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09
00709 160. 토너먼트 =========================
아르테미스는 포트니아 테론과 만나기 전까지 평범한 사냥꾼에 불과했고,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희망과 생명의 신전에 딸린 김밥천국에서 판매하는 김밥은 훌륭한 식사였다. 저렴하면서도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하지만 지금 이순간 자신의 눈앞에 놓여진 김밥을 보니 어쩐지 한숨만 나온다. 바로 전에 먹었던 숯불구이와 너무나도 비교되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붉게 달아오른 숯불의 열기에 자글자글 구워지는 이런 저런 음식들의 향연. 문자 그대로 코스 요리라고 불러도 좋을 법한 산과 바다의 진미들에 비하면 지금 눈앞에 놓여진 김밥 두줄은 너무나도 초라해 보였다.
“후…”
사람 마음이란 것이 참 요망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밥 한 톨이라도 떨굴까 조심하며 먹었는데, 이제는 자신 앞에 놓인 음식에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초라하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으니.
“이래선 안 돼.”
아르테미스는 자꾸만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이런 저런 음식들의 모습을 지우려는 듯 고개를 젓더니, 조심스럽게 김밥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갔다.
“…”
역시나 차갑게 식어 있다. 밥알은 굳어서 딱딱하고, 속에 채워진 야채들은 퍼석거린다. 그가 처음에 해주었던 볶음밥과 비교하면 마치 모래알을 씹는 듯한 기분마저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아르테미스는 다시금 고개를 저으며 입안에 들어온 김밥을 꼭꼭 씹었다. 사냥 도중 끼니를 해결할 때처럼, 마치 소가 되새김질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조심스럽고 꼼꼼하게 씹는다.
그렇다. 자신은 지금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그냥 싸움이 아니라, 위대한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싸움에 임하는 중이다. 일생일대의 사냥감을 눈앞에 둔 것 같은 느낌으로, 최선을 다해 임해도 이길 수 있을까 싶은 강적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몇 번이고 다짐을 해봐도, 역시나 기분이 울적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이미 의지의 영역을 넘어선 일이었다. 어느 새인가 그녀의 몸은 형진이 만들어낸 음식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결국 김밥은 한 줄도 채 먹지 못하고 남겨버렸다. 음식을 남기다니, 그녀의 전 생애를 통틀어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먹을수록 자꾸만 목이 매여서 더 이상 삼킬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럴 때 억지로 음식을 밀어 넣었다가는 자칫 탈이 날 수도 있음을 그녀는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이제는 주시자들도 나타나지 않는다. 하기야 그렇게 연거푸 격퇴 당하고서도 자존심을 굽히고 찾아올 주시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은 비록 주시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은 한 때 차야 메사라는 행성 전체를 지배하던 오래된 자들이었다. 보상이 아무리 좋다고는 해도 싸움에서 패배하고 포로가 되어 버린, 키만 멀뚱하니 큰 여자에게 야멸찬 대우를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마음을 구걸할 정도로 자존심이 없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찾는 사람이 없으니 공연히 잡생각만 든다. 차라리 주시자들이 들락거릴 때는 그들을 상대하는 것 때문에라도 그렇지 않았는데, 이렇게 텅 빈 공간에 앉아서 멀거니 허공만 보고 있자니 괜히 이런 저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떠올라 버린다.
지금 그녀가 있는 공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기이한 곳이었다. 입구도 없고 출구도 없고, 바닥이나 천장 같은 것도 없는 그런 곳. 뭔가 그럴 듯한 가구 같은 것조차 없이 그냥 텅 비어 있는 그런 장소다. 아마도 밤의 신이 뭔가 수작을 부려놓은 것이 아닐까 싶지만, 강제로 개종되어 포트니아 테론과 교감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그녀로서는 탈출은 꿈도 꾸기 어렵다.
“후…”
어째서일까. 공연히 한숨이 새어나온다. 눈을 감으면 자꾸만 아까 먹었던 숯불구이 같은 것이 떠올라서 잠을 청하기도 어렵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 누군가 몰래 들어와 자신을 덮치거나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깊이 잠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형진 앞에서 스스로 옷을 벗으며 범해 보라고 소리를 치긴 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다.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주위 환경의 변화를 느낄 수가 없으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기 어렵다. 그렇게 잠이 들어 있었는데도 역시나 누군가가 다녀간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허기가 진다. 시간의 흐름은 알 수 없지만, 어김없이 신체는 정해진 주기에 따라 신호를 보내온다.
남아있던 김밥을 먹었다. 역시나 맛이 없었지만, 그녀는 천천히 꼭꼭 씹어서 삼켰다. 그리고, 어느 정도 배가 차자 다시금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다가 또다시 깜빡 잠이 들었다.
그녀가 다시 잠에서 깨어난 것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향긋한 냄새 때문이었다.
“룰룰루…”
그다. 그 망할 놈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채 무언가를 요리하고 있다. 뭔가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마저 흥얼거리면서.
어쩐지 화가 치민다. 활이든 단검이든 뭔가 무기가 있다면 다가가 등판에 콱 꽂아 버리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아무런 공격 수단이 없다. 있다 해도… 과연 통할지조차 의문이다.
“깼으면 저쪽에 물 떠다 놨으니까 대충 씻고 와. 눈곱도 좀 떼고.”
“…”
역시나 기척을 알아차렸는지, 돌아보지도 않은 채 그렇게 말을 건네 온다. 그녀는 급히 고양이 세수하듯 얼굴을 문지르고는 한쪽에 놓여져 있는 물통으로 다가갔다.
물통을 보니 문득 몸을 씻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며칠째 감금되어 있는 상황이라 제대로 몸도 씻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뒤늦게 떠오른 탓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생리적인 욕구를 느끼면 용변을 볼 수 있는 화장실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정도. 하지만 그나마도 편하게 일을 보거나 하지도 못한다. 어디서 누가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니 일인들 마음 놓고 볼 수 있겠는가.
손과 얼굴을 간단하게 씻고 나오자, 어느새 요리가 완성되어 있었다.
“갑자기 이게 먹고 싶어져서 말이지. 불면 맛없으니까 얼른 먹어.”
“…”
식탁에 놓여져 있는 것은 구불거리는 기이한 형태의 면발이다. 반찬은 김밥에 들어가는 노란 무. 거기에 김과 깨가 뿌려진 작은 주먹밥 하나가 덤으로 놓아져 있을 뿐이다.
그녀에게 먹으라고 말을 건넨 형진은 할 일은 다 했다는 듯이 자기 몫의 라면을 후루룩거리며 먹기 시작한다.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보는 그녀의 입안에도 절로 침이 고일 정도다.
역시나 젓가락은 쓰지 못하니 포크로 스파게티 먹듯이 면을 돌돌 말아서 입으로 가져간다. 약간 매콤하면서도 묘하게 감칠 맛이 난다. 뭔가 인공적인 느낌이 가득하면서도 이상하게 끌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전에 그가 해주었던 다른 요리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지만, 그래도 차갑게 식고 굳어버린 김밥보다는 몇 배나 맛있다.
“더 먹을래?”
“…”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형진은 냄비에서 면발을 좀 더 건져서 그녀의 그릇에 담아주고는 나머지를 자신의 그릇으로 가져갔다. 후루룩거리며 잽싸게 면을 건져 먹더니 얇게 썬 노란 무를 으적거리며 씹어 먹는다.
“별로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라고는 하지만, 묘하게 싸구려틱한 이 맛이 또 끌린단 말이지.”
“…”
몸에 좋지도 않고, 그리 귀한 음식도 아니라는 건가. 신이라면 좀 더 몸에도 좋고 귀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을 텐데.
면을 다 건져 먹은 형진은 주먹밥을 라면에 넣고 그대로 말아 먹는다. 여자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는 역시나 자기 몫의 주먹밥을 같은 방식으로 라면 국물에 말아 먹었다.
눈이 확 뜨여지는 그런 느낌의 음식은 아니지만, 그렇게 밥까지 말아 먹고 나니 꽤 배가 부르다.
“끄윽. 잘 먹었다. 그릇 좀 씻어놔. 난 좀 쉬었다 가야겠으니까.”
“…”
그렇게 말하고는 침대 하나를 꺼내 벌러덩 누워 버린다. 아무리 무장을 갖추지 않은 상태라고는 하지만, 포크니 젓가락이니 하는 것들이 널려 있는 상태인데도 저렇게 무방비할 수가 있을까.
여자는 어느새 작게 코를 골며 자고 있는 형진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내 그릇을 챙겨 물통으로 가서 설거지를 했다. 그러나 그녀가 설거지를 마친 뒤에도 형진은 여전히 호화로운 침대 위에 누운 채 잠을 자고 있었다.
방심일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빈틈을 드러낸 것일까. 어느 쪽이 되었든 이건 기회다.
설거지 그릇 위에 놓여진 포크가 보인다. 아니, 이 상황에서는 포크 보다는 저 남자가 사용했던 길쭉한 쇠막대기가 더 유용할지도 모른다.
젓가락을 손에 쥔 여자는 겹쳐 쌓은 그릇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형진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비록 포트니아 테론의 힘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추종자가 되기 전에 이미 그녀는 숙련된 사냥꾼이었다.
발소리를 죽인 채 다가간 그녀는 젓가락을 양손으로 잡고는 대자로 누워 자고 있는 형진의 드러난 목을 향해 있는 힘껏 그것을 내리 찍었다. 가슴에는 뭔가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드러나 있는 부위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소용없었다.
“했냐.”
어찌된 영문인지 젓가락은 형진의 목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녀는 미처 몰랐지만, 이곳에는 이미 성역이 자리 잡은 상태라, 형진보다 강력한 힘과 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여자는 급히 물러나 젓가락을 단검처럼 역수로 쥐고는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시야가 온통 새카맣게 물들어 버리며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보고 느낄 수 없는 철저한 암흑. 그 속에서 한 줄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난 우리가 조금쯤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마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한 형진의 목소리. 여자는 기겁하며 발악하듯 외쳤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누가 너따위와!”
“그래?”
여자는 급히 젓가락을 든 손을 휘저었지만, 이내 그녀의 손목은 강인한 누군가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윽!”
“아무튼 인사를 받았으니, 나도 답례를 하는 것이 도리겠지.”
“크윽! 이거 놔! 놓…”
발버둥을 치며 자신의 손목을 잡은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려 했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누군가에 의해 입술을 빼앗기고 말았다.
“읍! 으읍!”
그냥 입술을 살짝 맞추는 정도가 아니다. 거침없이 혀가 밀려들어와 그녀의 입안을 마구 휘저어 버린다.
난생처음 겪어 보는 격렬한 키스에, 여자는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손과 발은 여전히 발버둥치고 있었지만, 이내 호흡이 가빠지며 의식이 몽롱해진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몹쓸 마법이나 약물 같은 걸 음식에 타기라도 한 걸까.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손발의 힘이 마치 무언가에 휩쓸리듯 빠져 나간다. 격렬했던 발버둥도 잠시 후에는 약한 버둥거림 정도로 변해 버렸다.
여자는 자신이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짙은 어둠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고 느낄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입술을 비집고 들어와 마치 촉수처럼 자신의 혀와 뒤엉키는 무언가에게 모든 감각이 집중되어 버린 탓에, 그녀는 일반적인 키스로는 느낄 수 없는 극한의 무언가를 전해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끝도 없이 이어져 버릴 것 같았던 키스는 어느 순간 끝나 버렸고, 그렇게 서로의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 암흑 속에 빠져 버렸던 모든 감각이 원래대로 돌아와 버렸다.
그녀는 그대로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손발에 힘이 빠져 더 이상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그리고 꿈인지 현실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몽롱해진 청각을 통해, 그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바로 혀를 깨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군. 뭐… 나야 좋았지만.”
“…”
그제서야 여자는 그런 식의 저항 방법도 있었음을 깨달았다. 어찌나 정신이 없었는지, 자신의 입안으로 밀려들어온 상대의 혀를 깨물어 버린다는 식의 방법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감히… 감히 날…”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범할 테면 범해 보라고 옷까지 벗어던지던 주제에.”
“그, 그건…”
형진은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여자를 향해 피식 웃고는 벌여 놓았던 요리 도구나 식기, 그리고 침대와 테이블 같은 가구를 모두 수습한 뒤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여자는 멀거니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가 그가 놓고간 물통으로 다가가 필사적으로 입안을 헹구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그의 흔적이 남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