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with an S-class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얼어붙은 땅 (2)
시베리아.
연해주를 넘어 북쪽으로 올라가면 펼쳐져 있는, 춥고 척박한 땅.
하지만 이 정도 환경도 판데모니움의 악마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살던 지옥은 더 가혹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지옥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눈앞에 펼쳐진 시베리아의 대지를 둘러보았다.
“날이 춥군요.”
“옷을 두껍게 입길 잘한 것 같네요.”
내 옆에서 양전과 용길공주가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지금 우리는 [화신 강림(化身降臨)] 스킬을 사용해 지상에 내려온 상태였다.
“그런데…… ‘물을 다스리는 선녀’ 당신도 지상에 내려올 수 있는 줄은 몰랐군요.”
나는 마치 방금 전에 처음 안 것처럼 용길공주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 나는 ‘무명의 왕’이 아니라 한 명의 계약자 ‘김무명’으로 행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한테는 천계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일화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용길공주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왜 그러시죠?”
“아니요, 당신이 성좌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요새 자주 듣게 되는군요. 성좌와 계약자는 닮는 법이라고 하던데.”
얼굴과 목소리까지 손댄 상태이고, 의식적으로 표정 등도 다르게 하고 있기 때문에 동일 인물이라는 것까지는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쓸데없는 잡담은 그만들 하시고, 움직이죠.”
그때 양전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김무명, 당신은 웬만하면 뒤로 물러서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일은 저희가 무명의 왕한테 부탁받은 일이니까요.”
“……알겠어.”
양전은 ‘무명의 왕’한테는 고분고분한데 ‘김무명’한테는 좀 까칠한 것 같았다.
자기를 함정에 빠뜨린 존재라고 생각해 원한이 남아 있는 걸까.
“나도 당신들이 하는 일을 도와주라고 명령받았을 뿐이니까 말이야. 당신들이 하자는 대로 하겠어.”
사실 마음만 같아서는 용길공주와 양전이 아니라 벨리알이나 달기를 데리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은 판데모니움의 세력권이기 때문에 벨리알의 얼굴을 알아보는 자가 있을 수 있다. 또한 달기는 한국에서 강유진 일행을 보좌해 주는 역할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진해서 말을 꺼내 준 용길공주, 그리고 양전한테 부탁하기로 한 것이다.
“저기 펼쳐진 숲 안에, 우리들이 찾으려 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눈앞에는 광대한 침엽수림이 펼쳐져 있었다.
저곳 어딘가에 B급 성좌 ‘적과 흑의 청년’의 계약자이자 백작의 관심 대상이었던 ‘알렉세이 시베도프’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를 만나서 과거에 백작이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우리 세 명이 이번에 할 일이었다.
* * *
“조금 의외였습니다.”
“뭐가 말이죠?”
울창한 숲속 한가운데에서, 용길공주는 양전의 말을 들었다.
“당신이 무명의 왕을 돕기 위해 지상에 내려가겠다고 해서 말입니다.”
양전이 어깨를 으쓱했다.
“산해연합에 있었을 때, 그런 식으로 적극적인 모습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말이죠.”
“……이미 우리는 무명의 왕과 운명 공동체입니다.”
용길공주는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많은 성좌들이 우리들을 같은 패거리라 생각하고 있죠. 무명의 왕이 몰락하면 우리들도 함께 몰락하게 될 겁니다.”
“뭐 근원력은 곤두박질치겠죠.”
“셜록 홈즈가 정말로 누군가에게 습격당한 거라면, 우리들에게도 비슷한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걸 감안해도 조금 의외였습니다. 지상에 내려오면서까지 도우려고 하다니, 당신답지 않군요.”
확실히 평소답지 않은 일이긴 하다.
용길공주는 성좌 스킬인 [화신 강림]을 갖고 있지만, 거의 쓴 적이 없었다.
남을 도우려고 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명의 왕에게 참 헌신적이란 말이죠.”
“딱히 헌신적인 건 아닙니다. 당신이야말로 그분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고 있을 텐데요?”
“그건 약점을 잡혀 있기 때문이죠. 당신은 딱히 약점을 잡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당신이 왜 그렇게 무명의 왕에게 협력하는지 알 수 없군요. 흠, 그러면 이런 걸까요?”
양전이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그 성좌를 좋아하는 겁니까?”
그 말을 듣고, 용길공주는 손이 먼저 움직였다.
짝, 하는 소리가 침엽수림 안에 울려 퍼졌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
뺨을 맞았는데도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양전을 노려보며, 용길공주는 물었다.
“이제는 야망 같은 건 없나 보군요?”
“네?”
“당신이 산해연합을 뛰쳐나가서 독자적인 조직을 만든 이유, 제가 모를 것 같나요?”
갑작스러운 얘기를 듣고, 양전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자기 힘으로 중국에 새로운 세상을 일으키고 싶었던 거겠죠.”
“잠깐만, 지금 무슨 소리를…….”
“분명 당신은 천재예요. 3천 년 전에도 당신의 능력은 돋보였죠. 도술을 쓰는 선인으로서도, 군대를 움직이는 군사로서도, 당신은 희대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어요.”
용길공주는 단숨에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시대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죠. 그 시절의 주인공은…… 태공망 강자아였으니까.”
그렇다.
3천 년 전 은나라를 무너뜨리려고 주나라가 벌인 전쟁, 그리고 그와 함께 진행된 선인들의 싸움.
그 모든 걸 지휘한 인물이 바로 태공망 강자아였다.
도사로서의 실력은 양전에게 뒤질지 모르지만, 시대를 움직이는 영웅으로서의 자질은 그 누구보다 뛰어났던…… 역사에 길이 남은 위인.
“당신은 그를 돕는 조연이었죠. 줄곧 말이죠.”
그리고 강자아의 오른팔로서 활동한 것이 바로 양전이었다.
양전은 여러 방면에서 강자아를 도왔고, 그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걸 지켜봤다.
“성좌가 된 이후, 지상에서 많은 계약자들이 펼치는 영웅담을 보면서 당신은 좀이 쑤셨겠죠. 내가 직접 나선다면 저들을 이끌고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 있을 거다…… 라고 말이에요.”
“…….”
“마침 성령대계에 강자아도 없고, 당신이 세상의 주역이 될 기회였죠.”
강자아는 현상대계에도 존재했던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대계의 성좌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영혼이 어떻게 되었는지, 용길공주로서는 알 수 없다.
“결국 당신이 산해연합을 뛰쳐나와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중국을 집어삼키려 한 건…….”
용길공주는 잠시 숨을 토해 내고, 말했다.
“자신도 강자아 못지않은 일을 할 수 있다고,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증명하려고 했던 거예요.”
일반적으로 성좌들은 과거의 욕망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가끔 과거에 이루지 못한 꿈을 성좌가 된 이후에 이루려는 자들이 있다.
양산박의 사진이 그랬고, 양전도 마찬가지다.
태공망 강자아에게 가진 열등감이 양전을 그렇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당신은.”
그때 양전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저에게 모욕감을 주려고 이번 일에 저를 끌어들인 겁니까?”
“……아.”
용길공주는 흠칫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딱히 상관없습니다. 그리 틀린 말도 아니고요.”
양전은 차가운 눈으로 용길공주를 쳐다보고 있었다.
“맞습니다. 저는 태공망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제 마음에 남아 있고, 제 행동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설마 당신이 그것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을 줄은 몰랐군요.”
“양전, 저는…….”
“하지만 패배했고, 이렇게 다시 조역으로 전락했지요. 맞습니다.”
양전의 냉정한 목소리가, 시베리아의 한기보다 차갑게 파고들어왔다.
“그걸 지적해서 만족하십니까?”
“…….”
“무명의 왕을 좋아해서 그러냐는 질문, 제가 생각해도 저질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사과하겠습니다.”
양전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저야말로, 함부로 얘기해서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한 배를 탄 몸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툼 없이 협력해서 일을 처리하도록 하죠.”
“네…….”
양전의 차가운 목소리를 들으며, 용길공주는 착잡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 * *
“…….”
그 모든 광경을, 나는 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내가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비운 동안 이게 무슨 일이야?’
물론 성좌인 나는 화장실을 갈 필요가 없다. 화신으로 내려온 상태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생리 활동을 하지 않으면 의심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 내려가 있을 때는 일부러 화장실을 가는 척하면서 철저히 위장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추위 때문에 화장실이 급해진 척하면서 잠깐 이탈했는데…….
‘이게 대체 뭐냐고.’
용길공주와 양전 사이에서 엄청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때 육체관계가 있었던 남녀끼리 서로 어색한 정도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감정의 골이 깊었던 모양이다.
‘이 멤버로 오면 안 됐던 거 아니야?’
용길공주는 대체 왜 양전을 데리고 가겠다고 한 걸까.
별생각 없이 승낙한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냥 서로 티격태격하는 거라면 몰라도, 이렇게 질척질척한 관계는 부담스러운데.’
남녀 사이의 관계에 개입하고 싶지는 않다.
서로 쌓인 게 있으면 내가 모르는 곳에서 알아서 잘 해결해 줬으면 한다.
“키에에에엑!”
바로 그때, 괴이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몬스터……!”
나는 이미 나무 뒤에서 뛰쳐나온 상태였다.
서로 어색하게 서 있던 용길공주와 양전도 다급히 움직이며 주위를 경계했다.
“알마스티…… 설인(雪人)!”
알마스티는 세계 곳곳의 추운 지역에 존재하는 ‘설인’의 러시아 버전이다.
키는 2미터가 넘으며, 눈처럼 하얀 털을 지닌 유인원의 모습이었다.
그런 알마스티가 십여 마리 정도 나타나 우리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용길공주! 양전! 제가 앞으로 나가겠습니다!”
그렇게 소리치며 나는 가슴 주머니에서 작은 막대기를 꺼냈다.
얼마 전에 바닷속에서 회수한 여의금고봉이었다.
“하압!”
기합을 지르며 여의금고봉을 휘둘렀다.
선행하던 알마스티 두 마리가 갑자기 커진 여의금고봉에 얻어맞고 쓰러졌다.
“잔챙이들이 어딜 감히……!”
양전이 목소리를 높이며 도술을 사용했다.
그러자 번개가 휘몰아치면서 알마스티 무리를 덮쳤고, 그들은 몸을 떨며 그 자리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마무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용길공주가 물을 투창처럼 만들어 사출했고, 알마스티의 몸에 정확히 꽂혀 그 목숨을 빼앗았다.
채 1분도 되지 않아, 십여 마리의 알마스티가 전멸했다.
‘역시 성좌는 성좌인가.’
순식간에 정리된 걸 확인하고,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 온 그 어떤 마법 공격 타입 계약자보다 실력이 뛰어났다.
보통 계약자였다면 여기서 한동안 발이 묶여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전과 용길공주는 순식간에 알마스티를 전멸시켜 버렸다.
‘서로 사이는 안 좋아도…… 든든하긴 하네.’
이 정도 전력을 갖춘 상태면, 행여나 판데모니움의 대군에 포위된다고 해도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화신 강림]을 해제하여 성령대계로 돌아가는 게 더 빠르겠지만 말이다.
‘그냥 내려온 김에 마신급 악마 하나 처치하고 갈까?’
어차피 이곳은 판데모니움의 세력권 안이라 다른 성좌들의 눈에 띄지도 않고, 그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