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60
여왕의 정원 (1)
이미 내막을 아는 이시엘은 한 발 물러나 있었지만, 첼과 쌍둥이들은 야단을 피웠다.
“예언은 시간의 여신의 신녀들에게만, 그것도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성흔인데 굉장해!”
“어떻게 생긴 거야!”
“난들 아냐. 자고나니 나타나 있던걸.”
“이제야 미스터리가 풀리네. 도대체 오레일스 지구의 부지를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알고 매입해놨나 했더니. 너 앞으로 뜰 주식은 모르냐?”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데 주식 이야기나 하고 있는 첼의 태평함이 부럽기까지 한 클레이오였다.
“아니, 내 스킬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니까. 당연히 완벽하지도 않고. 그럼 아서, 네가 보는 환시 중에 ‘기억된 세계’에 관한 건 없어?”
“야, 나야말로 닥치기 전까진 환시의 정체를 모른다고.”
클레이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서의 기억은 필요한 데선 안 나타나고 필요 없는 데서만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후, 알겠어. 그럼 ‘기억된 세계’에 대해선 내가 좀 아는 게 있으니까, 잘 들어.”
클레이오는 ‘여왕의 정원’ 던전에 관해 자신이 아는 것을 아이들에게 모두 전했다.
첼이 마지막으로 내용을 정리했다.
“알겠어. 위가 둥근 유리온실 앞에 모이라는 거지?”
“들어가서 흩어지더라도 거기서 만나. 온실은 두 갠데 반드시 작은 쪽이야, 알지? 내가 도착하기 전엔 절대 돌입하면 안 돼. 그리고 제베디 말대로 떨어지면 강일 테니 [건조] 마법식 외우고 있으면 되새겨 보고. 마광석 백린은 물이 안 들어가게 방비해 둬.”
“던전 공략에 마광석 백린과 [발화] 마법식이 꼭 필요하단 말이지. 이해했어.”
첼과 마찬가지로 [발화] 마법식을 외우고 있는 이시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마광석 백린은 학교에 실험용으로 상비되어 있어서 그걸 챙기기로 했다.
“서클 없이 마법식을 운용하려면 에테르를 한참 주입해야 하니, 한 명은 엄호를 해 주도록 해. 안에선 정신 차리고 항상 에테르를 끌어올릴 수 있게 대비 하고.”
“그래그래. ‘기억된 세계’의 제0 원칙. ‘모든 마수는 에테르를 이용해서만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그건 내가 너보다 잘 알 거다.”
여전히 긴장감이라곤 없는 첼의 태도에 클레이오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두 번이나 다시 에테르를 주입해 연장시켰던 [방어][차폐]마법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로 갈 시간이었다.
클레이오의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그보다 훨씬 적게 잤을 텐데도 여전히 팔팔하고 쌩쌩한 아서가 혀를 찼다.
“이런, 잠이라도 좀 잔 뒤에 가면 좋았을걸.”
“아슬란은 이야기가 새나가기 전에 널 처리하려는 거잖아. 야밤에 불러온 것부터 계획의 일부였겠지.”
“둘째 형은 그렇게 누가 봐도 빤히 읽히는 얕은 수를 쓴단 말야. 정직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정직한 수에 몇 번이나 뒤질 뻔한 네가 할 말이냐? 지금 당장 닥친 것도 생명의 위기다.”
차폐 마법식이 꺼지기가 무섭게 검은 띠를 맨 크뤼엘 기사단의 기사들이 막사 입구를 휙 젖혔다.
“준비 시간이 더 필요한가?”
“아니오, 제베디 교수님께 인사만 드리면 당장 들어갈 수 있습니다.”
네 사람은 모두 채비를 갖추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아서와 동기들이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꿀까봐 걱정된다는 듯 기사들은 재촉을 해댔다.
그때 로브와 수염을 마구 휘날리며 성큼성큼 걸어온 제베디가 날 선 눈으로 두 기사를 비키게 했다.
로브 소매를 뒤적이던 마법사는 클레이오에게 팔찌를, 첼과 이시엘에게는 각각 건틀렛을 한 짝씩 건네주었다.
“그 팔찌의 마석 루비에는 [방한] 마법이 깃들어 있다. 마석 금모래를 씌워 엮은 건틀렛엔 [방어] 마법이 새겨져 있고.”
지켜보고 있던 아서가 얄미운 웃음을 지으며 깐족거렸다.
“교수님 제 건 없습니까? 왜 얘들만 마도구 줘요.”
“네가 차고 있는 그 장검 하나면 이 세 물건을 합친 것보다 위력이 셀 터. 자력구제 해라.”
아서의 경박한 태도에, 한 걸음 물러서 있던 크뤼엘의 기사 둘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바를 그대로 아슬란에게 고해바치겠지.
철이 없는 막내 왕자, 제 앞에 놓인 위기가 뭔지도 모르는 어린애.
‘이 순간까지 와서도 이미지 메이킹에 철저하네. 그래 주인공 뚝심 세다.’
어느새 밤이 다 닳아 부옇게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므네모시네의 문은 건너편의 숲 대신, 희미한 푸른빛을 발하며 일렁이고 있었다.
부서져가는 벽 위에는 고대 숫자로 ‘4’가 떠올라 금빛으로 반짝였다.
어느새 문 주변으로 아슬란, 크뤼엘 공작, 크뤼엘의 기사들, 안절부절 못하는 스웨인까지 둘러 서 있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어디 마실이라도 가는 사람처럼 가볍게 인사한 아서가 문 안으로 휙 몸을 날렸다. 푸른빛이 소년을 감싸자 문 위의 고대 숫자가 ‘3’으로 줄어들었다.
뒤이어 첼과 이시엘이 연달아 들어갔고 클레이오는 안 떨어지는 걸음을 떼며 눈을 꽉 감았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처럼 몸이 붕 뜨는가 싶더니 감은 눈꺼풀 아래 시야까지 하얗게 물들었다.
‘이전 원고에선 마법사는 이런 데 안 들어갔다고! 이 고생에 휘말릴 생각은 절대로 없었는데! 내 팔자야!’
.
.
.
푸하아앗―!
철퍽! 철퍽!
클레이오는 차가운 강물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처음 이쪽 세계로 올 때처럼, 오만 잡생각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수영이고 뭐고, 문을 지나는 동안 뇌가 진탕된 듯 어지러워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물을 잔뜩 먹어 간단한 진언조차 내뱉지 못했다. 숨이 막혔다.
그 때 강한 힘이 코트 목깃을 잡아채 클레이오를 수면 위로 끌어냈다.
촤아아악―!
“쿨럭, 쿨럭쿨럭!”
“정신 차리고 똑바로 서 봐, 레이. 여기 물 안 깊어.”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니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러자 겨우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아서 말이 맞았다.
물은 겨우 클레이오의 턱까지만 오는 깊이였다. 아서는 키가 커서 고개가 쑥 나왔다.
“그렇지? 자 이제 나가자.”
“어… 고맙다.”
클레이오는 이런 얕은 물에 빠져죽을 뻔한 게 쪽팔렸다.
“인사는 나중에 해. 입술이 시퍼래. 내가 안 왔으면 너야말로 마수 하나 보기 전에 물에 빠져 죽었겠다.”
머쓱해진 클레이오는 다른 방향으로 말을 돌렸다.
“첼이나 이시엘은 못 봤어?”
“네 푸닥거리밖에 안 보이던걸.”
“다른 쪽으로 떨어졌나보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기억된 세계’의 입장자는 들어오는 순서와 상관없이 두 세 무리로 나뉘어, 랜덤으로 떨어졌다.
‘원래라면 이시엘이 함께하겠지만, 이번엔 이렇게 됐으니 나라도 아서 놈 안 뒤지게 잘 붙어 있어야겠어. 후우.’
“레이 네 말대로 역할을 분담하고, 이런저런 재료를 나눠 가지고, 만날 장소도 정해놓길 잘했어.”
“그래, 절대 은혜 잊지 말도록 해라.”
“어련할까.”
뭍으로 나오자 앞은 낮은 관목으로 이루어진 정원의 초입이었다.
야트막한 제방 위에 발을 디디고서야 뒤를 돌아볼 마음이 들었다.
탁한 색의 강줄기 너머는 완전한 공백이었다.
희지도 검지도, 밝지도 어둡지도 않아 아무런 색도 없이 비어 있는 공간.
경계 안쪽의 하늘은 남빛의 저녁이고 사위에는 부드럽게 어둠이 서려 있었다.
이곳이 ‘기억된 세계’였다.
동시에 클레이오의 눈앞에 익숙한 문자열이 산란했다.
[기억된 세계: 여왕의 정원] [―므네모시네 여신의 깨어진 보석이 응집시킨 시공의 조각.―‘마스터 클락’을 멈춰 역사의 반복을 중지시켜 주세요. 시간적 동시성을 잃으면 공간은 해체됩니다.
주의: 제한 시간이 다하면 모든 요소가 시작 상태로 리셋됩니다.] [―남은 시간 / 제한 시간:
23:59:45 / 24:00:00]
클레이오와 마찬가지로 허공의 한 지점을 응시하던 아서가 낮게 탄성을 내뱉었다.
문자열은 ‘약속’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입장자 모두에게 보이는 던전의 공통 메시지였던 모양이다.
“이게 그 ‘말씀’이라는 건가? 마법보다도 신묘하군.”
“그러게.”
“여기는 그냥 알비온의 숲과 똑같아서 우리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로 별다르네.”
오랜 기록 속에서 던전의 메시지는 ‘말씀’으로 불렸다.
아서는 처음으로 보게 된 던전의 메시지가 신기한지 허공으로 두어 번 손짓을 했다. 손이 지나가도 글씨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다.
‘약속’의 메시지도 그랬으니까.
‘다행히 다른 던전은 아니군. 지난 원고 그대로 ‘여왕의 정원’이야.’
혹시라도 생판 모르는 장소에 떨어질까 내심 긴장했던 클레이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전개가 빨라졌지만 ‘기억된 세계’의 설정은 크게 개변된 것 같지 않았다.
하긴 그런 특징적인 아이디어를 바꾸기는 어려울 거다.
‘이 모든 ‘기억된 세계’는 세계의 시간적 동시성을 유지시키는 ‘마스터 클락’을 가졌고, 그걸 멈춰야 문밖으로 돌아갈 수 있댔지.’
긴장이 풀리자 추웠다.
던전 안의 기온은 약간 서늘한 정도였지만, 차가운 물에 젖으니 온 몸이 덜덜 떨렸다.
클레이오는 재빠르게 필드를 열어 자신과 아서의 옷을 말렸다. 다행히 배낭은 방수 처리가 되어 있어 겉만 훑어내면 됐다.
몸이 마르고 나자 제베디가 준 마도구 팔찌의 따듯함이 느껴졌다. 팔목부터 옅은 온기가 살살 퍼져나갔다.
금세 보송해진 옷이 신기한지 몸을 이리저리 살피던 아서가 히죽거렸다.
“오, 내게까지 이런 호의를 베풀어주다니. 에테르 감응력이 펑펑 넘쳐나는 마법사만 할 수 있는 짓이구만.”
클레이오는 익살을 떠는 아서가 얄미워 뒤통수를 퍽 쳤다.
“네가 아프면 싸울 사람 없으니까. 시계를 부수는 건 내가 할 테니, 길은 네가 앞장서. 솔직히 절체절명 상황 아니었음 절대로 이런 덴 안 들어오고 싶었다.”
“그러게. 바람만 불어도 휘청이는 약골에겐 시작부터 위험한 곳인데?”
“장난 아니니까 긴장 풀지 마! [방벽이여 나를 수호하라!]”
빠르게 펼쳐진 클레이오의 필드에서 방어 마법식이 시동되었다.
투두두두둑―!
콰지직! 치이이익―!
뚜둑!
나지막한 관목의 나뭇가지들이 에테르의 금빛 반구에 부닥쳐왔다.
동시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강의 관목—분류: 마수
—레벨: 3]
마수의 레벨은 1에서 8까지였다. 에테르 레벨과 큰 차이가 없고, 레벨이 맞으면 상대하기 어렵지 않았다.
‘3레벨짜리 마수면 아서에겐 껌이겠네.’
기본 메시지창이 빛난 직후 ‘약속’의 주변으로 자르르 금빛이 돌더니 멀리로 흩어져 몇 십 미터 앞 관목의 높은 이파리를 가리키듯 맴돌았다.
‘이게 왜 이래?’
클레이오는 곧 지난 원고의 구절을 떠올릴 수 있었다. 강의 관목은 군집체였고 황금 잎을 단 우두머리를 베어야 소멸했다.
「지각」을 켜자 좀 더 확실해졌다. 약속이 인도한 자리에서 강한 에테르 반응이 느껴졌다. 마수의 핵인 마석이 거기 박혀 있는 것이다.
‘이럴 거면 나 말고 아서한테 보너스 정보를 주면 되지 왜 일을 어렵게 하는 거야. 맨날 뜻 모를 짓을 벌이는 저자 놈이라니까’
어쨌거나 마수는 기억 속의 지난 원고와 똑같이 등장하는 모양이었다. 천만의 다행이었다.
‘…좋게 생각하자. 원고가 없었다면 내 수준에선 이런 잡몹이라도 힘겹게 잡아야 했을 테니.’
“아서, 금색 이파리를 찾아줘! 그게 이 마수의 우두머리다!”
위에서, 아래에서, 쇄도해오는 가지들은 사람의 살을 꿰뚫고 휘감는 놈들이었다. 하나하나 위력은 약하지만 수가 무수해 팔다리를 붙들리면 금세 희생양이 됐다.
클레이오와 아서를 노리고 안으로 파고들려던 나무와 이파리들이 방어벽에 부딪쳐 꺾였다.
강가를 따라 늘어선 관목들은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이파리가 달린 나뭇가지들은 어느새 클레이오의 필드를 둘러싼 채 머리 위까지 쇄도해 왔다.
마법식의 경계에 선 아서는 빽빽이 둘러싼 가지들을 어렵잖게 휙휙 베어냈다. 가벼운 손짓이었다.
베그의 검은 날이 넓은 투 핸드 소드였지만, 에테르 [강화]에 능숙한 아서는 한 손으로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검에 베인 나뭇가지들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흩어져 재로 돌아갔다.
“아무리 봐도 그냥 관목과 똑같았는데, 이게 전부 마수였군!”
“감상이나 할 때냐!”
“감상을 해야 대빵을 찾지.”
“그래서, 금색 이파린 찾았냐?”
“3시 방향. 제일 끝 놈, 가장 높은 가지! 저걸 쓰러뜨리면 되는 거지?”
동의를 구하듯 아서가 눈짓했지만, 클레이오의 눈엔 당연히 아무 것도 안 보였다.
메마른 나뭇가지들이 뭉쳐 스스스스, 파사사삿 거리는 소음을 낼 뿐이었다. 멀리 에테르가 뭉쳐 어른거리는 곳이 있었지만 딱 특정하기 어려웠다.
‘하, 진짜 짐승 같은 안력이네.’
클레이오는 표정관리를 하며 재빠르게 「지각」을 켰다. 그러자 아서의 말대로, 멀리 어둠 속에서 동전 두 개 크기의 금빛 이파리가 파리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래! 저 놈을 베면 강과 정원 사이 첫 번째 관문은 사라지는 거다!”
“맡겨 둬.”
날카로운 베그의 검이 에테르를 머금고 날에 새겨진 잔물결마다 가닥가닥 금빛이 서렸다.
칼자루를 움켜쥔 아서는 도약을 위해 몸을 낮췄다. 그리고는 엄청난 속도로 뛰어올랐다.
‘가라! 아서몬!’
발목을 잡을 듯 짓쳐오는 가지들을 거침없이 베어내며 아서는 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사실 지금의 클레이오라면 혼자서도 지나칠 수 있는 관문이었다.
[아킬레우스의 창]을 꺼낼 것까지도 없었다. 아직 제대로 써보진 못했지만, 설계해둔 [제후 천사의 불]로만 태워도 관목 마수정도야 쓸어버릴 수 있었다.하지만 그러지 않고 아서가 마수를 베길 기다렸다.
‘아슬란은 잘못 생각한 거야. ‘기억된 세계’의 궁극적인 보상은 마석이나 마도구가 아닌데.’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은 바로 극적인 실력 상승이었다.
‘던전 안에선 칼 몇 십 번만 휘둘러도 저 바깥에서 수천수백 번 휘두른 것처럼 실력이 는댔어.’
그걸 아서가 깨닫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귀띔을 해줄까 하다 그만 뒀다.
원고에 따르자면, 그 부분은 스스로 인식하고 이해해야 하는 요결이었다. 깨닫지 못한 채 남의 조언으로 자신의 실력을 상승시키기는 힘든 법이랬다.
‘에테르의 은총인지 뭔지 뜬구름 잡는 소리 같긴 한데, 주인공이니까 좀 찰떡같이 알아봐봐.’
서서히 방어벽을 이루던 마법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들 한복판으로 뛰어든 아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가지의 성긴 틈새로 태양처럼 밝은 검기가 번뜩이는 건 잘 보였다.
방어막에 한 차례 더 에테르를 주입할까 타이밍을 재는 사이, 클레이오를 둘러쌌던 음산한 나뭇가지 전체가 일거에 재로 화했다.
푸스스스스스―
흩날리는 재 너머에서 검을 든 아서가 뒤돌아봤다.
웃는 얼굴이었다.
이 모험이, 힘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이 순간이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
동시에 아서에게 떠오른 던전의 메시지를 클레이오 역시 ‘약속’을 빌어 엿볼 수 있었다.
[공용 스킬:‘해굽성의 참斬’이 발현됩니다.―가장 어두운 고립 속에서도 빛을 향하는 검로를 발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