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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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시험
이런.
아깝다. 피해가 좀 있긴 했어도 이대로 보스방 입구까지 몰아붙이면 지치지 않는 목각인형의 특성상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틀어막는 것이 가능했을 텐데.
목각인형으로 만든 진형은 몇 가지 약점이 있었다. 대부분의 방진이 그렇듯 측후방으로의 방향전환이나 대응이 취약하다는 점. 그리고 한정된 반응과 동작 밖에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예상외의 상황에 대한 반응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그것이다. 게다가 수가 많은 것 같아 보여도, 결국 형진이 운용할 수 있는 수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형지물을 활용한 방어가 아니라면 큰 효용을 보기 힘들다.
지원 사격을 통해 이런 단점들을 숨기고 보스방 입구를 틀어막아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 했던 형진의 계획은 이렇게 완성 직전에 붕괴되어 버리고 말았다. 대부분의 병법서에서 예비대의 중요성을 몇 번이고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래서인가보다.
정말 아깝다. 예산과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이대로 싸움을 끝내버릴 수도 있었는데.
유저들이 목각인형의 진형에 밀렸던 것처럼, 목각인형들도 한 번 진형이 무너지자 순식간에 우르르 파괴되기 시작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각종 스킬과 아이템으로 도배된 유저들의 공격력은 확실히 월등해서 진형이 흐트러진 목각인형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러다 전부 말아먹겠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던 형진은 남은 목각인형들을 거두어 들였다. 아무리 아틀리에에서 자기 복제하듯 찍어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엄연히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물건들이고, 걸치고 있는 방어구도 꽤 고급품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뭐야! +5 강인한 사교도의 완갑?”
“헐? 대박! 방금 그 인형들이 드랍한 거야?”
“맙소사! 어쩐지 칼이 잘 안 먹히더라니!”
쳇. 빠르게 회수한다고 하긴 했는데, 파괴되는 와중에 몇몇 파츠를 흘린 모양이다. 하기야 목각인형들을 투입할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긴 하지만. 주운 녀석은 완전 로또 맞은 기분이겠네. 할 수 없지. 그 정도는 각오하고 꺼내놓은 인형들이니까.
형진은 토글로 장비를 갈아입으면서 몰려드는 유저들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노릇인가 했더니, 환상 공격으로 나가떨어졌던 공격대의 대장이 관망하던 유저들을 규합해 움직였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타이밍을 파악하고 약점을 들이치다니, 제법 훌륭한 감각이 아닐 수 없다.
형진은 장비를 갖추자 곧장 다음 단계로 이행했다. 강화된 사교도의 화형 세트를 선보일 때가 비로소 찾아온 것이다.
“불꽃 디버프다! 준비! 준비!”
“어? 그런데… 어제와는 뭔가가 다르다?”
그럼. 다르고말고. 어제는 강화도 안 된 깡템을 그냥 착용했었고, 지금은 +10강에 세공까지 완벽하게 끝난 템이니 뭐가 달라도 다를 수밖에.
형진은 아우성치며 달려드는 유저들을 향해 훅 하고 다가서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불의 회오리가 만들어지며 유저들의 전열을 단숨에 무너뜨린다.
“우와아아악!”
“말도 안 돼!”
모처럼 목각인형들의 진형을 무너뜨리고 용기백배해서 달려들던 유저들은 말 그대로 폭풍처럼 퍼부어지는 불의 소용돌이를 견디지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불과 바람의 속성력, 그리고 추락 데미지까지 가해지는 통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일어난 그들은 이내 자신의 몸이 스킬 자원을 갉아 먹는 푸른 불꽃 형상의 디버프로 뒤덮여 있음을 깨달았다.
“실제로 보니 훨씬 더 무시무시하군.”
“마법진 설치는?”
“끝났습니다!”
어제 화염 디버프에 호되게 당했던 유저들 중 일부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던 와중에 마탑의 명예 회원증을 소지하고 있던 한 유저가 최근 오대 마탑 가운데 한 곳에서 어떤 커다란 연구 성과를 획득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곳에 도움을 청했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마법진이 바로 그 연구 성과로서, 오대 마탑 가운데 하나인 가면의 늪에서 마법 총서를 연구하면서 만들어낸 성과중 하나였다.
이것의 이름은 바로 증폭 부여 마법진. 일반적으로 일대일로만 효과가 제한된 각종 버프나 상태 해제 같은 마법 효과를 일대 다수로 증폭시켜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효과 하나는 확실하지만 문제도 있다. 적용되는 인원의 수가 많아질수록 필요로 하는 마력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점이다. 한명의 디버프를 해제하는데 필요한 마력의 양이 1이라고 하면, 두 명일 때는 3, 세 명일 때는 6, 네 명째는 10… 이런 식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n명의 디버프를 해제하는데 필요한 마력의 양이 n번째의 삼각수를 구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뜻이 된다. 말이 쉬워서 삼각수지, 100명만 되도 5050명분의 마력이 필요하게 되니 일반적으로는 쓰일 일이 없는 마법진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마탑에서도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식으로만 정리하여 발표한 것일 뿐 실제 사용은 염두에 두지 않았고, 그래서 명예 회원도 손쉽게 그 마법진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저들로서는 이것이야말로 하루 만에 찾아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디버프 대책이었다. 부족한 마력은 드물게 발견되는 마력석을 연금술와 보석 가공으로 손질해 보충하면 되는 일. 물론 이것은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 일이었지만, 한번 체계를 만들어 두면 이후에 업데이트될 것이라 예상되는 공성전 등에서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라 아낌없이 투자를 해버렸다.
지금은 디버프를 해제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정도지만, 이 마법진은 저주 해제뿐만 아니라 버프를 주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본래는 일대일로만 부여할 수 있는 몇몇 강력한 버프를 대규모로 부여하는 것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준비됐습니까?”
“네!”
“발동합니다!”
“하아압!”
마법진이 발동되자 그 중앙에 서있던 고위 사제가 화염 디버프를 없애기 위해 저주 해제를 실행했다. 그러나 푸른 불꽃에 뒤덮여 아우성치던 유저 수십명의 몸에서 거짓말처럼 디버프가 사라져 버린다.
“헐?”
이렇게 되니 놀란 건 형진 쪽이다. 설마 이런 식으로 디버프를 막아낼 대책을 하루 만에 찾아내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한 탓이다.
“맙소사.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니 입구 쪽에 설치된 마법진에서 고위 사제로 보이는 유저 하나가 사람들에 의해 들것에 실린 채 후송되는 모습이 보인다. 방금 전의 저주 해제로 체력이 고갈된 것이겠지만, 뒤이어 다른 사제가 마법진에 들어서는 것을 보니 대체할 인력은 얼마든지 있는 모양이다.
“어이가 없네.”
확실히 쪽수가 많으니 별 게 다 가능하다. 게다가 저 마법진은 또 뭔지. 저런 게 있었나. 나중에 저것도 확인을 해봐야겠다.
한번에 수십명 정도의 디버프를 해제하고 실려나가는 정도라면, 아직도 형진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형진의 경우엔 그냥 일반 공격만 가해도 계속 디버프가 걸리니까, 저런 식으로 소모적인 저주 해제를 감행해서는 결국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형진은 하루 만에 이런 식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거참.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군.”
형진은 감탄을 섞어 그렇게 말한 뒤, 공격을 멈추고 공중으로 떠오르며 누군가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대충 파악은 끝난 거 아닌가요?”
[어느 정도는. 하지만 이벤트는 계속 진행할 거다.]
“욕심도 많으셔라.”
[네가 남 말 할 처지냐.]
“그렇긴 하죠.”
형진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전신에서 거대한 검은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들은 마치 먹구름처럼 한데 뒤엉키더니 이내 검은 빛을 요사스럽게 뿜어내는 거대한 구미호의 형상을 갖추어 가기 시작한다.
[끝내려고?] “밑천이 슬슬 다 떨어져 가서 말이죠. 그렇다고 인스턴트 킬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하긴.]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유저들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흑요호의 형상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세상에…”
“설마… 저게 진짜 본체였던 건가.”
“지금까지의 일들이… 전부 서곡에 불과했다는 건가.”
“맙소사.”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유저들의 모습을 공중에서 느긋하게 즐기던 형진은 천천히 브레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홉 개의 꼬리가 크게 확 펼쳐진다. 각각의 꼬리로부터 영롱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것이 하나둘 모여 흑요호의 입가에 맺히기 시작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순간 유저들은 이것이 거대한 파괴력을 지닌 공격의 예비동작임을 인식했다.
“피, 피해!”
“비켜!”
원래 형진은 희망과 생명에게서 막대한 힘을 끌어다 쓸 수 있기 때문에 본래의 흑요호가 그런 것처럼 브레스 발사 전에 예비 동작을 취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거창하게 예비동작을 취하는 이유는 알아서 잘들 피하라는 식의 경고일 뿐이다.
“대충 장판 좀 깔아 주세요. 그래야 알아서 피할 테니.”
[장판?]
“피해 범위를 대충 지면에 표시하는 겁니다. 여기에 있으면 맞으니까 그곳을 벗어나라고 사전에 경고를 해주는 거죠.”
[참 쓸데없군.]
“실전에서야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곳은 거짓된 천국이지 않습니까.”
[그런가.]
공포와 죽음은 형진의 말대로 브레스의 피해 범위를 대략적으로 지형에 표시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순간 유저들은 뒤집어지고 말았다.
“우왁! 장판이다!”
“젠장… 이게 진짜 필살기였단 말인가.”
허겁지겁 피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지금 상황을 딜 타이밍으로 여기고 공격을 가해오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흑요호의 형상은 요지부동. 원래부터도 실체가 아닌 기운으로 만들어진 형상인데다, 지금은 보호와 균형이 권능을 발휘해 보호까지 하는 중이니 공격이 먹힐 리가 없다.
“망할. 무적판정인가.”
“그럼 쏘고 난 다음을 노려야 한다는 얘긴데.”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유저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형진은 마침내 브레스를 발동시켰다.
콰아아아아!
순간 거대한 빛이 마치 화산에서 터져나오는 거대한 용암의 폭발처럼 터져 나왔다. 허겁지겁 장판의 범위에서 벗어나던 유저들은 그 강렬한 빛의 폭발에 잠시 눈이 머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반사적으로 눈을 돌리거나 고개를 돌린 이들도 그와 같은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쏟아져 들어온 정보의 홍수로 인해 마비되어 버린 감각은 시각 만이 아니었다. 귀는 마치 갑자기 앰프에 연결한 스피커에서 큰 소리가 울려퍼지는 걸 들었을 때처럼 먹먹해졌고, 다른 감각들 역시 일순간에 불과했지만 마비되어 버렸다.
“큭…”
“무슨…”
그렇게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던 시력은 브레스의 발사가 끝나고 나서도 잠시 동안 회복되지 않다가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섬광탄이 지척에서 터진 것 같은 상황에 잠시 버벅대다가 어느 정도 시력이 돌아오자 눈물을 찔끔거리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
“…”
그리고, 경악했다.
자신들이 장판이라고 불렸던 표시가 깔려있던 지역을 포함해, 방금 쏘아져 나간 무언가의 경로 상에 위치하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 있었다.
“맙소사…”
도대체 오늘 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걸까. 하지만 앞서 했던 말들이 맙소사라면,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맙맙맙맙소사쯤 된다.
그곳에는 거대한 동굴이 만들어져 있었다. 빛의 폭발이 발사되었던 방향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거대한 동굴이 여전히 타닥타닥 튀기는 작은 불꽃들과 녹아내린 암석들의 잔해를 머금은 채 드러나 있었다.
“이게 말이 돼?”
지금까지 수많은 보스들의 광역기를 봐왔던 유저들이지만, 이렇게 맵 자체를 파괴하는 말도 안 되는 위력의 광역기는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저걸 정통으로 맞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칼에 맞아 죽나, 방금 같은 브레스에 맞아 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아마도 입고 있던 장비들은 찰나의 순간 모조리 녹아 없어질 것이다. 아무리 강대한 위력을 지닌 장비라도 저런 말도 안 되는 위력의 공격에는 버텨낼 재간이 없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넋이 나가 있던 유저들은 문득 허공에 떠있던 크고 검은 형태를 지닌 무언가가 자신들을 돌아보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에 있었다.
이 모든 현상을 만들어낸 무언가가, 지금 이 순간 붉은 안광을 뿜어내며 허공에서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두 편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