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ection RAW novel - chapter 140
여자친구?
“여자친구 누구? 신분 확인은 확실히 한 거야?”
“확인은 한 것···.”
징징- 징징-
“잠시만요. 병원이에요. 네, 차동석입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대화 중에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왜? 무슨 일이야?”
보고하기도 전, 동석의 표정에서 알 수 있다, 급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선배님, 나 검사님 깨어나셨답니다!”
노건형 (4)
「땅속에 묻히기 대략 한 시간 반쯤 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묵현로 101.
꺼림칙한 공간이었다.
‘ㄷ’자 모양으로 세워진 건물 세 채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달랐다. 한국에서는 처음 보는 양식.
그렇다고 다른 나라에도 이러한 형체로 지어진 건물이 있을까?
유럽 어딘가에 있을까?
아니, 판타지 영화에나 어울릴법하다.
앞쪽으로는 수만 줄기의 담쟁이덩굴이 벽을 타고 올랐고, 뒤로는 빽빽하게 들어선 소나무들이 창문 앞까지 보초를 섰다.
가까이서 드론을 띄우지 않는 이상, 고도 3,000~4,000m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겠다.
누가 설계했을까? 아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무슨 목적으로 설계한 것이냐고 묻는 게 현명할 듯싶다.
검정 양복을 입은 놈들을 따라 그중 가운데 있는 본채로 들어간 주연은 또 한 번 살갗이 오그라들었다.
오래된 나무 냄새, 퀴퀴한 곰팡내, 하수구 냄새, 숯내, 그리고 방부제 냄새.
지독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콧속 신경들이 쉽게 적응할 수 없는 향들이 가득했다.
박제된 동물들, 기이한 그림들, 어울리지 않는 모형들까지.
아늑해 보이는 공간은 절대 아니다.
도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턱밑까지 차올랐을 때쯤 그들은 무겁게 생긴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똑똑.
“회장님, 손님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해.”
끼이익-
안내에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간 주연은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됐다. 묵현로 입구에서부터 내뿜어져 나오는 습하고 음산한 기운들은 초대받지 않은 이가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만든 장치라는 것을.
조필건이 살다시피 하는 서재는 지금까지 지나쳐온 공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어서 오시게.”
주연을 남겨둔 채 ‘검정 양복들’이 문을 닫고 나가자, 책상 뒤에 앉아있던 동그란 안경을 낀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붉은색 카디건이 그의 하얀 피부를 더 돋보이게 한다.
“사진보다는 훨씬 남자답게 생겼구먼.”
이 순간을 얼마나 머릿속으로 되뇄던가.
놈의 죄의식 속을 들여다보려면,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이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앞뒤로 따라붙었던 ‘검정 양복들’은 밖에서 대기 중이었고, 서재 안에는 단둘뿐. 만약 그가 악수를 거절하면, 달려들어 무력을 행사해서라도 잡을 생각이다.
좀 더 자연스러운 방법은 없냐고?
이런 괴기스러운 건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런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검사가 이 시각에, 그것도 이런 산속에 꼭꼭 숨어있는 용의자를 혼자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다.
주연은 조필건이 좀 더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래야 혹시라도 악수를 거절했을 때, 달려들어···어라?
“나는 조필건이야. 그쪽이 나주연 검사지?”
괜한 걱정이었나?
놈이 주름진 새하얀 손을 먼저 내밀었다.
-*-
어? 이상하다.
분명 방금 놈의 손을 잡았는데···,
여전히 그 괴기한 건물의 서재 안에 있다.
“누구야, 너?”
다만 앞에 서 있는 자는 노인이 아닌 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이다.
“그런 넌 누구야?”
“나는 노건형.”
“노건형?”
“응.”
“조필건은 어디 가고 네가 여기 있어?”
“필건이를 알아?”
“아냐고? 걔가 나를 여기로 초대했는데.”
“필건이가? 진짜?”
소년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초리로 주연을 한번 훑고는 말했다.
“필건이는 내 쌍둥이 동생이야.”
“조필건이 네 쌍둥이 동생이라고?”
“응.”
“근데 왜 성이 달라?”
“왜 성이 같아야 하는데?”
“···.”
비상식적인 대꾸였지만, 신기하게도 꼬마의 얼굴에서 좀 전 현실에서 본 노인의 얼굴이 얼핏 보인다.
“너 거짓말이구나. 필건이가 너를 여기로 초대했다는 말.”
“응, 거짓말이야. 나는 필건이를 잡으러 왔어.”
“왜?”
“나쁜 짓을 해서.”
소년은 주연을 노려봤다.
“흥, 못 잡을걸.”
“이 안에 있는 거 알고 왔는데.”
“그래도 넌 못 잡을걸.”
“왜지?”
“필건이는 일반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까.”
보이지 않는다고?
“투명인간이라도 된다는 거야?”
“투명인간? 후훗, 그거 좋네. 그래, 맞아. 필건이는 투명인간이야. 아무도 볼 수 없어.”
투명인간이 아니다.
“그런데 이걸 어쩌지?”
“왜?”
“이 아저씨는 특별한 눈을 가지고 있거든.”
“특별한 눈? 그게 뭔데?”
처음부터 이 녀석이 만들어낸 상상 속 인물이니까.
“나쁜 건 뭐든지 다 꿰뚫어 보는 눈.”
주연이 소년의 손을 잡자, 소년을 제외한 모든 것이 작은 픽셀들로 분리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주연은,
「노건형 시네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원하시는 영화를 선택해주십시오.」
실체의 죄의식 안으로 들어갔다.」
—*—
인아와 동석이 용인경찰서에서 달려왔을 때, 주연은 이미 일반병동 특실로 옮겨진 상태였다.
방 밖으로 들려오는 여자친구의 울먹이는 소리에 잠시 머뭇거렸으나, 기다려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인아는 노크를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 거야? 형사들은 아무 말도 안 해주고. 왜 여수에 있어야 할 사람이 용인에 있는 거냐고? 그것도 중환자실에···.”
똑똑똑.
“네.”
대답을 들은 인아와 동석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고, 침대 옆에 서 있는 은채와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누구···시죠?”
“주 형사님.”
인아가 대답하기 전, 주연이 상체를 일으키면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오빠, 무리하면 안 된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괜찮아. 나 구해주신 분들이야.”
구해주었다는 주연의 말에 은채는 다시 한번 인아와 동석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인아와 동석 역시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저희 일을 했을 뿐입니다.”
“차 형사님이 저를 업고 내려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냥 업고 내려온 게 아니라 아기처럼, 아주 소중하게 안고 내려왔다고 하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한 게 아닌가 하는 그런···하하하.”
이상하게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자 동석이 농담을 던졌다.
“덕분에 제가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저보다 선배님이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저 선배님이 지시에 따라서 했을 뿐입니다. 하하하.”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동석의 진실에 순간 두 여자는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걸 아는 건 두 여자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주 형사님.”
“깨어나셔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제가 거기 있는 것을 어떻게 아시고 오신 건가요? 중환자실을 지키고 계셨던 형사분에게 잠깐 들은 건, 차 형사님이 거기서 잠복 중이셨다고···.”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 동석이 왜 그 시각에 그곳에 있었는지를 말하려면 둘이 인천에 이건웅을 감시하다 차기진을 만난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이건웅을 감시한 이유를 설명하려면 성남의 실내낚시터를 찾은 것을 설명해야 하고······.
긴 이야기가 될 거다.
“그건 나중에 설명드리겠습니다. 그것보다도 검사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시각에 그곳을 찾으신 건가요? 그것도 혼자.”
인아의 질문에 은채 역시 주연을 바라봤다. 아까부터 궁금했던 질문이다.
“용의자를 만나러 갔죠.”
너무나 간략한 대답에 황당한 것은 은채만이 아니었다. 더 자세한 답을 기대했던 두 여자의 미간에 같은 모양의 주름이 잡힌다.
“검사님, 조필건이 용인서에 출두했습니다.”
반면, 동석의 관심사는 완전히 다른 곳에 있었다.
“네?”
“예. 근데 선배님이나 저나 그놈이···.”
툭.
비록 주연의 여자친구이기는 하나, 이은채는 수사와 관련 없는 일반인이었다. 그런 그녀 앞에서 중요한 정보를 떠벌리려는 후배의 옆구리를 인아가 툭 치자, 주연은 곧바로 상황을 인지했다.
“은채야, 미안한데, 나 대신 가서 퇴원 수속 좀 밟아줄래?”
“퇴원?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 깨어난 지 한 시간도 안 됐어.”
“괜찮아. 그리고 어차피 서울 병원으로 옮기려고 했잖아.”
그랬다. 주연이 깨어나기 전, 그녀는 형사들과 그것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환자가 경찰의 경호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도 했고, 가족도 아닌 여자친구의 요청으로 퇴원시킬 수 없다는 것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제 환자가 깨어났으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만, 이은채는 지금 병실을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도 알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그러나, 고집을 부려도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을 것을 그녀도 잘 알았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마음 한구석 서운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알았어요. 대신 서울 병원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같이 갈 거예요.”
아이 같은 발언이었지만, 두 번이나 바람을 맞았던 그녀로서는 꼭 약속받고 싶은 일이었다. 그녀는 주연의 확답을 받기 전까지 나갈 생각이 없었고, 결국 알았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자리를 비워주었다.
“오오- 검사님, 능력자. 여자친구분이 완전 미인이십니다.”
역시나 관심사가 다른 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