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95
00695 157. 진실 =========================
케레스는 자신을 감싼 것이 일종의 권능임을 인식했다.
“큭!”
이대로 감각을 빼앗기면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일. 하지만 다행히도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바보 같은 일이다. 기왕 범인을 밝혀낸 상황이라면 굳이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모두 불러모을 필요조차 없는 일. 굳이 사람들을 모아 자신에게 방패로 삼을 여지를 남겨두다니, 이 얼마나 멍청한 일인가.
케레스는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두 개의 칼을 뽑아들고는 한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둘렀다.
“꺄악!”
아직 완전히 밤의 권능이 발현되기 전이라 칼에 맞은 누군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터트리는 것이 들려온다. 하지만 이상하다. 막상 칼을 쥔 손으로 전해져 오는 감각은 그가 익히 알고 있는 그것과 전혀 달랐다.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가 썰릴 때 전해져 오는 감각이 전혀 없다.
설마?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멈칫하는 순간, 케레스는 자신의 옆구리에 무언가 강렬한 타격이 묵직하게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커헉!”
허리가 그대로 꺾여 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은 타격에 케레스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손에 들고 있던 두 개의 칼을 타격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휘둘렀으나 이번에는 아예 손끝에 걸리는 느낌 자체가 없다.
“쿨럭!”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른 것일까. 바닥을 나뒹굴다가 비틀거리며 일어난 케레스의 입에서는 한웅큼의 피가 토해진다. 보통 이 정도면 이미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끝내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군.”
생각보다 약하다. 이 정도면 아바타는커녕 갓 추종자가 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난투극이 혼이 반쯤 나가 버린 상태였다. 뭔가 퍽 하고 연기가 터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모습이 뒤얽혔고 이내 케레스라는 요리사가 나가떨어졌다. 솔직히 말해 이곳에 있는 인간들 가운데 그 경과를 제대로 알아본 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모든 일이 벌어진 탓이다.
케레스는 이미 치명상을 이어 정신마저 몽롱한 상태였음에도 비틀거리며 칼을 휘둘렀다. 형진의 모습을 보기는커녕 이미 밤의 권능에 당해 아무런 감각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지만 비틀거리면서 필사적인 저항을 하고 있을 뿐이다.
“커흑!”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바로 형진의 무지막지한 발차기에 복부를 얻어맞고는 그대로 붕 떠올랐다가 처박혔다. 한방은 버텼지만 두방까지는 무리였는지, 케레스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늘어져 버렸다.
형진은 천천히 다가가 놈의 머리에 발을 올렸다. 그리고 그곳을 통해 힘을 밀어 넣었다.
“크아아악!”
잠시 정신을 잃었던 케레스는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이른바 신력에 의한 강제 개종이 시작된 것이다.
케레스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던 일, 그러니까 일부러 연회장에 사람을 채워 놓았던 것은 정체가 발각되었을 때의 반응을 보기 위한 형진의 밑밥이었다.
만약 상대가 포트니아 테론이었다면 이것 꽤 위험한 모험이었겠지만, 형진은 자신의 눈앞에 바로 그 신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보았다. 넝마가 되어 쫓기던 파괴와 재생의 모습을 보았다면, 자신과 정면에서 대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뻔히 알 수 있는 일이니까.
어쨌든 이 과정에서 케레스는 자신 외의 누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흉기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였다. 신이나 추종자의 성향을 한 눈에 파악하고 결정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지만, 형진은 그런 케레스의 모습을 보고는 굳이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덕분에 케레스는 강제 개종을 통해 전신의 살점과 뼈마디가 녹아내리는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떠올려라.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크으윽…”
포트니아 테론의 힘은 범상치 않다. 이렇게 코앞에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해야 추종자 따위가 자신과 제랄딘의 눈으로부터 신분을 숨길 수 있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고, 바꿔 말하면 둘보다 강한 힘을 지닌 존재일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물론 단순히 힘의 속성 자체가 그런 식의 은닉에 유리한 것일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다. 그것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도 이 자의 기억을 읽고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실 강제 개종 자체만으로는 이런 부분을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형진은 벗과 추억이라는 신과의 계약을 통해 기억을 읽을 수 있다. 포트니아 테론의 영향력을 완전히 제거하고 나면,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기억을 읽어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포트니아 테론의 힘은 머리를 밟은 형진의 발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힘에 잠시 저항하는 듯 했지만, 역시나 일개 추종자에게 부여된 힘만으로는 대적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마침내 일거에 둑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그대로 휩쓸리며 사라져 버렸다.
“끄륵…”
살려서 자신의 추종자로 쓸 생각이 아예 없었던 탓에, 형진은 이전에 개종시켰던 다른 존재들과는 달리 힘을 다루는 것에 약간의 주저함도 없었고, 그 과정에서 케레스는 내부에서 일어난 힘의 충돌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
사람들은 범인의 머리를 밟은 채 말없이 서있는 형진의 모습에, 어째서 그래야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었다. 강제 개종을 위해 뿜어내는 힘들이 지금 이순간 보통의 인간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위압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진.”
“…”
형진은 싸늘한 눈으로 케레스를 내려다보며 힘을 쏟아 붓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는 제랄딘의 행동에 비로소 주위의 모습을 돌아보고는 상황을 이해했다.
“알았어. 금방 끝낼게.”
“네.”비로소 케레스의 강제 개종이 끝나자, 형진은 발을 떼지 않은 채 놈의 기억을 읽어 들이기 시작했다.
요리 대회에서 처음 밝혔던 대로, 놈은 가마낙 출신도 맞고 장인급의 실력을 지닌 요리사도 맞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가정생활이 별로 순탄치 못했다는 점. 포트니아 테론은 그런 놈의 과거를 읽고 추종자로 끌어들였다.
“내 추종자가 되면, 가정에 성실하지 못한 모든 이들은 태초의 어머니인 포트니아 테론의 이름으로 천벌을 받게 될 것이다.”
케레스는 그것을 계시라고 여겼고, 곧바로 추종자가 되었다.
그가 연회장에 모여있던 사람들이나 형진에게 무력을 쓰는 걸 망설이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케레스에게 있어 국왕이니 귀족이니 하는 존재들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다른 이의 가정을 파괴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절대적인 악이었다. 어찌보면 적극적으로 라야바르트 국왕의 암살에 참여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라야바르트의 국왕은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그야말로 최악의 수컷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음…”
뭔가 미묘하다. 포트니아 테론은 언데드의 영역에 속한 신이고, 때문에 형진은 파괴와 재생처럼 타락한 신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타락한 신이라고 해서 모두 악랄한 신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형진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직접 정화하여 엘리시온으로 돌려보낸 안식과 동굴만 하더라도 그런 부류였으니까.
“하지만… 역시 뭔가 미묘하군.”
케레스라는 존재가 극단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포트니아 테론 자체는 선인지 악인지 구분하기 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척 봐도 미쳐 버렸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던 파괴와 재생과는 여러모로 다른 신이라고 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엘리시온의 다른 신들과는 권능조차도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다. 두 개의 신격을 가지고, 그것 자체가 이름이 되는 엘리시온의 신들과는 달리 포트니아 테론은 정확히 어떤 신격을 가지고 있는 건지조차 파악하기 힘들었다.
케레스를 강제 개종시키고 기억을 들춰본 가장 큰 이유도 따지고 보면 포트니아 테론이라는 이명이 아닌, 진정한 신격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어떤 힘을 지닌 신인지 파악하면, 그에 따라 대책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레스의 기억 어느 곳에서도 엘리시온 식의 신격이나 그것에 기반한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설마, 포트니아 테론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이명이 아닌 진짜 신명이란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형진은 이제 기존에 그가 보았던 엘리시온의 신들과는 체계 자체가 다른 새로운 신과 조우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흠…”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형진은 비로소 케레스의 머리 위에서 발을 떼고는 공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자는 이제 완전히 무력화 되었으니, 데리고 가셔도 됩니다.”
“괜찮겠습니까?”
“네. 만약 뭔가 변화가 일어난다면 제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제 개종으로 인해 그의 추종자가 되기는 했어도, 아무런 힘도 주어지지 않은데다 항상 밤의 권능에 휩싸여 있는 상태가 되었다. 사실상 눈 뜬 장님이나 다름 없는 상태라고나 할까. 아니, 장님은 그저 시력만 잃었을 뿐이지만, 케레스는 앞으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으니 더 심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범행 방법이 확인되고 범인이 잡힘과 동시에 사건의 내막 또한 관계자들에게 공개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자 난감해진 것은 왕국의 수뇌부들이었다.
“곤란하군요. 세 명의 비 모두가 사건에 가담한 상황이라니.”
“첫째 왕자는 그렇다 쳐도, 이래서는 셋째 왕자도 문제입니다. 귀비를 처벌한다면, 셋째 왕자가 나중에 그 일을 가만히 두고 보겠습니까?”
“그건…”
원래부터도 신분이 미천한 셋째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일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귀족들은 대번에 이 일을 빌미 삼아 물고 넘어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왕위와 관련된 언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레나리스 왕녀가 새롭게 왕위 계승자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당신과 레나리스가 맺어지기를 바라는 모양이에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사건은 해결했지만 포트니아 테론에 대한 실마리는 찾지 못한 탓에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있던 형진으로서는 참으로 뜬금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펄쩍 뛰는 그의 모습에 제랄딘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일단 레나리스 왕녀가 여왕의 자리에 오르고, 당신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다음 대의 왕으로 올린다는 거죠.”
“미친! 그게 말이 돼?”
“하지만 귀족들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에요. 무엇보다도, 그렇게 하면 당신의 힘을 라야바르트 역시 빌려올 수 있게 되니까요.”
“끙…”
일이 갑자기 엉뚱하게 번져 버리고 말았다. 그럴 바엔 차라리 엘 파르드의 다음 대 왕으로 내정된 크루그로 하여금 레나리스와 맺어지게 하는 것이 어떤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크루그도 레나리스도 이런 식의 결정은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어째서 그를 가만히 두시는 겁니까.”
“왜요? 뭔가 문제라도?”
요리 대회가 흐지부지 되어 버리긴 했지만, 참가했던 요리사들은 공작가로부터 소정의 보상을 받고 본래 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갔다. 물론 결선에 참여했던 또다른 한 명인 루사나 출신의 아줌마 레테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엄연히 여자의 적입니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그는 이미 세 명의 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체류하는 와중에도 아란이라는 이름의 여자와 동침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또다른 비의 친정에서! 이것은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뒤따르는 키 큰 여자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치자, 레테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 둘 사이에는 조금 특별한 이유가 있으니, 그렇게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닙니다.”
“네? 하지만…”
레테는 가만히 돌아보며 대답했다.
“나는 단순히 한 사람이 여러 사람과 맺어지는 것을 혐오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내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군요.”
“죄,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여신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키 큰 여자가 얼른 머리를 조아리자, 레테는 푸근한 미소로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역시 조금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조만간 다시 부를 테니, 당분간 그를 살펴 보세요.”
“알겠습니다.”
키 큰 여자가 모습을 감추자 레테는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주위의 모든 풍경들을 즐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라… 여긴. 어떻게 된 거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난처해하던 레테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방금 전의 일들이 전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제발 좀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