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An Adult Game As A Former Hero RAW - Chapter (211)
“셰디아.”
“응.”
성벽 옆의 그림자가 일렁이며 셰디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월장석을 전부 주는 대신에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한다고 했었지? 그거 지금 쓸게. 황궁에 있을 로렌느를 지켜줘.”
“알았어.”
셰디아는 이유를 묻지 않고 곧바로 건물 위로 뛰어올랐다. 건물 사이를 건너며 달리는 그녀의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신형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됐다.
저 정도 속도라면 로렌느가 화를 당하기 전에 도착해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기를 클라우드는 진심으로 바랐다.
“이놈이 우릴 무시해?”
“죽어라!”
수백 명의 인간들을 포위하고 있던 흡혈귀들이 일제히 클라우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날카로운 손톱들이 그를 노리며 쏘아지는 순간 그의 뒤에서 세 사람의 신형이 튀어나왔다.
“이 불경한 자가!”
오필리아의 철퇴가 선두로 달려온 흡혈귀의 머리를 깨부쉈다. 뒤이어 네리아가 참격으로 세 흡혈귀를 한 번에 베었으며, 그에 주춤거린 남은 흡혈귀들을 카타리나가 정령들과 함께 화려한 검무로 처리했다.
“이, 이게 어떻게…”
클라우드에게 붙잡힌 흡혈귀가 순식간에 죽어버린 동료들을 바라보며 경악했다. 기사를 이기지는 못해도 상대까지는 할 수 있었던 동료들이다. 그런 동료들이 저항다운 저항도 못하고 죽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흡혈귀는 자신에게 살 길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기에 그는 구차하게 목숨 구걸을 하지 않았다.
“이, 이 하찮은 것들이 감히”
두려움으로 떨리는 목소리로나마 비난을 토하려 했다.
하지만 그걸 다 들어줄 클라우드가 아니다.
푸욱
클라우드의 손이 흡혈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는 흡혈귀의 심장을 찾아 잠시 어루만지다가 그대로 힘을 주어 터트렸다.
“..!!”
흡혈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클라우드는 흡혈귀의 시신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툭. 투두둑. 무릎 꿇은 시민들은 땅바닥을 구르는 흡혈귀 시신을 바라보았다.
죽은 거야? 저 괴물이 진짜로?
아까 비명 소리 들었잖아. 쓰러진 저놈도 안 움직이고.
줄곧 조용했던 그들이 작게 속닥거렸다. 그런 와중에 용기를 낸 한 시민이 고개를 들었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이보게들! 다들 고개 좀 들어보게! 괴물 놈들이 다 죽어있어!”
“뭐? 그게 무슨… 흐억?! 진짜잖아!”
용기 있는 시민의 외침에 몇몇 다른 시민들도 고개를 들었다. 그들 또한 놀라며 소리쳤고 덕분에 다른 겁 많은 시민들 또한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사, 살았어…”
“썩을 놈들. 잘 죽었다. 퉷!”
“여, 여보. 이리 와!”
자신들을 억류하던 흡혈귀들의 죽음에 안도한 시민들은 가족을 챙기거나, 죽은 흡혈귀를 욕하거나 하며 시끄럽게 웅성거렸다.
그러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한순간에 조용해지더니 그들의 앞에 서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누구인가.
그들이 그렇게나 두려워했던 괴물들을 이렇게 간단히 죽이는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클라우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그런 의문이 담겨있었다.
시민들은 그가 자신을 소개하기를 바랐다.
허나 클라우드는 그러지 않았다. 용사라고 밝혔다간 괜히 혼란만 더 빚을 것 같았으니까.
“나가세요.”
대신 몸을 비켜주며 성문 바깥으로 나갈 길을 터주었다. 시민들은 눈을 깜빡거리더니 하나둘씩 찢어진 성문의 틈으로 도시를 빠져나갔다.
가, 감사합니다.
도망치는 와중에 감사를 전하는 시민들이 있었으나, 클라우드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말았다.
흡혈귀의 심장을 터트린 이후부터 그의 시선은 쭉 한 방향을 향해있었다.
“클라우드!!”
공기가 쩌렁쩌렁 울리고 대지가 요동친다.
바닥이 패일 정도로 빠르고 강하게 달려온 기스가 클라우드를 향해 단검을 내질렀다.
클라우드는 고개를 젖혀 단검을 피한 후, 옆으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기스는 클라우드를 쫓는 대신 그를 보며 웃었다.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다, 새끼야.”
“…”
“반가운 표정이 아니네? 하긴 그렇겠지. 지금은 널 지켜줄 프릴리테 년도 없으니까 말이야.”
단검을 역수로 쥔 기스가 자세를 잡았다.
“내가 말했었지? 계속 깝죽댔다간 언젠가 나한테 죽는다고. 그날이 오늘이 될 거야.”
기스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었다. 씰룩거리는 눈꺼풀 아래에 보이는 눈동자는 이전과는 달리 붉었다. 인간이면서 혈술을 익힌 부작용이었다.
클라우드는 역겨울 정도로 실실 쪼개는 기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가 아무런 반응도 없자 짜증이 난 기스가 입을 열었다.
“야. 사람이 말을 하면”
“왜 배신했냐?”
“뭐?”
“왜 이딴 일을 벌였냐고.”
“아… 그 이야기였어? 하여간 어떻게 된 게 황제 양반이나 너나 오랜만에 만나는 상대에게 묻는다는 게 그 따위야? 고지식해서 그런가?”
“대답은?”
“대답? 그래, 그렇게 궁금하다면 말해줄게.”
기스가 피식 웃었다. 단검을 던진 후 새 단검을 뽑아들며 클라우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네가 뒤지기 직전에!”
클라우드를 향해 빠르게 쏟아지는 한 쌍의 단검. 그것을 바라보기만 하는 그를 대신해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네리아의 방패가 단검을 막아냈다.
단검이 방패에 부딪혀 튕겨나가는 것과 동시에 클라우드가 도약했다.
“그래, 사실 이유가 중요한 건 아니지.”
클라우드가 기스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벌어졌을 때 클라우드의 손은 검을 쥐고 있었다. 그가 차분하게 납검하는 반면 기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크흑..!?”
한 줌의 신음과 함께 기스의 갑옷이 피로 물들었다. 서로가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 클라우드가 출수한 검에 가슴을 베인 탓이다.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볍게 여길 상처 또한 아니었다.
“애초에 네 상대는 내가 아니기도 하고.”
고통으로 찌푸려진 기스의 미간이 더더욱 찌푸려졌다.
자신의 상대가 클라우드가 아니라니, 무슨 소리일까?
그 말의 의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아까부터 살기 가득한 눈빛을 보내던 네리아가 앞으로 나선 탓이다.
“설마 저 병신 같은 년한테 내 상대를 맡기겠다, 뭐 그딴 말은 아니겠지?”
“너한테는 그 병신도 과분해.”
“뭐, 뭐 이 새끼야?! 너 이 씨발 설마 내가 방심한 틈에 이깟 작은 상처 하나 남겼다고 네가 내 윗급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엉?!”
“응.”
대답을 마친 클라우드는 그대로 강한 기운이 느껴졌던 방향을 향해 달렸다.
“저 새끼가!”
기스는 곧바로 클라우드를 뒤쫓으려 했다. 하지만 그가 자리를 박차는 것보다 네리아가 그에게 검을 내리찍는 게 더 빨랐다. 달리려다가 멈춘 기스의 자세는 어정쩡했다. 때문에 그는 두 단검을 교차시켜 네리아의 검을 겨우 막아냈다.
“네 상대는 나야. 오늘 죽는 것도 너고.”
네리아가 단검과 맞닿은 검에 힘을 잔뜩 주며 으르렁거렸다.
강한 기운을 쫓아 달린 클라우드와 그 일행들은 도시의 광장에 도달했다.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광경에 카타리나와 오필리아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동문에서부터 이곳, 광장까지 달려오는 동안 온갖 역겨운 광경을 보아왔다.
그러나 광장에서 펼쳐진 풍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된 일을 끝마치고 새참을 먹는 농부들처럼 두런두런 모여 앉아 사람의 시체를 파먹는 흡혈귀들에 비하면 말이다.
“늦었군. 너무 늦었어.”
광장의 중앙 강당에서 켈리던이 클라우드 일행을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그대들이 늦은 탓에 인간의 왕은 죽고 말았다네.”
켈리던이 자신의 옆에 세워진 창대를 검지로 툭툭 건드렸다. 창대가 떨리며 창끝에 걸어둔 황제의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머지도… 딱히 성한 꼴은 아니지.”
창대의 뒤로 다섯 개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십자가에 공작들의 사지가 못 박혀있었다.
공작들의 처참한 꼴을 본 클라우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에 켈리던과 다른 로드들은 물론이고 시체들의 장기를 간식으로 먹고 있던 흡혈귀들이 긴장했다.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 일제히 덮쳐 손을 쓸 시간도 주지 않고 죽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는 흡혈귀들의 예상과는 달리 켈리던을 지나쳐 십자가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그와 똑같이 붉은 머리를 가진 중년의 사지에 박힌 못을 빼냈다.
못이 사라지자 중년의 몸이 앞으로 허물어졌다.
클라우드는 그를 받아낸 후 몸 상태를 살폈다.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일단 살아있었다. 클라우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프릴리테를 볼 면목이 없어질 뻔했어.’
클라우드는 페르디아크 공작을 업고 오필리아의 앞에 눕혔다.
“프릴리테의 아버지야. 치료해줘.”
“네? 아, 네!”
클라우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했던 오필리아가 정신을 차렸다. 정갈히 모은 그녀의 두 손에서 하얀빛이 피어 나오자 페르디아크 공작의 상처가 천천히 아물었다.
공작의 혈색이 안정을 찾아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클라우드는 그에게서 눈길을 떼어냈다.
“이게 뭐 하자는 거지?”
여느 때보다 훨씬 싸늘해진 켈리던의 표정.
“그대가 그 인간에게 한눈을 파는 동안 여는 그대를 몇 번이고 죽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사실에 크나큰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클라우드는 몸을 일으킨 뒤 광장을 세세하게 살폈다.
“또 한 번 한눈을 파는군. 죽고 싶은 건가?”
놀랍게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꽤 많았다. 시체에 가려져서 적어 보였을 뿐, 적절한 치료를 받기만 한다면 대부분 살 수 있으리라.
“…잘 벼려진 검인 줄 알았건만 여느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쓰레기였군. 그냥 죽어라.”
판단을 마친 클라우드는 그제야 켈리던에게 시선을 주었다.
“죽일 능력은 되고?”
클라우드의 비아냥에 켈리던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천사조차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물며 그들의 노예인 용사 따위야…”
“천사?”
그게 갑자기 왜 나와?
고개를 갸웃거린 클라우드가 시체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소각되어 새까맣게 타버린 날개 달린 시체를 발견하곤 한숨 쉬었다.
“부업 뛰러 온 말단 천사를 잡아놓고 기뻐하다니… 뱀파이어 로드의 이름도 땅에 떨어졌군.”
흡혈귀들의 웃음이 멈췄다. 그들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클라우드를 노려보았다. 곁가지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살기를 느낀 오필리아와 카타리나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식은땀이 흘러내리며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었다.
허나 정작 살기를 받는 당사자인 클라우드는 아무런 내색도 없었다.
켈리던이 여전히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말단? 천사의 위계를 네가 어떻게 구분하는 거지?”
“진짜배기 천사였더라면 이곳 흡혈귀의 반절은 사라졌을 테니까.”
“웃기는 소리. 아무리 신의 총애를 받는 천사라 해도 고작 셋이서 그런 일을 벌이는 것이 가능할 리 없다.”
“믿든말든 네 마음이야. 또, 그것들이 진짜 천사였다고 해도 상관없어.”
클라우드는 성검을 뽑았다. 혹사당할 대로 당한 성검은 바스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영롱한 빛을 내뿜었다. 그는 성검을 바닥에 꽂았다.
“나도 더는 숨길 생각이 없으니까.”
바닥에 꽂힌 성검을 중심으로 백색의 광휘가 휘몰아쳤다.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백색의 광휘.
켈리던을 비롯한 로드들은 광휘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에 피부가 저릿저릿했다.
흡혈귀의 정점인 그들이 그럴 정도니 다른 흡혈귀들은 오죽할까.
격이 낮은 흡혈귀일수록 클라우드가 내뿜는 신성력에 고통스러워했다.
‘한심한 것들.’
보다 못한 로드들이 나서려던 순간 클라우드는 돌연 신성력을 거둬들였다. 로드들은 그의 행동을 의아해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무슨 생각이지?’
아무리 검은 태양의 비호를 받는 흡혈귀들이라지만, 방금 그가 내뿜은 신성력은 무시할 수 있는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신성력을 두른 채로 싸운다면 로드들도 고전을 면치 못할 터였다.
그런 신성력을 클라우드는 거둬들였다.
…설마 오랫동안은 사용하지 못하는 건가?
흡혈귀들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었기에 그 누구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동안 클라우드는 그의 피부에 새겨진 문양의 힘을 사용했다.
(광폭화)
명중률 50% 감소
모든 스탯 100% 증가.
광폭화가 진행되며 시야가 흐릿해지는 한편 몸에는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다.
일시적으로 힘 2배 상승
방어구 관통 50%
광폭화의 영향으로 세밀해진 근섬유가 비대해졌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힘이 강해진 것이 느껴졌다. 지금이라면 손에 잡히는 게 무엇이든 간에 으스러트릴 수 있다는 전능감이 들 정도. 그러나 클라우드는 전능감에 취하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의 힘으로 전능감에 취해버릴 만큼 클라우드는 나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오필리아, 결계를 쳐.”
“네!”
다행히 이번에는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오필리아가 곧바로 두 손을 고이 모아 기도문을 외웠다.
그녀의 손에서 시작된 성스러운 빛이 사특한 것을 차단하는 결계로 변이되었다.
결계를 살핀 클라우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다.
“너희 둘은 거기서 나오지 마.”
“뭐? 설마 여기 있는 흡혈귀들을 너 혼자 상대하겠다고?”
“응.”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반발한 것은 카타리나였다.
그녀는 광장을 차지한 흡혈귀 떼거리가 두려웠지만 그렇다고 클라우드를 저 위험한 놈들과 홀로 싸우게 두고 싶지 않았다.
“싸워도 같이 싸워!”
카타리나가 두 곡도를 뽑으며 결계에서 나오려고 했다. 클라우드가 오필리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말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