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35
제5화 마족 아르메이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태양은 떠오르고 있었다.
잘 자고 일어난 퇴괴평온당원들은 주위를 보며 크게 놀랐다. 산은 모두 무너져 있었다. 그뿐이랴?
지면 또한 수십 장 되는 높이로 수백 곳이 파여 있었다.
여전히 혈권은 부활하는 스켈레톤을 짓밟고 있었다. 밤새도록 대장군님이 공격했는데도 먼 지평선까지 가득 찬 스켈레톤들이 보였다.
밤사이에 지독히 몰려들었다.
“잘들 잤느냐? 낄낄!”
“예, 대장군님.”
천파편살을 필두로 모두들 스켈레톤을 공격하는 혈권의 등을 향해 포권했다.
“낄낄, 이 망자 놈들을 상대하는 건 미친 짓이다.”
수라혈마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 망자 놈들을 조종하는 흑골이란 놈을 잡아 족쳐야겠다. 가자!”
“예!”
퇴괴평온당원 100여 명이 일제히 대답했다.
퇴괴평온당의 공격이 시작됐다.
지독히 몰려든 스켈레톤 군단 사이로 퇴괴평온당원들이 날아들었다. 병기가 스켈레톤들을 갈랐다.
퇴괴평온당원들은 검을 한 번 휘둘러 여러 마리의 스켈레톤들을 단번에 베었고, 수라혈마도 한 번에 수백 기의 스켈레톤들을 부쉈다.
그러나 스켈레톤들의 수가 줄지 않고 있었다.
시야에 가득 차도록 모인 스켈레톤들!
부수면 다른 놈들이 몰려들고 그사이에 부서졌던 놈들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이게 무슨 망할 상황이야! 이놈들아, 다시 일어나지 마라. 이 장웅칠님이 미치고 환장하겠다.”
장웅칠은 컬컬한 목소리로 외치며 스켈레톤들을 공격했다.
이윽고!
“대장군님, 앞으로 포위망을 뚫을 수가 없습니다.”
사사혈겸이 외쳤다.
뜻하지 않게 밤사이에 수십만 마리의 스켈레톤들이 도시를 포위한 것이다.
“어디서 꾸역꾸역 밀려오는 거지?”
수가 늘어나고 있다.
“크윽!”
수라혈마가 신음을 흘렸다.
“홍염광마, 소리장비, 장웅칠, 사사혈겸, 소면혈객 등 다섯 백작은 성문을 지키고 나머지는 성안으로 들어간다. 낄낄!”
단 다섯 명으로 성문을 막을 수 있을 만큼 힘으로는 절대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일 수도 없고, 그 수가 점점 불어나니 어찌할 방법이 없다
결국 후퇴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계책이 필요하다!
고작 다섯 명의 백작이 성문을 막을 뿐인데 수만 마리가 넘는 스켈레톤들이 이를 뚫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퇴괴평온당 입장에서는 더욱 답답할 노릇이었다.
“아웃(out)!”
수라혈마는 혈권 밖으로 나왔다.
밤새도록 내력을 쏟아 부은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 생각해 보니 더욱 역효과가 되었던 것 같다.
강력한 기운이 스켈레톤들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방그라 성은 이미 스켈레톤들에 파괴되어 폐허나 다를 바 없었다.
방그라 성으로 수라혈마와 퇴괴평온당원들이 모였다. 수라혈마는 홧김에 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벽이 단숨에 허물어졌다.
“본좌 평생 이런 지독한 놈들은 처음 본다.”
수라혈마가 노한 얼굴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습니다, 대장군님.”
“크윽! 흑골을 죽여야 한다고 했다. 그놈을 죽이기 전까지 이 망자들은 다시 부활한다.”
“……!”
“귀영살검.”
“예, 대장군님.”
“주변을 살피고 와라. 필히 저들이 취약한 지점이 있을 것이니라. 전력을 다해 그곳을 뚫고 지나간다. 이게 무슨 쪽팔리는 일이더냐. 크으!”
수라혈마는 분함이 풀리지 않아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무엇보다도 쪽팔렸다. 진천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비웃을까? 혼자 설치다가 망자들에게 포위당해서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니!
명을 받고 귀영살검이 되돌아왔다.
“예, 이상하게 북쪽으로 망자들의 무리가 반쯤 나뉘어 있습니다.”
“그럼 그렇지. 낄낄! 가자, 북쪽이다.”
수라혈마는 혈권에 올라탄 후 성문으로 걸어갔다. 성문은 한창 다섯 백작이 스켈레톤을 막아서고 있었다.
“북쪽이다! 오로지 북쪽으로 강행한다. 낄낄낄!”
수라혈마가 제일 전면에 섰다.
거대한 혈권의 기체가 쿵쾅거렸다. 북쪽의 스켈레톤들을 압박해가기 시작했다.
곧바로 퇴괴평온당이 몰아쳤다.
귀영살검의 정보대로 북쪽은 다른 곳과 달랐다. 스켈레톤이 양분되어 있었다. 어떠한 이유로 스켈레톤들은 북쪽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크크!”
수라혈마가 웃었다.
이유를 알았다. 북쪽 언덕 너머로 에드먼 제국의 군사들이 스켈레톤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고군분투(孤軍奮鬪)!
에드먼 제국의 군대도 고립되긴 마찬가지였다.
“모두 부숴 버려라!”
수라혈마가 퇴괴평온당원들에게 명했다.
사파고수들은 에드먼의 군사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스켈레톤들의 후방을 향해 몸을 날렸다.
상황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정리되어갔다. 에드먼 제국의 군사들은 놀란 눈으로 사파고수들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순식간에 스켈레톤들을 부숴 버렸다.
더군다나……!
군사들은 고개를 높이 들었다.
혈권의 얼굴이 보였다.
“저, 저건 뭐야!”
에드먼 제국의 군사들은 놀라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부상자들을 옮겼다. 다시 일어서려는 스켈레톤들을 반복적으로 부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낄낄낄! 제논 공작, 그놈은 안 왔느냐?”
혈권에서 큰 목소리가 울렸다.
에드먼 제국의 제논 공작. 그는 우두커니 선 채로 혈권을 바라보고 있었다.
“데이모스……!”
신명대국에도 데이모스가 있었다.
에드먼 제국의 데이모스보다 더욱 견고하고 강해 보였다. 화염이 감싸고 있는 듯한 진한 적색이란……!
더욱이 그랜드마스터급의 수라혈마 공작이 조종하는 데이모스라서 그 위력이 대단했다.
스켈레톤 군단은 맥없이 무너졌다.
순식간에 다시 부활하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신명대국 데이모스의 위력이 갓소드에 달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수라혈마 공작! 그대인가?”
제논 공작은 태연스럽게 표정을 바꾸었다.
“낄낄!”
수라혈마가 웃으며 혈권에서 나왔다.
주위는 시끄러웠다.
수라혈마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제 두 대국의 군사들이 모였으니 계책을 상의해야 할 때다. 향후 어떤 식으로 망자들을 몰아내고, 대흑마괴 발록과 흑골을 죽일 수 있을지…….
“모두 진을 지켜라!”
제논 공작이 이끌고 온 수만 군대와 퇴괴평온당원들이 합세하여 진을 방비했다.
제논 공작과 수라혈마는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둘은 간이탁자에 마주앉아 서로를 마주 보았다.
수라혈마는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렸고, 제논 공작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흡사 진천과 수라혈마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꼴과 같다.
“빨리도 왔어. 낄낄!”
“세피로스 대신관의 서찰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본국의 대군은 출진 중이었소, 공작.”
“크크크크! 그런데 왜 수도로 가지 않고 여기서 발이 묶인 거지?”
“그것은 수라혈마 공작도 마찬가지 아니오. 어째서 수도와는 반대편으로 가고 있었소?”
“그것은……!”
수라혈마는 시선을 돌렸다. 뭔가가 생각난 듯 짐짓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제논 공작, 당연히 본좌는 그대를 도우러 온 것이다. 낄낄!”
“말도 안 되는 소리! 본국에선 10만군을 동원했건만, 신명대국에선 고작 100명을 동원한 듯 보이는데…… 맞소?”
“훗, 얼마나 경제적인지 모르는가? 키키키! 황제폐하의 신하들은 모두 일당천의 고수. 본좌가 이끌고 온 100명의 고수들은 10만 병졸의 위력에 육박하나, 식량을 포함한 전쟁비용은 제논 너희 나라보다 천 배 가까이 적게 든다. 아주 경제적이지. 낄낄낄!”
제논 공작도 동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엄연한 사실이었다. 가장 부러운 점이기도 하고.
수라혈마와 제논 공작은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누었다.
별다른 계책이 나오지는 않았다. 오로지 대흑마괴 발록과 흑골 킹스켈레톤을 찾아 수도로 전진할 뿐.
결론이 났다.
수도로 전진한다!
제논 공작과 수라혈마는 천막 밖으로 나와 동시에 큰소리로 외쳤다.
“진격!”
에드먼의 10만 대군과 신명대국의 1백 고수들이 수도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제논 공작은 실로 신명대국 고수들의 위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예전 개국식 때 비무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100명이 모여 수십만이나 되는 스켈레톤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에서 그때 느끼지 못한 진정한 패기를 느꼈다.
패기란 이런 것이다.
신명국의 검사들에게는 겁이 없다! 오로지 돌진뿐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들은 대 에드먼 제국의 병사들이다.”
제논 공작도 검을 빼 들고 돌격했다.
가장 돋보이는 활약은 말할 것도 없이 수라혈마의 데이모스 혈권이었다.
신명대국과 에드먼 제국은 지금은 동지지만 언제 적으로 돌아설지 모르는 상황.
에드먼 제국에서는 혈권의 강한 위력에 감탄하며 경계하는 자 또한 적지 않았다. 그야말로 전신(戰神)의 강림이다.
강한 에드먼 제국의 10만 군대와 신명대국의 검사들까지 합세한 그들.
진군은 순조로웠다.
그렇게 10일이 지났다.
스켈레톤을 전멸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도까지 도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
거대한 기운이 수도의 중앙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수라혈마와 제논 공작은 단번에 눈치챘다. 과연 발록이다.
멀리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에 잔털이 곤두설 정도다. 수라혈마나 제논 공작에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사방이 포위됐습니다!”
기사가 외쳤다.
“그 수가 50만으로 추정됩니다.”
수도는 물론이고 그동안 지나쳐온 곳의 사방에서 스켈레톤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수십만!
엄청난 수에 일대는 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라 흡사 안개처럼 시야를 가렸다.
엄청난 물량공세다.
“망자들의 수가 50만이든 100만이든 천만이든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한시라도 빨리 흑골과 대흑마괴를 찾아 없애야 한다!”
수라혈마가 사파고수들에게 외쳤다.
“예!”
사파고수들은 힘 있게 외쳤다.
발록과 킹스켈레톤!
그들과 만날 기회는 쉽게 다가왔다. 수도의 하늘로부터 검은 존재가 대군을 향해 날아왔다. 에드먼 제국의 병사들은 긴장하며 병기를 움켜쥐었다.
“발록이다!”
소문대로다. 발록의 손에 들린 두 채찍에서 화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발록이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에서 벼락같은 화염이 터져 나와 병사들 중앙으로 향했다.
간혹 끼어 있던 마법사들이 실드를 쳤다. 그러나 너무도 간단하게 실드는 무너지고 화염이 떨어졌다.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킹스켈레톤이다!”
수도 안에서 스켈레톤 군단을 이끌고 검은 해골이 나왔다. 병사들은 그를 가리켜 킹스켈레톤이라고 했다.
혈권이 스켈레톤 군단을 부수고 있다.
“제논!”
수라혈마가 외쳤다.
“본좌가 대흑마괴를 맡을 테니 제논 너는 흑골을 맡아라. 낄낄낄!”
“그게 좋겠군.”
데이모스를 탄 수라혈마 공작이라면 발록에게 어느 정도 승산이 있으리라.
제논은 그렇게 생각했다.
혈권이 스켈레톤들을 짓밟으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발록도 혈권 쪽으로 날아들었다.
혈권과 발록의 크기는 엇비슷했다. 수라혈마는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는 것을 느끼고 피식 웃었다.
“대흑마괴! 본좌가 상대해 주마. 낄낄낄!”
발록은 멈추었다.
“미천한 인간들…….”
소름 끼치는 음침한 목소리에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수라혈마의 입언저리 근육이 굳어 움찔거렸다.
우우웅
혈권의 주먹으로 기운이 모였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발록이 채찍을 휘둘렀다.
철권의 권을 내질렀다. 주변의 스켈레톤들이 권풍에 휩쓸려 사방으로 날렸다. 그러나 발록은 조금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 여전히 채찍은 휘둘러지고 있었다.
쉭
혈권은 아슬아슬하게 발록의 채찍을 피했다. 그 뒤가 문제였다. 어느새 다가온 검은 기운이 발을 붙잡고 있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발록의 채찍이 혈권의 가슴을 정통으로 타격했다.
“크아……!”
수라혈마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한 수를 교환하고 알았다. 상대하기엔 너무 벅찬 상대다. 데이모스 혈권을 탔는데도 이 정도라면 타지 않았을 때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존재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수라혈마는 험한 소리를 뇌까렸다. 발록의 채찍을 오른손으로 잡았다.
혈권의 주먹이 불길에 휩싸여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수라혈마는 기합을 터트렸다.
“으아아압!”
발록의 채찍을 바깥으로 당겨 병기를 빼앗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발록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크으…… 어?”
오히려 혈권의 신형이 기울었다. 발을 붙잡고 있던 검은 기운들이 갑자기 사그라졌고, 발록은 더 강한 힘으로 채찍을 당겼다. 혈권은 그대로 딸려 날아갔다.
쿵
혈권은 치솟는 불속으로 떨어졌다. 채찍을 잡았던 오른손은 심하게 녹아 있었다. 타격을 당한 가슴어림에도 채찍자국이 선명하게 패여 있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자신의 내력과 데이모스의 내력을 합쳐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고수는 일합으로 상대를 알아보는 법.
수라혈마는 이를 악물었다. 발록이 혈권을 보며 음침한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수라혈마는 얼핏 곁눈질로 제논을 보았다.
제논은 혼잡한 전장 속에서 킹스켈레톤과 결투를 벌이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그가 밀리고 있다.
제논은 간신히 킹스켈레톤의 공격을 막고 피하기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계로 돌아가지 못할까?”
피하기만 하던 제논이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오러블레이드가 매섭게 킹스켈레톤의 목을 노렸다.
챙
마치 미리 예측하고 있었던 듯하다.
킹스켈레톤의 마검이 중간에서 제논의 검을 쳐냈다.
위험한 순간!
마검이 제논의 어깻죽지를 베고 지나갔다. 제논은 신음과 함께 옆으로 몸을 날렸다.
뻘건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킹스켈레톤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섯 번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야 킹스켈레톤의 공격이 잠시 주춤했다.
킹스켈레톤은 갑자기 뒤로 물러났다. 제논은 자신의 머리 위를 덮친 그림자를 올려다보았다.
붉은색이 보인다.
신명대국의 데이모스 혈권의 기체가 자신 쪽을 향해 넘어지고 있었다.
쿵
간발의 차로 피했다.
깔릴 뻔했다.
제논은 기체를 보고 경악했다. 기체 전신에 채찍자국이 선명했다.
“괜찮은가, 수라혈마 공작?”
“크윽!”
혈권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제논은 급히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떠 있는 발록이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사악한 미소다.
“아무래도 안 되겠소. 후퇴하는 수밖에…….”
“그럴 수 없다.”
“공작!”
“크으……!”
“이러다간 모두 죽고 만단 말이다. 제국의 병사들이 헛되이 죽는 꼴을 더 이상 보고 있지 못하겠다!”
수라혈마는 아무 말 없이 혈권을 일으켰다. 하늘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발록을 보니 분노가 극에 치달았다.
한편으론 제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율리안 망자퇴치를 진천 대신 자신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그런데 지금 이 꼴이 무엇이란 말인가?
사파고수들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진격하며 여러 날 지속되었던 전투! 당연히 힘이 떨어질 만했다.
수라혈마는 치욕을 머금었다.
“후퇴한다!”
“후퇴!”
제논과 수라혈마가 외쳤다.
“대장군님, 본국으로 돌아가는 퇴로가 막혔습니다.”
“공작님, 저희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서남부 지역도 어렵습니다.”
가장 취약한 부분은 동남쪽 부분.
신명대국과 에드먼 제국에서 더욱더 멀어지는 곳만 남았다. 어쩔 수 없다. 최대한 멀리 후퇴하여 전열을 가다듬는 수밖에.
“서남부로 후퇴!”
발록과 킹스켈레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발록과 킹스켈레톤의 추격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그 결과 에드먼 제국의 병사들 중 절반에 달하는 4만여 명이 수도에서 전사했다. 퇴괴평온당 역시 부상자가 속출했다. 천만다행인 것은 전사자가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대패(大敗)다!
양국이 힘을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물들에게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했다.
실로 치욕스럽다. 제논 공작과 수라혈마는 패배감에 젖었다.
즐기듯 추격하던 발록과 킹스켈레톤!
그들은 수도에서 대략 천 킬로미터쯤 떨어진 부분에서 추격을 중지했다.
한마디로 수도를 중심으로 남동쪽으로는 천 킬로미터, 북으로는 에드먼의 국경까지인 300킬로미터, 서로는 로스엔과 신명대국의 국경까지인 300킬로미터가 마물들의 점령 하에 놓인 것이다.
수도에서 남동부 쪽으로 천 킬로미터쯤 떨어진 지점.
스켈레톤들이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라혈마와 제논은 남동부의 주요도시 가울에 도착했다. 가울의 성문 앞에선 스켈레톤들과 자경단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율리안의 성기사들과 병사들이 전부 이곳에 모여 있었군.”
제논 공작이 중얼거렸다.
얼핏 봐도 2만 명이 넘었다. 자경단의 수는 수라혈마와 제논 공작이 가울까지 도달하는 동안 네 배가 넘게 불어나 있었다.
“흠……!”
수라혈마는 유독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청년이 장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스켈레톤 수백, 수천 기가 무너지고 있었다. 장검에서는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기가 무섭게 땅이 갈라졌다. 냉기가 쏟아지고 거친 돌풍이 몰아쳤다.
“상당하군.”
수라혈마는 감탄했다.
제논 공작은 그 청년이 눈에 익었다.
“아……!”
뭔가 생각이 났다.
“신검이란 저런 것이다.”
수라혈마는 대번에 청년의 위력을 꿰뚫었다.
모든 것은 청년이 지니고 있는 검의 위력이었다. 청년의 검술은 그렇게 특출나지 않았으나, 절대적인 위력의 신검이 청년을 초절정 고수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계에 온 지 꽤 되었지만 모든 것이 희귀한 세계다.
짐승의 머리를 단 괴물, 철갑거인 데이모스, 마법, 드래곤, 죽지 않는 망자들, 대흑마괴 발록과 흑골 킹스켈레톤…….
거기다 신검까지 나타났다.
“크라우프 백작의 자제…… 판 크라우프!”
제논 공작은 청년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뭣들 하느냐. 어서 이 망할 것들을 부숴라!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부수고, 또 부수고, 미친 듯이 부숴라!”
수라혈마가 외쳤다.
“저기 젊은 기사는 크라우프 백작의 자제다. 모두들 힘을 합해서 스켈레톤을 섬멸하라!”
“와아아아아!”
함성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도시의 입구를 공격하던 스켈레톤 군단이 무너졌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다시 되살아난다는 것만 빼면 일반병졸들보다도 못한 존재.
그것이 스켈레톤이다.
스켈레톤들을 밖으로 밀어낸 후 에드먼 병사들과 자경단은 방어진을 구축했다.
그제야 전장의 소란은 사그라졌다.
간혹 스켈레톤의 칼에 베여 부상자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제논 공작님!”
판이 급히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판 크라우프, 이곳엔 무슨 일인가?”
제논 공작이 물었다.
수라혈마가 옆에서 판이 들고 있는 검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신기(神氣)가 칼날을 타고 미끈하게 흐르고 있다. 손잡이며 코등이며 모든 것이 신이 만든 듯하다.
천상의 진품이다!
“수련여행 중 우연찮게 그만…….”
판이 얼굴을 붉혔다.
“보아하니 율리안의 성기사단과 병사 2만여 명을 그대가 통솔하는 것 같네만?”
“예.”
“어떻게 된 일인가?”
“아, 그만 하라니까! 시끄러.”
갑자기 판이 자신의 뒤통수를 때렸다.
수라혈마와 제논의 얼굴이 황당하게 바뀌었다.
“지, 지금 내게 하는 말인가?”
제논의 음성이 떨렸다.
“죄송합니다, 공작님.”
판은 애꿎은 칼집을 팔꿈치로 찍으며 말했다.
“마검인가 신검인가?”
제논이 예리한 눈썰미로 물었다.
“시끄러운 것만 빼면 신검입니다. 아, 그리고 율리안의 병사들을 이끈 건 제국에 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도시를 보호하게끔 하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공작님.”
제논과 수라혈마는 신검에 대해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니네. 잘한 일이야. 율리안은 실질적으로 붕괴했네. 더 이상 율리안이란 나라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율리안의 병사들도 없다. 저들은 율리안의 병사들이 아니라 판 그대가 이끄는 제국의 병사들일세.”
수라혈마는 제논과 판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예…….”
판은 만족스럽지 않은 어투로 대답했다.
“그런데 저것은……?”
판은 채찍자국으로 만신창이가 된 혈권을 보았다. 험난한 전투 속에서 많이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용이 대산(大山) 같았다.
“본좌의 병기다.”
수라혈마는 씁쓸했다.
발록을 죽이기는커녕 건드리지도 못했다. 그런 치욕 속에 자신의 병기가 저 모양이 되었다.
병기는 곧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수라혈마는 만신창이가 된 모습에서 다시 한 번 패배감을 곱씹었다.
“이분은……?”
“신명대국의 수라혈마 공작이다.”
“안녕하십니까? 판 크라우프라고 합니다.”
신명대국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다.
살짝 곁눈으로 옆을 보았다. 수라혈마 공작을 향해 다가오는 신명대국의 검사들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신명대국의 검사 모두가 소드마스터란 소문은 절대 부풀어진 게 아니었다.
사실이다.
“안으로 안내하겠습니다.”
판이 수라혈마와 제논 공작을 도시로 안내했다.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사람들의 함성소리.
“우아아아아!”
“판 경 만세!”
판은 제논 공작의 눈치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 숙였다.
도시 가울은 살아 있었다. 밀려든 백성들로 인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나름대로 활기가 넘쳐 보였다.
판이 임시로 사용하고 있는 자경단 건물에 들어섰다.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 넷이 판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스터.”
마스터?
제논이 황당한 눈으로 판을 바라보았다. 판은 그저 얼굴만 붉혔다.
판과 수라혈마, 제논은 회의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안에서 큰소리가 나왔다.
“안됩니다. 공작님!”
판이 대 공작 제논 앞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명령에 불복종하겠다는 것인가?”
에드먼 제국에서 명령불복종은 살인보다도 큰 죄.
제논 공작의 얼굴이 굳었다.
“여기서 후퇴하게 되면 율리안 전 지역은 마국이 될 뿐만 아니라 율리안의 속국인 뉴얼국과 페국은 매우 위험해지게 됩니다, 공작님.”
“아직 발록과 킹스켈레톤의 위력을 보지 못했으니 할 수 있는 말이다, 판 크라우프”
발록의 위력은 실로 엄청나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본국으로 돌아가 국경을 확실히 지켜야 한다.
“하지만 율리안의 백성들은…….”
“판 크라우프!”
제논 공작이 따끔한 불호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공작님. 그럼 제국까지 백성들의 피난로를 열어도 되겠습니까?”
“제국에선 피난민을 받지 않는다.”
판은 말문이 막혔다. 제국 백작의 장자로서 공작의 명을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백성들을 모른 체하고선 자경단과 함께 국경으로 떠나야 하다니!
자경단이 없으면 수십만 명의 백성들이 스켈레톤에게 죽어나갈 것이다.
“낄낄! 에드먼은 소심하기 짝이 없어. 이봐, 신명대국에서는 피난민들을 다 받는다. 모두 다!”
수라혈마가 당당하게 말했다.
판은 화난 눈으로 히죽거리는 수라혈마를 보았다.
“제국은 소심하지 않습니다.”
“자기 나라라고 감싸기는…… 크크, 마음대로 해라. 본좌는 하루빨리 본국으로 돌아가야겠다. 듣자 하니 페국을 지나 로스엔을 거치면 스켈레톤을 피해갈 수 있겠더군. 낄낄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공작님.”
판은 황급히 나가려는 수라혈마를 가로막았다.
은빛의 레이피어가 괴물의 목을 찔렀다.
바실리스크는 몬스터라기보다는 괴물로 불리고 있다. 힌델의 크리샨 산맥에서 가끔씩 출몰한다는 괴물 바실리스크는 공포의 대상이다.
거대한 도마뱀의 등에 솟아오른 날카로운 뿔들이 가엽다. 한번 공격해 보지 못하고 맥없이 무너졌다.
레이피어를 뽑았다.
녹색 체액이 뿜어져 나왔다.
웃는 마족!
아르메이스는 바실리스크의 몸을 뛰어넘었다.
“마지막 관문치고는 약한데?”
얼핏 보기엔 엄청나게 큰 나무. 그뿐이다.
그러나 눈을 감고 자세히 보라. 영기가 흐르고 있다. 나무는 뿌리 밑에서 흐르는 영기를 양분으로 하여 크고 있었다.
빙그레!
아르메이스가 웃었다.
갑자기 나무가 뿌리째 뽑혀 뒤로 날아갔다.
아르메이스는 고개를 숙여 깊게 파인 구덩이를 보았다. 그의 미소가 더욱 밝아졌다.
“저거군.”
마계의 문을 봉인하고 있는 네 개의 봉인물 중 하나다.
아르메이스는 손을 뻗었다.
착
봉인물이 빨려 들어와 그의 손에 붙었다. 칼자루를 잃고 퇴색한 칼날이었다.
영기의 본체는 마계의 봉인을 지탱하고 있다.
아르세이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가볍게 칼날을 꺾으니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절반으로 부러졌다. 주변에 유난히 크고 푸르던 나무들이 썩어 들어갔다. 흐르던 강물도 말랐다.
곳곳에서 동물들이 울어댔다.
“하나는 끝.”
네 개의 봉인물 중 하나를 깨뜨려버렸다. 숲 속에 가득 찼던 영기가 주위로 흩어졌다.
아르메이스는 주위를 천천히 돌아보며 웃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세 개다. 그중 가장 가까운 것은 신명국이라는 인간나라의 영토에 있다.
스르르
아르메이스의 신영이 사라졌다.
바람이 불어 잔상까지 흩어졌다.
신명대국의 한 언덕 위로 아르메이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르메이스는 익숙한 소리에 입꼬리를 올렸다.
드드득
스켈레톤들이 내는 뼈 마찰음!
“모두들 열심인데?”
부서져도 다시 일어나 신명국의 검사들을 공격하는 스켈레톤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국경 부근이다. 스켈레톤 수만이 국경의 문을 연신 두드리지만 열리지 않고 있었다.
그냥 열심히, 반복적으로 달려들 뿐.
아르메이스는 차가운 미소와 함께 반대편으로 걸었다.
번쩍하고 아르메이스의 눈이 뜨였다. 이마에 박힌 마신의 인이 불그스름하게 발광했다.
마계의 문을 봉인하고 있는 또 하나의 칼날이 근처에 있다.
아르메이스는 수풀을 헤치고 들어갔다.
“이 근처인데…….”
주변에는 역시 영기가 흐르고 있었다. 영기의 흐름이 집중되는 곳이 있다.
하지만 예전 것보다는 다소 약한 영기…….
아르메이스는 그 흐름을 따라갔다.
마지막 수풀을 걷었다.
바로 이곳이다!
그런데…….
“엇?”
아르메이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한 희귀한 식물을 발견했다. 살아서 눈을 깜빡거리는 것을 보니 만드라고라 같으면서도 뭔가 다른 점이 많았다.
[우끼?]바로 설령이다.
설령은 땅 위에 누워 두 팔과 양 다리를 벌렸다. 절대 이곳을 지킨다는 것을 몸소 표현하고 있었다.
“미안하다만 비켜줘야겠어. 네가 누운 그 밑에 아주 귀중한 것이 있거든.”
아르메이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귀중한 것?
[우끼, 우끼!]설령은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설령이 누운 땅 밑에는 그의 어린 자식들이 있다. 아직 싹조차 나지 않은 어린것들.
설령은 눈을 부릅뜨고 아르메이스를 노려보았다. 어찌나 그 모습이 귀엽던지 아르메이스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하하! 비켜줘야겠는걸? 혹시 네가 그 속에 있는 귀중한 것의 수호자라도 되니?”
바로 전 봉인물의 수호자는 바실리스크였다. 그나마 마계까지 이름이 나 있는 괴물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조그마한 식물이 새 수호자라니?
“하하하!”
아르메이스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러다 웃음을 뚝 멈추었다.
“수호자라면 이 아르메이스님이 처리할 수밖에 없는데…… 어쩔 수 없잖아. 귀여운 걸 죽이는 건 딱 질색인데…… 쳇!”
아르메이스가 레이피어를 뽑았다.
“그냥 그 속에 있는 거 나한테 양보하고 넌 내 애완동물, 아니 애완식물 하는 게 어떠냐? 마계로 가면 내가 많이 예뻐해 주고 물도 매일 줄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설령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슈욱
“할 수 없잖아. 정말 질색인데…….”
아르메이스는 웃으면서 레이피어를 내찔렀다.
“엥?”
그러나 아르메이스의 레이피어는 애꿎은 허공만 찔렀다. 설령은 이미 그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가 있었다.
“이야, 수호자라 그 말이지?”
설령이 화난 듯 얼굴을 찡그렸다.
“화내니까 더 귀엽네.”
아르메이스의 공격이 시작됐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날아간 레이피어!
이상하게도 번번이 허공만 찔러댔다. 봉인물을 지키고 있는 수호자 식물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그러나 아르메이스는 여전히 미소를 풀지 않았다.
“귀여운 만큼 성질도 있는 모양이네.”
시간이 지나자 아르메이스의 안면근육이 살짝 굳었다. 일검필살을 자랑하던 쾌검술이 몇 번이나 먹혀들지 않고 있었다.
“합!”
아르메이스는 일격을 날렸다. 어두운 기운이 번쩍임과 동시에 아르메이스의 신형이 흩어졌다.
잔상 여러 개가 설령을 감쌌다. 그러고는 단번에 설령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잔상이 합쳐지며 설령 앞에서 번쩍였다.
이번 공격은 절대 피할 수 없다!
아르메이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컥!”
신음 소리가 터졌다. 절대 피하지 못할 마지막 쾌검조차 파훼 당했다.
바위에 앉은 설령은 웃고 있었다.
아르메이스는 거친 콧바람을 내뿜었다.
“좋아.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애완식물로 꼭 키워야겠어.”
웃는 아르메이스의 얼굴에 살기가 어렸다.
그때였다.
“설령!”
주첨기가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우끼!]설령은 주첨기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설령이 아르메이스를 가리켰다.
주첨기는 아르메이스의 전신을 훑었다. 이마엔 흑골과 같은 붉은 인이 박혀 있다. 호감이 서리는 미소를 짓고 있지만 선한 미소는 아니다.
더군다나 설령을 레이피어로 가리키고 있었다. 주첨기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넌 누구인가?”
“하하, 처음 보는 인간이네. 나는 마계에서 온 아르메이스라고 하네. 그러는 넌?”
“짐은 신명대국의 황제다.”
“그래?”
아르메이스가 레이피어를 잡지 않은 왼손을 불쑥 내밀었다.
“오, 소문은 익히 들었어. 한번 보고 싶었는데 잘됐네! 앞으로 자주 마주칠 것 같은데…… 이런 경우 인간들은 악수를 하더군?”
황당하다.
주첨기는 차가운 시선으로 아르메이스의 손을 보았다.
“너희들은 적과 악수를 한단 말인가?”
“네가 방해하지 않으면 적이 되지 않지. 난 네 적이 되기 싫거든. 네게선 조금 위험한 냄새가 풍긴단 말이야. 하핫! 그러니까 거기 안고 있는 수호자를 내게 넘겨. 아, 그 수호자…… 혹시 네 애완식물이야?”
“헛소리를 중얼거리고 있군.”
“헛소리든 뭐든 네 애완식물이라면 포기하겠어. 나 아르메이스는 주인이 있는 것을 탐할 만큼 욕심이 많지 않아. 그럼…….”
아르메이스는 땅을 응시했다. 주변의 영기가 집약된 바로 이곳에 봉인물이 숨겨져 있다.
설령이 급히 땅 위로 몸을 튕겼다. 설령은 아르메이스를 노려보며 두 팔을 벌렸다.
“그만두지 못할까?”
주첨기가 호통을 쳤다. 주첨기의 몸에서 기풍이 불어 수풀이 심하게 흔들거렸다.
나뭇잎들이 눈앞에 나부꼈다.
“지금 날 방해하는 거야?”
“넌 분명히 망자들을 이끄는 대장 중 하나렷다? 감히 짐의 영토에 침입하다니. 더군다나 설령의 자식까지 탐하려 하고 있다. 용서할 수가 없느니라!”
아르메이스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적이 되었네.”
번쩍!
기습공격이다. 아르메이스는 레이피어를 주첨기의 목을 향해 찔러갔다.
기습에 쾌검까지 더했다.
주첨기는 몸을 비틀었다.
쑤웅
레이피어가 주첨기의 가슴 앞을 지나갔다. 주첨기는 그대로 아르메이스의 목을 움켜쥐었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아르메이스는 켁켁거렸다.
“짐은 망자들의 대장인 너를 데려가 심문해 봐야겠다.”
“켁!”
아르메이스는 정신이 아찔했다. 온몸에 힘이 빠져 움직일 수가 없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고위마족 중에서도 상위계급에 속하는 자신이다.
아르메이스는 발버둥쳤다. 그럴수록 주첨기의 손아귀 힘은 더욱 거세져갔다.
“케엑!”
아르메이스의 인이 이상했다. 붉게 되었다가 검게 변하기를 반복하기 수차례.
결국 인에서 마기가 폭발했다. 주첨기는 급히 손을 놓았다. 아르메이스가 뒤로 튕겨 날아갔다.
주첨기는 아르메이스를 향해 걸어갔다.
“재미있었어. 신성한 경험을 했어. 다음엔 내가 네게 죽음을 보여줄게, 나 아르메이스의 적.”
팟
아르메이스가 갑자기 사라졌다. 더 이상 아르메이스의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주첨기는 ‘크윽’하고 신음을 흘렸다. 설령이 그의 어깨로 올라왔다.
설령은 주첨기의 목을 쿡쿡 찌르며 배시시 웃었다.
[우끼…….]“그래, 놓친 건 아깝지만 네 자식들을 보호한 게 어디냐.”
설령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자는 어째서 설령 네 자식들을 노린 것일까? 뭔가 있어.”
주첨기는 물끄러미 영기가 집약된 땅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