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0)
택규가 말했다.
“아! 나 지금 좋은 생각났어. 이런 거 어때?”
대체로 얘가 이런 말을 하는 건 헛소리할 때다.
이번에도 느낌이 불길하다.
“뭔데?”
택규의 얘기는 간단했다.
“내가 자본을 댈게. 니가 초능력을 대. 그렇게 투자해서 반반씩 나눠 갖는 거야. 어때?”
“헐······.”
초능력으로 예지해서 반씩 나누자고?
너무 좋은 제안이라 귀가 솔깃하다. 그러나 투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손실을 동반한다.
세상에 돈을 잃기 위해 투자하는 사람은 없지만, 투자로 돈을 번 사람보다 날린 사람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러다가 날리면? 내가 절반 물어내고?”
“물어낼 돈은 있냐? 그땐 어쩔 수 없는 거지.”
그 말이 맞다.
현실적으로 큰돈을 날리면 내가 물어줄 방법이 없다. 결국 이익은 절반씩 나누고, 손실은 택규 혼자 부담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런 식의 계약을 해도 되는 거야?
“이건 돈 놓고 돈 먹기야.”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하고 싶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큰 문제가 있다. 택규가 말한 대로 이게 초능력이라고 해도 보이는 게 100퍼센트 맞다는 보장이 없다. 어쩌면 적당히 높은 확률의 미래를 무작위로 보여주는 건지도 모른다.
과연 눈앞에 떠오르는 홀로그램만 믿고 투자를 할 수 있을까?
투자에서 정보란 확실한 출처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정보는 사실상 쓸모가 없다.
계속 맞췄다지만, 혹시 다음번에 틀리면?
이제까지 본 백조가 전부 흰색이라고 해도, 세상에 검은백조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예지가 틀려서 수십억을 날리면, 과연 우리가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데 반대로 초능력이 진짜라면?
택규의 말대로 이건 엄청난 기회다. 나에게는 초능력이, 택규에는 130억의 돈이 있다.
예지를 해서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망설이는 나에게 택규는 보란 듯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친우여, 내 손을 잡아. 이 손 잡으면 우리 같이 투자하는 거다.”
“안 잡으면?”
“다시는 볼 일 없는 거지.”
난 택규의 얼굴과 내민 손을 번갈아 보았다.
잠시 고민하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띠리링!
과동기인 민영이었다. 난 일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따 홍대에서 기홍 선배랑 술 마시기로 했는데, 올래? 너 전역했다니까 같이 보자고 하는데.]기홍 선배는 내가 입학했을 당시 경영학과 과대였다. 성격이 좋고 인망이 있어서 후배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잘 따랐다.
나랑은 동아리 활동도 같이 해서 꽤 친분이 있는 사이다.
군대 간 후에는 보지 못했지만, 그 사이 졸업하고 KYB투자증권에 취업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언제까지 가면 되는데?”
“알았어.”
난 다시 택규를 보며 말했다.
“나 지금 약속 있으니까, 자세한 얘기는 갔다 와서 하자.”
내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자 택규는 당황하며 소리쳤다.
“야야! 가지 마, 임마!”
* * *
지하주점 안으로 들어가니, 민영이와 경일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민영이가 손을 흔들었다.
“어이! 강병장!”
“이제는 예비역이야.”
경일이가 웃으며 물었다.
“대체 얼마만에 보는 거야? 군대는 갔다올 만해?”
난 솔직한 감상을 얘기했다.
“웬만하면 가지 마.”
거의 2년 만에 만나는 동기들이다.
그래도 민영이랑은 자주 연락한 덕분에 그동안 학과 내에서 벌어진 일들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맞은편에는 처음 보는 여학생 둘이 앉아있었다.
“누구······?”
내 물음에 경일이가 말했다.
“아! 인사해. 올해 들어온 1학년들. 이쪽은 우리 동기인 강진후. 군대에 있다가 얼마 전 나왔어.”
그녀들은 날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민영 선배님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큰 키에 금발로 염색한 여학생의 이름은 신유리. 그리고 작은 키에 단발머리를 한 여학생의 이름은 황지혜였다.
전역한 지 얼마 안 돼 낮아진 내 눈을 감안하더라도 둘 다 꽤 예쁘게 생겼다.
경영학과는 과 특성상 남초현상이 심한 곳이다. 몇 년 전부터 여학생들이 늘었다지만, 그래도 7대3 정도로 남자가 많다.
때문에 여자 신입생은 그 자체로 환영받는 존재다.
대충 차려입고 나온 민영이에 비해 경일이는 머리에 왁스까지 발라 힘을 준 상태였다.
경일이는 괜히 목소리를 낮게 깔며 유리에게 말했다.
“천천히 마셔, 유리야.”
“예, 선배님.”
“2학년 되면 김명준 교수님 강의들을 텐데, 그 교수님 강의스타일에 대해 조언을 해주자면······.”
정작 자기는 학점은 다 말아먹은 주제에, 여자후배 강의를 이렇게 신경을 써주다니. 내 동기지만 너무 자랑스럽다.
“기홍 선배는?”
“일이 생겨서 조금 늦는대. 일단 우리끼리 마시자.”
경일이는 내 잔에 소주를 채워주었다.
“내년에 복학해?”
“생각 중이야.”
집안 사정과 등록금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 복학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가능한 빨리 복학해서 빨리 졸업하는 게 좋겠지?
우리는 술잔을 부딪치며 밀린 얘기를 나누었다. 잔이 비어 술을 따르려는데, 다른 손이 먼저 소주병을 붙잡았다.
“제가 따라드릴게요.”
유리는 내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어, 고마워.”
“저도 한 잔 주세요.”
난 그녀의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잘 마시네.”
비슷한 속도로 마신 경일이는 이미 취해서 헛소리를 하는 중이었다. 황지혜 역시 취했는지 반쯤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 신유리는 볼이 좀 빨개진 것을 빼면 멀쩡해 보였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소주 세 병까지는 거뜬해요.”
요즘 애들은 주량도 남다르구나.
빈속에 계속 마시다보니 금방 취기가 올랐다.
그렇게 30분 정도 웃고 떠드는데,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20대 후반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민영이는 재빨리 손을 들었다.
“여깁니다, 선배님!”
“다들 잘 지냈냐?”
맨날 과점퍼 입고 다니는 모습만 보다가 양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느낌이 색다르다. 좋게 말하면 사회인 같고, 나쁘게 말하면 아저씨 같았다.
기홍 선배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이야! 오랜만이다, 강진후. 군대는 잘 다녀왔어?”
“예.”
“휴가 나올 때 연락이라도 좀 하지, 짜샤.”
난 웃음을 지었다.
“취직한다고 바쁘셨잖아요. 잘 지내셨어요?”
“그냥저냥 살고 있다.”
민영이는 기홍 선배의 잔에 소주를 채워주었다.
“취업 못한 다른 선배들 보다는 낫잖아요. 요즘 금융권도 신규채용 줄이는 추세 아니에요?”
기홍 선배는 지친 표정으로 소주를 한 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아무래도 그렇지. CB야 그나마 낫겠지만, IB는 내년 신규채용이 올해보다 더 줄어들 거야.”
은행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상업은행(Commercial Bank)과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이다.
상업은행은 예금과 대출을 통해 수익을 내고, 투자은행은 자본을 모아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는 형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자는 그냥 은행, 후자는 증권사나 투신 등으로 불린다.
기홍 선배가 입사한 KYB증권은 당연히 후자다.
“요즘 인력재배치다 구조조정이다 하며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해.”
경일이가 놀라며 물었다.
“구조조정이요? KYB증권 잘나가잖아요.”
“잘나가면 뭐하냐? 이번에 KYB증권과 두리증권이 합병하잖아. 자본규모 2위와 4위 증권사가 합쳐지는 만큼 합병이 끝나고 나면 업계 1위로 올라설 거야. 대형 IB가 탄생한다는 건 좋은 일인데, 직원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은 얘기가 아니지. 합병 이후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감원이 뒤따르니까. 업무가 겹치는 직원들은 다른 업무에 재배치되거나 알아서 퇴사해야겠지.”
“선배는 신입이라 괜찮은 거 아니에요?”
구조조정은 보통 연봉이 센 높은 연차부터 이뤄지기 마련이다.
원래 증권사는 다른 직종에 비해 정년이 길지 않은 편이다. 40대만 되어도 자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
“신입사원 상대로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중이라 이래저래 고민이야. 업무가 생각한 것만큼 재밌지도 않고.”
“그만두면 어디로 가시게요?”
“사모펀드 쪽을 좀 알아보게. 원래 M&A 쪽에 관심이 많았어.”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는 일반적인 공모펀드와는 달리 기업인수를 목적으로 소수의 투자자들에게 거액을 투자받는 것이 특징이다.
민영이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취업만 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얘기를 끝낸 기홍 선배는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민영이과 경일이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자연히 취업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된다.
경기가 좋고 증시가 활황이던 시절에는 경영학부 학생이라면 졸업하기가 무섭게······ 아니, 졸업하기도 전부터 모셔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전 이야기.
21세기 대한민국을 뒤덮은 청년실업의 그림자는 금융권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대부분의 거래가 전산화 되고 창구가 사라지며, 금융권은 인력을 줄이는 추세였다. 한 번에 취업에 성공한 기홍 선배는 운이 좋은 케이스.
전혀 다른 쪽으로 취업을 하거나, 취업을 못해 졸업을 미루는 선배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취업 스터디를 해도 부족할 판이다.
소주로 시작한 술자리에 맥주가 추가되었고, 슬슬 소맥으로 섞어 먹기 시작했다.
술에 취하면 말이 많아지는 것이 기홍 선배의 특징. 역시나 얼굴이 벌게진 기홍 선배는 계속해서 말을 쏟아냈다.
“한국전쟁 이후 수십 년 동안 제조업은 눈부시게 성장했어. 서성전자나 은성자동차 같이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기업도 수십 개야. 그런데 은행, 증권사, 펀드회사 중 단 하나라도 외국인들이 알 만한 금융사가 있어?”
“없죠.”
“반면 피치, 무디스, JP모건, 모건스탠리, 골든게이트 같은 국제 IB들은 한국 시장을 잠식 중이야. 우리나라 대표기업이 뭐야?”
민영이가 대답했다.
“서성전자죠.”
“다들 그렇게 말하지. 그런데 냉정하게 말해서 서성전자가 한국 기업이야?”
“회장이 한국인이잖아요. 코스피에 상장되어 있고.”
“그럼 중국 상거래업체인 알리지니는? CEO인 마원은 중국인이지만, 기업은 뉴욕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는데. 리테그룹은? 계열사들 상당수가 거래소에 상장되어 있고, 매출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지만, 회장은 재일교포고 지주회사는 일본에 있잖아.”
“그건······.”
기홍 선배는 코웃음을 치듯 말했다.
“서성전자 지분 53퍼센트를 외국인이 가지고 있어. 시총 절반을 외국계 IB, 국부펀드, 사모펀드, 연기금 등이 나눠 먹고 있다고. 어디 서성전자뿐이겠어? 거래소의 3분의 1이 외국인 거야. 상황이 이런데 매년 시즌만 되면 언론에서는 떠들어대지. 외국인들이 배당으로 얼마를 챙겨갔느니, 시세차익으로 얼마를 남겨먹었으니.”
“투자를 했으니, 이익을 가져가는 건 당연하지 않아요?”
내 말에 기홍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야. 여의도에 있는 수십 층짜리 대형 빌딩들은 누구 거야? 한강변에 있는 호텔들은? 동네마다 깔려있는 흥부네 찌개, 리디아 커피, 마스터 피자 같은 프랜차이즈들은? 전부 다 외국자본이 소유하고 있어. 심지어는 지금 마시고 있는 이 QB맥주도!”
소맥을 마시던 경일이는 딸꾹질을 하며 말했다.
“QB맥주는 우리나라 거 아니에요?”
“맛없다고 다 한국 맥주냐? 주산 그룹이 영국계 PEF인 KRR에 팔았고, KRR은 5년 뒤에 TM컨소시엄에 팔았지. 5배 남겨먹고.”
미래를 보는 투자자 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