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71
“흐음…….”
피라미드를 감싸고 있는 푸르스름한 반구형의 장막은 분명 율법의 방어막일 터였다.
“때려 부술 수는 없겠는데?”
“고모의 실력으로도 안 돼요?”
살며시 도발을 해 본 페르미였지만 미로는 의외로 순순히 인정했다.
“현실이라면 모를까, 여기서는…….”
“다른 방법은 없어요?”
“직접 침투하는 수밖에 없지. 외부에서 가해지는 율법을 막는 방어막이니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무용지물이야.”
“만약 내부에도 방어력이 있다면요? 예를 들어 안티매직으로 마법을 교란시킨다든가.”
이번만큼은 미로도 참지 못했다.
“지금 장난해? 저건 나를 막아 내기 위한 방어막이야. 어떤 인간도 나를 상대로 거기까지 신경 쓰지는 못해.”
“그렇군요.”
미로가 전심력을 다한 공격을 막아 낼 만큼 단단하지 않다면 애초부터 방어막을 설치할 이유가 없다.
인간 최강의 율법사라는 슈라 정도가 되고서야 겨우 가능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난감하네요. 저쪽도 군락을 통합시킨 것 같은데. 뮤턴트들을 뚫고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요?”
“잠깐만. 뭔가 나타났어.”
사막 저편에서 수백 개의 헤드라이트가 밀려들었다.
지하인들이 각자의 이동 수단으로 사막을 건너는 광경이 미로의 눈에 들어왔다.
“군락에 더해 지하인까지 가세했군.”
마르샤가 말했다.
“방어막을 걷으려면 내부로 침투해야 돼. 우리를 막는 자는 십로회의 간부, 태양의 아이들의 수호자, 지하인, 뮤커스야. 할 수 있겠어?”
미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반야의 힘은 반야의 힘으로 상쇄되지. 슈라가 활동하는 이상 나에게 맡기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야.”
“그럼 어떡할 거야? 방법이 없잖아?”
“과연 그럴까?”
미로는 미소를 지으며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우리에게는 야차가 있잖아.”
모두의 시선이 리안에게 향했다.
하늘을 날지 못하는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피곤한 몸을 검에 기대고 있었다.
“아, 배고파.”
대직도 (2)
* * *
뮤커스는 도시를 완전히 잠식했다.
사방의 점액질이 꿀렁거리며 어딘가로 흘러가는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막혔어! 돌아!”
블록 하나를 가득 채운 점액질 앞에서 미로 일행은 모퉁이를 돌아 나갔다.
뮤커스에서 튀어나온 촉수가 그들의 등을 간질이듯 뒤따르다가 본체로 빨려 들었다.
“제길! 끝까지 방해할 생각인가!”
“조금만 참아. 곧 벗어나니까.”
도시를 빠져나올 무렵에는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뮤커스는 사막의 어딘가를 향해 끝없이 흐르고 있었고, 그 시점에서 미로는 작전을 확인했다.
“슈라는 아마 나를 막아 내려고 할 거야. 하지만 보고에 의하면 십로회의 간부는 하나 더 있어. 그렇게 되면 나도 너희를 도와줄 수 없을 거야.”
십로회의 간부 둘을 막아 낼 수 있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러니 흩어지자. 페르미와 마르샤는 우회해서 측면을 공격해. 그러면 시선이 분산되겠지.”
리안이 말했다.
“그 틈을 노리고 제가 피라미드로 침투하는 거군요.”
“그래. 그곳에서 액싱으로 율법을 파괴해. 그럼 어떻게든 시로네에게 도달할 수 있을 거야.”
리안의 액싱은 율법을 부정한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야차의 액싱은 육체에 직접 작용하지. 그래서 반야가 상대하기 까다로운 거야. 너의 의지가 얼마나 강하냐에 달렸어.”
‘의지라.’
리안은 그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뮤커스는 지평선 너머로 짙게 깔려 있었다.
에너지 순환을 포기하고 오직 시로네를 향해 뻗어 나가는 속도는 그들의 예상보다 빨랐다.
“뮤커스에게 가장 먼 거리는 북쪽이야.”
“제가 가겠습니다.”
전열에서 이탈한 리안이 속도를 높이며 사막을 질주했다.
액싱을 발동한 그가 발을 구를 때마다 폭탄이 터진 듯 모래가 펑펑 일어섰다.
“자, 그럼 우리도 시작해 볼까?”
미로의 지시에 따라 마르샤와 페르미가 좌우로 거리를 벌렸다.
피라미드의 사면을 동시에 협공하는 전략은 고작 4명으로 할 만한 작전이 아니지만, 버틸 수만 있다면 리안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될 터였다.
“예상대로 흩어지는군.”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 있는 슈라가 눈을 뜨며 말했다.
그녀의 옆에는 박녀와 지하인의 우두머리인 킹콩이 지키고 있었다.
신장 3미터의 거구에 털이 부슬부슬한 킹콩은 피라미드 주위를 돌고 있는 300명가량의 부하들을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박녀가 물었다.
“미로는 어느 쪽이지?”
“남쪽. 도시에서 이곳을 향해 똑바로 달려오고 있어.”
슈라는 수호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동쪽과 서쪽을 수비해라. 미로는 내가 맡는다.”
킹콩이 물었다.
“하오면 저희 부대는 어떡할까요?”
슈라는 지평선을 따라 북쪽으로 우회하는 리안을 살폈다.
“검사를 맡아라. 아무래도 미끼인 것 같은데, 300명이면 충분하겠지.”
“우오오오오!”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킹콩이 가슴을 두드리며 피라미드 아래로 뛰어내려 갔다.
“전쟁이다! 준비해라!”
“끼야야야야야야!”
사막에 퍼지는 원숭이들의 괴성을 들으며 박녀가 슈라에게 돌아섰다.
“나는?”
“시로네를 지켜. 일단 내가 미로와 한판 붙을 것 같으니까.”
북서쪽 군락의 신관 베베토가 코더 능력을 이용해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올라왔다.
“슈라 님, 왔습니다.”
사막을 가로지르며 달려오는 미로의 모습에, 슈라의 눈빛에 사악한 기운이 일렁거렸다.
“후후후, 오랜만이구나.”
“슈라.”
멀리 보이는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시선으로 겨눈 미로는 심호흡을 하며 인사 대신의 일격을 준비했다.
“후우우우우.”
미로의 몸에서 관음의 화신이 불길처럼 피어올랐다.
스케일의 정점에서 화신의 크기는 하늘을 장악했고, 모두가 충격에 휩싸인 눈동자로 고개를 쳐들었다.
“저, 저게 뭐야?”
반야바라밀.
미로가 눈을 부릅뜨며 두 손을 합장했다.
‘극락장!’
극한으로 쪼개진 시공간 속에 관음의 팔이 개별적인 위력을 담은 채로 피라미드를 좌우에서 덮쳐 왔다.
“꺄하하하하하!”
동시에 슈라의 몸에서도 거대한 뱀의 화신이 나타나 피라미드를 감쌌다.
사도 반야-붕괴의 게슈탈트.
콰아아아아아앙!
천지가 흔들리는 것 같은 충격음이 피라미드를 뒤흔들었다.
관음의 쌍장이 수도 없이 방어막을 후려칠 때마다 반구의 표면에 코드들이 번쩍거렸다.
“역시 쉽지 않아…….”
율법을 속이는 거짓 교리의 신은 진리의 극에 도달한 미로의 천적임이 확실했다.
“키키키! 말괄량이 기질은 여전하구나, 미로.”
미로를 내려다보는 슈라의 입가가 뱀처럼 뺨을 타고 눈가까지 찢어졌다.
“온다!”
피라미드의 동쪽과 서쪽으로 우회한 페르미와 마르샤의 머리 위로 수호자들이 쏟아져 내렸다.
뮤턴트의 능력은 천차만별. 그것도 혼자서 6명 이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빚을 갚기 위해.’
마르샤는 패륜의 단도를 끄집어냈고.
‘1,900억 골드를 위해.’
페르미는 감가상각의 거래에 의한 칩을 입속에 삼켰다.
잠시 후, 피라미드의 동쪽과 서쪽에서 웅장한 마법의 폭음성이 울려 퍼졌다.
“제길! 저기 음식들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우두! 우리는 언제 싸워요?”
태장이 묻자 팔짱을 끼고 있던 킹콩이 근엄한 목소리로 일렀다.
“기다려라. 우리의 왕께서 영원한 음식을 약속하셨다. 이번 일만 끝나면 더 이상 굶주릴 일은 없을 거야.”
“먹을 것이 나타났습니다!”
피라미드의 북쪽을 에워싸고 있는 두 번째 진열에서 망원경을 든 지하인이 소리쳤다.
1명의 검사가 사막의 아지랑이에 파묻혀 일렁거리고 있었다.
“시로네…….”
리안은 피라미드의 계단을 올라가는 시로네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뮤커스는 주변 일대를 완전히 장악했고 점액질치고는 빠른 속도로 리안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으나, 조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회는 단 한 번이고, 목숨을 잃더라도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임무였으니까.
‘내가 없는 동안 정말 치열하게 싸웠구나. 나보다 더…….’
미로의 입을 통해 시로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깨달았을 때, 리안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미안함이었다.
‘나는…… 너를 지켜 줄 힘이 없었어.’
적극적으로 죽음을 도모해 본 사람만이, 타인의 각오를 이해할 수 있다.
‘싸울 때도, 싸우지 않을 때도, 언제나 죽음은 너의 곁에 있었겠지. 그 두려움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한 발짝씩 나아갔겠지.’
300명에 달하는 지하인들이 겹겹이 방어망을 형성했고, 뮤커스 또한 리안의 그림자까지 따라붙어 있었다.
‘이제는 내가 널 지켜 줄게.’
그 시점에서 리안의 걸음이 멈췄다.
대검을 사막에 꽂은 그는 검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기사의 기도를 올렸다.
‘내 심장에 신념의 왕국을 세우소서.’
그림자를 잠식한 뮤커스가 호선을 그리며 리안의 뒤를 엄습했다.
‘꺾이지 않는 의지와 그보다 더 강한 긍지를 검에 깃들게 하시고.’
점액질이 분열되면서 리안의 주위를 따라 흘렀다.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철썩!
점액질이 해일처럼 일어나 리안을 덮쳤다.
‘그 용기 앞에 흔들리지 않을 철의 각오를 새기소서.’
액싱을 발동한 리안의 위치는 어느새 뮤커스로부터 5미터나 멀어져 있었다.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게 하시고.’
“끼야야야야! 죽여라! 죽여라!”
지하인의 별동대가 사막에 곡선의 궤적을 그리며 리안에게 돌진했다.
“강자의 논리에 굴복당하지 않게 하시며!”
리안은 앞을 가로막는 지하인을 둘로 쪼갰다.(1 kill)
“오직 기사도의 정신으로 검을 이끄소서!”
이어서 허리를 뒤틀며 옆에 따라붙은 지하인의 허리마저 뭉텅 베어 버렸다.(2 kill)
“갈겨 버려!”
사막에 탄환이 박히면서 모래 파편이 튀었다.
뮤커스가 지척까지 다가오자 리안의 걸음은 더욱 빨라졌고, 마침내 뛰기 시작했다.
“놓치지 마라! 여기서 잡아!”
별동대가 전멸하자 전투부대가 본격적으로 지프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들었다.
대검으로 앞을 가로막은 리안의 손에 강력한 탄환의 충격파가 뼈를 부술 듯 전해져 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는 부서지지 않는다.
“이야아아아!”
반드시 베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율법을 부정하고, 대검이 오토바이째로 지하인을 베었다.(3 kill)
“오른쪽으로 돌아!”
리안은 적들의 우회를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앞을 가로막는 자들만을 베며(5 kill) 시로네를 향해 나아갔다.
“절대로 통과시키지 마라!”(6 kill)
다음 열의 전투부대가 소총을 난사하며 돌진했으나 리안은 풍경을 베어 버리듯 검을 휘둘러 길을 열었다.(8 kill)
“저, 저거 미친 거 아냐?”(10 kill)
탄환이 빗발치는 곳으로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밀고 들어오자(13 kill) 호전적인 지하인들도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검을 늘어뜨리며 달리는 리안의 발밑으로 마치 땅이 급류처럼 흐르고 있는 듯했다.
“타하!”
후려치듯 대검을 휘둘러 1명을 베어 버리고,(14 kill) 크게 휘돌려 또 1명을 반대쪽으로 후려쳤다.(15 kill)
쾅! 쾅! 쾅!
유탄이 폭발하면서 불기운이 리안을 뒤덮고 불구름 속으로 수백 발의 탄환이 찌르고 들어갔다.
“크으으으으!”
불길 속에서 옷이 타들어 가는 리안이 대검을 똑바로 앞세우며 야차처럼 돌진했다.
“이야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