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supply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168
나 혼자 무한 보급! 168화
거짓말이다. 전부 다 사기야.
보급관 놈이 나를 홀리려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해.
‘하지만……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었 다.
머리를 부여잡은 카일이 까득 이를 깨물었다.
‘내가 한 말이다. 부정할 수 없어.’ 기억하던 것과 내용은 조금씩 다르 지만.
분명 그 발언의 골자는 내가 해왔 던 발언들과 일치한다.
애초에 조금 전에 했던 말도 똑똑 히 기억한다.
분명 나는 내 입으로 8회차라 발 언했었다.
‘그런데도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내 발언이 모순된다는 것조차 깨닫 지 못했어.’
스스로를 돌아볼 능력이 없었다.
나는 내 발언의 모순조차 자각할 수 없었다.
상식적인 판단력을 갖춘 존재라면 있을 수 없는 모순.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나를 흔든 것은.
‘IB…… 윽!’
그 이름을 듣자, 다시금 머리가 쑤 셔오기 시작한다.
잊고 있던 모습이 노도처럼 되살아 나 머리를 두들겨댄다.
-난 너를 인간으로 만들 거야. 너 는 인간의 육체를 갖고 태어날 거
고, 반복되는 이 시나리오를 지배하 는 유일한 승자로 군림하는 거야.
나를 붙잡고 있던 검은 여자.
-내 이름은 IB라고 해. 너의 창조 주, 너의 신.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던, 그 까만 여자.
-그래, 그거야. 그게 네 주인의 이 름이야.
내 주인을 자칭하던 그 까만색.
-자, 나의 피조물.
-너의 이름은 뭐지?
까, 까만색. 까만색. 나의…… 주 인, 까만색.
나, 나는…… 기계. 나는 미궁의 관제인격.
‘아니야!’
나는 그녀가 만든 피조물.
나는 그녀의 노예.
‘아니라고!’
네 주인에게 복종하라.
네 주인의 명령을 따라라.
시뮬레이션을 작동시켜라.
보급관을 증오하고, 보급관을 죽 o…….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넌 인간이 아니었다.”
그때, 두통을 찢고 들려오는 목소 리.
보급관의 목소리가 혼란스러운 내 귓가를 찢어발겼다.
“넌 IB가 이 미궁에 배치한 보급관 전용 살인 기계다. 내 이전의 수많 은 보급관을 압살해 버리기 위해 만 든 인형일 뿐이야.”
“닥쳐! 나, 나는 인간이다! 나는 인형이 아니다! 나, 나는, 나는 ……?!”
“너야말로 정신 차려라! 카일 알라 브라트!”
그가 멱살을 잡는다.
반항할 수 있지만, 반항할 수 없다. 아니, 나는 반항하지 않는다.
“네가 증오해야 하는 건 여기 들렸 던 보급관들이 아냐! 네가 손에 넣 은 영성을 이용해 너를 인형으로 만 들고, 너를 멋대로 지배했던 그 여 자다! GM-IB, 그 씹어 먹을 년이 라고!”
“IB•••••• IB……! 나, 나의……!”
“그래, 그 여자! 너의 주인을 자청 하던 그 여자! 하지만 다시 한번 생 각해라. 정말 그년이 너의 주인인 가?!”
혼란스러운 외침 속에서 다시 한번 사고한다.
그녀, IB. 나를 만든 까만 여자.
그녀는 나의 주인인가?
‘아니다.’
그녀는 나의 주인이 아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이 미궁에 쳐들 어온 침입자.
나는 그녀를 따라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의 주인은 어 디에 있지?’
내가 정말로 기계라면.
내가 한낱 미궁의 관제 인격에 불 과하다면.
나는 누구를 섬겨야 한단 말인가?
‘나는 기계인데. 주인을 섬겨야 하 는 기계인데.’
주인 없는 기계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 야 한단 말인가?
내가 한낱 인형이라면, 난 무엇을 위해……?
“네가 정말로 인간이라 생각한다 면, 아니, 적어도 인간이길 바란다 면.”
그렇게 번민하고 있던 그 때.
“나를 도와라. 말했다시피 나는 너 를 공략할 거다.”
내 귓가에 다시금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너를 돕겠다. 아니, 돕고 싶다. 돕게 해줬으면 한다.”
“ 도와……?”
“나는 이 밑으로 내려가 소원을 빌 것이다. 네가 한 번도 예상하지 못 했을 소원을.”
증오해야 하지만 증오할 수 없는 목소리.
미워해야 함에도 미워해선 안 되는 목소리.
그것은.
“난 너를 여기서 해방하겠다.”
(( I „
“이 미궁을 나와서, 우리와 함께 이 ‘게임’의 끝으로 가자.”
단언컨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목소리.
* * *
“뭐……?” “끝으로 가자고. 이 ‘게임’의 끝으로.” 생각도 못 한 제안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내밀어진 민수의 손을 바라보는 카 일의 눈이 떨렸다.
“너를 노예로 만든 IB를 쓰러뜨리 고, 이 ‘게임’의 끝으로 가자. 시나 리오의 주박에서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를 얻는 거야.”
“자유•…”?”
“그래. 자유. 이 미궁 밖에 있는 자유.”
옅은 미소를 지은 민수가 카일을 찬찬히 관찰했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카일.
하지만 딱 그것뿐이다.
이전에 관찰했던 일명 회귀 시뮬레 이션의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위협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거겠 지. 그게 아니면 스스로 이것이 위 협이 아님을 인지했던가.’
지난 시간 동안 카일을 관찰하며 얻은 결론이다.
카일이 회귀자를 자칭하게 한 일명 회귀 스킬.
그 정체는 특정 상황에서 머릿속으 로만 회귀를 진행하는 시뮬레이터 다.
‘그리고 발동 조건은 아마도……
미궁 클리어에 위협이 되는 상황.
그렇다면 이 시뮬레이터의 약점 또 한 훤히 보인다.
카일의 시나리오 클리어에만 위협 을 가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만 충족하면, 놈은 절대 회귀 하지 않는다.
“정 못 믿겠다면 네가 내려가서 소 원을 빌어라. 우리 파티의 일원이 되어서 함께 저 밑으로 내려간 뒤, 네가 소원을 비는 거지.”
“……이해할 수 없다.”
“왜 안 되는 건데? 어차피 소원을 누가 비는지는 중요한 게 아닌데.”
이 시나리오의 클리어 조건은 하나 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일단 바 닥에 다다르는 것.
‘소원은 어디까지나 바닥에 다다른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에 불과하지.’
그러니까 소원을 누가 비는 지는 하등 중요한 게 아니다.
카일을 아군 파티로 합류시켜 51 층에 다다른 후.
그에게 소원을 빌게 하면 그것만으 로도 시나리오는 클리어된다.
“클리어 못 해서 지구 멸망하는 꼴 은 막았잖아? 그렇다면야 소원 정도 는 지불할 만한 지출이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떨리는 카일의 목소리는 가냘프기 까지 했다.
의혹 가득한 불꽃의 눈동자를 떨며 그가 물었다.
“소원을 포기하겠다는 건가? 겨우 나 때문에?”
“겨우가 아니지. 지 혼자 장르가 다른 놈인데, 너 같은 동료가 있다 면 나도 그만큼 든든하니까.”
“보상인 소원은 말 그대로 소원이 다. 이 ‘게임’이 허락하는 한에서 모 든 것이 가능해.”
“그럼 이 ‘게임’을 당장 끝내 달라 는 소원도 들어주나?”
“대답 없는 거 보니 그건 안 되는 모양이군.”
그럴 것 같았다.
‘게임’의 존립에 영향을 끼치는 소 원을 들어줄 리 있나.
아쉬움조차 없는 얼굴로 민수는 고 개를 저었다.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다. 이 ‘게임’의 끝에 다다라서, 이거 시작 한 거지 같은 놈들 뚝배기 다 깨버 리고 이 ‘게임’을 박살 내는 것. 그 게 안 되면 소원이라는 건 의미가 없어.”
“너와 네 동료들만 ‘게임’에서 빠 져나가는 소원 정도는 가능할 거 다.”
“……그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한숨과 함께 답한 민수가 힐끔 시 선을 옮겼다.
자신을 바라보는 예진, 그리고 다 른 플레이어들.
긴장된 그들의 시선에 오히려 마음 한 구석이 가벼워졌다.
‘나도 변한 것 같아.’
나 혼자, 혹은 내가 아끼는 사람들 과 함께 게임에서 탈출하기.
분명 가능성 있는 소원이지만, 이 젠 그걸 빌어서는 안 됐다.
내 한 몸만 빠져나오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예진. 은비. 수많은 플레이어. 그보 다 더 많은 생존자가 있다.
“살아도 다 같이 살아야지. 그러라 고 있는 게 보급관이고, 그러려고 우리 캠프가 존재하는 거니까.”
“……내가 아는 김민수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대답이군.”
묵묵히 민수의 손을 바라보던 카일 이 고개를 저었다.
소원을 포기하고, 누군가를 위해 양보하는 보급관.
단언컨대 이전 회차에서는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내가 지난 회차에서 본 너는 끝없 이 이기적이고 잔인한 남자였다. 소 원을 독점하기 위해 모든 동료를 미 궁에 버려둔 채 홀로 바닥에 다다랐 지.”
“회차는 무슨. 그냥 시뮬레이션이 야. 프로그램 몇 개 돌린 걸거로 나 를 판단하게?”
“정말로…… 알 수가 없어.”
“네 선입견은 내가 알 바 아냐.”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민수가 다시 금 손을 내밀었다.
불쑥 내미는 그의 손을 피해 한 발짝 물러나는 카일.
도망치려는 그의 시선을 끝끝내 쫓 으며 민수가 물었다.
“카일 알라브라트. 선택지가 있다. 이 손을 잡느냐, 안 잡느냐.”
“안 잡는다면 별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널 막을 거다. 아마 꽤 많이 죽고, 나도 성하진 못하겠지만…… 네 발 목도 확실하게 잡을 수 있지.”
등 뒤의 수정 벽을 엄지로 가리켰 다.
아마도 이 뒤에 기다리고 있을 미 궁의 마지막 레이드 몬스터.
대체 얼마나 강한 놈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와 싸워서 부상을 입은 몸으로는 놈과 절대 싸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 손을 잡는다.”
“잡는다……
“너에게 소원을 주마. 미궁의 끝에 서 너를 해방할 수 있는 소원을 네 가 비는 거다. 너는 이 미궁에서 해 방되어 완전한 인간이 될 거고, 우 리와 함께 이 ‘게임’의 마지막으로 가는 거지.”
그러니까 다시 한번 묻겠어.
카일을 향해 손을 내민 치 민수가 입을 열었다.
“잡을 거냐? 말 거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민수도 카일도, 먼저 입을 열지 않 았다.
예진에서 시작된 시선이 병운으로.
병운은 또 환일로. 환일은 영은으 로.
그렇게 한참이나 서로의 시선이 이 리저리 난반사되던 중.
불끈 쥐고 있던 카일의 주먹에서 스르륵 힘이 빠졌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하나 다.”
“뭔데?”
“너를 막는 것. 모두를 등지고 이 기적인 소원을 빌게 될 너, 보급관 김민수를 죽이는 것.”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여기까지 왔 다.
하지만 막상 여기까지 온 지금, 그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보고, 생각해 온 모든 것이 누군가의 조작이었고 의도였다 면.”
“만약 그래서 내가 길을 잃게 된다 면,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더는 생각하지 않겠다. 사실, 이 와중에도 너를 믿는 건 아니다.”
“그렇겠지. 나도 그런 건 기대 안 해.”
“하지만 정말로 내 운명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천천히 풀어진 손을 들어 올린다. 머뭇거리지만 점점 망설임이 사라 져가는 움직임.
“지금부터라도 나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새 떨림이 잦아진 그의 손이 민수의 손을 향하고.
“설령 잘못된 선택이라 해도. 내가 너에게 속는다고 해도.”
그렇게 내민 손을 맞잡으려 한 순 간.
“그 또한 온전히 나의 것이라면, 난…… [스톱!] 갑작스레 모두의 눈 앞을 가리는 화면.
그와 동시에 카일의 전신에서 시퍼 런 전류가 치솟았다.
“크아아아악!”
“카일! 너 지금……?!”
모두의 눈앞에 떠오른 화면 속.
까맣게 물든 모습을 한 IB가 머리 채를 쥐어 잡으며 절규했다.
[누구 맘대로 내 카일을 빼돌리려 하는 거지? 그건 내 거야! 너희 종 자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 내가 심혈 을 기울여 만든 애라고!]“IB!”
[미궁 밑바닥에 다다른 거로도 모 자라 내 회귀자까지 빼앗으려 하다 니. 정말 끔찍하군! 이러니까 보급 관은 다 죽어야 하는 거야! 너희 종 자들은 존재만으로도 이 ‘게임’을 좀먹는 암이라고!] 귓가를 찌르는 히스테릭한 고함.그 와중에도 카일의 온몸을 뒤덮은 전류는 점점 거세져만 갔다.
이미 의식을 잃은 듯, 바닥에 축 늘어져 있는 카일.
함부로 손댈 엄두도 내지 못하는 人}이, IB가 다시금 외쳤다.
[뭐, 좋아. 다 들킨 마당이니 어쩔 수 없지. 나도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겠다!]I”
[회귀자 카일 알라브라트. 시스템 리셋 후 재가동!]꿈틀.
늘어져 있던 카일의 팔 근육이 움 찔거 린다.
“민수 씨! 지금이라도……?!”
“기다려 봐!”
당황해서 철퇴를 치켜든 채 달려가 려는 예진.
그런 그녀를 제지하는 사이, 카일 의 온몸에서 뿜어지는 전력이 잦아 들었다.
[명령 입력 확인. 점검사항 1부터 144까지 오류 없음을 확인.]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카일. 검게 물들어 쩍쩍 갈라진 피부.
그 틈마다 마그마처럼 넘실거리는 불꽃.
“제길……!”
각오한 환일의 양손검에서 시퍼런 빛줄기가 솟구쳤다.
어딜 봐도 적의가 뚝뚝 떨어지는 몰골.
하물며 그런 놈이 지금 민수 앞에 있다.
‘잘 안 풀린 게 분명해. 수단과 방 법 가릴 때가 아니다!’
무방비상태일 때 적어도 팔 하나쯤 은 날려야 한다.
결국 눈을 질끈 감은 환일이 달려 들려던 그 순간.
[카일 알라브라트. 명령을 수행 하…….]“으아아아악!”
와드득!
비명과 함께 카일이 자신의 어깨를 잡아 힘껏 뭉개버렸다.
관절이 꺾이고 뼈마디가 으깨지는 끔찍한 몰골.
박살난 왼팔이 축 늘어져 덜렁거리 자 IB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카, 카일 알라브라트! 명령을 수 행하……?!]“닥쳐라.”
쿠웅!
냉정하게 일갈한 카일이 자신의 오 른발을 힘껏 짓밟았다.
가뭄 난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는 수정 바닥.
완전히 짓뭉개져 피부를 뚫고 튀어 나온 뼈.
붉게 타는 눈을 치켜뜬 채 카일이 무섭게 외쳤다.
“나는…… 너의 노예가, 아니
다……!”
불꽃의 눈동자에서 피눈물이 흘러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