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77
076화
집무실 문이 열리고 두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요한은 그들을 환영해 주려다, 선두로 다가오는 이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얼굴 가지고 이러면 안 되는데···. 진짜 못 생겼군.’
그냥 못 생긴 얼굴도 아니었다.
간사하고 음흉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턱 끝에 난 염소수염마저 꼴 보기 싫게 느껴질 정도.
하지만 사람을 생긴 것으로 평가해서는 안 됐다.
“건방지구나. 청의 칙사인 나를 이딴 식으로 대접하다니. 100만 대군이 두렵지 않은 것이냐!”
물론 이번만큼은 요한의 사람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증명한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100만이라, 듣기만 해도 참 무섭군.”
“100만 대군뿐이겠느냐! 팔기군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무적의 군대다!”
요한이 한 번 호응해주자, 여유량이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런 그의 모습에 위관으로서 여유량을 호위하는 주지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였다.
쿵!
요한의 곁을 지키는 카우종이 발소리를 내며 여유량을 향해 다가갔다.
“내 이놈!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여유량이 느끼기에, 한 마리의 맹수가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 시대 기준으로 요한은 엄청난 거구였다.
하지만 그런 요한보다 거구가 바로 카우종이었다.
왜소한 체격의 여유량으로선 그런 카우종의 접근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머, 멈춰라! 나는 청의 칙사이니라!”
“외신은 국왕 전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러니 좋은 말 할 때 당장 무릎을 꿇어라!”
두 사람의 거리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여유량은 기겁하며 카우종을 향해 자신이 청의 칙사임을 다시금 밝혔고, 카우종은 요한의 앞에서 예절을 지키라고 강요하였다.
다만 두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서로 달랐다.
당연히 카우종이 뭐라고 경고하였는지 여유량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였다.
물론 카우종 역시 여유량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카우종은 애초에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더 다가오면 저는 예부시랑을 지키기 위해 나설 수밖에···, 컥!”
여유량을 호위하던 주지원이 카우종의 앞을 막아섰지만, 그는 곧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카우종은 그저 가볍게 손을 휘둘렀는데 그걸 맞고 저리 요란을 떨며 쓰러진 것이다.
‘비범한 한 수가 있는 거 같더니, 그냥 허우대만 멀쩡한 놈이었네.’
요한은 그런 주지원의 모습을 보고 픽 웃고는 여유량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우습게도 카우종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여유량은, 어느덧 파포라 어에 통달하였는지 카우종이 더 뭔가를 하기 전에 바로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채고 무릎을 꿇었다.
“드디어 조용해졌군.”
“···저언하! 외신은 청의 칙사이옵니다!”
카우종은 두려워도 요한은 두렵지 않았던 것일까?
여유량은 요한을 전하라 부르면서도 말투는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청의 칙사란 사실을 거론하는 것을 보면, 전하라고 불러줄 테니, 청의 칙사에 걸맞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처럼 보였다.
“됐고. 그 잘난 청의 칙사가 어쩐 이유로 이 머나먼 섬까지 오게 되었는지만 말해 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일까?
여유량은 요한의 말에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쾅!
“허억!”
“말해보라고 했을 텐데?”
“마, 말하겠습니다! 말하게 해주십시오!”
요한이 책상을 내리치자 그제야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여유량이었다.
콰지직!
하긴, 겨우 주먹 한번 내리쳤다고 튼튼한 원목으로 만든 책상에 금이 갔는데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
‘역시, 예상했던 그대로야.’
뒤늦게 본론을 꺼낸 여유량의 말을 모두 들은 요한은 싱겁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청나라에서 뭔가 거창한 제안을 해주길 바라였다.
요한이 조선 출신이니, 조선 포로를 보내준다든가, 아니면 조선의 이권 일부를 넘겨준다든가 등등.
하지만 여유량은 조선의 ‘조’ 자도 꺼내지 않았다.
그가 밝힌 청나라의 제안은 일종의 ‘군사적 동맹’이었다.
즉, 남명을 상대할 때 서로 힘을 합치자는 것이 청나라의 제안이었다.
요한은 이런 청나라의 제안에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내심 청나라에서 조선과 관련된 무언가를 조건으로 제시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조선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지. 그렇게 되면 조선이 내 약점이 되는 거니까.’
요한은 조선과 관련된 일체의 모든 것을 거론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가 조선의 가치를 높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청나라가 알게 되면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오해를 하는 모양인데, 남명과 우리의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아.”
“예?”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 적대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여유량은 당연히 대두국과 남명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자신 있게 군사적 동맹을 제안한 것이다.
그것도 마치 청나라 쪽에서 선심 쓰기라도 한다는 듯한 태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미 남명 조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뻔히 아는 요한으로선 이런 여유량의 자신감이 우습게만 느껴졌다.
“동맹은 어림도 없고, 휴전을 원한다면 해줄 의향은 있다. 물론 내가 만족할 만한 무언가를 줘야 하겠지만 말이야.”
요한은 딱히 여유량을 도발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사실을 말한 것이었다.
청나라와 요한, 둘 중에 휴전이 필요한 쪽은 어디일까?
누가 바다에서 더 강한지만 따져도 정답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사실 지금도 요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청나라를 공격하는 게 가능하였다.
정확히는 약탈이 가능하단 건데, 요한이 움직이면 청나라는 천문학적인 피해를 보게 될 것이었다.
그건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장강에서 벌어진 일만 떠올려도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요한이 지금껏 청나라를 약탈하지 않은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정씨 일족 때문이었다.
청나라가 장강 이북을 전부 차지하였다지만, 정작 바다가 접한 지역은 정씨 일족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정씨 일족의 상인들이 중국 전역의 해안가를 장악하다시피 한 것이다.
요한은 바로 이 정씨 일족의 상인들 때문에 그동안 청나라를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즉, 청나라가 무서워서 청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던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뭐, 그래도 돈이 정 궁했다면 장강을 가서라도 약탈을 했겠지만 말이야.’
요한이 속으로 그리 생각할 때, 여유량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처, 청나라를 무시해도 이렇게까지 무시하다니! 대제국인 청나라가 변방의 소국인 대두국에 평화를 구걸할 리가 있습니까!”
그러더니 기어코 자신의 분노를 토해냈다.
요한과 카우종을 두려워하면서도 청나라를 무시하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정작 요한은 청나라를 비하할 생각 같은 건 없었지만 말이다.
“대두국이 변방의 소국이긴 하지.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데? 우리가 공격하기로 작정하면 너희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는데 말이야.”
“이익!”
“더 제안할 거 없으면 그만 나가도록. 여기서 대화를 이어 가봤자 서로에게 좋을 게 없을 테니까.”
요한의 말을 들은 여유량은 분개한 얼굴로 요한을 노려보더니 곧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의 뒤를 주지원이 배를 움켜잡으며 힘겹게 따라나섰다.
‘다시 도르곤에게 가서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제안을 가져왔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은 없을 거 같았다.
여유량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듯, 청나라에서는 요한을 그저 변방 세력의 우두머리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으니까.
“뭐, 흑기군의 전투력을 직접 체감하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상대가 자신을 무시한다면, 실력으로 증명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요한이 1년 넘게 강훈련한 1대대와 2대대라면 실력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근데, 축구 실력도 많이 늘었으려나?’
흑기군이 갖춘 능력 중에 가장 아쉬운 것이 축구 실력이었다.
곧 대회이니 조금이라도 실력이 늘었기를 간절히 바라였다.
***
달룽은 2대대 소속 병사였다.
그의 일과는 선임에게 구박받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대답할 때 고개 끄덕이지 말라고.”
“아, 알겠다.”
“고개 끄덕이지 말라니까, 또 고개 끄덕이네? 그리고 선임한테 반말하게 되어있냐?”
“조선어 잘 모른다. 천천히 말해야 한다.”
파제흐 족 출신인 그는 소대에서 아니, 중대 전체에서 외톨이 신세나 다를 게 없었다.
한족 병사들은 그를 번족 오랑캐 취급하였으나, 정작 그는 어떤 원주민 출신 병사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대화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말 그대로 언어가 달랐다.
이렇게 중대 전체에서 외톨이 신세다 보니 조선어를 익히는 것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아무리 노력하려 해도 언어를 배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멍청한 새끼. 군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는데 아직도 그렇게밖에 말을 못 해? 쯧. 키만 멀대같이 커 가지고.”
달롱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비록 회화에 능하지 않아도 그는 눈치가 대단히 빨랐다.
상대가 자신을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쯤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한주먹 거리도 아닌 놈이···.’
파포라 족에서 이름난 전사였던 카우종만큼은 아니어도 그 역시 어디 가서 무시당하는 전사가 아니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잠재력만큼은 카우종과 겨룰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달롱은 선임이나 간부에게 비난을 당할 때마다 주먹을 쥐고는 하였다.
하지만 그는 참고 또 참았다.
흑기군 소속이 된 파제흐 족의 전사는 겨우 십수 명에 불과한 상황.
그의 어깨에 부족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참고 또 참으며 군 생활을 이어가던 그에게 기회가 생겼다.
우습게도 그가 얻은 기회는 축구였다.
“뭐야, 쟤? 왜 이렇게 빨라?”
“저 오랑캐 놈 좀 누가 막아 봐!”
“제길! 달리기가 너무 빠릅니다!”
어쩌다 참가하게 된 축구 경기.
다른 소대와의 경기였는데 이때 달롱은 자신에게 축구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구도 그의 발을 막지 못하는데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야, 달롱. 너 이렇게 잘하는 줄 알았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냐.”
“달롱 상병님, 내일 경기도 참가하십시오. 2소대 놈들에게 한 방 먹여주시면 제가 진짜 평생 존경하겠습니다!”
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자, 지금껏 그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이들이 접근하였다.
놀랍게도 출신을 가리지 않았다.
한족 선임, 번족 후임, 심지어 흑인 장교까지 그에게 접근해서는 친한 척 굴었던 것.
‘이거다. 우리 부족의 영광을 위해서는 내가 축구를 해야 해!’
달롱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자신의 축구 재능이 군에서의 출세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하여 그는 더욱더 열성적으로 축구에 임하였다.
처음에는 그저 소대의 선후임에게만 인정받던 그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중대의 모든 이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다.
요한이 주관하는 축구 대회가 가까워지면서 그는 더더욱 주목받았다.
대대장까지 그를 언급할 정도였다.
“득점이오!”
마침내 대회 당일이 되자, 그의 발에서 첫 번째 골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달롱 만세!”
“이거지! 이게 바로 1중대거든!”
우렁찬 함성과 함께 1중대의 모든 장병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때만큼은 그가 약소 부족인 파제흐 족 출신이란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엄청난 포상이 걸린 대회에서 2중대를 상대로 첫 번째 골을 넣은 그는 1중대의 영웅이었다.
***
“처음 봤을 때와는 확실히 수준이 다른 거 같습니다.”
정성공이 그리 말하자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예선전이었다.
그런데 벌써 엄청난 경기력을 펼치는 병사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겨우 1~2개월 배운 실력이 저 정도라니. 훈련 안 하고 축구만 한 거 아니야?’
특히 달롱이란 병사가 보여주는 모습은 마치 프로 선수 같았다.
빠르게 공을 드리블하는데 그 속도가 일반 사람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보다 훨씬 빨랐던 것.
“뿌듯하지 않습니까? 부총병이 지휘할 이들 중에 저리 뛰어난 실력을 갖춘 병사가 있다는 사실이?”
“···축구 실력이 뛰어난 게 전쟁에서 크게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던데 말입니다.”
“너무 전쟁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대국적으로 보십시오.”
정성공은 요한의 말을 듣더니 마치 질책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늘 대국적으로 생각하셔서 남명과 적대 관계가 될 수도 있는 일을 벌이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