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70
470====================
104. 취임
어떻게 보면 요리 명장은 타나토스로 넘어간 이후로부터 삼아왔던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실질적으로 그가 강해지는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분야도 어찌 보면 요리다. 그런 분야이기에, 어찌 보면 생활러로서의 역할이나 마인드가 많이 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은연중에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로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런 명장의 자리를 넘어 단숨에 달인이라니. 분명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목표로 하고 있었던 단계를 넘어 단숨에 최상위의 등급으로 올라섰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솔직히 말해 왕위에 올랐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왕위는 처음부터 그가 무게를 두고 있던 직위가 아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그것 하나만큼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드디어 완성했어요!”
달인이 된 기념으로 아이들에게 요리를 만들어 먹일 준비를 하고 있던 형진에게 미엘이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겉모습은 딱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 같은 모습이지만, 이래봬도 일곱 아이의 어머니다.
“뭘?”
“뭐라뇨? 이거요, 이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형진에게 미엘은 살짝 삐친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더니 길쭉한 판때기 하나를 내민다. 바퀴 없는 스케이트 보드 같기도 하고, 손잡이 없는 킥보드 같기도 한, 어찌 보면 그냥 받침대 없는 다림질 판 같은 모습도 연상되는 그런 물건이다.
형진은 잠시 이게 뭔가 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그녀에게 연구를 맡겼던 물건 하나를 가까스로 떠올리고는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아하! 드디어 완성한 거야?”
“세상에. 잊고 있었던 거에요?”
“하하하… 그게…”
최근 이런 저런 일로 한참 바빴던 터라 그녀에게 공중 부양 킥보드의 연구를 맡겼던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쳇.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꼬리털이 빠질 정도로 열심히 연구를 했는데.”
토라진 표정으로 팩 고개를 돌리는 미엘의 모습에 형진은 피식 웃어 버렸다. 이 여우 같은 마누라가 정녕 내 마누라란 말이더냐.
“미안. 정말 미안해. 화 풀어. 응?”
“몰라요. 앗! 이거 놔요!”
“싫어. 안 놔줄거야.”
형진은 앙탈을 부리는 미엘을 공주님처럼 번쩍 안아 들고는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춰 주었다.
“우리 여왕님. 제발 노여움을 풀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너무 슬픈 나머지 엉엉 울어버릴지도 몰라요.”
“풋! 뭐에요. 그게.”
미엘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눈을 흘겼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좋아요. 그럼 벌로 오늘은 이렇게 계속 안고 다녀야 해요.”
“어이쿠. 감사하옵니다.”
그렇게 잠시 노닥거리던 두 사람은 이내 완성된 킥보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조작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요.”
순간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미엘의 꼬리 가운데 하나가 분신으로 모습을 변화시키더니 탁자에 놓여져 있던 킥보드를 들고는 무언가를 조작하고는 사뿐히 올라탔다.
“이런 식으로 올라타면…”
미엘의 분신이 킥보드 위에 올라타자 그녀의 발과 손, 그리고 머리에 은은한 빛이 어리며 띠 같은 것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오, 신기한데. 저게 뭐야?”
“각각의 띠들이 킥보드와 탑승자의 상대 위치를 계산하는 일종의 조종기 역할을 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머리의 띠는 킥보드의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을 조종해요. 이를테면 속도나 방향, 그리고 높이 같은 요소가 바로 그런 부분이죠.”
“그럼 손과 발의 띠는?”
“우선 발목의 띠는 사용자의 신체를 킥보드 위에 고정시키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에요. 손의 띠가 가진 가장 큰 역할은 제동이고요.”
“그외의 역할도 있다는 건가?”
“네. 단순히 생각만으로는 조종하기 힘든 세부적인 요소는 손과 발의 움직임으로 조종하게 되죠. 말로는 조금 설명하기 힘드니 실제로 보여드릴 테니 일단 나가요.”
“좋아.”
형진은 미엘을 안아든 채로 왕궁의 중정으로 나갔다. 미엘의 분신은 중정으로 나오자 이내 킥보드를 타고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직선 주로의 주행부터 시작해서, 코너링과 갖가지 장애물을 돌파하는 시점이 이어지자 형진은 미엘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우주유영과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실제로 인간은 무중력 상태에서 손발의 움직임만으로 어느 정도 자세의 제어가 가능하다. 정확히는 손발의 움직임이 아니라, 그것을 통한 무게 중심의 이동으로 제어를 하는 것이지만, 어쨌든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손발에 형성된 링은 그것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일종의 센서인 셈이다.
“나도 한번 해볼까.”
“음…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무언가를 안고 있는 상태에서의 제어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던 참이거든요.”
“킥.”
어쩐지 절대로 그의 품에서 내려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말. 형진은 떼쓰는 소녀 같은 마눌님의 말에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원하는 대로, 그녀를 품에 안은 채 킥보드에 올라탔다.
뭔가 느낌이 기묘하다, 분명히 발이 킥보드에 닿아있는데도 어쩐지 허공에 둥둥 떠있다는 실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어디.”
일단 천천히 직선 주로의 주행부터 시험해 보았다. 그리고 다시 곡선 구간의 주행으로 이어가고 좀더 급격한 방향 전환을 시험해 본 다음, 여러 가지 장애물을 통과 하는 시험도 해보았다.
“단차가 있는 장애물에서 떨어져 내렸을 때 자연스러운 감속이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물론 공중 부양 회로가 있어서 바로 지면에 직격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바닥에 도달했을 때 급정지를 하게 되면 그 가속도 감소분만큼 신체에 그대로 영향이 가니까요.”
“그건 정말 대단하군.”
형진은 적당한 단차를 지닌 장애물부터 차근차근 돌파를 시도해 보았다. 미엘의 말대로 높은 곳에서 떨어지더라도 갑자기 확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스키 슬로프를 타는 느낌으로 완만하게 내려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쩐지 눈에 보이지 않는 눈썰매를 타는 듯한 기분인걸.”
“사실은 그 부분을 많이 참고 했어요.”
“그랬군. 그럼 아래쪽에 갑작스런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는 어떻게 되지?”
“그것도 비슷해요.”
“어떻게?”
“갑자기 눈앞에 커다란 언덕이 나타났을 때, 보통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죠. 옆으로 피하거나 부드럽게 타넘거나.”
“그 외중에 다시 예기치 못한 충돌이 생겨난다면?”
미엘은 그것도 예상했다는 듯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 즉시 탑승자와 킥보드는 보호 상태로 전환돼요. 여신님의 성물만큼 완전한 건 아니지만, 물리적 충격으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보호와 충격 흡수 기능이 발현되거든요.”
“아하.”
기왕 그럴 바에야 아예 성물을 장착해서 탑승자에게 완전한 보호를 부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에 겸해서 사용자 인식 기능을 부여해서 도난을 방지하는 것도 괜찮겠고. 사람이 탑승하지 않아도 자율주행식으로 알아서 졸졸 따라다니게 만들면 무거운 짐 같은 것을 운반할 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구현할 방법이 없어서 문제였을 뿐, 제대로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지형에 구애받지 않는 이동 수단을 활용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완전한 보호는 좀 그런가.”
괜히 테러리스트라든가 그런 자의 손에 들어갔다가는 악행을 저지르는데 동원될 가능성도 있으니, 완전한 보호가 부여된 물품은 식구들끼리만 사용하고 일반제품에는 중대한 위급 상황에서만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보호 기능이 발휘되도록 만드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에어백 같은 느낌으로. 물론 그것도 이 킥보드를 양산해서 일반에 판매할 때의 얘기겠지만.
“일단 이름부터 바꿔야겠네.”
“이름이요?”
사실 날아다니는 보드의 이름 같은 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괜히 나중에 상표권 분쟁 같은 것이 일어나면 골치 아프니 간단하게 날틀 정도의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일단 엘리시온에서 시범적으로 판매를 해보도록 해야겠어. 우리 마눌님이 어련히 잘 알아서 만들었을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쪽에서라면 타다 사고 나도 죽거나 다칠 일도 없을 테고.”
“양산하게요?”
“일단 기본적인 생산 공정을 좀 알려줘.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하고, 마법적인 부분은 마탑에 맡겨도 되니까.”
“알았어요.”
그렇게 한쪽에서 날틀의 시험 양산이 결정되고 있을 때, 또 한쪽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보.”
“왜? 제라.”
“저 학교에 가고 싶어요!”
“뭐?”
느닷없이 들이닥친 마눌의 갑작스런 요구에 형진은 당황해 버렸다.
“갑자기 그게 무슨?”
제랄딘은 가만히 그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 도망치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의 무릎에 손을 올린 채 말했다.
“요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죠? 엘 파르드에 교육 체계를 잡아보겠다고.”
“그랬지.”
“그래서 요안나님과 이런 저런 정보를 교환하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뭘?”
“저 자신조차 학교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요!”
“…”
그거야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다. 타나토스는 아직 근대적인 교육 기관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형편이고, 그나마 비슷한 기능을 하는 신전의 경우에도 체계적인 교육과는 여러모로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제랄딘 같은 양갓집 규수가 신전에서 뭔가를 배울 일도 없으니 당연히 학교란 걸 경험해 본 적이 없을 수밖에.
“그래서 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타나토스에는 학교가 없으니 당연히 지구에서 다녀보겠다는 얘기. 하지만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마눌이 학교에 다녔다가는 대번에 사람들 눈에 띄게 될 테고, 그렇게 되었다가는 나쁜 파리떼가 꼬여서…
“으윽…”
이놈 저놈 치근덕거리는 꼬라지를 볼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속에서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그런 형진의 모습에 제랄딘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왜요? 걱정 되나요?”
“그야 당연히…”
“그럼 진도 같이 다녀요.”
“뭐?”
사실 제랄딘도 요즘은 전투에서 손을 놓고 있지만, 이전에는 형진보다도 강한 집행자였다. 흑요호의 힘을 빌어 쓰는 것이 능숙해서 잘 드러나진 않지만, 도적의 기술이라든가 기타 다른 스킬 같은 것도 익히고 있는 모양이고. 다만 저쪽 세상의 물정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일 뿐.
“안 되나요?”
“그건 아닌데… 무작정 저쪽 학교로 들어가는 것도 좀 문제가… 기본적으로 익혀야 할 지식도 있고.”
“실은 그래서 시험을 볼 생각이에요.”
“시험?”
“고등학교라는 곳을 다니지 않더라도 고졸 학력을 얻을 수 있는 시험이 있대요. 생각 같아서는 고등학교라는 곳을 먼저 다니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건 당신이 허락을 해줄 것 같지 않으니 일단 그 시험을 봐서 자격을 얻은 다음 대학 시험을 보려고요.”
아무래도 요안나를 통해 이것저것 많이 알아본 모양이다. 물론 그런 시험을 보려면 신분부터 마련을 해야겠지만, 요안나라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둘이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것 같더니 이런 일을 모의하고 있었나.
“으음…”
형진이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제랄딘은 그에게 몸을 밀착시키며 은근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정말 열심히 할 자신 있어요. 그러니까 허락해 주세요. 걱정 되면 진도 같이 다니면 되잖아요. 캠퍼스 커플이란 것도 되어 보고요. 네?”
“캠퍼스 커플이라.”
형진은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었는지.
하긴 마눌들도 슬슬 저쪽 세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학창 생활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지. 게다가 고졸 검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후딱 치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은 신의 권능으로 어떻게 통한다 쳐도, 시험을 치르려면 먼저 문자부터 익혀야 한다.
저쪽의 학문과 비교해 보면 고졸 학력이라는 것도 그리 만만한 건 아니다. 제랄딘의 사고 능력은 충분히 뛰어나지만 그것이 무조건 훌륭한 성적으로 연결될 거라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좋아. 하지만 일단 고졸 검정부터 합격하도록 해.”
“고마워요!”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그럼 좋은 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