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35
68장. 하늘의 신화(5)
“뭐야, 염라?”
“갑자기 무슨 일이야?”
“저승신이 하늘의 신화는 왜?”
하늘의 신화에 도전하겠다는 염라의 선언에 천신들이 웅성거렸다.
“재밌어 보여서 손을 들어주기는 했다만 나머지는 새 염라 네 몫이다.”
자청비가 가늘게 눈을 휘며 말했다.
“저 구닥다리 영감탱이들이 인간 출신 새 염라가 하늘에 손을 뻗게 놔두겠냐 이 말이다.”
처음부터 벽하원군과 단군으로 도전자가 내정된 계승전이었다.
수많은 천신들이 신과 인간에게 줄을 대고 물밑에서 신경전을 벌여 왔다.
그런 마당에 갑자기 염라가 끼어드는 것을 쉬이 받아들일 리 없었다.
“문곡성은 대체 무슨 생각인가!”
“뒤에서 염라와 결탁하고 있던 건가!”
“저승과 손을 잡아서 무얼 어쩔 셈이지?”
염라를 천거한 문곡성에도 곱지 않은 소리가 쏟아졌다.
중립을 지킨다던 문곡성이 이제 와서 염라를 도전자로 내세웠으니,
혹여 다른 마음을 품고 염라를 끌어들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문곡성까지 소란에 휘말리게 되었네요.”
“다 알고 저질러 놓고 죄송은 무슨. 어차피 너도 우리 내외를 생각하고 일어섰을 게 아니냐?”
듣고 있자니 미안해져서 사과했더니 자청비가 코웃음을 쳤다.
그들 부부의 천거를 생각하고 손을 든 게 맞아서 멋쩍은 웃음만 나왔다.
“상관없다. 저 새가슴들이 문곡성한테 지레 겁먹는 것만 봐도 제법 통쾌하지 않느냐.”
자청비가 낄낄 웃으며 턱을 괴었다.
“무슨 생각으로 나섰는지는 모르겠다만 기왕 나선 거 어디 한번 하늘도 가져 보거라.”
이어지는 덕담에는 대답 대신 고개만 조금 숙였다.
사실 정말로 하늘의 신화를 손에 넣기 위해 도전한 건 아니었으니까.
어디까지나 현장에서 단군한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었다.
다만 단군과 동맹을 맺으면 나중에라도 문곡성이 다른 두 별과의 관계를 회복할 자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문곡성도 언제까지고 모든 별들과 불편하게 지낼 수는 없을 테니까.
물론 그전에 문곡성만 홀로 고립시켰던 별들로부터 마땅한 사과를 받아내야겠지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문득 자청비가 말을 덧붙였다.
“마땅히 그리되어야 할 일들이 그리되는 것이니.”
나지막하면서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눈이 마주친 그녀가 할 말은 다 했다는 양 빙긋 웃었다.
“혹시 제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 짐작하셨던 건가요?”
그 웃음에 그녀가 예전부터 줄곧 단군과 뜻을 나누던 사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내가 계승전에 나서는 것이 정말로 삼신과 단군의 설계라면 당연히 그녀에게도 언질을 주었을지 모른다.
“아니, 그냥 새 염라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내 물음에 그녀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내 기대보다 훨씬 더 재밌는 일을 벌였지만.”
그래도 그들이 미리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곧장 나를 천거해준 것일 터였다.
……결국 내가 그들의 뜻대로 행동하는 게 맞기는 하구나.
조금 묘한 기분이 되어 삼신과 단군을 돌아볼 때였다.
【하늘의 신화에 도전하겠다는 게 진심이오, 염라?】
상황을 지켜보던 염정도령이 물었다.
【도전자는 천기의 권능이 깃든 풍문을 지녀야 하오.】
그 또한 벽하원군을 지지하는 입장인지라 나를 보는 눈에는 선명하게 날이 서있었다.
“네, 있습니다.”
기죽지 않고 대답했다.
“제게는 천기의 권능이 깃든 원천강의 풍문이 있습니다.”
말을 꺼내자마자 천신들이 다시 웅성거렸다.
“원천강?”
“원천강이 염라한테 있었어?”
“세상에 왜 그걸 아무도 몰랐지?”
우주의 세월이 담긴 원천강은 하늘 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강이었다.
사라진 원천강이 저승에 속했다는 게 상당한 충격인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염라라니.”
“천거한 사라수대왕은 이제 염라의 차사라며? 그걸 공정한 천거라고 할 수 있나?”
“오천 년이 지나도록 한 번 들르지를 않다가 이제 와서 천신의 이름을 팔아? 쯧!”
한데 역시 다들 염라가 끼어드는 것에 썩 호의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별의 자식들끼리도 묘한 눈길을 주고받는 걸 보아 어떻게든 나를 배제할 명분을 찾으려는 것 같았다.
내가 정당한 도전 자격을 갖춘 이상 무작정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이대로 계승전에 참가하려면 확실히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은 필요했다.
이런 잡음이 계속 따라다니면 나를 천거해준 문곡성에도 폐가 될 테니까.
다만 대체 무엇으로 다른 천신들의 반발을 누그러트릴 수 있을지는…….
콰아앙!
그런데 그때였다.
콰앙!
콰아아앙!
천신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사이.
콰아아아앙!
정체불명의 굉음이 연달아 울리면서 연회장이 크게 흔들렸다.
“헉!”
“무슨 일이야?!”
“뭐지?!”
깜짝 놀란 천신들이 사방을 돌아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대왕님!”
강림 형이 불쑥 검푸른 신성을 발하며 나를 잡아당겼다.
파아아앙!
눈앞에서 발설지옥의 번쩍인 직후.
콰아아아앙!
내가 앉았던 식탁이 별안간 폭탄이 터진 것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아니, 이게 뭐야!”
깜짝 놀란 호구별성이 독기를 뿜으며 옆에 붙어 섰다.
문도령은 자청비의 팔뚝을 잡아끌며 날카로운 눈으로 사방을 주시했다.
사라와 바리도 얼굴을 굳히며 내 쪽으로 모였다.
“소환 주술이에요.”
바리가 황금색 문자를 흘리며 말했다.
“연회장 전체에 방진이 그려져 있어요.”
설명과 동시에 바닥에서 무언가 검은 기운이 솟구쳤다.
까아아아악!
까마귀와 비슷한 새 울음소리에 천신들이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아악!”
“방금 뭐가……!”
까아아아악!
계속해서 새가 울자 천신들이 귀를 틀어막으며 몸을 웅크렸다.
“지장아기의 새다!”
사라가 다급하게 나를 돌아봤다.
“지장아기의 첫 번째 새야! 두통새가 두통을 내리고 있어!”
지장아기의 새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지장아기가 흙으로 돌아가면서 남겼다는 새였다.
지장아기는 팔자에 자식이 없던 부부가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 겨우 얻게 된 딸이었다.
그토록 귀하게 태어난 그녀는 한 살 때는 어머니 무릎에서, 두 살 때는 아버지 무릎에서, 세 살 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무릎에서 놀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났다.
한데 네 살 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잃고,
다섯 살 생일에는 아버지를, 여섯 살 생일에는 어머니까지 잃어,
어린 나이에 그만 가족을 모두 잃고 고아가 되고 말았다.
고아가 된 지장아기는 외삼촌의 집으로 가서 개밥그릇에 밥을 먹어야 하는 천대를 받았고,
하늘이 보낸 부엉이가 물어다 주는 밥과 옷으로 겨우 연명해야 했다.
함에도 올곧은 성품으로 자라난 그녀는,
열다섯에 그 마음씨를 알아본 천계의 서수왕 가문에 시집을 갔고,
서수왕 가족에게서 다시금 못 받은 사랑을 듬뿍 받았으나.
열여섯에는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를 잃고,
열일곱에는 시아버지를, 열여덟에는 시어머니를,
열아홉에는 남편과 아들까지 잃고 만다.
또다시 홀로 남은 지장아기에게 가족을 잃은 시누이가 폭언을 하며 그녀를 몰아세우니, 지장아기는 서글프게 울며 연못으로 간다.
연못에 다다른 그녀가 먼저 떠난 가족들을 기리며 굿을 올리니,
그녀의 몸에서는 다섯 마리의 새가 나왔는데.
머리에서는 두통을 일으키는 ‘두통새’가 나오고,
눈에서는 서로를 흘겨보게 만드는 ‘흘깃새’가 나오고,
코에서는 악한 마음을 심는 ‘악심(惡心)새’가 나오고,
입에서는 사람들을 다투게 만드는 ‘헤말림새’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가슴에서는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는 ‘이열새’가 나왔다.
재앙을 품었던 그녀의 몸은 다섯 새를 남기고는 흙이 되어 흩어졌고,
육에서 벗어나고서야 재앙에서 풀려난 그녀의 넋은 액운을 막아주는 가호가 되어 세상을 떠돌게 되었다.
그것이 액운을 막는 수호신 지장아기와 지장아기가 남긴 다섯 새의 신화였다.
연회장의 바닥에는 어느새 지장아기의 새를 소환하는 방진이 불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까아아악!
지장아기의 두통새가 울자 천신들이 하나둘 머리를 감싸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신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대왕님.”
검푸른 신성을 발한 강림 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가다간 신성이 약한 신들부터 차례로 쓰러질 겁니다.”
아직 나와 내 일행들과 자청비 내외는 크게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하나 벌써부터 몇몇 천신들은 극심한 두통에 거품을 물며 경련하고 있었다.
“두통새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나올 새들이야.”
사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흘깃새가 울면 서로를 미워하게 되고, 악심새가 울면 서로를 해치고자 하는 나쁜 마을 품게 되며, 헤말림새가 울면 기어이 서로 피를 보게 돼.”
까아아악!
까아아아악!
까아악!
말과 동시에 사방에서 새들이 우는 소리가 불길하게 울렸다.
두통새에 이어 분란을 일으키는 새들이 천신들의 머리 위로 날개를 폈다.
자리를 도는 음산한 날갯짓이 흡사 사악한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했다.
“이런 미친, 이 많은 천신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겠다는 거야?”
상황을 파악한 호구별성이 욕설했다.
이번 연회는 일곱 별의 천신들이 간만에 모두 모인 자리였다.
이대로 가다간 끔찍한 참사가 벌어질 것이 자명했다.
그를 노리고 이러한 흉계를 꾸몄을 것이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주먹을 쥐며 혼란해진 연회장을 돌아봤다.
몇몇 천신들이 급히 연회장을 벗어나려는 게 보였다.
하나 모두 보이지 않은 벽에 막힌 듯 허공만 두드리고 있었다.
괴한이 이미 무언가 조화를 부려놓은 것이다.
“저들이 새들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염라.”
그때였다.
“저들의 감각을 가리신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귓가에 울리는 차분한 목소리에 곧장 뒤를 돌았다.
하얀 도포를 입은 남자가 수려한 눈을 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과를 읽고 있는지 곧은 몸에 두른 문자들이 광휘처럼 빛났다.
“단군…….”
“오랜만입니다, 염라.”
다가온 그가 가볍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말했다.
“인사를 드릴 여유가 없어 유감입니다. 지금은 새들의 조화를 막는 게 우선이군요.”
그의 말에 다시 머리 위의 새들을 올려다보았다.
듣는 이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울음소리가 점점 더 높아져 갔다.
나까지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듯하여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의 말을 곱씹었고, 그리하여 떠올렸다.
“흑암지옥…….”
감각을 가로막는 지옥의 권능을.
“흑암지옥의 권능을 쓰면 천신들이 소리를 듣는 것을 막을 수 있어.”
흑암지옥은 원래 적의 감각을 차단하여 어둠 속에 가두는 힘이다.
하나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감각을 차단하는 어둠으로 천신들을 보호해줄 수 있을 터였다.
“내 마력으로 저들을 모두 감쌀 수 있을까.”
다만 한정된 힘으로 이 자리의 모든 천신들을 감쌀 수 있느냐가 문제인데.
“힘을 빌려드리겠습니다, 염라.”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단군이 말했다.
“제게 마침 환술을 증폭시켜주는 친구가 있거든요.”
파아앙!
연녹색 신성이 번쩍이면서 크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아…….”
눈에 들어오는 실루엣에 작게 탄성을 질렀다.
“여우……?”
날렵하게 빠진 하얀 몸에 풍성하게 뻗은 꼬리가 보였다.
끝이 검게 물든 아홉 개의 꼬리가 부채처럼 호선을 그렸다.
곧게 뻗은 네 다리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발끝이 검었다.
“환상을 증폭시키는 구미호 폭군입니다.”
“폭군…….”
설마 폭스라서 폭군은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신수 이름으로 폭군은 좀…….
다급한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그래서 티아라를 쓴 건가요?”
“폭군은 품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친구거든요.”
내 물음에 단군이 빙긋 웃으며 폭군을 돌아봤다.
새침한 폭군의 머리 위로 물방울 모양의 보석들로 장식된 화려한 티아라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폭군이 당신의 어둠을 증폭시켜 줄 겁니다.”
단군이 폭군의 목을 부드럽게 쓸어 만져주며 말했다.
“하늘의 신들에게 당신의 권능을 알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