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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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변혁
아무래도 희망과 생명이 계속 대화를 주도하게 놔뒀다가는 투닥거리기만 하고 끝이 없을 것 같아서 형진이 앞으로 나섰다.
“크흠. 어쨌든 앞으로 여기 세 분의 프로듀스를 여러분께 맡기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흥.”
물론 여전히 희망과 생명은 흥흥대며 형진의 말에 딴지를 걸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봉인시킨 것에 대한 불만을 더 이상 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인 면도 있고, 괜히 정말로 화나게 만들었다가는 간신히 조금이나마 회복한 관계가 다시 엉망이 될 소지가 있으니 나름 조절을 하는 모양새다.
아무래도 둘의 관계가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조심스러운 기색을 보이던 스탭들도 일단 일 얘기로 넘어가자 이것 저것 부산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아, 그리고.”
어차피 이쪽 분야에서는 저들이 전문이니 맡겨 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가만히 소파에 앉아 지켜보던 형진이 희망과 생명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리고, 뭐?”
“하는 김에 미라지 코어의 CF도 찍었으면 싶은데요.”
“CF? 아, 광고 말하는 건가.”
“네.”
형진의 말에 희망과 생명은 나쁘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얘들이 미라지 코어랑 관계가 있는 건 이미 다 드러났으니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네. 계속 이슈를 만들기에도 좋고.”
“네? 아니, 이쪽 세분이 아니라 여신님을 말씀드린 건데요.”
“나? 나보고 광고에 나와 달라고?”
“난 광고 안 찍는데.”
“왜요.”
“광고주들이 집적대는 것이 짜증나서.”
“하하…”
광고를 안 찍고도 이런 부를 이뤘다니, 솔직히 좀 믿기 어려울 정도다. 따지고 보면 연예인이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요소가 결국은 광고 아닌가. 그것을 빼고도 집에 활주로를 놓을 정도의 부를 쌓다니. 역시 여신은 여신인가보다.
“네가 부탁한다면 한 번 찍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실종되었던 헐리웃의 여신, 복귀 후 첫 활동으로 미라지 코어의 광고를 찍다. 게다가 평소에 광고를 찍지 않던 습관까지 생각하면 이슈 몰이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여기에 세 여신들의 프로듀스까지 맡기로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다.
“대신 조건이 있어.”
“네? 또요? 배 만들어 주기로 했잖아요.”
형진이 얼굴을 찌푸리자 희망과 생명은 당당하게 대꾸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어떻게 또 얘기가 그렇게 됩니까.”
희망과 생명은 형진의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그거 하나 주고 계속 부려먹을 생각이었어? 넌 내 몸값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음, 공헌도 십만?”
“어이, 그건 아바타 가격이지.”
“그 몸을 살 때 들인 가격이니 몸값 맞지 않나요? 게다가 공헌도 십만이 애들 이름인 줄 아십니까? 그것도 없어서 절절 매는 신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그 말에 세 여신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이 세 여신이 바로 그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 공헌도 조차 없어서 요정 사이즈로 지금의 왕성 라이언하트까지 헤엄쳐서 망망대해를 건너오지 않았던가.
“흥. 그깟 공헌도 나한테는 껌 값이라고.”
다른 신이라면 몰라도 희망과 생명 한정으로는 껌 값이 맞긴 하다.
“비싼 껌 씹으시네요. 그래서, 뭐가 또 필요하신 겁니까?”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논쟁을 벌이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아서 결국 형진이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나랑 얘들한테, 그… 비행형 퍼스널 모빌리티? 그거 하나씩 줘.”
바락바락 우긴 모양새 치고는 생각보다 별 것 아니다. 자가용 비행기를 몇 대나 굴리고 집에 활주로 까지 들여놓은 것을 보면 하늘을 나는 탈 것에 묘하게 집착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끙… 그것도 아직 시판 전인 건 아십니까?”
“예약 판매 시작했잖아.”
“예약만 시작했지 아직 물건은 풀리기도 전이라고요.”
“그래서? 싫다고?”
“싫다고는 안했습니다.”
형진은 현재 예약 판매를 진행 중인 비행형 퍼스널 모빌리티들의 샘플들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주욱 늘어놓았다.
“일단 가지고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마음에 드는 걸로 하나씩 고르세요.”
“와아…”
여신과 죽음의 천사가 벌이는 말싸움을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스탭들은 형진이 꺼내놓은 비행형 퍼스널 모빌리티를 보고는 탄성을 터뜨렸다.
“난 전부.”
역시나 희망과 생명은 형진이 꺼내놓은 물품들을 보고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전부요?”
“응. 원래는 우산 정도만 가져도 되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하나씩 전부 가지고 싶어졌어.”
이 여신이 원래 이렇게 물욕이 많았던가. 저쪽에 널리 퍼진 호구스런 이미지와는 어쩐지 딴판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보면 앞으로 그녀를 구슬리는 좋은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어차피 비행형 퍼스널 모빌리티야 형진이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물품이고, 새로운 종류라고 해봐야 디자인 조금 바꾸거나 기능 한두 가지 추가하는 것뿐이지만, 이 여신이라면 악착같이 신상을 구하려고 기를 쓰려 할 것이 눈에 보인다.
“좋습니다. 대신 CF는 좀 다양하게 찍어보도록 하죠. 여기 있는 물품 종류별로 하나씩.”
뭔가 다른 조건을 걸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희망과 생명은 간단하게 허락했다.
“상관없어. 아예 스토리를 담아서 시리즈로 만드는 건 어때? 짤막한 꽁트식으로.”
“그것도 나쁘진 않겠죠. 어차피 전 그쪽은 문외한이니 마음대로 하세요.”
“알았어. 후훗.”
희망과 생명은 얼른 형진의 손에서 예쁜 접이식 우산을 하나 받아서 펼쳐 들더니 그것을 가지고 하늘을 붕붕 떠다니며 즐거워하기 시작한다. 여신쯤 되면 하늘을 나는 건 그냥도 가능하지 않나.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희망과 생명을 복귀시키고, 그녀를 통해 이런 저런 일들을 진행하는 와중에도 ‘하늘’호의 여정은 계속 되고 있었다.
“자, 오늘은 낚시를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낚싯대를 잡아 주세요.”
“네에!”
프리츠 베커의 진행에 따라 아이들이 올망졸망 뱃전에 모여 고사리 손에 작은 낚싯대를 들었다. 다양한 인종과 국적을 가진 아이들이 뱃전에 나란히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 절로 미소를 자아내도록 만든다.
프리츠 역시 그 모습에 빙긋 웃고는 배의 기능을 조작해 아이들 근처로 결계를 당겼다. 그러자 아이들이 내민 낚싯대 끝이 결계 밖으로 내밀어진다.
현재 ‘하늘’호와 ‘세연’호는 남극 대륙을 지나 남아메리카 대륙을 관통한 뒤, 아마존 입구에서 아프리카 방향으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중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하늘이 아니라 바다 속으로.
지금 보여지는 광경은, 그렇게 해저를 탐사하는 와중에 아이들에게 낚시를 체험시켜 주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낚시와는 조금 다르다. 보통 낚시라고 하면 바다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채 물고기가 낚이기를 기다리는 것이지만, 지금 아이들이 하고 있는 것은 바다 속을 지나가면서 눈앞에 지나가는 물고기들을 건져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형 뽑기의 바다 속 버전이라고 해야 하나.
“와앗! 거, 걸렸어요!”
“오, 꽤 크네요.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당기세요.”
“네!”
프리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지켜보는 어른들로서는 식겁할만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낚싯대에 걸린 물고기는 아이보다도 훨씬 큰 몸집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와! 우와!”
“힘내!”
“난 왜 안 잡히지. 얏! 물어라!”
하지만 아이들은 영 위기감 없이 운 좋게 처음부터 입질이 들어온 아이를 응원하거나 자기도 잡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낚싯대를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다.
“자아, 천천히…”
“네!”
프리츠가 다가가 조심스럽게 함께 잡고 조심스럽게 끌어올리자, 퍼덕거리는 커다란 물고기가 앙상한 아이의 손에 쥐어진 낚싯대에 낚인 채 올라온다.
“와아아아!”
“엄청 크다!”
“앗, 차거!”
“꺄하하하하!”
펄떡거리는 커다란 물고기가 갑판 위에서 힘차게 몸을 퍼덕이자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 역시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커다란 물고기를 얼마 전까지 중병에 걸려 쇠약해진 아이가 쉽게 끌어올릴 수 있을리 만무하다. 오히려 끌려가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지켜보던 어른들은 프리츠가 다시 뭔가를 한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구태여 따지고 들지 않았다. 이제는 배에 타고 있는 이들은 물론이고, 그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역시 프리츠를 보통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운 좋게 월척을 낚은 아이와는 차이가 났지만, 다른 아이들도 크고 작은 물고기를 낚아 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개중에는 물고기가 아닌 엉뚱한 해산물을 낚아 올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모두들 그런 걸 별로 상관없다는 듯한 모습이다.
프리츠는 일단 아이들이 낚아 올린 해산물 가운데 먹을 수 있는 종류로 몇 가지를 추리고는 그것을 얼른 형진에게 보냈고, 그는 막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을 유아와 함께 손질하고 다듬어서 요리로 만들어 프리츠에게 보냈다. 가능하다면 직접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당장은 그런 식으로 모습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커다란 물고기가 프리츠의 손짓에 의해 사라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테이블을 가득 채우는 맛있는 요리로 변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로서는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마술이라는 말로 밖에는 표현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식으로 두 번 경험하기 힘든 신비하고 즐거운 바다 속 여행을 마친 ‘하늘’호는 다시 바다 위로 떠올라 아프리카 서해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났다!”
“와아아아아!
상륙지점으로 예정되어 있던 해변에 두 척의 아름다운 범선이 마치 고래처럼 치솟아 오르며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환호하며 그들의 등장을 반겼다.
이곳에서도 이전에 들렀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탑승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막상 탑승대를 내리자 이상한 광경이 연출되기 시작한다. 탑승대 밖에서 몇몇 사람들이 울며불며 어떻게든 자신들의 아이를 탑승대에 태우려고 소란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뭐지? 확인해봐.”
곧바로 경찰들이 나타나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을 밀어내려 했지만, 곧바로 형진의 지시를 받은 프리츠가 앞으로 나섰다.
“무슨 일입니까?”
“그, 그게… 별 일 아닙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별 일이고 아니고는 제가 판단합니다. 물러나십시오.”
“하, 하지만…”
“물러나라는 말 안 들립니까.”
“…”
경찰들은 자신들에게 또박또박 의사를 전달하는 프리츠의 모습에 기가 질려버렸다. 이곳은 미디어가 그리 발달하지 못한 곳이지만, 그런 그들도 프리츠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굳이 다른 설명을 할 필요조차 없이, 이미 집행자로서의 힘에 눈을 뜨기 시작한 프리츠의 기세를 제대로 훈련조차 받지 못한 얼치기 경찰들이 감당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프리츠의 기세에 경찰들이 주춤거리며 밀려나자, 아이를 안고 있던 사람들이 얼른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했다.
“제발… 저희 아이들을 태워 주세요. 이대로라면 죽을지도 몰라요.”
애원하는 남자가 내민 아이는 딱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눈빛이 풀린 채로 헐떡거리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것만 같다.
“잠시만요.”
프리츠는 곧바로 품에서 포션을 꺼낸 뒤 아이의 입에 조심스럽게 흘려 넣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포션을 삼키지도 못하던 아이였지만, 방울지며 떨어지는 포션을 입안에 머금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린다.
“기, 기적이다!”
“아이가 살아났어!”
지켜보던 사람들이 놀라서 그렇게 소리치자 아이를 데리고 왔던 다른 사람들도 얼른 프리츠에게 자신들의 아이를 내밀었다. 어느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상태가 좋지 않아서 프리츠는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프리츠는 배에 탑승하고 있던 의료진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들은 기꺼이 배에서 내려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도왔다.
프리츠는 그들에게 포션을 나누어 준 다음, ‘하늘’호를 맞이하기 위해 나와 있던 정부 관계자에게 다가와 굳은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 작품 후기 ============================
두편째.
즐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