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32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32화 –
우웅-
어서 제게 뛰어들라는 듯 결계가 진동했다. 그리고 그 너머의 공간을 서서히 비추기 시작했다. 흐릿한 공간에서 언뜻 누군가의 인영이 보였다.
나는 그 앞에 나무토막처럼 굳은 채 뚫어져라 너머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결계가 나타났으니 내 원래 세계로 돌아갈 기회였다.
그런데…….
‘뭐 하는 거야? 이희아! 지금이 기회인데!’
머릿속에서 어서 뛰어들라는 메시지가 삐용삐용 긴급하게 떠올랐지만, 두 발은 바닥에 붙잡힌 듯 움직이질 않았다.
그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으윽. 입술을 아프게 짓씹었다.
“으으…… 다자르를 이대로 두고 가는 건…….”
잔뜩 상한 다자르의 얼굴이, 그가 흐느끼던 목소리가, 내 손을 조심스레 붙잡던 따스한 온기가…… 자꾸만 발을 붙잡고 있었다.
휘잉- 우우웅-
결계는 이제 완벽하게 자리를 잡고 너머의 공간을 선명히 비추었다. 그곳에는 낯익은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인의 모습을 한, 이전 세계의 다자르였다. 그가 무어라 외치는 게 보였지만 내게 전달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결계가 크게 흔들렸다.
‘어? 방금 뭐지?’
순식간이었지만, 분명 이상한 힘이 결계를 강타했다. 흔들림과 함께 무언가에 타격을 받은 듯 금이 갔으니까.
혹시 내 주변의 누군가가 한 짓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곳에는 나뿐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건너편에서의 문제일 가능성이 컸다.
‘이러다 결계가 사라져 버리겠어!’
금이 간 걸 보니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어서 저곳에…… 악시온과 다자르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젖먹던 힘까지 끌어 올려 주먹을 쥐고 바들바들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발을 억지로 뗐다.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던 발은…… 이내 다시 멈췄다.
‘이대로는 돌아갈 수 없어.’
잔뜩 상처받고 홀로 남은 어린 다자르를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젠장. 왜 하필 이때 이렇게…….
나는 주먹 쥐었던 손을 툭 풀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으아. 진짜 어떻게 하라는 거야. 쟤를 이대로 두고 가면 어떡하냐고!”
나마저 떠나고 나면 홀로 남게 될 텐데. 날 기다리고 있는 악시온이 아른거렸지만, 차마…….
나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머리를 쭈욱쭈욱 잡아당겼다. 머리카락이 당겨지며 두피가 아파 왔다. 으으으. 으으.
땅바닥에 개미 한 마리가 쫄래쫄래 길을 가다 내 신발에 가로막혀 멈춘 게 보였다. 개미는 고개를 내밀어 오른쪽 왼쪽을 살피다 이내 왼쪽으로 향했다. 곧 신발을 빙 돌아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걷는 게 보였다.
“……어쩔 수 없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나도 저 개미처럼 조금은 돌아가는 수밖에.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점차 흐릿해져 가는 결계가 보였다. 그 너머에서 무어라 외치는 다자르도. 분명……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희아! 이희아!
하지만 그 모습은 곧 사라졌다. 언제 이곳에 결계가 있었냐는 듯,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뻥 뚫린 공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일어났다.
나는 조금 전 선택을 했다. 이곳에 좀 더 남기로, 말이다.
그리고 내가 마음 편히 내 세계로 떠날 수 있도록 저 어린 다자르를 도울 생각이다. 행복한 어른이 되어 제 님을 만나…… 자신의 정해진 인생을 살도록.
비록 그 끝이 그녀와의 이별 후, 다른 생을 시작하게 되는 것일지라도.
그 길을 잘 걷도록 도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러려면 우선…….’
지금 당장 다자르에게로 가야 했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 그가 있을 만한 곳으로 향했다.
* * *
“……이런.”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결계를 보며 다자르가 앓는 소리를 냈다. 제길…….
“방금, 실리아였지요?”
옆에서 실베스타인이 조심스레 물어 왔다. 그 또한 보았을 것이다. 실리아, 곧 희아가 결계를 발견했음에도 망설이다 결국 넘어오지 않았다는 걸 말이다.
엘스턴이 눈을 끔벅이며 말했다.
“뭐, 뭘까요? 조금 전 충격이 실리아 님께 전달이 되었던 걸까요? 그래서 이곳에 넘어오지 못한 건지…….”
“그건 아닐 겁니다.”
실베스타인이 그리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 충격은 실리아와의 ‘연결’에 영향을 미칠 뿐, 실리아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해요.”
그의 단호한 말에 엘스턴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다자르의 눈치를 보았다.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조금 전 결계가 있었던 허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다자르 님?”
“…….”
다자르는 답 없이 침묵하다가 이내 천천히 입술을 뗐다.
“악시온의 안전을 우선 확인하러 가도록 하지.”
그러며 몸을 휙 돌린 그의 뒤를 엘스턴이 주춤주춤 따르려다, 저를 붙잡은 손에 우뚝 멈췄다.
“실베스타인 님?”
“죄송하지만 저희는 이곳에 남아 조금 전 충격이 그곳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파악하고 있죠.”
진지한 얼굴의 그는 농사를 짓던 실리아의 얼굴을 떠오르게 했다. 엘스턴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끔찍이 아끼는 악시온의 안위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실리아와 쏙 빼닮은 푸른 눈에 그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따르지 않으면 자신의 안위가 보장되지 않을 것 같았다.
실베스타인은 싱긋 웃으며 엘스턴을 데리고 몸을 돌렸다. 다자르는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그의 머릿속은 매우 바빴다.
‘희아는 분명 날 보았어. 그런데 넘어오질 않다니. 건너편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그때…… 무슨 일이 있었지?’
과거를 되짚는 눈이 점차 흐릿해졌다. 그러다 불현듯 또렷해져 빠르게 깜빡였다. 그의 걸음이 멈췄다.
“아…….”
그래. 과거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았던 할아버지의 부재는 그의 마음에 큰 슬픔을 남겼다.
그리고 그때 희아는 무너져내린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가 저를 도운 만큼이나, 그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흠뻑 빠졌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그녀는 제 곁을 지켰다. 그가 성인이 되어 진정 홀로 설 수 있게 되었을 때까지.
* * *
“뭐……?”
아까 전 결계 너머로 보았던 성숙한 다자르가 아닌, 조금 어린 얼굴의 그가 날 멍하니 보았다. 나는 내민 손을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밥……. 아, 미안. 희아.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피곤과 슬픔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에 깨달음이 스쳤다. 그가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더니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에 바람이 생겨 좀 전까지 처리하던 서류가 살짝 움직였다.
산처럼 쌓여 있는 서류를 질린 낯으로 바라보다 일어난 그를 잡아채기 위해 손을 더 내밀었다.
좋아. 그럼 이제 계획대로 밥을 먹이러 가자.
하지만 다자르는 생각보다 강적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밥 먹으러,”
“네 식사를 먼저 챙겼어야 했는데. 예전엔 항상 같이 식사를 했으니까…… 날 기다린 거구나. 난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먹어. 나중에 먹을 테니까.”
다자르는 내가 내민 손을 휙 피하면서 다른 책상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또 다른 서류의 산이 더욱 높게 치솟아 있었다.
허공을 가르고 만 손이 황망하게 느껴졌다. 나는 손을 천천히 거두고 그의 등을 빤히 보았다.
이전 세계에서 마주한 다자르의 등은 넓디넓어 보였는데.
‘얘는 왜 이렇게 가냘파 보이냐.’
내 제안을 휙 넘겨 버린 그를 보며 불쑥 치솟았던 분노가 순식간에 쪼그라들며 피슛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허탈해지는 순간이다.
“……다자르.”
“내가 주방장에게 말해서 희아 네가 좋아하던 것들로,”
“다자르!”
버럭 그의 이름을 부르며 한걸음에 그의 앞으로 걸어가 두 손을 쭉 내밀었다.
찰싹. 두 엄지와 검지 사이에 각각 다자르의 보드라운 뺨이 잡혔다.
“읍?”
내가 그의 볼을 쥐고 꾹 누른 탓에, 그의 입술이 마치 붕어 입처럼 바뀌었다. 황금빛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우브븝?”
잔뜩 뭉개진 발음은 분명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일 테다. 그가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하지만 가까울 대로 가까워진 얼굴 탓에 눈동자는 날 담지 않을 수 없었다.
“날 봐. 다자르.”
“……읍.”
“나는 방금 같이 식사를 하러 가자고 물은 거야. 너, 굶은 지 일주일은 넘었어.”
“…….”
“지금까진 초월자라 괜찮았다고 해도 이대로 내 앞에서 굶어 죽을 생각이야?”
다자르가 눈을 깜박거리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얼이 빠진 듯한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는 건, 그가 아직 어려서일까.
나는 슬쩍 치솟으려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 내리고 툭 말했다.
“내가 맛있는 거 해 줄 테니까. 따라와.”
다자르의 눈에 물음표가 뜬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씩 웃고 말았다. 그 전용으로 항상 해 주던 음식이 있지 않은가. 분명 지금의 다자르도 좋아할 것이었다.
“자, 먹어.”
나는 부엌을 빌려 만든 음식을 다자르에게 내밀었다. 다자르가 살짝 멍한 표정으로 음식을 내려다보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