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supply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33
나 혼자 무한 보급! 033화
상자를 열자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 냈다.
투명한 완충제에 파묻혀 있는 둥글 넓적한 금속판.
딱 사람 손바닥 사이즈의 넓이에.
좀 요란할 정도로 번쩍거리는 황금 색.
게다가 거기에 손잡이까지 달아놓 으니, 이건 완전…….
“……냄비 뚜껑?” 사이즈부터 생김새까지 딱 냄비뚜 껑 이다.
더 비슷한 걸 찾아보자면 미용실 등에 있는 뒤통수 보는 거울 정도.
딱히 무슨 무기나 소모품 같은 걸 바란 적은 없지만.
이렇게 용도조차 짐작 안 가는 물 건을 보상이랍시고 줄 줄이야.
설마 M이 지금 날 엿 먹이려고 이러는 건가?
‘아니, 아니. 그건 아니겠지. 설 마…… 아무리 그래도 GM 체면이 있지. 설마 냄비뚜껑 따위를 주고 사람을 기만하려 들까.
아무튼, 준 거니 확인은 해봐야 했 다.
포장지를 버리고 뚜껑 손잡이를 잡 자, 갑자기 그 옆에 메시지창이 떠 올랐다.
[1. 가로세로 5m 이상의 완전한 평 면에 본 장비를 밀착시키십시오.]‘사용법이 있었어?’
이걸로 일단 방패 따위는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정리하고 지면 에 가져다 대자.
바람 빠지는 칙 소리와 함께 뚜껑 이 바닥에 철썩 붙었다.
[2. 주변에 사람, 기물 등이 있는지 확인해 주십시오.]‘점점 심상치 않아지는데.’
이쯤 되니 오히려 기대가 높아졌 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하자 마지막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3. 본 장비를 천천히 잡아당기십시 오.]“잡아당기…… 어, 어어?!” 부우우우웅!
힘껏 손잡이를 당기자, 갑자기 뚜 껑에 무언가가 딸려 올라왔다.
마치 영화 속 홀로그램 마냥.
지면을 뚫고 솟구치는 번쩍번쩍한 금빛에 민수가 벌렁 엉덩방아를 찧 었다.
“이, 이건 또 뭐야……?”
손잡이에 딸려 나온 그것이 주차장 아스팔트 바닥 위에 우뚝 섰다.
높이 약 2.5m. 폭은 약 lm 남짓.
마치 SF 영화의 동면 캡슐처럼 생 긴 거대한 황금 관.
표면에는 생동감 넘치는 천사들이 양각되어 있고.
활짝 열린 안에서는 신비한 청록색 빛이 뿜어지고 있다.
“와아……
기이하긴 하지만 위엄 넘치는 생김 새에 민수가 탄성을 터뜨렸다. 용도가 상상이 가지 않는 건 둘째 치고.
금색으로 번쩍거리는 게 척 봐도 심상치 않았다.
일단 생긴 걸 보니 안에 사람이 들어가는 물건인 것 같은데.
그런 의문을 가지며 황금 관을 기 웃거리던 순간.
“?!”
갑자기 민수의 눈앞에 확 떠오르는 메시지창.
그리고 거기 쓰인 내용은.
[생명 동력장치]
[등급 : 무등급]
[고대문명 아카라트에서 개발한 동력 장치. 장치에 들어간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키며, 인간이 발하는 잉여 생명 력을 바탕으로 주변의 동력 상황을 조정한다. 많은 인간이 들어갈수록 출 력과 반경이 커진다.]
[특이사항 : 설치한 곳을 중심으로 일정 반경 내의 시설물에 전력, 수도, 가스 등을 공급.]
[특이사항 : 들어간 인간의 수만큼 영 향 반경 증가. 들어간 인간의 생명을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 선에서 유지.]
[주의 사항 : 첫 획득자에게 귀속. 인간 외의 동물, 혹은 몬스터는 투입 불가.]
[가격 : 측정 불가]
“뭐야, 이게……
민수의 눈이 전율로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실내체육관으로 향하기 위한 준비 는 착착 진행되었다.
주차장에 펼쳐놨던 천막을 접는 분 주한 손길들.
민수 또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채 그 준비에 동참했다.
“다들 운전하실 줄 아시죠?”
“회사에서 영업 차량 좀 몰았어 요.”
“내가 화물차만 20년 몰았어. 그 정도야 거뜬하지!”
“난 대형 면허도 있어. 쪼그만 버 스 정도는 운전할 줄 알아.”
자원자 중에서도 선별된 인원 다섯 이 민수 앞에 섰다.
전원 비 플레이어. 그중에서도 운 전에 자신 있는 사람들뿐.
중요한 전력인 플레이어들에게 운 전대를 맡길 수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민수가 말통을 짊어 지고 앞장섰다.
“좋아요. 가시죠.”
십여 명의 플레이어들과 향한 곳은 가까운 곳에 있는 주유소였다.
세상이 변하면서 가장 먼저 쓸모없 어진 곳 중 하나.
사무실의 깨진 유리창을 힐끗한 민 수가 바닥을 짚고는 중얼거렸다.
“보급고 지정한다.”
[해당 시설이 보급고로 지정되었습 니다.]“오, 오……
뒤에서 지켜보던 수찬의 입에서 얼 빠진 탄성이 튀어나왔다.
깨진 창문이 붙고. 망가진 문이 수 리되고.
이윽고 꺼져 있던 주유기들의 화면 에 불이 들어온다.
시간을 거꾸로 감는 것처럼 주유소 가 복구되는 것이.
꼭 무슨 마술이라도 부린 것만 같 았다.
“개쩐다……
“검기에 치료마법 같은 거 보고 놀 랄 게 아니었네.”
옆에 선 병운의 감상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받은 충격으로만 따지면 수 찬 이상이었다.
이 ‘게임’이 시작되면서 모든 문명 의 이기가 맛이 가버린 상황.
보급고 스킬이라는 것 자체도 놀랍 기 짝이 없지만.
이런 문명의 산물들을 쓸 수 있다 는 것 자체가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무조건 붙어서 끝까지 가야 한다!’
민수를 바라보는 병운의 눈에 각오 가 서렸다.
이 ‘게임’에 승패라는 게 존재할지 는 의문이지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승자에 가장 가까운 건 저기 있는 저 보급관일 것이다.
문명이 사라진 세상에서 문명을 독 점할 수 있는 존재.
이 ‘게임’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늘어 만 갈 것이다.
“자자. 구경만 하고 있을 겁니까?”
그때 먼저 입을 연 민수가 들고 있던 말통을 내려놓았다.
허둥지둥 그를 따라 말통을 내려놓 는 사람들.
그들 앞에서 가장 먼저 주유기 노 즐을 뽑아 들며 민수가 말했다.
“큰 차들 몰아야 하니까 경유 위주 로 가져갑시다. 혹시 모르니 등유도 조금 챙겨가고요.”
“네!”
“일단 말통 하나만 채워서 먼저 가 져가고, 그걸로 화물차 한 대 끌고 와서 말통 다 실어가자고요.”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가져온 수십 개의 말통들이 주유소 바닥에 잔뜩 깔리고.
주유기 노즐을 든 사람들이 말통마 다 경유를 가득 채웠다.
“워, 씨! 조준 똑바로 해! 기름 다 튀잖아.”
“담배 피우는 새끼들 좀만 참아라! 여기서 불 피웠다간 우리 다 X된 다!”
“차 몰고 온다는 애들은 왜 이렇게 늦어? 뭔 일 난 거 아냐?” 그렇게 제각기 떠들어대며 기름을 가득 채우고 기다리길 잠시.
이윽고 길 너머에서 털털거리는 엔 진 소리가 들려왔다.
텅 빈 도로를 가로지르며 다가오는 낡은 화물차 한 대.
무려 한 달 만에 들어보는 엔진 소리에 주유소의 인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차, 차다!”
“우와 씨, 굴러가는 차 보는 게 얼 마 만이야?” 낡고 녹슨 화물차 한 대일 뿐인데. 꼭 슈퍼카라도 본 것처럼 우르르 몰려간 사람들이 차를 에워쌌다.
하나 같이 감격과 경탄에 찬 시선 드-
그 모습에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 자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딴 거 거들떠보지도 않 았을 텐데, 지금은 다들 이놈 아주 벤츠 보듯 우러러보고 앉았네!”
“안 굴러가는데 벤츠가 무슨 소용 이에요? 굴러가야 차지!”
“하하하! 그래, 태환아. 말 잘했다! 아무렴! 안 굴러가면 페라리가 뭔 소용이야?”
껄껄 웃으며 남자가 시동을 끄고 내렸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태환 또한 냉 큼 차에서 내린 가운데.
슬그머니 다가온 민수가 손뼉을 짝 쳐서 주의를 환기시켰다.
“자자, 다들 이러지 말고 빨리 말 통 싣자고요.”
“아, 네!”
“돌아가면 바로 차들에 연료부터 채울 겁니다. 화물차 우선이고, 기름 남으면 그때부터 다른 차들에 기름 넣을 거예요.”
재빨리 말통을 들어다 실으니 다른 사람들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짐칸을 차곡차곡 채우는 수십 개의 말통.
그렇게 한 차 가득 말통을 실은 민수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주차장 쪽 사람들도 지금 다들 준 비 끝났죠? 차량 준비 완료되면 바 로 출발할 겁니다.”
“중간에 어디 들르시기로 한 거 아 니었나요?”
“오면서 봤는데 저 앞 삼거리에 슈 퍼마켓 하나 있었어요. 거기서 식량 채울 만큼 채우고, 그다음에 실내체 육관 쪽으로 가죠.”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한 끝에 내놓은 결과물이었다.
어차피 이쪽이 더 셀 텐데 그냥 냅다 쳐들어갈까.
아니면 내가 보급관임을 밝히고 딜 을 제의할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굳이 그 럴 필요가 없었다.
문명이 맛이 가고, 모든 게 부족한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을 뒤흔들 방 법은 너무나도 많았다.
“식량도 식량이지만, 차 몰고 왔다 는 것만으로도 저쪽의 동요가 상당 할 겁니다.”
“아아. 과연……
“그쪽 상태를 보]’야 알겠지만 어쩌 면 굳이 교섭할 필요조차도 없을지 몰라요.”
문명이 정지한 시대에 나타난, 문 명을 사용하는 자들.
과연 그들은 이 광경을 보고 어떤 생각부터 떠올릴까?
“가서 한 번 뒤흔들어봅시다.”
확신을 담은 민수의 눈이 번쩍 빛
났다.
* * *
준중형 화물차 한 대. 소형 화물차 세 대. 마이크로버스 한 대. SUV 두 대.
실내체육관으로 갈 때 동원할 차량 의 목록이었다.
“더 안 가져가도 괜찮을까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
“그래도 혹시 모르는데……
“사람 싣고 가는 거면 화물차들로 도 충분하고, 게다가 승용차 같은 건 도움도 안 돼요. 적재량도 적고, 힘도 약하고, 무슨 일 터졌을 때 빨 리 내려서 대처할 수도 없고.”
예진의 제안에 고개를 저은 민수가 대답했다.
마냥 차를 많이 가져가는 게 좋은 건 아니다.
차를 과시해서 저쪽에 시각적 충격 을 주겠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 또한 없다.
여차하면 일어날 수 있는 물리적 충돌에도 대비해야 하고.
그럴 때는 이런 큰 차들이 더욱 도움이 된다.
설령 바리케이드를 쌓아도 들이받 아 밀어버릴 수 있으니까.
“은비야, 실내체육관 쪽 상황이 어 떻 다고?”
“200m 내의 주요 진입로마다 벽을 쌓아놨어요. 시간대별로 방어조가 순찰을 다녔고요.”
“많이 튼튼해?”
“뭐, 나름 신경 써서 꼼꼼하게 쌓 긴 했는데…… 솔직히 말해 잡동사 니들 모아놓은 산이에요.” 그나마 없는 것보단 나아서 쌓아놨 을 뿐.
대형차 한 번만 들이받아도 산산이 박살 날 허접한 벽이다.
애초에 기름도 없고 중장비는 더더 욱 동원할 수 없는 상황.
몬스터에 맞서는 그럴듯한 방벽 따 위를 쌓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생각해 보니 좀 불안하긴 하네요. 간밤에 잘 버텼을지……
“그건 가서 보]’야 알겠지. 거기! 많 이들 쌓으셨어요?”
“아주 꽉꽉 채워놨지!” 화물차 위에 앉은 남자로부터 우렁 찬 대답이 들려왔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가까운 삼 거리에 위치한 슈퍼마켓 앞.
슈퍼마켓이라고 이름치고는 좀 민 망하게 작았지만.
어쨌든 쌀부터 식량까지 있을 건 다 있는 곳이었다.
“이야, 이거 볼수록 기가 막히네. 아니 뭐, 물건 꺼내는 족족 계속 다 시 채워지잖아? 화수분이 따로 없 어. 화수분이!”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면 맘껏 가져다 드세요. 그보다 언제쯤 끝날 까요?”
“저기, 저기 저놈만 실으면 끝이야. 옳지! 옳지! 그대로…… 오케이!
끝!”
남자의 외침에 옆에 있던 사람들이 파란 방수포를 펼쳤다.
활짝 펼친 방수포로 짐칸 가득 쌓 인 식량을 덮더니.
어디서 가져온 굵은 밧줄로 방수포 와 식량을 단단히 얽어맸다.
“좋았어! 작업 끝!”
“10분만 쉽시다! 담배 피우시는 분 들은 여기로!”
땀을 닦으며 외쳐대는 병운의 손에 는 양담배 한 보루가 들려 있었다.
보아하니 그사이 카운터에 있던 걸 가져온 모양이다.
이 와중에도 담배 생각뿐인 그 모 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깨를 으쓱하며 웃는 민수의 옆으 로 다가온 예진이 물었다.
“……그런데 민수 씨.”
“네?”
“그 보급고 스킬이라는 거, 아직은 이렇게 작은 데에만 쓸 수 있는 건 가요?”
“아직은요. 스킬 레벨이 올라가면 더 고급 시설에도 적용할 수 있겠지 만.”
이 질문 왜 안 나오나 했다.
작게 한숨을 쉰 민수가 대답했다.
“저도 쇼핑센터 같은 데에 대고 시 도해 봤는데, 지정이고 뭐고 아예 메시지창도 뜨지 않더라고요.”
“그래요?”
“뭐, 이 ‘게임’의 밸런스 조정 같은 거겠죠. 이 추세면 언젠간 그런 데 도 점령 가능할 거니까 그건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는데……
정작 지금 가장 걱정스러운 건 따 로 있었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본 민수가 예진과 은비에게 물었다.
“……혹시 오늘, 오크 본 사람?”
“네? 아, 그러고 보니……
“……한 마리도 못 봤어요.”
전날까지만 해도 사방에 들끓던 오 크들이 싹 사라져 있다.
아니, 그냥 바깥에 몬스터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하베스터 퍼펫이 사라진 거야 그렇 다 치더라도.
길고양이처럼 어슬렁거리던 오크들 이 싹 사라지다니.
가만 생각해 보니 결코 간단한 문 제가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짚이는 게 없지는 않아요.”
당황한 예진의 물음에 대답한 민수 가 미간을 좁혔다.
이전부터 스스로 체감해 왔고, 어 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다.
이 ‘게임’의 몬스터들은 가만 보면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어떤 원칙에 의해 생성되고, 또한 그에 따라 소모되어 왔다.
‘고블린. 오크. 마커스.’
허약해 빠져서 일반인도 죽이기 쉽 고.
물자를 태워서 강제로 극한상황을 유도하는 고블린.
일반인에겐 버겁지만, 플레이어는 상대할 만하고 딱 적당한 코인만을 드롭하는 오크.
오픈 베타 당시에는 사실상 상대가 불가능한, 오로지 정식 서비스를 위 해 존재하던 마커스.
‘모든 몬스터에 목적성이 있었다.’ 고블린은 극한상황을 조성함과 동 시에 플레이어를 각성시키는 제물.
오크는 플레이어들의 성장을 위해 만들어진 적절한 수준의 발판.
마커스는 그렇게 성장한 플레이어 들이 이겨내야 하는 시련.
이 모든 게 오로지 ‘게임’의 레벨 디자인에 입각하여 소모되어왔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번 룰이 변했다.
그 결과로 오크들이 사라진 대신, 심야의 블러드하운드 습격이 그를 대체하는 거라면.
“……이건 좀 연구할 가치가 있겠 는데.”
“네? 방금 뭐라고……?”
“아뇨. 그냥 혼잣말. 자! 다들 충분 히 쉬셨죠?”
대충 예진의 질문을 홀린 민수가 짝짝 박수를 치며 나섰다.
황급하게 담배를 비벼 끄고 자리에 서 일어나는 사람들.
그들 앞에서 뒷짐을 진 민수가 고 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출발해 봅시다.”
충격과 공포가 실내체육관을 덮치 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