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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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토벌
“헉!”
“저건!”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처럼 형진과 요안나가 모습을 드러내자, 옥상 입구를 점거하고 있던 인질범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감시하기 위해 근처 빌딩에 자리를 잡고 있던 저격수들 또한 모두 화들짝 놀라버리고 말았다.
마치 어두운 심연 속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불꽃과도 같은 날개를 펼친 죽음의 천사. 그리고 그런 죽음의 천사와 너무나도 대비되는 느낌의, 아름다운 순백의 갑주를 입은 채 깃발과 방패를 손에 든 여기사.
이미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한번쯤 화면으로 본 기억이 있는 죽음의 천사가 느닷없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놀라 자빠질만한 일인데, 거기에 더해 새로운 인물인 순백의 여기사 또한 모습을 드러내자 지켜보던 저격수들은 급히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코앞에서 그들을 마주하게 된 인질범들이다.
“맙소사!”
“사실이었단 말인가!”
기겁을 하며 놀란 그들은 얼른 바리케이드 뒤로 몸을 숨기며 총을 겨눴다. 하지만 형진도 요안나도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도 없다는 듯한 기색으로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이 폭탄을 터뜨릴 거다!”
총으로 겨누고 있다는 사실조차 무시한 채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에 인질범들은 당황했다. 그래서 얼른 기폭 스위치를 꺼내든 채 위협을 해보았다.
형진은 그제서야 인질범들이 몸에 폭탄을 두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요안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 젠장!”
위협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자 인질범 가운데 하나가 마침내 방아쇠를 당겼다. 곧바로 총기에서 화염이 내뿜어지며 격렬한 총성과 함께 탄환들이 형진과 요안나를 향해 쏟아졌다.
요안나는 순간 움찔한 기색을 보였지만, 형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인질범들이 진을 치고 있는 바리케이드로 다가가 주먹을 휘둘렀다.
콰과가가가가각!
좁은 공간에서 강렬한 화염을 동반한 회오리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끄아아악!”
“컥!”
“커흑!”
옥상 입구를 지키고 있던 세 명의 인질범들은 갑자기 뜨거운 불의 기운이 온몸을 덮쳐오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몸이 떠올라 사방으로 마구 내팽개쳐졌다. 그것만이 아니다. 바리케이드를 만들기 위해 쌓아두었던 집기들이 날아와 부딪히는 충격 또한 그들은 동시에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마치 세탁기에 들어간 빨래처럼 서로 부딪히다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에 두르고 있던 폭발물이 격발되었고, 그 순간 극장 위에는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검붉은 버섯 구름이 피어올랐다.
“맙소사…”
급히 상부에 죽음의 천사가 출현했음을 알리던 저격수들은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폭음에 기겁을 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느닷없이 총성이 울려 퍼지는 것을 들으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극장을 바라보던 관계자들과 먼발치에서 현재 상황을 살피던 기자들 역시 갑작스런 폭음에 놀라 움찔하고는 이내 극장 위로 피어오르는 검붉은 연기에 경악하고 말았다.
“어떻게 된 거냐! 상황을 보고 하라!”
“그게…”
감적수들은 급히 망원경으로 극장 옥상을 살폈다. 온통 매캐한 검은 연기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들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불길 속을 걸어 안으로 들어가는 죽음의 천사와 순백의 여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형진 혼자만이라면 알아보기 어려웠을지도 모르지만,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순백의 갑옷을 전신에 두른 요안나의 모습은 불길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입구 근처의 인질범들이 소지하고 있던 폭탄이 터진 것으로 보입니다. 죽음의 천사와 순백의 여기사는 그대로 극장 안으로 진입 중!”
곧바로 저격팀으로부터 보고가 올라왔지만 대책 본부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인질극 자체에 대처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마당에, 죽음의 천사와 순백의 여기사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요소가 갑자기 출현해 버렸기 때문이다.
“어쩌죠?”
“…”
어쩌냐고 물어봐도 말이지. 서로 눈치만 보다가, 문득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일단… 불은 꺼야…”
“그, 그렇군. 어서 소방 헬기를 불러!”
“알겠습니다.”
갑작스런 총성과 폭음에 놀란 건 인질범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급히 옥상에 자리잡은 동료들을 무전기로 호출했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설마… 이렇게 무턱대고 진압 작전을 시작한 건가?”
“아직 성명 발표도 안했는데?”
“젠장! 예정을 앞당긴다. 방송부터 연결해!”
“네!”
성명 발표를 늦춘 것은 좀 더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기를 기다렸던 것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독이 되고 말았다. 성명도 요구사항도 제시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무작정 진압작전을 시작하다니! 러시아라면 몰라도 호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인질범도 미처 예상치 못했다.
급히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접속해 방송 준비를 하며, 인질들을 스크린 앞으로 끌어올렸다. 모처럼 시원한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려 했다가 날벼락을 맞은 시민들은 공포에 떨며 인질범들의 지시대로 스크린 앞에 모여들었다.
“연결됐습니다!”
“좋아. 저 놈, 이리로 끌어와!”
가까이 있던 남성 하나가 인질범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 개처럼 끌려 나와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러자 인질범 가운데 하나가 그의 옆에서 정글도를 꺼내 든다.
“꺄아악!”
그 광경만으로도 심약한 인질 몇이 비명을 지르며 까무라치고 말았다. 인질범들의 대장은 그것을 보며 웃더니 카메라 앞으로 나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하지만 미처 첫 음절이 끝을 맺기도 전에, 커다란 굉음과 함께 상연관 입구와 그것을 가로막고 있단 바리케이드, 그리고 그 옆을 지키고 있던 인질범 두 명이 단숨에 튕겨져 나갔다.
“…”
갑작스런 상황에 인질범들은 물론이고, 두려움에 떨던 인질들마저도 크게 놀랐다. 급히 몇몇 인질범들이 자신들의 몸에 두르고 있던 폭탄의 기폭 장치에 손을 가져가고 인질들을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날개를 펼친 채 연기와 불꽃 속에서 죽음의 천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저건…”
“맙소사… 정말로 존재했었단 말인가.”
인질범들은 급히 극장의 출입문을 지키고 있는 동료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호주군이나 경찰이 진압작전을 시작한 것이 아님을 인지했다.
“움직이지 마라!”
대장이 옆에 있던 아이의 머리채를 잡아끌며 그렇게 외치자, 다른 인질범들 또한 마찬가지로 근처의 인질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몸을 가렸다.
하지만 형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주위를 스윽 한 번 훑어보더니 영사기가 위치한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인질범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손에 잡혀 있던 인질들 또한 그 시선을 따라 영사기가 있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쾅!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영사기가 위치한 창문과 함께 벽 일부가 폭탄이 터진 것 같은 굉음과 함께 터져 나가며 그곳으로부터 몇 사람들이 날아와 의자들 속에 처박히고 만다.
“…”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훌쩍 뛰어내리는 또 한 사람. 바로 순백의 갑옷과 백합 문양의 깃발, 그리고 방패를 손에 든 요안나다.
“위쪽은 대충 정리되었어요.”
“수고했어.”
“별 말씀을요.”
두 사람은 그렇게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고는 아래쪽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인질들을 잡고 있음에도 일말의 주저조차 없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서는 둘의 모습에 인질범들은 당황해 버렸다.
“멈춰라! 멈추지 않으면!”
대장은 본보기를 보일 셈으로 자신이 붙잡고 있던 아이의 머리에 대고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아이는 눈을 질끈 감고 벌벌 떨었지만, 이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
분명히 뭔가 관자놀이에 와서 닿은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끝이다. 그렇게 의문 부호를 담은 소리를 내자 이번에는 쏜 사람이 당황해 버렸다.
“응?”
시체가 되었을 아이를 옆으로 밀쳐내려던 대장은, 분명히 죽었어야 할 아이의 입에서 나온 얼빠진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는 금속 탄환의 모습에 역시나 얼이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인터넷을 통해 여과없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방금 총 쏜 거 맞지?
-맞아! 화염도 뿜어져 나왔다고.
-봤어? 총에서 총알 굴러 떨어지는 거.
-에이. 속았네. 페이크 영상인가본데.
-그런가?
하지만 자신들이 인터넷 영상을 송출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인질범들은 우왕좌왕하다가 이번에는 아까 끌어냈던 남자의 목에 정글도를 휘둘렀다.
턱!
“크윽…”
남자는 닥쳐올 죽음을 견뎌내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있었지만, 역시나 인질범이 휘두른 정글도는 그의 목덜미에 닿는 순간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힘없이 멈춰 섰다. 비명은 오히려 그것을 휘두른 인질범에게서 흘러나왔다. 돌아온 반동에 손목이 삐끗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뭐야… 이게 뭐냐고…”
당황한 인질범들은 그렇게 중얼거렸고,
“천사… 죽음의 천사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어.”
“저 분도… 그럼 천사인가”
“날개는 없지만… 저 순백의 모습은 분명히…”
“갑옷과 방패면… 미카엘님이신가?”
“아니야. 여자의 모습이니 가브리엘님이실거야.”
“맞네. 가브리엘님의 상징이 백합이니까.”
“아… 가브리엘님.”
가브리엘은 이슬람에서도 지브릴이라 불리는 중요한 천사다. 무함마드에게 알라의 계시를 전한 천사이며, 모든 천사들을 주관하는 천사라고 믿기 때문이다.
당사자로서는 코웃음이 쳐질 일이지만, 어쨌든 인질들이 그렇게 요안나를 가브리엘로 인식해 버리자 그 말을 들은 인질범들 역시 당황해 버렸다.
죽음의 천사야 이전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순백의 갑옷을 입고 백합의 문양을 지닌 깃발을 지닌 또다른 존재가 자신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 어째서…”
“정말로… 지브릴이신건가…”
그렇게 다른 인질범들이 혼란에 빠져 버리자, 그들을 이끌던 대장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에에잇! 아니다! 저들이 천사일 리가 없지 않은가! 저들이 알라께서 보내신 천사라면, 우리를 적대할 리가 없다!”
“하지만…”
인질범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때론 천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현상이 더 큰 설득력을 지니는 법. 아이도 그렇고, 정글도로 목을 내리쳤음에도 작은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남자도 그렇고, 무엇 하나 일상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런 식의 현상을 가리켜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곤 한다.
기적이라고.
인질범들의 눈은 다가오는 검고 흰 두 존재와 함께 그들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동료들의 몰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해했다.
지금 이 순간 이곳의 삶과 죽음은 온전히 저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이 공간에서 다른 자에게 죽음을 강제할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죽음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포와 죽음…”
인질 가운데 한 명이 문득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얼마 전 자신들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던 거대한 외침을 떠올렸다.
인질도 그들을 인질로 잡고 있던 범인들도 이제는 혼란에 빠져 버렸다. 저들이 진정 누구의 사도들인지 뼈저리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송출하고 있는 인터넷 방송을 보고 있는 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는 것은 인질범과 인질 모두의 얼굴과 눈빛에 서린 환희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정도로 기이하게 뒤틀려 버린 감정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고 있는, 그들의 눈앞으로 다가 서고 있는 존재들의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어째서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 오지마!”
대장은 발악하듯 외치며 손에 들고 있던 기폭 스위치를 형진에게 쳐들어 보였다. 하지만 형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비웃듯 이렇게 대답했다.
“눌러.”
“뭐?”
“누르라고.”
“…”
“이미 이곳의 모든 죽음은 그분의 뜻에 따른다. 네가 그것을 눌렀을 때 과연 누구에게 죽음이 주어질까. 궁금하다면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지.”
형진의 빈정거림에 대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발악하듯 이렇게 외쳤다.
“나는… 믿지 않는다! 신은 오직 알라 뿐! 알라후 아크바르!”
그 외침과 함께 대장은 발악하듯 기폭 스위치를 눌렀고, 순간 섬광이 터져 나오며 극장 안에 설치된 모든 폭탄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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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