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17
낚시터에 앉은 하비츠가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지?”
여태까지 늦은 적이 없었던 아벨라가 오늘따라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나랑 놀기 싫어졌나?”
하비츠는 아벨라가 보고 싶었기에 자리를 박차고 그녀의 마을로 향했다.
어촌 특유의 비린내가 풍기는 마을 입구에서부터 소란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집시들! 오갈 데 없는 것들 거두어 먹였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쳐!”
마을의 리더 핵스터가 피골이 상접한 여자를 발로 걷어차자 아벨라가 달려왔다.
“으아아앙! 엄마!”
“아벨라! 왜 왔어! 빨리 도망치라니까!”
아벨라는 고개를 저었다.
“싫어! 엄마 놔두고는 안 갈 거야!”
집시들이 마을에 정착한 지 두 달, 질릴 대로 질린 해적들이 아벨라에게 손을 대려고 했다.
필사적으로 저항한 엄마가 핵스터의 뺨에 손톱자국을 새기는 것으로 사달이 났다.
“이런 동네 아니면 발붙일 곳도 없는 것들이 감히 나를 건드려? 여기서 다 죽고 싶어!”
유스의 족장이 모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거리를 주면 하겠다고 했소! 당신들이 제안한 대로 모두 따르지 않았습니까!”
“일거리? 너희들 따위가 바다에 나갈 수나 있을 것 같아? 우리가 준 집, 음식, 닭이 거저 나온 줄 아냐고!”
“떠나겠소! 보내 주시오!”
핵스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떠나. 대신에 지금까지 얻어먹은 것들은 다 토해 놓고 가야지? 그게 도의잖아, 안 그래?”
족장을 발로 밀어 버린 핵스터가 아벨라의 머리채를 붙잡고 엄마의 품에서 끌어냈다.
“엄마! 엄마!”
아벨라가 진흙으로 빚은 꽃병이 깨지면서 이름 모를 꽃이 무참히 짓밟혔다.
“안 돼요! 아벨라만은 제발……!”
“닥쳐! 이 정도는 되어야 겨우 본전이야! 데려가!”
핵스터의 부하가 아벨라를 어깨에 얹고 헛간으로 향하자 족장이 바닥을 기며 소리쳤다.
“이 나쁜 놈들아! 어린애가 무슨 죄가 있어!”
“죄? 당연히 있지. 돈 없는 죄.”
남자들이 키득거리며 맞받아치는 그때, 인파의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벨라아~. 노올~자.”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들고, 모든 사람들이 돌아서서 하비츠를 바라보았다.
“뭐야, 너는?”
반사적으로 칼을 뽑아 든 해적들이 하비츠를 보고 귀신처럼 얼굴이 창백해졌다.
“욕망왕……?”
떨그렁, 해적들의 무기가 땅에 떨어졌다.
“흑, 흐윽!”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하비츠를 모르는 사람은 주민 중에 없었다.
‘빌어먹을! 신이시여! 왜! 도대체 왜!’
하비츠가 여기에 있단 말입니까?
‘끝났어.’
어떤 연유로 이런 시골 마을에 왔는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우린 다 죽는다.’
욕망왕에게 자비란 없다.
“으아아앙! 아저씨!”
힘이 빠진 해적에게서 빠져나온 아벨라가 울음을 터뜨리며 하비츠에게 달려왔다.
“으응. 괜찮아, 괜찮아.”
아벨라를 힘껏 들어 올린 하비츠가 해적들에게 걸어가며 소녀의 등을 두드렸다.
“무서워요, 아저씨! 저 사람들이 꽃을 짓밟았어요! 엄마도 죽도록 때렸어요!”
“으응. 괜찮아, 괜찮아.”
아벨라와 아는 사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핵스터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잠자는 악마의 옆구리를 칼로 찔러도 이것보다 멍청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다.
“전하, 저희들은……!”
“죽어.”
하비츠가 말을 끊었다.
“아벨라가 울었으니 놀고 싶지 않아. 죽어.”
“으아아아아아!”
정신을 파괴하려는 듯 고함을 지른 핵스터가 검을 빼 들어 자신의 목을 가로로 슥 그었다.
“커억!”
일격에 사망한 모습을 보고 다른 부하들도 칼을 뽑아 들더니 대장과 같은 길을 택했다.
‘이게 유일한 구원이다!’
하비츠가 제대로 놀아 보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죽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기 때문에.
해적들 대부분이 자살을 선택한 반면에 주민들은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근위대장.”
하비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림자가 미끄러지듯 다가오더니 바닥 위로 정체를 드러냈다.
“하명하십시오.”
콧수염을 기르고 있는 하얀 가면에 전신을 검은 망토로 두르고 휘어진 쌍검을 교차하고 있었다.
“마을 놈들을 생포해라. 전원 암暗형에 처한다.”
“알겠습니다.”
눈을 파내고, 코를 자르고, 고막을 찢고, 혀를 뽑은 다음 팔과 다리를 절단하고 피부를 벗긴다.
그 상태로 수액을 맞으면서 평생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이 암형이었다.
“으아아아! 그건 안 돼!”
주민들이 해적들의 검을 가지러 뛰쳐나가자 근위대장의 그림자가 바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죽여 줘! 제발! 그냥 죽여!”
기절하는 자들이 속출했다.
알파피시(Alpha fish) (5)
“흐으으…….”
혀를 깨물고서라도 죽어 보려던 남자가 뒷목을 맞고 쓰러지는 것으로 마을 사람 전원이 기절했다.
유일하게 깨어 있는 사람들은 집시들이었는데, 차림새가 달라서 구별하기에는 쉬웠다.
하지만 구별할 수 없었더라도 근위대장이 죄를 지은 주민들을 색출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전하가 독보적인 이유다.’
하비츠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상의 비난을 받을지라도, 전하 또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어떤 경지의 궁극이다.’
제국제일검이라는 칭호를 가진 그가 기꺼이 유배나 마찬가지인 변두리 왕을 모시는 이유였다.
‘반드시 전하를 황제로 만들겠다.’
그로부터 7년 뒤, 그는 하비츠의 놀이터에 찾아온 전투 인형 나타샤에게 일격에 목이 떨어지게 된다.
잘린 목으로 내뱉은 마지막 유언은, ‘전투의 궁극을 보았다.’였다고 한다.
“하비츠라고?”
집시들은 아벨라를 안고 있는 하비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황제 구스타프 하비츠 16세는 아니지만 동쪽 변두리 아르카바를 다스리는 하비츠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하늘과도 같은 존재였다.
‘전대미문의 폭군이라던데.’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도는 집시들이지만 황제의 아들 중에 끝을 모르는 광기를 가진 자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벨라! 이리 와! 어서!”
해적들을 통해서 하비츠의 잔혹함을 맛보았기에 아벨라의 엄마도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손짓만 했다.
“무서워하지 마.”
하비츠가 속삭이자 아벨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제 하나도 안 무서워.”
사람이 죽은 현장도, 겁탈을 당할 뻔했던 아홉 살의 아이에게는 자연재해와 다를 게 없는 재앙.
하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악당들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저씨가 괴물을 물리쳤으니까.”
어른만이 보이지 않는 외줄을 본다.
“나 내려 줘요.”
세계 유수의 학자들도 하비츠라는 인물에 대해 뚜렷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엄마한테 갈 거야? 그럼 내일 놀까?”
아벨라의 눈에 비친 하비츠는 어떤 어른보다 강력한 슈퍼 파워를 가진 같은 또래의 사내아이 정도였다.
“우리는 이제 떠나야 해요.”
집시의 삶을 살았던 아벨라는 내일이면 부족들이 마을을 옮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
하비츠가 서운한 눈빛을 드러냈다.
“아벨라, 어서 이리 와. 높으신 분 귀찮게 하지 말고.”
엄마가 용기를 내서 다가가는 그때, 아벨라가 하비츠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 어른이니까 저한테 돈 줄 수 있어요?”
“아벨라!”
엄마가 소리쳤다.
“그래, 100억 골드 줄게. 나 돈 많아.”
하비츠가 순순히 승낙했으나 아벨라는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여기서 꽃 한 송이를 사 가려고요. 이번에는 이름하고 품종을 아는 걸로요. 그리고 꽃 장사를 할 거예요.”
“한 송이로 어떻게 장사를 해?”
“꽃은 매년 씨를 뿌려요. 가꾸고 키우고, 다시 가꿔서 꽃집을 열 정도로 꽃이 많아지면…….”
아벨라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내 가게에 놀러 올래요? 또 같이 놀아요.”
아벨라와 헤어지는 게 그토록 서운했던지, 하비츠도 훌쩍거리며 주머니를 뒤졌다.
“당연하지. 함께 놀려면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하니까, 꼭 꽃밭을 보러 갈게.”
금화 한 닢이 작은 손 위에 올려졌다.
“아벨라!”
하비츠가 마을을 떠나자 아벨라의 엄마가 대뜸 달려와 그녀의 엉덩이를 팡팡 때렸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하마터면 너 죽을 뻔했어! 알아?”
“으아앙! 왜 때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한 아이의 말에 엄마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엄마 봐! 아무나 만나고 다니지 말라고 했지? 너…… 대체 저 사람이 누군지나 알아?”
“응? 저 사람?”
하비츠가 떠난 자리를 돌아보던 아벨라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활짝 펴며 말했다.
“콧수염 아찌.”
“으허허헝! 으허허헝!”
왕성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하비츠가 서럽게 울음을 쏟아 내자 근위대장이 일렀다.
“전하, 헤어지는 게 그렇게 서운하시면 집시들을 전부 왕성으로 데려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비츠의 울음이 뚝 그치면서, 근위대장이 생전 경험하지 못한 살기가 눈을 찌르고 들어왔다.
“죄, 죄송합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아벨라가 꽃밭을 가꿔서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데려오라고?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아벨라가 꽃밭을 가꾸고 훗날 하비츠가 거기로 찾아가는 게 그토록 중요한 일인가?
‘욕망대로 하는 것 같으면서도…….’
때로는 완벽하게 절제한다.
‘아니, 그 또한 욕망의 발로다.’
고작 아홉 살짜리와 한 약속이라는 생각은 어른의 전유물.
하비츠에게는 무엇보다 강력한 삶의 원동력이었다.
“마녀라고.”
근위대장의 목을 치지 않은 이유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바르돌 주민들을 암형에 처하기 전에…….”
근위대장이 즉각 고개를 숙였다.
“하명하십시오.”
“가족 관계를 전부 조사해. 주민들의 사촌에 팔촌에 구촌까지 조사해서 전부 죽여. 1명도 빠트리지 마라.”
“네?”
어림으로 잡아도 대략 1만 명이 넘는 숫자일 것이기에 근위대장이 고개를 들었다.
하비츠의 얼굴에서 진심을 읽은 그가 황급히 허리를 숙이며 대답을 토해 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
“알고 한 것이 아니야.”
우오린이 말했다.
“하비츠는 율법에서 자유롭지만, 율법의 수 2에 의해 자신을 지칭하는 또 하나의 계를 느끼고 있을 터. 물론 혼돈의 특성상 이성과는 거리가 멀지. 어쨌거나 감각적으로…….”
뜸을 들일 만큼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는 실제로 바르돌 주민 전원의 사촌에 팔촌에 구촌까지 조사한 끝에, 대략 2만 2천 명을 죽였다.”
아벨라의 어깨가 다시 부르르 떨리는 것을 바라보던 미네르바가 입을 열었다.
“알고 있었던 거군, 감각적으로.”
“그래. 아마도 14년 전 그 마을에 하비츠라는 혼돈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아벨라 씨는 해적들에게 겁탈당했을 거야.”
그렇게 마녀가 되는 것이다.
“설령 거기서 각성하지 않았더라도, 마을 주민이 몰살당한 결과는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원인이 되어 평생 아벨라 씨를 따라다녔을 거야.”
그것을 하비츠가 원천 봉쇄했다.
“무려 14년. 성인이 될 때까지, 그녀를 괴롭힐 가능성이 있던 모든 변수를 폭격해서 율법적 쑥대밭을 만들어 버렸다. 그렇기에 아벨라 씨는 마녀가 되지 않은 거야.”
미네르바가 아벨라를 노려보았다.
“당신도 알고 있었어? 당신이 떠난 이후로, 마을 주민들과 한 방울의 피라도 섞인 자들이 전부 죽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