시상에. 어느 나라에서 이런 숭악한 것을 만들었어, 그래?”
결국 그 캔 고기는 말표 개사료에 잘 비벼졌다.
“저거 다 먹을 때까지, 다른 간식이나 새 사료는 없어! 배가 곯아봐야 저런 귀한 것을 남기지 않지. 얼른 먹어! 쉬어버리기 전에!”
노파는 내가 다 먹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듯 매의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그러면서 잠시 고개를 돌려 ‘아유, 저걸 어찌 먹어?’ 하며 중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더 떨어질 것도 없는 맛에 끔찍한 토핑까지 얹은 사료를 씹어먹기 시작했다.
차라리 입맛이라도 개의 입맛으로 바꿔주던가.
***
“하, 할머니. 다녀왔어요.”
문이 열리더니 얼굴이 새빨개진 조은이가 들어왔다. 그 상기된 표정과 더듬는 목소리에, 나는 오늘 노파와 내가 겪은 것보다 더 큰 일들이 조은이에게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잉, 그리여. 아유, 얼굴 빨개진 것 봐. 바깥이 아직 추운겨?”
“할머니, 곧 5월이에요. 무슨 소리야. 그것보다…”
“그리여, 그것보다! 요것 좀 봐라. 오늘 해피랑 같이 바깥에 나갔는데 사람들이 해피를 알아보고 등뼈랑 간식이랑 사료랑 과자랑…”
노파가 오늘 얻은 것들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걸 들은 조은이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 그것뿐만이 아니야. 오늘 학교 가는데 지하철역에서도 그 광고가 나와. 심지어 지하철 안에서도.”
“잉? 정말이여?”
“오늘 계속 친구들한테서 ‘저 광고, 조은이 너 아니냐’고 메시지가 와서 정신을 못 차렸어. 동영상 플랫폼에도 공익광고로 올라갔대. 그거 캡처해서 보내준 친구도 있어!”
“뭐? 니가 광고 나왔다고 케첩을 보내준다고? 언제 준다디? 이번 기회에 다 받아오자.”
“아니! 케첩 말고! 뭘 또 공짜로 받으려고 해!”
노파의 탐욕 어린 가는 귀에 조은이 짜증을 냈다. 사실 나도 그런 노파의 발꿈치를 세게 물고 싶었으나 내가 그랬다간 대차게 걷어차일 것이 뻔했다.
“과에서도 난리가 났다니까? 게다가 다른 과 친구한테 부탁받았다면서 나보고 소개팅하라고, ‘진짜 너희 과에 이렇게 예쁜 애 있냐’하고 물어오는 애들도 있었대.”
“으르르릉, 왈! 왈! 왈!”
나는 조은이가 정신 차리기를 바라며 맹렬히 짖었다. 아니, 조은이야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긴 했지만, 역시 남자들이 꼬이는 것은 매우 불편했다.
“해피야, 왜? 누나가 소개팅 나갈까 봐? 하하하, 누나는 아무데도 안 나가요. 공부랑 투자랑 알바하기에도 엄청 바쁜걸.”
‘휴우…’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 나는 조은이의 옆에 앉아 노파가 차려온 밥상을 마주했다.
“오오오! 등뼈찜이네?”
“해피가 도둑 잡았다고 소문이 나서, 해피도 주고 우리도 먹으라고 등뼈 싸주더라. 저기, 사거리 충남 정육점 사장이.”
“와아, 신김치랑 같이 찌니 진짜 맛있네!”
“해피 것은 따로 삶았지.”
“왈!”
오오오, 그래! 그것은 먹을 수 있지. 등뼈엔 죄가 없지!
노파가 하얗게 삶은 등뼈를 그릇에 따로 빼서 주었다. 뜨거운 뼈를 후후 불며 나는 아가리로 겉에 붙은 살코기를 맛나게 발라 씹었다.
모두가 오늘의 광고가 준 기적을 이야기하며 웃을 때, 조은이의 전화기가 울렸다.
“아, 여보세요?”
– ….
“네! 걸덕이 오빠. 아니, 로이 오빠!”
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