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27
327====================
69. 대격변
그렇게 멍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승희의 모습에 잠시 쓴웃음을 짓고 있던 수빈은 잠시 뒤 다시 꽃의 권능을 걸어 잠궜다. 승희는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있었는지 그제서야 헉헉 거리며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뭐, 뭐야… 방금. 응?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괜찮아?”
“언니. 비밀이란 게 이거였어?”
“응.”
승희는 몽롱한 눈으로 수빈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대단해… 나 조금만 더 그대로 있었으면 언니한테 사랑한다고 말했을지도 몰라.”
“하하… 농담도.”
수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꽃의 권능을 걸어 잠그는 이 기능이 의외의 부작용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것은 상당히 큰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능력인데, 이런 식으로 계속 그 효과가 축적되었다가 그렇게 모인 효과가 한번에 폭발하는 식이라면 나중에는 아예 사용할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될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수빈은 아무래도 바로 이 사실을 여신과 진에게 알리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시만 있어봐. 아무래도 이건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
“뭐가?”
“예상한 것보다 효과가 더 큰 것 같아서. 잠시만 기다려 줄래?”
“응. 알았어.”
승희가 수빈에게 말했던 그건 정말이었다. 아니, 간접적으로라도 그런 욕망이 내면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터져 나와 이 말을 하도록 만든 것인지도 몰랐다. 때문에 승희는 잠시 누군가와 얘기를 하겠다며 등을 돌리는 그녀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방금 그건 도대체 뭐였을까. 새로운 무언가로 전직이라도 한 걸까. 하지만 이렇게 유저의 감정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클래스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아니, 설사 히든 클래스 같은 걸로 존재하더라도, 이건 그 자체로 커다란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최면 같은 건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정신 조작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요?]형진으로서도 수빈이 급하게 전해온 내용은 예상 외의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호구신의 사제들에게 매료의 능력을 끄고 켤 수 있도록 바꾼 것이 꽤 되었지만, 그 뒤로 이런 식의 부작용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짝퉁과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얘긴가.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제가 확인을 해보고 바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공포와 죽음이라면 이런 문제점을 발견해 냈을 경우 바로 보상을 하사하셨을 것이다. 실제로도 형진은 그런 문제를 발견한 뒤 보상을 받아본 적이 있다. 하기야 이런 건 제때 제때 찾아내어 고쳐야 나중에 뒤탈이 생기지 않게 마련. 그리고 그런 문제점을 가장 빠르게 보고 받는 방법은 역시 적절한 보상이다.
과연. 이런 이유에서였던가.
[수빈님 덕분에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신님을 대신해 적절한 보상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아니, 저기… 저는 딱히 그런 걸 바라고…]하지만 이미 형진은 귓말을 끊은 뒤였다. 수빈은 보상이라는 말에 얼떨떨해지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일을 신고한 것은 엄연히 자신이 나중에 겪을 지도 모르는 문제이기 때문이지 보상을 바라고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어쩐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계속 받기만 해서 뭔가 미안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이렇게라도 무언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역시 기쁘다.
그렇게 형진과의 대화를 마친 수빈은 조금은 기꺼운 마음으로 다시 승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좀 괜찮아?”
“응… 좀 놀라긴 했지만. 그런데 아까 그건 뭐였어?”
“권능.”
승희는 잠시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지금… 뭐라고?”
하지만 수빈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이렇게 덧붙였다.
“여신님이 내려주신 권능. 좀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그게 사실이야.”
“…”
뭐랄까. 어쩐지 현실감이 없는 말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그 말이 어쩐지 납득이 되어버린다. 그런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고서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 하하…”
그래서 그렇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웃는 게 맞나 싶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는데, 그런 승희에게 수빈이 다시 말했다.
“참고로 지금 내가 보여준 이 능력은 현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
그 말에 승희는 결국 입으로 소리를 내는 것조차도 멈추어 버리고 말았다.
말도 안 된다. 방금 그 능력을 현실에서도 쓸 수 있다고? 게임 안에서도 정말 자신이 겪은 것인지 의심케 되는 그 말도 안 되는 능력이, 현실에서도 통용이 된다고?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단 말인가.
하지만 수빈은 그렇게 혼란에 빠져 버린 승희를 바라보며 또 이렇게 말했다.
“이 게임 안에는 신이 있어. 내가 이런 능력을 얻게 된 건 바로 그래서야.”
이제 승희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언니.”
“응.”
“이런 걸… 나한테 말하는 이유가 뭐야?”
설마 전도 같은 걸 하려고 하는 건가. 어쩐지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싶긴 해도, 일반인으로서 승희가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인식을 고려해 봤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수빈의 의도는 그 정도가 고작이었다.
수빈은 그런 승희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느닷없이 이런 말을 하면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것보다는… 네 병 때문이야.”
승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천식?”
“응. 내가 섬기는 분의 능력은 아니지만, 다른 분들 중에 사람의 병을 낫게 하는 능력을 지닌 분이 있어. 실제로 다리 부상이 말끔하게 나았다는 분도 있고, 나도 편두통이 나아 버렸어.”
“…”
사실 신녀로서 유아가 지닌 능력은 기적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수빈은 아직 그런 것 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하는 것이 고작인 것이다.
“딱히 너에게 나처럼 되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야. 그냥 속는 셈 치고, 그 분에게 회복을 한 번만 받아봐. 아무 일 없다면, 그냥 헛소리를 들은 거라 생각하면 되고, 나으면… 좋은 거잖아?”
“뭔가 대가가 필요한 건 아니고?”
흔히 이런 얘기에는 대부분 자신의 무언가를 대가로 내놓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남은 수명이 될 수도 있고, 목소리가 될 수도 있고, 외모나 시력이나 혹은 가족일 수도 있다. 승희는 갑자기 이런 비현실적인 일이 닥치자 그냥 옛날 이야기나 소설 같은 곳에서 언급되는 그런 대가들을 떠올렸다.
“글쎄. 나도 그건 몰라. 다만…”
“다만?”
“적어도 내 경우엔, 지금까지는 받기만 했다는 점이랄까.”
“그 권능?”
“그것도 있고… 잠깐만 이쪽으로 와봐.”
“응.”
수빈은 승희를 건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 다음, 자신이 받았던 부스터 액세서리와 도핑용 음식을 테이블에 늘어 놓았다.
딱 봐도 비싼거란 느낌이 드는 액세서리들이 풀세트로 놓여진다. 그것만이 아니다. 모습부터 시작해서 향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완벽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는 듯한 디저트 메뉴들이 테이블을 가득 메운다.
“와아아…”
놀라서 감탄성을 토하는 승희를 향해 수빈이 넌지시 권한다.
“직접 확인해 봐.”
“…”
조심스럽게 액세서리를 집어 들고 그 상세 정보를 확인한다. 하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탄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집중력부터 시작해서, 생활러들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장만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희귀급의 고강 부스터 액세서리들이 풀 세트로 놓여있음을 직접 확인하고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이, 이거… 전부 받은 거야?”
“응. 음식도 한번 먹어봐.”
“…”
승희는 테이블 위에 놓여진 카나페 하나를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
그리고 그 순간, 승희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맛의 폭발이 입안에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버프도 확인해 보고.”
“헉!”
꿈결을 헤매는 것 같은 기분으로 음식 맛을 음미하던 승희는 수빈의 말대로 버프를 확인해 보고는 다시 깜짝 놀랐다.
다섯 개다. 정말로 다섯 개나 되는 버프 아이콘이 떠 있었다. 그녀가 일전에 말한대로, 정말로 버프가 다섯 개나 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하지만 수빈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게 전부가 아니야.”
“또 있어?”
“응.”
수빈은 승희를 데리고 이번에는 뒤뜰로 향했다. 그리고 부스터 아이템을 착용한 다음, 그곳에서 자신이 배운 이동기를 선보였다.
“…”
갑자기 수빈이 뒤뜰에서 달리고 번쩍 번쩍 순간 이동 같은 기술을 선보이자 승희는 뭘 보여주려고 이러는 건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딱 봐도 꽤 고급 스킬인 것 같지만, 이 게임 안에서라면 사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빈은 그렇게 뒤뜰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승희에게 다가오더니, 다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스킬들, 현실에서도 쓸 수 있어.”
“뭐?”
순간 승희는 잠시 머리 속이 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게임 안에서나 통용될 법한 저런 스킬들을 현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되다니. 그거 완전히 수퍼 히어로가 되어 버린다는 얘기 아닌가!
“말도 안 돼!”
승희가 그렇게 소리를 빽 지르자, 수빈은 혹시 못 미더워서 그러나 싶은 마음에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하고자 했다.
“정말이야. 어제 밤에 편의점을 다녀 오는데…”
하지만 승희는 그런 수빈에게 다가와 어깨를 꽉 움켜 잡더니 열렬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 나도 여신님 믿을래! 어딨어? 어디 계셔? 소개 시켜줘! 나도 언니처럼 되고 싶어!”
“…”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지금까지 그렇게 열심히 설명해도 어쩐지 의심을 버리지 못하는 표정이더니, 갑자기 이렇게 돌변해버렸다.
수빈은 얼떨떨한 기분이 되어 자신의 어깨를 탈탈탈 흔들어 대는 승희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수빈이 모르는 승희의 비밀 하나. 그건 바로 승희가 수퍼 히어로물의 광적인 팬이라는 사실이었다.
향기까지야 그런가보다 했다.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반쯤 넘어온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녀가 확 넘어가 버린 것은 바로 이동기를 현실에서도 쓸 수 있다는 대목이다.
승희는 천식을 앓고 있다. 그런 그녀가 수퍼 히어로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손전등맨이나 퀵서비스맨 같은 스피드형 캐릭터다. 다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수퍼 히어로가 그녀의 이상형이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게임 안에서 요리사를 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그녀에게 있어 불을 직접 다루며 무언가를 굽고 튀기는 식의 요리를 하는 것 또한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런데 지금 이순간 그녀에게 자신이 동경하던 그런 수퍼 히어로가 될 기회가 도래했다. 그러니 어찌 광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 진정해.”
“진정 못해. 이런 건 진작 말해줘야지!”
“하하하…”
수빈은 승희에게 어깨를 잡힌 채 탈탈 털리면서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그냥 처음에 이동기부터 보여줄 걸 그랬나.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방금 전의 그걸 보고 반응이 확 바뀌었으니 역시 그것에 꽂혀 버린 모양이다.
아무튼 그렇게 또 한 명의 예비 추종자가 탄생하고 있을 때, 이름조차 없는 어느 섬에 또다른 신 하나가 상륙하고 있었다.
“콜록. 콜록. 후아아아아…”
물에 흠뻑 젖은 채 바다로부터 해변으로 터벅터벅 걸어 올라온 그 인물은 지친 나머지 그대로 털퍼덕 모래 위에 엎어지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흘 밤낮을 헤엄쳐서 바다를 건너왔으니 그 피로를 무슨 수로 견뎌내겠나.
“드디어… 도착했다. 하하…”
그 말 한 마디를 남기고 그 인물은 그대로 모래사장에 엎어진 채 기절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게 한참 동안 정신을 놓고 있어도, 아무도 그 인물에게 다가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이 조난자가 도착한 섬은 형진이 마을을 만든 곳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무인도였다. 그러니 아무도 조난자를 발견하지 못할 수밖에.
한참이나 지난 뒤에야 모래가 덕지덕지 붙은 모습으로 깨어난 조난자는 주위를 돌아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던 장소가 아닌 엉뚱한 곳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여기가 어디지?”
이 조난자의 이름은 비와 낭만. 불행히도 심각한 방향 인식 능력 상실 증후군, 통칭 방향치이다. 지금 상황으로 추측하자면, 이 조난자가 진이 있는 곳에 도착하는데는 아무래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작품 후기 ============================
플래시를 플래시라 쓰지 못하고,
퀵실버를 퀵실버라 쓰지 못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