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1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에서는 발표회를 통해 귀신의 존재를 증명해 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으시는군요.”
“당연하지! 있지도 않은 귀신을 만들어서 속여 놓고 인정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냐? 너희들은 낙제할 거다.”
“맞아! 이건 질 나쁜 장난일 뿐이잖아! 이딴 식으로 속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어! 나도 마음만 먹으면…….”
클래스 포의 학생이 말을 멈췄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깨달았는지 옆을 돌아보며 웅성거렸다.
“그런데, 어떻게 한 거지? 너는 알겠어?”
“아니, 감조차 못 잡겠어. 진짜 귀신 같았다고. 게다가 전교생을 속였잖아.”
단순한 장난이 아니다.
수백 개의 홀로그램을 만든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대체 그것을 어떻게 움직였을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저 자식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학생들 사이에서 소요가 일어나자 시이나는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 또한 정확한 방법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홀로그램을 만들 수는 있다. 움직일 수도 있어. 하지만 학교 전체를 커버하려면 수백 개의 포인트가 일말의 오차도 없이 작동해야 돼. 그런 상황에서 400명을 한곳으로 유인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아니, 그보다 더 불가능한 것은…….’
만에 하나 운이 좋았다고 치더라도, 시로네 일행은 어떻게 정보를 전송한 것일까?
“허허, 이번에는 우리가 한 방 먹은 거 같구먼.”
교사들이 돌아본 곳에 알페아스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옥상을 보고 있었다.
시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교장 선생님,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저 아이들이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교내 시설에 무단으로 장치를 설치하는 건…….”
“호오? 시이나 선생도 모른다는 말인가?”
현재 알페아스의 흥미는 교칙을 어겼다는 사실이 아니라 시로네 일행의 기술력에 있었다.
그 또한 빛의 마법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이번 전략에 정보통신 기술이 들어갔으리라는 것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과연 학생 수준에서 가능한 일인가?
아마 시로네 일행에게도 엄청난 도박이었을 터.
멋지게 성공한 것에 대해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시이나가 솔직히 인정했다.
“네. 부끄럽지만,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메커니즘을 모른다고 해서 교사를 설득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허허, 내가 말을 잘못했군. 한 방 맞았다는 건 그런 뜻이 아니라네.”
“네? 그럼…….”
알페아스는 말을 아끼며 옥상을 향했다.
“일단 지켜보세. 발표회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으니.”
학생들 또한 시로네 일행이 사용한 트릭을 알아내기 위해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건물 앞이 대규모 토론장으로 변했으나, 의견을 나눌수록 점점 미궁에 빠질 뿐이었다.
특히나 클래스 포의 학생들은 불쾌했다.
후배들이 만든 트릭에 꼼짝없이 속은 데다, 메커니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자존심이 이만저만 상한 게 아니었다.
“흥! 됐어! 뭐가 됐든 웃기는 수작을 부렸겠지. 요지는 이번 발표회가 엉터리라는 거야! 있지도 않은 귀신을 보여 주고 증명했다고? 웃기지 말라고 그래!”
누군가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클래스 포의 학생들이 동조했다.
“맞아! 이런 방식은 납득할 수 없어! 이건 심령과학이 아니라 그냥 쇼라고!”
거기까지 들은 네이드가 나섰다.
“여러분, 아직도 영혼을 믿지 않으십니까?”
“당연하지! 영혼이라고? 이건 그냥 환영 마법의 일종이잖아. 진짜가 아니란 말이야.”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왜 이 자리에 와 있는 거죠?”
“그야 당연히……! 응?”
장내에 정적이 흘렀다.
수백 명의 학생 중에 네이드의 말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그들은 대체 왜 도망친 것일까?
정답은 단순했다. 그들 마음속 어딘가에 영혼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네이드가 말했다.
“여러분이 지금 느끼는 감정이 바로 초자연 심령과학의 본질입니다. 인간은 평생 동안 미지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을 안고 살아갑니다.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고 하여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면, 과연 지성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이야말로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가 지성의 요람인 알페아스 마법학교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말이 없었다.
실제로 귀신이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무슨 상관이 있을까.
중요한 것은 이 자리의 모두가 귀신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누군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학생들은 처음으로 이번 발표회에 진지하게 접근했다.
아는 것을 배우는 이유는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결국 지성이란 미지의 개척자이고, 그 앞에서 심령과 마법은 다르지 않았다.
“이상으로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의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참관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로네 일행이 고개를 숙였다.
사위는 고요했고,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7)
학생들은 저마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론이 나자 정체 모를 후련함에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이거 진짜 걸작인데? 그래, 너희들이 해냈다!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다운 발표회였어.”
“맞아! 솔직히 나도 예전부터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았거든! 앞으로 재밌는 발표회 많이 열어 줘!”
돌변하는 학생들의 태도에 교사들은 당황했지만, 시로네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랬듯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떨칠 수 없는 의문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현실의 삶에 치여 외면하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알페아스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지 않은 채로 보여 준다. 과연 그런 방법이 있었군. 훌륭하게 해냈어.”
사드가 물었다.
“교장 선생님. 그럼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를 존속시킬 생각이십니까?”
“흐음, 그건 내 결정으로 되는 게 아니지. 교사들은 어떤가? 반론할 사람이 있으면 지금 해 보게나.”
누구도 나서지 않았고, 이번만큼은 시이나도 역전의 대안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건 못 이겨.’
연구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이 자리에 모인 사람의 숫자만큼 많을 것이기에.
“훗.”
이것으로 됐다.
조건을 제시한 건 그녀였고 멋지게 해냈으니, 남은 건 성과에 박수를 쳐 주는 것뿐.
“반론은 없습니다.”
한편, 중앙 건물 뒤편의 으슥한 곳에는 음지의 연구회 일원들이 모여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더니 제법 하는군. 졸업한 녀석들, 꽤 당돌한 놈들을 남겨 두고 갔잖아?
-뭐, 이걸로 전쟁은 잠시 유예인가. 당분간 초심령회의 강세가 이어질 테니까 우리 개미 언어 연구회는 나서지 않기로 하지.
-흥, 그래 봤자 클래스 파이브야. 물론 졸업반에 올라오겠지만, 그때는 나도 이 학교에 없을 테니까.
-단언할 일은 아니지 않나? 올해 떨어지면 내년에는 저놈들과 경쟁해야 할지도 몰라. 하긴, 그런 의미로 너는 올해 졸업하는 게 나을지도.
-뭐야? 내가 저놈들이 무서워서 도망이라도 친다는 거야? 그러는 너야말로…….
-모두 그만둬. 평소에는 말도 안 거는 우리가 이러는 것도 우스운 일이니까. 붙어 보고 싶으면 붙으면 되잖아? 물론 우리 숨바꼭질 연구회는 나서지 않을 테지만.
-크크, 그렇게 말해 놓고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겠지. 너희들은 숨기 위해서라면 똥물에도 들어가잖아?
-여기까지만 하자고. 남들 이목도 있으니까. 이렇게 모여 있어 봤자 우리에게 독이 될 뿐이야.
마법학교의 음지를 지배하는 수장들은 무언의 합의를 보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인파에 섞이는 그들의 모습을 시이나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어휴, 저 찌질이들.’
확증은 없어도 짐작은 갔고, 이제는 얼굴만 봐도 지긋지긋했다.
고급반을 거쳐 졸업반에 들어갈 때까지 시이나를 괴롭히던 탁월한 악동들.
그럼에도 어쩌지 못하는 이유는, 하늘이 내린 재능을 남용하여 귀신같이 꼬리를 감추기 때문이다.
‘대체 이 학교에 저런 애들이 얼마나 많은 거야? 이게 다 말도 안 되는 연구회를 인정하기 때문이야.’
시이나가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를 해체시키려던 이유도 네이드 일행이 미워서라기보다는 음지의 연구회에서 상징적인 위치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단한 애들이 거쳐 가긴 했지만…….’
어쨌거나 이번에도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또다시 학생을 사고의 현장으로 몰아넣었다는 생각에 새삼 짜증이 난 시이나가 혀를 차며 건물로 향했다.
“교사회의에서 나온 결과를 공표합니다.”
박수갈채가 잦아들었다.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는 조만간 해체될 예정이었습니다. 1년 동안 공식적인 활동이 없는 데다 인원수마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오늘의 발표회를 기점으로 알페아스 교장 선생님의 의견과 다수의 교사들이 토론을 한 결과, 네이드를 대표로 하는 3인의 연구회,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는 당분간 존속시키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이나는 울컥했다. 그리고 몇 번을 생각해도 솟구치는 짜증을 참지 못하고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너희들 3명은 일주일간 수업 정지야! 정학이라고, 이 멍청이들아!”
“와하하하하하!”
아이들이 배꼽을 잡고 웃어 젖혔다.
연구회를 증명하기 위한 발상은 뛰어났지만 그 과정에서 허가되지 않은 기계장치를 학교에 설치한 죄목이었다.
시로네와 네이드, 이루키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우, 우리가…….”
서로를 돌아본 그들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고, 눈에 환희의 감정이 차올랐다.
“해냈다! 우리가 성공했어!”
정학을 받고도 방방 뛰는 모습에 시이나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들은 진심이었다. 1퍼센트도 남기지 않고 쏟아부은 결과이기에 후회도 없는 것이다.
“하하하! 야, 축하한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 봐라!”
“연구실이 어디야? 가끔 놀러 갈게!”
오늘의 결과를 기뻐하는 사람 중에는 시로네의 열렬한 추종자인 마크와 세리엘도 있었다.
“으아아아! 시로네 선배님은 역시! 저는 처음부터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었다니까요! 역시 선배님은 저보다 한 수 위! 아니, 두 수 위예요!”
“그러게. 이번 발표회에 연구회 해체가 걸려 있었다니 진짜 꿈에도 몰랐어. 아무튼 이번에도 멋지게 해냈잖아? 안 그래, 에이미?”
이 순간을 가장 기뻐해야 할 에이미였지만 예상외로 그녀는 불퉁한 표정이었다.
“정학 맞은 게 뭐가 그리 기쁘다는 거야? 어째서 이런 한심한 짓을 하는 거지? 빨리빨리 공부해서 졸업반에 들어와도 모자랄 판국에.”
세리엘은 표현이 서투른 에이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시로네와 함께 졸업반에서 생활하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멋지잖아. 물론 나더러 하라고 하면 절대 안 할 테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하잖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는 생각.”
세리엘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학생들의 환호를 받으며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는 징계에 대한 일말의 걱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지. 그렇지, 시로네?’
에이미의 눈에도 그리운 감정이 담겼다.
졸업반으로 올라가지 않았다면, 지금 시로네의 옆에 자신의 자리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생각이야. 졸업하려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난 절대로 널 우러러보지 않을 테니까.’
에이미는 차갑게 돌아섰다.
‘그러니까…… 빨리 따라오란 말이야, 이 바보야.’
***
새벽 4시.
학생도 교사도, 야근을 하는 직원들도 모두 깊은 잠에 빠진 시간이었다.
오직 시로네 일행만이 역사적인 발표회가 있었던 중앙 건물의 풀밭에 드러누워 별을 보고 있었다.
“…….”
환호성도, 왁자지껄한 소음도 사라졌지만, 여전히 환청이 들리는 기분이었다.
네이드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해냈구나, 우리들.”
“그러게. 하지만 시로네에게는 좀 미안한데? 나야 징계를 밥 먹듯이 받는다지만, 너는 처음이잖아?”
시로네는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재밌었잖아. 너무 재밌었어.”
“그래, 최고였지. 살면서 오늘 같은 날을 다시 겪을 수 있을까? 아직도 전율이 가시지 않아.”
“뭐, 우리 셋이 힘을 합쳤는데 그 정도는 되어야지. 어쨌든 알페아스 마법학교에 새로운 역사를 썼군.”
시로네가 벌떡 상체를 세웠다.
“게다가 딱히 나쁜 일만은 아니야. 얻은 것도 많으니까. 이번 발표회로 광자 출력의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졌거든. 수업만으로는 절대 여기까지 못 왔을걸.”
“나도 그래. 광섬유의 지식도 얻었고, 무엇보다 대량생산공정을 혼자 경험해 봤어. 솔직히 굉장한 공부가 됐어. 이게 다 너희들 덕분이야.”
이루키가 동의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전교생의 행동 패턴을 실전에 적용하면서 얻은 게 많으니까. 물론 시로네가 이모탈 펑션까지 끌어다 쓰지 않았으면 모든 게 허사였겠지만.”
“무슨 소리야? 너야말로 대단하지. 서번트 신드롬으로 계산한 수준이 아니었다면 학생들은 절대로 속지 않았을 거야. 분명 눈치챈 사람도 나왔을걸.”
“그 부분은 네이드가 고생을 엄청 했어. 수백 대의 기계장치를 오차 없이 설치했으니까. 내가 보기에 선생님 중에도 속은 사람이 있더라고. 그 디테일은 정말…….”
신이 나서 떠벌리던 그들은 무언가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썰렁한 바람이 지나가고, 네이드가 일으켜 세운 몸을 도로 누이며 말했다.
“그만두자. 우리끼리 칭찬해서 뭐 하냐?”
“그래.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선 안 되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을 테니까.”
밤하늘의 별을 보며 시로네가 말했다.
“더 올라가고 싶어. 저 수많은 별들 중의 하나,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별이 될 때까지.”
이루키도 같은 걸 느꼈다.
“노닥거리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 버린 것 같군. 슬슬 올라갈 때가 된 것 같아. 졸업반 말이야.”
“좋아.”
네이드가 벌떡 일어났다.
“오늘부터 목표를 세우자. 최대한 빨리 클래스를 올리는 거야. 그리고 다 함께 졸업하는 거지. 사회에 나가면 더 재밌는 일이 많을 테니까.”
“사회라…….”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간다.
미래의 일을 상상한 시로네와 이루키도 눈을 반짝이며 자리에 앉았다.
“더 이상 숨을 곳은 없어. 올라가자.”
“크크,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핑계는 이제 없다는 거로군. 그럼 어디, 나도 봉인을 풀어 볼까?”
네이드가 손을 내밀었다.
“자, 다들 손 모아. 오늘 약속 절대로 잊지 않는 거야. 우린 끝까지 함께라고.”
세 사람은 힘차게 파이팅을 외쳤다.
언젠가 최고의 마법사가 되리라 다짐하는 시로네의 눈에 밤하늘이 담겼다.
유독 반짝이는 별.
북극성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상에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