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06
“일단 음식을 구하자.”
사막과 달리 중부 대륙은 문명이 번성한 곳이니 식량 정도는 찾을 수 있을 터였다.
2시간을 말을 타고 나아가 도착한 곳은 험악하게 파괴된 도시였다.
위치상으로 보자면 아마도 ‘아르카’라는 이름일 테지만 확인할 방도는 없었다.
벽째로 안으로 넘어진 문을 밟고 지나가자 벽돌로 해체되어 버린 건물들의 잔해가 보였다.
썩어 가는 시체들, 그 사이로 쥐 새끼들이 돌아다닌다는 사실에 리안은 안도했다.
“응?”
리안은 말의 고삐를 살며시 잡아챘다.
‘살기다.’
어느 정도 전쟁을 경험한 자라면 느낄 수 있는 저급한 살기였지만, 수가 제법 많았다.
“말, 말이다.”
사방에서 초췌한 몰골의 사람들이 창을 쥐고 나타났다.
기습을 포기하고 숫자에 의지한다는 것은 훈련받지 않은 민간인이라는 뜻이었다.
“내, 내려. 그 말은 우리 거야.”
심지어 약탈의 경험도 없는 듯했다.
“대장이 누구죠?”
이런 정황을 토대로 리안은 이들이 멸망한 도시에서 자급자족을 하는 생존자임을 깨달았다.
이빨이 빠진 노인이 소리쳤다.
“내리라고 했잖아! 그건 우리 거라고! 정말 죽고 싶어!”
리안에게는 협박이 되지 않았고, 시로네는 아예 관심조차 없이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둬. 군인이야. 당신들은 상대하지 못해.”
무너진 건물의 위쪽을 올려다보자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자른 여성이 장검을 들고 있었다.
4미터 높이를 날렵하게 뛰어내린 그녀가 리안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패잔병인가? 여기에는 어떻게 왔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냥 보내 준다면 우리도 조용히 떠나겠다.”
“고향이 어딘데?”
“토르미아.”
여자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좋겠군. 아직 돌아갈 곳이 남아 있어서. 말을 넘기고 떠나. 우리의 식량으로 쓸 거야.”
말은 리안과 시로네의 식량이었다.
“그럴 수는 없어. 다시 말하지만 싸우고 싶지 않아. 너희들도 도적은 아니잖아.”
“도적?”
여자는 불쾌했다.
“알량한 양심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겠군. 너, 전쟁이나 제대로 해 봤니?”
그녀가 보기에 리안과 시로네는 아무리 많아도 20대 초반의 나이였다.
“높으신 귀족이라 모르나 본데, 너희들이 부르짖던 정의는 이미 죽었어. 말을 넘기지 않으면…….”
리안은 살의조차 드러내지 않았지만, 일정 경계선을 넘어오면 여자의 목은 잘릴 터였다.
“줘.”
시로네가 입을 열었다.
“그냥 줘 버려, 리안.”
“시로네.”
“누구하고도 다투고 싶지 않아.”
시로네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후후, 역시 도련님은 눈치가 빠르네. 그래, 어떻게 구한 목숨인데 여기서 버릴 수야 없지.”
리안이 제안했다.
“말을 넘길 테니 약간의 고기를 넘겨줘.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
“약간의 고기? 미친놈. 다 타 버린 한 줌의 씨앗도 여기서는 생명의 무게야. 그런데 고기를 달라고?”
여자가 돌아서며 말했다.
“말은 도축해서 건조시킬 거야. 따라와. 우리가 먹는 죽 한 그릇 정도는 대접해 주지.”
일단은 뭐라도 먹어야 하기에 리안은 말에서 내려 시로네를 업었다.
도착한 곳은 건물 잔해를 이용해 구획을 나눈 임시 거처였고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100명의 생존자들이 진지를 보수하거나 죽을 끓이는 등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나무를 태우는 곳이 따듯했지만 시로네는 차디찬 구석을 고집했다.
“생존자는 이게 전부인가?”
여자가 씁쓸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더 많았지. 대부분 병으로 죽었어. 시체들이 워낙에 많았거든. 아직까지 살아 있는 자들은 생명력이 강하다고 봐야겠지.”
여자가 모포 두 장을 던졌다.
“써. 한 사람당 한 장씩이야. 식사는 1시간 뒤에 배급될 거야.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규칙을 따라.”
리안은 군소리 없이 시로네에게 돌아갔다.
“시로네, 이걸 덮고 잠시 눈이라도 붙여.”
한 장은 시로네의 어깨를 감쌌고, 자신의 것은 시로네의 무릎에 덮어 주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남자가 헛웃음을 지었다.
“애인이라도 되나? 지극정성이군.”
이곳 피난처에서 남을 위하는 것은 사치였고, 규칙으로도 정해져 있었다.
“신입이 들어왔다고?”
리안의 뒤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여자를 대동한 채 다가오고 있었다.
“말을 얻었어. 잠시 있다 떠날 거야.”
여자가 말했으나 남자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리안과 시로네를 번갈아 살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대번에 인상을 구긴 남자가 시로네에게 덮은 모포 두 장을 가리켰다.
“한 사람당 하나씩이라고 지시했을 텐데?”
“내 것을 준 거다. 상관없잖아?”
“아니. 이곳 셸터에 내 것이라는 개념은 없어. 우리의 것이라는 개념만 있지. 당장 뺏어서 네가 덮어.”
말은 넘겨줄 수 있어도 시로네의 편의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었다.
“보급받은 것을 어떻게 쓰든 자유야. 네가 무슨 권리로 그것까지 참견하지?”
“이 셸터의 관리자니까.”
남자가 손바닥을 펼치자 불꽃이 피어올랐다.
“나는 마법사다. 이 정도면 자격이 될까?”
“…….”
리안이 침묵을 지키는 와중에도, 시로네는 무심한 눈빛으로 전방을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로기 (2)
***
이름 없는 셸터를 관리하는 남자의 이름은 베테루스라는 마법사였다.
이름 외에 밝힌 것은 없지만 셸터를 지휘하는 모습에서 군인의 냄새가 났다.
‘베테루스.’
유명한 마법사였다면 리안의 귀에도 들어왔을 테지만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리안보다 마법사회에 빠삭한 시로네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자, 자! 천막 작업을 빨리 끝내세요. 오늘 밤에는 비가 내릴 겁니다.”
실질적으로 생존자를 이끄는 사람은 셸터의 2인자인 마린이라는 여성이었다.
그녀 또한 군인이었으나 베테루스와의 관계를 보면 전부터 알던 사이는 아닌 듯했다.
‘탈영병인가.’
지옥의 군대는 정말로 강력하기에, 도망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부대를 이탈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어이, 신입! 너희들도 빨리 와서 거들어! 바깥에서 자고 싶지 않으면!”
구스타프 제국에 상륙했던 태풍의 여파인지 중부 대륙에 자주 비가 내렸다.
이미 군마를 넘긴 상태였기에 리안은 비가 그칠 때까지 셸터에서 머물기로 했다.
“비켜 봐요, 내가 할 테니.”
생존자 100명으로는 시체를 치우고 가근방에서 식량을 수집하는 것만으로 벅찼다.
셸터는 여전히 엉망이었고, 무엇보다 무거운 건물 잔해들이 작업을 방해하고 있었다.
사람의 몸통만 한 바위를 리안이 번쩍 들어 올리자 사람들의 눈빛이 변했다.
“우와.”
바위를 어깨에 걸친 리안이 가볍게 던지자 수 미터를 날아가 쿵 하고 처박혔다.
스키마의 힘을 직감한 마린이 물었다.
“힘이 제법인데? 왜 그렇게 큰 검을 들고 다니나 했더니. 누구한테 배웠어?”
수많은 검사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딱히 스승이라 칭할 사람은 없었다.
“글쎄. 굳이 말하자면,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 말해 놓고도 어울리지 않는 철학이라고 생각했는지 리안은 피식 웃었다.
마린 또한 건방지다고 생각했는지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이름이 뭔데?”
리안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
조용히 떠나는 게 시로네를 위하는 길이었다.
“그냥…….”
리안이 말을 줄이자 마린은 더욱 불쾌했다.
“됐어. 비싸게 굴기는.”
어차피 비가 그치면 떠날 사람이었기에 그녀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야! 거기 꼬맹이!”
바닥의 잔해를 치우고 있던 40대 중반의 남자가 참지 못하고 시로네에게 삿대질을 했다.
“지금 다들 일하는 거 안 보여! 네가 지금도 귀족인 줄 알아? 빨리 와서 거들어!”
시로네는 반응이 없었다.
‘귀족.’
산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상아탑 오대성이 되기까지의 기억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나 따위가 무슨.’
자조적인 미소가 지어졌고, 그 표정이 남자에게는 모욕으로 다가왔다.
“이 자식이 진짜……!”
쿵!
거대한 바위가 추락하자 땅이 울렸다.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는 가운데 전보다 2배는 큰 바위를 집어 던진 리안이 말했다.
“내버려 두세요. 내가 친구의 몫까지 2배로 일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이이이익!”
남자가 두 주먹을 움켜쥐었으나 리안이 던진 바위의 크기를 보고 화를 삭였다.
“쳇! 재수 없는 자식!”
욕을 듣고도 리안이 군소리 없이 일을 계속하자 마린이 다가왔다.
“네 친구는 도대체 왜 저래? 전쟁의 충격으로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거야?”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슷해.”
여자가 혀를 찼다.
“살아남은 게 용하네. 저렇게 나약해 빠져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리안도 그게 걱정이었다.
‘많이 지쳤어.’
세상에게 두들겨 맞은 것이다.
무릎을 꿇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고 해서 얻어맞은 자리가 아프지 않는 건 아니다.
시로네는 다시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
“한심하기 짝이 없군.”
멀리서 지휘 감독하던 베테루스가 리안을 지나쳐 시로네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리안이 낮은 어조로 말했다.
“이봐.”
하지만 베테루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로네의 앞에서 화염을 피워 올렸다.
동시에 리안에게서 피어오른 살기에 옆에 있던 마린의 몸이 얼어붙었다.
“헉.”
배 속에서 솟아오르는 비명이 목구멍에서 턱 하고 막히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베테루스가 시로네가 아닌 셸터 바깥에 파이어볼을 시전하자 리안의 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아아아.”
긴장감이 사라지는 느낌이 마치 오르가즘 같아서 절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뭐였지? 조금 전의 느낌은…….’
경험을 기반으로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는 자극이자 느낌이었다.
리안의 시선은 베테루스에게 꽂혀 있었다.
“봤냐? 이것이 마법이란 것이다.”
“…….”
시로네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이 능력을 얻기 위해 내가 어떤 노력을 했을 것 같나? 매일같이 정신을 단련하고, 쉬지 않고 훈련했다.”
베테루스의 눈에는 혐오감이 담겨 있었다.
“너 같은 놈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이었어. 그래도 이를 악물고 버틴다. 이런 세계에서도,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발버둥을 친단 말이다.”
처음으로 시로네의 시선이 베테루스를 향했다.
“내가 왜 너를 싫어하는지 알아?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였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일어섰을 거야! 무엇이든 했을 거라고!”
“그렇겠죠. 하지만…….”
시로네가 힘없이 말했다.
“당신은 내가 아니잖아요.”
열이 바짝 오른 베테루스가 시로네의 멱살을 움켜쥐고 잡아끌었다.
“일어나! 불가능한 것은 없어! 패배 의식에 젖어 있으니까 아무것도 못 하는 거야! 누가 해 주기를 바라지 말고, 이를 악물고 움직이는 거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시로네의 몸은 바닥에 달라붙은 듯했고, 베테루스는 거칠게 멱살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