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in Character’s Little Sister RAW novel - Chapter (31)
이번엔 정말 신기한 모양인지 박마노가 일어나지 않고 바닥과 무릎을 번갈아 보았다. 설마 저항하는 S급 헌터에게도 통할 줄은 몰랐던 터라 이보배도 깜짝 놀랐다.
‘SS가 진짜 SS긴 했네.’
“스킬 등급 물어봐도 돼?”
“둘 다 SS급이에요.”
“는 방어 무시 때문에 붙은 등급 같고, 은 SS급 확실하네. 혹시 몰라 주위에 가장인 거 소문내고 다닌댔지?”
“네.”
“스킬은 숨기고 가장인 건 앞으로도 소문내고 다녀. 이거 정말 유용한데.”
짧은 시간일지라도 상대에게 무조건 특정 자세를 강요하는 스킬이다. 몬스터 상대론 별 효과 없을지 몰라도 사람에겐 아주 유용했다.
그리고 박마노는 몬스터보단 사람을 상대하는 헌터다. 박마노는 이 마음에 쏙 든 눈치였다.
“세상엔 신기한 스킬이 참 많단 말이야……. 방심하면 안 되겠어.”
“아하하.”
“그나저나 남의 소중한 밑천을 털었으니 보상은 뭘로 해줘야 하나.”
“네? 아뇨, 괜찮은데요.”
“쓰읍. 그런 유니크한 스킬은 존재를 알려준 것 자체로 정보료를 받을 수 있다고. 거미 새끼한테 팔았으면 천은 땡겼을걸?”
“그 거미는 정보상인 거죠?”
“그래, 아라크네. 헌터닷컴이랑 헌터닷컴넷, 아라크네의 거미줄 주인.”
충격적인 진실에 이보배는 눈을 깜빡였다. 대한민국 헌터들의 필수 커뮤니티 헌터닷컴은 그렇다 치자. 헌터닷컴과 표절 사이트 헌터닷컴넷의 주인이 동일하다니?
‘아라크네의 거미줄은 그런 거겠지? 소설에서 흔히 보던 아무나 못 들어가는 사이트.’
“IT 강국에 금융실명제인 이 나라에서 음지 시장을 장악했는데 꼬리가 안 잡히는 거 실화냐. 못 잡아서 빡쳐. 아, 빡쳐, 빡친다. 거미만 생각하면 화가 난다.”
박마노가 미치도록 잡고 싶다고 중얼거리며 칵테일 잔을 연달아 비웠다.
“제일 빡치는 건 거미 새끼가 수사에 유용한 정보를 적선하듯 던져 주는 거야아아아악!”
박마노가 발작적으로 머리를 헤집더니 이를 갈고 다리를 달달 떨었다. 누가 봐도 초조하고 짜증 난 기색이 역력했다.
“네가 한현우 말대로 재능이 있으면 그쪽에서 먼저 접촉해 올지도 모르지. 수수료를 많이 떼긴 하지만 쓰면 편하니까 그냥 써. 다들 암암리에 쓰니까. 난 자존심 때문에 못 쓰그든.”
정말 자존심 상했는지 박마노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더니 테이블에 이마를 박고 문질렀다.
“염병할 치파오……. 컨셉충이면 남고 중국 놈이면 한국서 이러지 말고 중국으로 가라.”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공무원의 고충이 느껴지는 한탄이었다. 듣고 있자니 몹시 서글퍼졌다.
이보배는 자신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잘나가는 사회인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결국 안주인 육포를 박마노에게 건네는 게 그녀의 최선이었다.
박마노는 얌전히 육포를 받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육포와 함께 선량한 공무원을 괴롭히는 나쁜 새끼들을 씹었다. 가장 많이 나온 인물이 염병할 치파오 거미와 국적 없는 검성이었다.
부가 설명 하자면 검성의 국적은 대한민국이 맞다. 검성의 행적이 화려하기에 박마노가 나라 없는 놈이라고 씹는 것이다.
“아……. 검성에게 벌금으로 1오대강 물리고 싶다. 그 정도는 해야 그 새끼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는데…….”
‘낼 수 있는 액수야?’
1오대강은 세계 최강의 헌터이자 소수 정예 길드 반야의 길드장인 검성이라도 내기 힘든 액수일 것이다.
박마노는 육포를 철근같이 씹으며 이보배에게 말했다.
“너무 내 한탄만 했네. 아직 쌓아둔 거 있을 텐데.”
접시에 담긴 육포를 혼자 다 씹은 박마노가 이성을 찾았다.
“저는 괜찮아요.”
“괜찮긴, 하나만 쌓아둔 게 아닐 텐데.”
아직 괜찮다 착각하는 건 술이 부족하다는 증거라며 박마노가 술을 추가로 주문했다.
30분 뒤. 술에 취한 이보배는 짧고 굵게 딱 한 문장만 외쳤다.
“집에 오빠가 셋인데 내가 가장인 거 실화냐!”
얼쑤, 우리 가락!
두 달간 쌓아온 속을 털어버리는 한 서린 외침이었다. 깊은 감동을 받은 박마노가 3차를 외치고 이보배가 4차, 5차까지 따를 의지를 표명했다.
안타깝게도 둘의 날밤 회동은 2차가 파하기 전 좌절되었다. 박마노의 업무용 폰이 울린 것이다.
사건 사고는 휴일을 가려주지 않으니 박마노의 휴일은 업무용 폰이 울리는 순간 쫑 났다.
박마노는 아티팩트 [피독주]로 이보배의 몸에 있는 술기운을 날렸다. 처음 보는 형태와 원리의 아티팩트에 이보배가 신기해했다.
“와, 이런 것도 있어요?”
“검성이 귀환할 때 보따리를 잔뜩 싸 왔어.”
“네? 그럼 이건.”
“검성 양반이 자기가 봤을 때 싹수 있다 싶은 헌터들에게 돌린 거야. 독 따위에 당해 죽지 말라고. 재수 없는 영감!”
이보배가 오빠들에게 쌓인 게 많듯 박마노도 공무를 방해하는 진상 때문에 쌓인 게 많았다. 박마노는 치를 떨다가 이보배에게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엔 꼭 5차까지.”
“네!”
“차 끊겼으니 택시 타고 갈 거지? 아니면 근처에서 자고 갈래?”
“아니요, 저 집순이라 늦어도 집에는 들어가거든요.”
“그럼 택시 올 때까지 기다려 줄게.”
“바쁘신 거 아니에요?”
“택시 기다려 줄 시간은 있어.”
바쁜 사람 괜한 일로 붙잡아두기 미안해서 이보배가 거듭 사양했다. 그러자 박마노가 고개를 저었다.
“대형 길드들이 괜히 생산계 야간 퇴근에 회사 차 붙여주는 줄 알아?”
‘택시비 아끼라는 의도가 아니었어?’
박마노의 태도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교통비 지원보단 길드원 보호가 목적이었나 보다.
‘어쩐지 기사님이 병원 앞에서 기다려 주더라니.’
“우리나라가 좀 안정되긴 했지만 비전투계 인신매매는 세계적인 인기 사업이야. 그리고 각성자면 무조건 죽이려 드는 새끼도 있으니 몸조심할 것.”
박마노의 경고는 무서웠지만 택시 기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본 게 박마노가 맞는지 아리송한 듯 혼잣말로 박 어쩌고를 중얼거렸다.
‘집에 도착하면 확인 전화. 내가 안 받으면 음성 녹음할 것.’
이보배는 핸드폰을 꺼내기에 앞서 지갑 안에 모셔둔 박마노의 명함을 보았다. 박마노는 폰이 두 개다. 업무용, 개인용. 그래서 명함도 두 개였다. 업무용 번호가 적힌 명함, 개인 번호가 찍힌 명함.
이보배가 받은 건 개인 번호가 찍힌 명함이었다. 이보배의 입가가 벌어졌다.
‘하얀 눈의 청룡 카드만큼 귀한 명함. 아주 귀한 것이지요.’
황송한 나머지 번호를 저장하지 않았었지만 오늘을 기념 삼아 저장해도 될 것 같다. 이보배는 방해 금지 모드라 내내 방치했던 폰을 켰다.
쌓인 전화와 문자가 100건을 넘겼다.
‘이게 뭐야?’
100건의 절반 이상이 화르세인지가 건 전화였다.
‘이 인간이 폰을 쓸 줄 알았단 말이야?’
이보배가 전화할 땐 받는 꼴을 못 봤는데 전화 걸 줄은 알았나 보다. 이보배는 이한생에게 전화하지 않고 대화방을 확인했다.
대화방은 화르세인지가 보낸 오타가 점령했다. 이보배는 대화를 죽죽 올려 늦게 간다고 통보한 이후의 대화부터 살폈다.
[작은새끼 : 회식이니? 언제쯤 올 건지 알려다오^^] [큰새끼 : ㅇㅋ] [작은새끼 : 전화를 안 받는구나. 다음부터 늦을 땐 예상 귀가 시간, 어울리는 사람, 술 마시는 장소를 알려다오. 오빠가 걱정되는구나.] [망나니 : ㄴㅓ얻ㅣ] [망나니 : 도 ㅐ지아] [망나니 : 애안와] [작은새끼 : 답장이 없어 최요한에게 연락해 네 위치를 물어보았다^^ 프라이버시 때문에 위치는 알려주지 못하지만 안전하다고 하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다음부턴 1시간에 한 번씩 생존 신고해 주면 좋겠구나^^] [작은새끼 : 오빠가 트라우마가 있단다^^] [망나니 : 왜아나] [망나니 : 어디나] [망나니 : ㅎㅗㅣ시기무ㅓ나] [큰새끼 : 꿈과 사랑이 가득한 프린세스 프린스 프린세스 세계로의 여정에 동참하세요! 지금 왕자님과 공주님이 함께 모험하기 위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 프!프!프!를 다운받으세요!] [작은새끼 : 우리 가족 모두에게 행복이 깃들기를 ^^]* * *
“…….”
이보배는 핸드폰을 다시 방해 금지 모드로 돌렸다.
택시는 집 앞 골목에 섰다. 차에서 내려 골목을 걷다 보니 1층 거실에 불이 환했다. 이보배는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 평소라면 다들 잠들었을 시간이다.
‘작은오빠일까?’
이해기는 이보배의 귀가가 늦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자지 않고 기다렸다. 왜 늦냐는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언제 퇴근하든 반드시 병원에 들르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거운 발을 질질 끌고 집에 가면 무심하지만 따뜻하게 맞아주는 작은오빠가 있었다. 그래서 이보배는 버틸 수 있었고.
‘작은오빠가 보고 싶다.’
매일 얼굴 보고 산다. 그런데도 작은오빠가 그리워지는 기현상에 이보배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문을 열고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밀번호를 다 치기 전, 현관문이 열렸다. 이보배는 하마터면 현관문에 맞을 뻔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야!”
화르세인지가 씨근덕거리면서 이보배에게 삿대질했다.
“돼지가 광돈병에라도 걸렸느냐! 지금이 몇 신데 이제 기어 들어와!”
망나니가 동네 사람 다 깨울 기세로 외쳤다. 병원에서도 느꼈지만 목청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고요한 새벽 주택가에 이한생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전화? 이걸로 하는 원거리 대화는 왜 안 된 거냐! 받을 수 없다고 어떤 여자가 알려주던데 그 여자는 누구냐? 그 여자와 어울린 것이냐? 이 시간까지 돼지를 놔주지 않고 붙잡다니 마녀 아니냐!”
“막내 오빠, 쉿! 쉿! 좀만 조용히!”
“돼지가 해 지면 우리에 돌아와 잠을 자야, 웁! 우웁!”
“그만, 문 열어놓고 동네 시끄럽다.”
이한생의 뒤에서 등장한 이해기가 동생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제 오니?”
“응.”
“많이 늦었구나. 피곤할 텐데.”
이해기는 이보배를 걱정할 뿐, 늦은 귀가와 연락 무시에 화내지 않았다. 그 모습이 꼭 40대 아재를 덮어쓰기 전의 작은오빠 같았다.
“으읍! 우웁! 놓아라!”
“놨다, 이놈아.”
이해기는 현관문이 닫힌 뒤에 이한생을 풀어줬다. 풀려난 화르세인지가 갓 잡은 방어처럼 펄떡였다.
“너, 너 돼지! 그리고 네놈 둘째!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그렇게 태연하게 구느냐! 시간을 보아라! 새벽이다! 자정이 지났어! 이 돼지가 외박을 했다! 외박한 돼지는 거룩해질 자격이 없어!”
망나니가 눈에 불을 켜고 이보배와 이해기에게 삿대질했다. 한 손으로 번갈아 하다 귀찮았는지 양손으로 삿대질을 시전했다.
부재중 전화와 가족 대화방의 오타 도배. 둘로 짐작해 보건대 이한생은 이보배가 적잖이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설마 이렇게까지 걱정해 줄 줄은 몰랐다. 이보배는 고마움을 느끼는 한편 졸려서 하품했다.
“감히 주인이 말하는데 하품을!”
“한생아, 진정하고. 너도 졸린데 억지로 버텼고 보배도 피곤하니까 내일 얘기하자. 시끄러워서 형 깨겠다.”
악마가 깨어난단 소리에 망나니가 입을 다물었다. 화르세인지가 이보배를 노려보았다.
“내일 두고 보자.”
인류가 쌓은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가장 무섭지 않은 대사 중 하나였다.
망나니가 제 방에 들어가자 이해기가 이보배를 방으로 등 떠밀었다.
“너도 얼른 자. 아침은 김칫국이랑 콩나물국 중에 어느 게 좋아?”
“해장국 끓여주게? 콩나물이 좋아.”
“알겠어.”
이 김칫국과 그 김칫국은 엄연히 다르지만 한동안은 김칫국이 싫어질 것 같다. 이보배는 웬일로 아침에 일어나겠다 예고하는 작은오빠의 인사를 들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피독주 덕분에 술은 깼지만 스트레스 때문인지 피곤하고 졸렸다. 이보배는 반만 뜬 눈으로 이불 위에 누웠다.
‘아, 맞다. 마노 선배한테 전화.’
전화해야 하는데 왜 이리 졸린 것인지. 이보배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 * *
조련된 사회인은 전날 몇 시에 자더라도 눈뜨는 시간이 바뀌지 않는다. 이보배는 알람이 울리기 3초 전, 눈을 번쩍 떴다.
“클났다, 전화 못 했어.”
혹시 기억하지 못하지만 잠이 덜 깨 정신없는 와중, 집에 와 전화하지 않았을까. 그런 희망을 실낱같이 붙들고 핸드폰을 찾는데 보이지 않았다.
‘거실에 두고 왔나 보네.’
이보배는 머리를 긁으며 방문을 열었다. 계단을 내려가니 콩나물국 끓는 냄새가 확 퍼졌다. 오늘따라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총각이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다 이보배를 보고 웃었다.
“깼어? 밥 거의 다 됐다.”
“작은오빠, 혹시 나 어제 마노 선배에게 전화했어?”
“아니.”
“역시! 지금 전화드리면 민폐겠지?”
“어제 나한테 전화해 확인했으니 괜찮을 거다. 최요한도 있으니 전화는 덤이었을 것이고.”
이해기가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식탁 위에 올리면서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목소리가 인간쓰레기 대할 때랑 비슷하던데……. 내 착각이겠지?”
“그…… 렇겠지? 그럴 거야! 아하하!”
어제 이보배의 신세 한탄 중 이해기에 대한 불만이 80퍼센트를 차지했다. 박마노는 이귀한에게 뭔가 있고 이한생이 아픈 건 알지만 이해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아마 박마노에게 이해기는 능력 있으면서 일하지 않고 막내 등골 빼먹는 인간쓰레기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어젠 마노 누나와 술 마신 거였구나. 미리 연락 줬으면 걱정을 덜 했잖니.”
이보배가 식탁 위 반찬 뚜껑을 여는 동안 이해기가 밥을 펐다. 일어나지 않은 둘도 깨우려는지 밥공기가 네 개였다.
“나도 불렀으면 좋았…… 크윽. 어쨌든 늦는 건 괜찮지만 다음부턴 미리 연락 주고, 생존 신고도 해다오.”
“미안.”
‘좀 이상한데.’
잠에서 덜 깨 이성보다 본능이 앞선 이보배는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감지했다. 박마노가 자길 배신했다고 석양에 대고 울부짖을 땐 언제고 술자리에 끼고 싶어 한단 말인가.
‘이거 설마.’
이보배는 눈이 있고 귀가 있고 머리가 있다. 이해기의 과잉반응과 질척이는 태도, 자기 혼자 쌓은 내적 친밀감에 더해 누나라 부르는 자연스러움까지.
설마설마했지만 너무 없어 보여 배제했던 가설을 확인할 때가 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