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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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랑극단
떡갈나무 숲의 송로버섯은 결국 며칠 가지 못하고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서 아쉽게도 채집 전문가는 달성하지 못했다. 예상보다 필요한 경험치가 더 많았던 탓에 중간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춰버린 것이다. 하기야 채집을 시작한지 겨우 며칠 되지도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정도만으로도 감지덕지긴 해도, 다시 보통의 채집물로 조금씩 올릴 생각을 하니 역시 좀 암담한 기분이 들어서 채집은 며칠간 쉬고 가공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 만든거에요?”
“예, 뭐… 대단한 건 아닙니다.”
바퀴를 만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간단한 건 통나무의 단면을 둥글게 가공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세 장의 널판지를 겹쳐 만드는 방식이다. 이런 식의 바퀴는 만들기는 쉽지만 그만큼 마모나 파손이 쉽게 일어나고, 부서졌을 때도 수리가 아니라 통째로 교환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실제 사용되는 바퀴는 축이 살로 연결되고 테가 둘러진 형태인데 이렇게 형태가 복잡해지면 당연히 제작 난이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형진 또한 손수레의 골격을 만드는 데는 단 이틀이면 충분했지만, 바퀴를 만드는 데는 그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아직 가공 숙련도가 부족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만큼 제작이 어렵다는 의미이다.
물론 그렇다고 골격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도 아니다. 동물이 끄는 수레가 아니라 사람이 끄는 수레이므로 무게중심도 고려해야 하고 무게가 가벼우면서도 튼튼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문제도 있었다.
사람들이 그런 부분까지 전부 세세하게 알아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고작 며칠 산에 들락거리고 뭔가 뚝딱거린다 싶더니 제법 그럴 듯한 수레를 만들어 내는 형진의 모습에는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솜씨가 제법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정말 대단한데.”
“탐이 나. 역시 손주 사위로 들여야겠어.”
“에끼. 자네 손주 이제 겨우 다섯 살이잖아.”
“십년 정도야 후딱이지.”
“그 십년 동안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고? 말 같은 소리를 해.”
확실히 그건 곤란하다. 십년간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니. 손가락은 무슨 죄인데.
손수레가 완성됨과 동시에 숯가마 역시 완성되어서 숯을 굽는 일에 들어갔다. 또한 아란에게 배우기 시작한 은신과 잠행 스킬 역시 마침내 레벨 1을 달성하여 온전히 자신의 스킬이 되었다.
“레벨 1단계는 이제 막 습득한 상태라 별로 효용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못해도 10레벨은 되어야 하고, 제가 진씨에게 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전수하려면 30레벨은 필요해요.”
“만렙… 그러니까 최고 레벨은 얼마나 됩니까.”
“일반적인 스킬은 50레벨 정도가 최고라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은신이나 잠행 스킬 하나만 파도 50레벨을 달성하는 건 쉽지 않을 거에요. 엘리시온으로 가신 전임 지부장님이 은신과 잠행을 50레벨까지 익히셨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사실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아하…”
아마도 거의 손재주 만렙 달성하는 수준의 난이도 또는 그 이상으로 생각하면 맞을 듯 하다.
“아란씨는 어느 정도인가요?”
“은신은 41레벨이고, 잠행은 43레벨이에요. 아직 멀었죠.”
만렙이 50레벨인 게임에서 40레벨과 1레벨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나 다름없다. 물론 레벨당 경험치 구간 같은 것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아란과 어느 정도 격차가 있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수치다.
“와. 대단하시네요. 아직 젊으신데 벌써 그 정도라니.”
“별 말씀을요.”
어째 대단하다는 말보다 아직 젊다는 말에 더 기뻐하는 모양새지만 어느 쪽에 반응하든 그녀가 나이에 비해 훌륭한 실력을 지녔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일단 은신과 잠행이 10레벨이 되면 다른 스킬도 알려줄게요. 지금처럼만 노력하면 금새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거에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점심 식사를 건네받으면서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문득 마을 입구쪽이 소란스러운 느낌이다. 아란은 잠시 발돋움을 하며 마을 입구 쪽을 살피더니 깜빡했었다는 듯이 손바닥을 마주치며 말했다.
“아, 벌써 그럴 때가 됐네. 진씨, 그릇은 평소처럼 부탁드려요.”
“네.”
아란은 형진의 대답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급히 집을 뛰쳐나가 마을 입구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전에 없이 급한 모습을 보이는 아란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형진은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을 머리에 떠올렸다.
혹시 그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남편이 돌아온 건가.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궁금증이 일었다. 도대체 저런 매력적인 부인을 맞이한 행운아가 누군가 하는 순수한 궁금증 말이다.
쟁반을 대충 집안에 들여놓은 형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마을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꺄아! 아란! 너무 보고 싶었어!”
“꺄아! 미나! 나도 보고 싶었어!”
별로 관심이 없는 척 어슬렁거리며 걷던 형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아란이 마치 소녀처럼 누군가를 껴안고 폴짝폴짝 뛰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모습이었다. 눈웃음이 헤프긴 해도 보면 볼수록 완숙한 성인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온 몸으로 피로하던 그녀가 어린 아이처럼 폴짝폴짝 뛰며 누군가를 반기는 모습에 형진은 조금 당황해 버렸다.
“올해도 봄까지 있을 거지?”
“당연하지. 그러려고 온 건데.”
“우리 집으로 가자. 따끈한 스튜 끓여줄게. 아직 점심 전이지?”
“물론. 아란이 만들어주는 음식 먹으려고 어제 저녁부터 굶었는걸.”
“정말?”
“정말!”
혹시 남자인가 하고 살펴봤지만, 아란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대상은 옅은 갈색의 단발 머리를 한 날렵한 체구의 여성이었다. 부드럽고 포동포동한 느낌의 아란과는 달리, 건강한 라틴계의 이미지를 가진 여성이다.
“마차부터 뒤쪽 공터로 옮기고 바로 천막부터 쳐! 마을 분들 피해 안 가게 조심하고!”
“네! 단장!”
헤에, 단장인가. 아란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데 우락부락한 사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는 건 좀 멋있어 보인다.
“아, 진씨. 인사하세요. 이쪽은 내 친구인 미나에요.”
단장이라는 여인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오던 아란은 중간에 멀뚱히 서있는 형진을 보자 바로 소개를 시켜 주었다.
“진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미나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갈색 머리의 여인은 아란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호? 이 멀쑥한 총각은 누구야? 나 없는 사이에 애인이라도 생긴 거야?”
“얘는. 아니야, 그런 거.”
“정말?”
“정말이라니까. 자꾸 헛소리하면 스튜 안 준다.”
“헉! 치사하게 먹을 거 가지고 그러기야?”
다른 건 몰라도 확실히 허물없는 사이인 건 맞는 모양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 사귄. 이를테면 중학교나 고등학교 동창 수준은 되는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오늘은 자세한 얘기를 듣기 어려울 것 같아서 점심을 먹은 뒤 바로 뒷산에 만들어둔 숯가마로 향했다.
숯은 크게 검탄과 백탄으로 구분되는데,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숯은 검탄으로서 순간 화력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백탄은 좀 더 까다로운 제작과정을 거치는데, 냄새가 거의 없고 화력이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 장점이다.
임무에서 지정한 숯이 검탄인지 백탄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백탄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면 그러한 내용이 주의사항에 별도로 기재가 되었을 테니 문제는 없을 듯 싶다.
막아두었던 구멍을 트자 불냄새가 확하고 전해진다. 불을 끈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아직 불기운이 남은 모양이다. 입과 코를 천으로 막은 다음 안으로 들어가서 숯을 꺼내 밖으로 내놓는다. 그리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끈으로 묶어 한 묶음씩 손수레에 싣자 가공 경험치가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가공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가공 숙련가’를 달성했습니다!] [가공 경험치가 상승하였…후후후, 이로써 가공도 숙련 달성이다. 송로버섯 같은 영약급의 무언가를 거치지 않고 오로지 노력만으로 달성한 것이기에 더욱 값진 결과다.
콧노래를 부르며 규격에 맞춰 자른 숯을 인벤토리에 담자 며칠을 끌었던 길었던 임무도 마침내 달성되었다. 역시 동화 20개짜리 임무.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이 확실히 차이가 난다.
“대단한데? 설마 전직 숯쟁이?”
“으앗! 깜짝이야!”
숯을 옮겨 실으려다가 누군가 손수레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그만 숯을 떨어뜨릴 뻔 했다.
“반응이 색다른데. 쿡쿡. 데리고 노는 재미가 있겠어.”
바라보니 앞서 아란과 좋다고 깔깔거리며 집으로 들어갔던 바로 그 미나라는 여자다.
“그게 무슨…”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소개를 안했네. 난 미나라고 해. 이름은 알지? 아란과 마찬가지로 네 선배야. 잘 부탁해. 신입군.”
문득 떠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른 척 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
“선배… 라뇨?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통.”
하지만 미나는 그런 능청스러운 형진의 대답을 듣자 깔깔거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순진한 줄 알았더니 능청도 제법이네. 하긴 말로 하기 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네. 잘 봐둬. 신입군.”
미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바지를 쑥 내리고는 몸을 돌려 엉덩이를 드러내 보인다.
“…”
그곳에 새겨져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집행자의 낙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자에게 다짜고짜 엉덩이를 드러내 보이다니. 뭔가 만만치 않은 성격인 것 같다.
“날 끌어들인 놈이 좀 변태였거든. 그래서 보통 손에 찍는 낙인을 이런 데다 찍어 놨지. 어때. 이제는 알겠지?”
“어, 음… 네, 알겠습니다.”
이 여자한테 스킬을 배울 사람은 좀 행복할지도.
당황해서 얼른 고개를 돌리려다가 아란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꾹 눌러 참았다. 미나는 그런 형진을 보며 싱긋 웃더니 다시 바지를 원래대로 갖춰 입었다.
“제법이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들어온지 얼마 안 되었다고 들었는데, 아란이 잘 가르쳐 줬나봐?”
“네, 아란씨에게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미나는 조금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형진을 향해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많은 거라… 이런 저런 요런 것도?”
“무슨… 말씀이신지.”
무슨 뜻인지는 바로 짐작이 되었지만, 다시 모르는 척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미나는 형진의 대답에는 처음부터 흥미가 없다는 식으로 킁킁거리며 잠시 냄새를 맡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흠… 거짓말은 아닌가 보네. 딱히 냄새가 배인 것 같지도 않고.”
“냄새요?”
“함께 침대를 쓰는 남녀는 서로의 냄새가 배기 마련이거든.”
“…”
너무 적나라한 말에 차마 뭐라도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만 벙긋거리자, 미나는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미안. 초면에 너무 무례했지?”
“…”
“단지… 그 애 입에서 남자 얘기가 나온 게 너무 오랜 만이라 좀 흥미가 생겼다고나 할까. 그럼 하던 일 마저 해. 신입군.”
자기 할 말만 하고 그렇게 몸을 돌리는 미나의 모습을 보던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불러세웠다.
“저, 죄송하지만 하나만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혹시… 아란씨의 남편 분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궁금해?”
“네.”
“알면 충격 먹을 텐데?”
“…”
“그래도 궁금하면, 이따 밤에 휘파람을 불어. 길게 한 번, 짧게 두 번. 기다릴게.”
미나는 그런 말을 남기고는 이내 은신 스킬을 펼쳐 형진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