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74
미로의 지시에 따라 율법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저마다의 의지를 강화했다.
동시에 700개의 토템에서 횃불이 폭발하더니 거대한 불기둥으로 승천했다.
남극의 추위마저 날리는 열기였으나 이미 삼매에 들어간 사람들은 그마저도 느끼지 못했다.
‘무지막지한 놈.’
미로의 눈에 사납게 힘이 들어갔다.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이런…….’
율법의 시소에 의해 필연적으로 나네와 대립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경외감이 들 정도로 강력한 의지였다.
‘그래, 네가 가장 신에 가깝다. 다 해 먹어라!’
횃불의 크기가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솔직히 이건 너무하잖아!’
심령권의 무서움은 똑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이면 세계와 현실 세계의 장벽을 허무는 것에 있다.
인간이 구축한 방어물이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시온 프로젝트의 지상 과제는 심령권의 영역을 최소 1킬로미터 이하로 축소시키는 데에 있었다.
‘경계가 무너지면 안 돼.’
단지 구멍이 뚫린 것뿐이라면, 설령 마족들이 침범해도 인간의 영역에서 인간의 전쟁을 치를 수 있다.
“제길!”
갑자기 미로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마족은 선하지 않다.’
그렇기에 마족이라 불리는 것이겠지만, 그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낸 이면의 존재였다.
“미로 씨, 용서해야 합니다.”
집중의 극한에서 미로의 정신이 흔들리자 아르민이 황급히 말을 건넸다.
“당신이 무너지면 끝장이에요.”
미로는 아르민의 목소리가 까마득히 먼 곳에서 들리는 기분이었다.
‘세상이 아드리아스 가문을 멸문시켰을 때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너무나 불합리하지 않은가.
‘어째서 고통은 선한 자들의 몫이지?’
아르민이 소리쳤다.
“정신 차리세요! 이미 시로네가 모두의 죄를 사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한 번의 기회예요!”
“흐으으으으!”
가속의 정체기를 맞았던 미로의 수열식이 다시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시로네,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이니?’
나네의 공이 경이롭듯이, 시로네의 박애도 그에 못지않은 경이로움이었다.
‘제자에게 밀릴 수야 없지!’
마침내 미로의 수열식이 10의 64승, 불가사의의 경지를 주파하자 토템의 불꽃이 하늘을 관통했다.
“절대로 지지 않는다.”
마치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 것처럼 심령권의 영역이 최초에 탄생했던 지점을 향해 줄어들고 있었다.
심령권의 반경, 17.4킬로미터.
격동의 시대 (1)
“어리석은 중생이여.”
깊은 숲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나네의 눈동자에 분노가 휘몰아쳤다.
“이 세계에 진실로 희망이 있다고 보는가?”
마음이 우주보다 클 수는 있으나, 그 마음마저 손바닥 뒤집듯 배신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던가?
생물이 이기적인 것은 당연하다고?
“그것 또한 나라는 존재에 갇혀 있기에 생기는 착각에 불과하다.”
“나네 님, 남극을 치는 게 어떠신지요.”
슈라가 입을 열었다.
“……언젠가는 그래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제거할 수 있는 율법이라면 심령권이 이토록 급격하게 축소되지는 않았을 터였다.
삶에 대한 생물의 가공할 집착.
‘베론, 시로네, 미로…….’
99퍼센트가 넘어가는 카르 수치는 세상에 남은 진리를 마치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결코 완벽할 수는 없기에, 인간에 대해 놓치고 지나간 것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했다.
“앞으로 세상에 거대한 혼란이 온다. 어차피 율법은 나에게로 넘어올 수밖에 없을 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지, 어째서 이 세계가 닫혀야 하는지 모두 알게 될 것이다.
***
“조금만 더!”
실핏줄이 터져 피눈물이 흐르는 와중에도 미로의 시선은 세상의 율법을 똑바로 겨누고 있었다.
심령권의 반경 4.4킬로미터.
‘100미터라도 더 줄여야 한다! 아니, 10미터라도!’
반경 1미터당 생존할 수 있는 인간의 숫자는 대략 300명 정도로 추정된다.
오오오오오오.
중천동의 수도사들이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저음으로 율법을 뒷받침했다.
미로의 눈이 치켜떠졌다.
‘안 돼! 여기까지다!’
더 이상 욕심을 부리다가는 시온의 율법이 파괴되어 여태까지의 노력조차 물거품이 되고 만다.
“관철시켜!”
불꽃에 사로잡힌 토템이 700개의 불기둥을 이루며 하늘로 승천했다.
“걸었다.”
앞으로 시온이 파괴되지 않는 한 영원히 꺼지지 않을 700개의 불기둥이 심령권의 확장을 막을 터였다.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
율법자들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와중에 미로의 눈초리는 매서웠다.
“짜증 나게…….”
심령권의 최종 반경 1.43킬로미터.
기존의 목표보다 반경 430미터가 더 넓다는 것은 대략 10만 명의 사망자가 더 생겼다는 얘기.
“나네를 상대로 여기까지 해낸 것도 대단한 겁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아르민이 그녀를 위로했다.
‘아니, 솔직히 여기까지 해낼 줄은 몰랐다.’
단지 경지의 깊이만으로 이뤄 낸 성과가 아니었다.
차원의 장벽으로 천국의 모든 군대를 막아 냈던 노련함이 여실히 드러난 결과였다.
“괜찮아요. 아직 아무것도 이룬 건 없습니다.”
미로가 세상을 향해 선포했다.
“싸움은 이제부터예요.”
프로젝트 시온.
나네의 공에 대항하는, 인류 최후의 율법적 저지선의 이름이었다.
***
심령권이 축소되면서 성전의 지시를 받은 각국의 군대는 가이드라인에서부터 마족들을 밀어붙였다.
“쏴! 쏴라!”
제단을 봉인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심령권 바깥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할 시간은 벌어야 했다.
세계 최고의 건축가가 개발한 초고속 장벽 건축식을 사용하더라도 36시간이 걸리는 상황.
마족들을 이면 세계의 통로에 잠시라도 묶어 두기 위해 성전이 택한 방법은 지극히 단순했다.
“아낄 필요 없어! 전부 쏟아붓고 가는 거다!”
심령권을 빙 둘러싼 360도 전방위에서 수천 명의 궁수들이 동시에 마정탄을 쏘아 대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모든 물자는 성전이 제공하고, 36시간 동안 대략 900만 톤의 마정탄이 각국으로 보급될 예정이었다.
‘이게 무슨 돈지랄이야!’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1조 3천억 골드에 달했고, 병사들은 그저 폭격이 가해지고 있는 지점을 향해 주야장천 활시위를 튕기는 게 전부였다.
사령관이 망원경을 들어 제단 쪽을 살폈다.
‘성전이기에 가능한 전략이다. 그리고 확실하지.’
이면 세계의 마족들 사이에서도 토의가 이루어지고 있을 테지만, 지금 당장은 바깥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령관은 천천히 망원경을 내렸다.
‘하지만 물량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노을이 지는 곳에 흉물스러운 철골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모두 싸우고 있구나.’
시로네는 행성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태성의 시점하에 돌아보았다.
태성의 표정 또한 비장했다.
“미로가 결국 해냈군요.”
“네, 아쉬워요. 조금만 더 밀어붙였으면…….”
“오히려 시온이 파괴되었겠죠.”
시로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미련이 남는 이유는, 인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선의 의지를 가진 자들의 숫자였다.
‘내가 해야 한다.’
시로네가 태성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지상으로 내려가겠어요. 제단을 봉인하겠습니다.”
“물론이죠. 하지만 시로네가 나서야 할 때는 바리케이드가 완성되고 난 이후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떠나고 싶었다.
“시로네, 별이라는 것은 특정 국가, 특정 인물의 이득을 도모해서는 안 되는 위치예요. 시로네가 어떤 국가의 제단을 미리 봉인하면, 인간들의 다툼은 더욱 심해집니다.”
시로네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시로네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삶 바깥에서, 초국적인 활동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누군가를 죽여서는 안 돼요.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나네의 목적을 도와주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이유는, 너무나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
개인의 굴레를 떠나서 거대한 짐을 짊어진 시로네를 태성은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이걸 받으세요.”
태성이 양손을 떠받들자 별을 상징하는 오망성의 펜던트가 나타나 시로네에게 둥둥 떠갔다.
“이건?”
“행성 헥사의 열쇠입니다. 시로네에게는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헤매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마테리얼을 이용하면 헥사의 열쇠를 원자단위로 해체해서 설계도를 얻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소중하게 가꿀게요. 물론 지금 당장은 헥사를 찾을 일이 없을 것 같지만요.”
태성은 시로네의 마음을 이해했다.
아무리 무한의 경지에 들어갔다고 해도,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온 이상 마음이 없을 수는 없다.
아니, 오직 마음밖에 남지 않았기에 더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울 터였다.
“그만 내려가 보세요. 루버와 미니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살 집을 안내해 줄 거예요.”
시로네가 야훼의 빛을 손바닥 위에 띄우며 말했다.
“네. 출발할 때 뵙겠습니다.”
태성은 별들의 출입을 금하지 않는다.
다만 만날 수 있는 방도가 없기 때문이었으나, 시로네는 언제라도 그녀에게 올 수 있었다.
‘내려간다.’
대지성전에 도착했던 것처럼 율법이 길을 열어 주면서 시로네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루버가 시로네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기에 태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인류를 위해 희생한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이 정도지만…….”
슬픈 미소였다.
“부디 즐거운 꿈이 되기를…….”
대지성전 아래, 물리적으로 가장 높은 상아탑의 꼭대기에서 루버와 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얘기는 잘 끝나셨습니까?”
“좋은 분이셨어요.”
태성은 어머니처럼 포근했다.
“그렇지요. 머물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승강기를 타고 400층에 도착하자 문 바깥으로 논과 밭, 산과 개울이 있는 작은 마을이 보였다.
“별이라고 딱히 독립적인 공간에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남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지요.”
“네. 마음에 들어요.”
본래 문명이란 자연 속에 지어지지만, 상아탑은 문명 안에 자연을 담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큰 건물일까?’
마법진을 통해 내부로 들어왔기에 바깥에서 상아탑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시로네의 집은 빨간 지붕이 있는 2층 목조건물이었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였다.
미니가 물었다.
“바리케이드가 완성되는 대로 떠나실 건가요?”
제단은 오직 시로네만이 봉인할 수 있기에 그녀는 다른 쪽으로 지원할 생각이었다.
“그럼 저는 남반구 쪽으로 가서 베론의 흔적을 조사해 볼게요. 뭔가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루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부서의 다른 별들에게 마족의 진압 작전을 돕도록 지시하겠네.”
꿈을 통해 전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이면 세계의 주민들은 강해요.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고통을 겪겠죠.”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지키세요.”
미니의 말에 시로네가 고개를 돌렸다.
“태성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알아요. 그게 별의 숙명이죠. 하지만 이미 모두를 구했잖아요. 최소한 사랑하는 사람만이라도 구할 자격은 충분해요.”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집착하는 순간 카르는 올라가고 야훼의 빛을 잃어버릴 거예요. 율법의 균형이 깨지게 됩니다.”
“견딜 수 없잖아요. 충분히 지킬 힘이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고 해도 괜찮겠어요?”
“괜찮지 않겠지.”
나네는 이렇게 말했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너다.
박애를 통해 인류를 지켜 냈지만 사랑하는 어느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끔찍한 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