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32)
난 밖으로 나오자마자 상엽 선배에게 전화했다.
“생각 좀 해보겠다는데요.”
[한국대 종신교수면 교수 중에서도 상위 1퍼센트 안에 들어. 과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까?]“그럴걸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모험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교수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성, 그리고 명예가 보장된다. 그러니 다들 교수가 되기 위해 애쓰는 거고.
그러나 내가 만나본 김호민 교수는 교수보다는 과학자에 가까웠다. 과학자라면 아무런 조건 없이 연구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에 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김호민 교수야? 찾아보면 다른 사람들도 많을 텐데.]“가장 적임자예요. 혹시 알아요? 연구개발에 성공해서 나중에 노벨상이라도 받게 될지.”
내 말이 농담처럼 들렸는지, 상엽 선배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니가 노벨경제학상을 받는 게 빠르지 않을까?]“에이, 제가 무슨 노벨경제학상이에요?”
노벨경제학상은 엄밀히 말하면 노벨상이 아니다. 스웨덴 중앙은행에서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해 제정한 상으로 수상자 선정과 상금도 노벨재단이 아닌 스웨덴 중앙은행이 담당한다.
그래도 경제학 분야에서는 가장 권위있는 상인지라 경제학자라면 대부분 수상을 꿈꾼다. 실제 수상자들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학들이다. 밀턴 프리드먼, 폴 크루그먼, 앵거스 디턴 등등.
당연하지만 투자 잘해서 돈 많이 벌었다고 받을 수 있는 상은 아니고, 경제학 분야에 큰 업적을 세워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소문은 깨끗하더라. 연구비 빼돌리거나 석박사 과정 밟는 애들에게 갑질하지도 않고.]훌륭한 과학자라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인격자인 건 아니다.
일부 교수들은 연구비나 지원금을 빼돌려서 착복하고, 연구생들에게 지급되는 월급을 갈취하거나 노예처럼 부려먹기도 한다.
대학에서 교수란 절대권력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관행처럼 벌어져도 쉽게 항의하지 못한다.
어차피 학계라는 게 그 바닥이 그 바닥인지라, 괜히 지도교수에게 밉보일 경우 평생 발도 못 붙이게 된다. 여기에 남자들은 군대문제까지 얽혀있고.
김호민 교수는 적어도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깨끗한 편이다. 연구생들을 잘 챙겨주었고, 논문이나 취업 등도 적극 도와주었다.
그럼에도 연구생들의 상황은 썩 좋지 못했다. 일은 많지만 월급은 거의 최저생계비 수준이다. 그나마도 대학에서 연구지원을 끊으면,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난 연구소를 세워 그들을 전부 고용하고,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김호민 교수가 그들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면, 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연구소 건물 좀 알아봐주세요.”
“미리 준비해서 나쁠 것 없잖아요.”
[알았어. 바로 진행할게.]상엽 선배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대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나?
난 바로 회사로 돌아가는 대신 잠깐 걸으며 캠퍼스를 둘러보았다. 점심때라 그런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저씨티가 나는 고학년들도 보였고, 아직 고등학생티가 남아있는 파릇파릇한 신입생들도 보였다.
이제 막 학기가 시작된 터라 그들의 표정에는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가득해 보였다.
한때는 나도 저런 풋풋한 시절이 있었지.
……라고 생각하니, 왠지 엄청 나이를 먹은 것처럼 느껴진다.
만약 이쪽 일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계속 학교 다니며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묘하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살짝 들고.
애들은 뭐하고 있으려나?
그때 이후 동기들과는 연락이 전부 끊겼다. 민영이와 경일이 본 지도 엄청 오래됐구나.
난 일단 경영대 쪽으로 향했다.
유리는 오늘 학교에 왔나 모르겠네.
연락을 해보려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놀랍게도 유리였다.
“어, 유리야.”
유리는 다급하게 말했다.
[선배 혹시 학교에 왔어요?]“응. 어떻게 알았어?”
[지금 어디에요?]“경영대 건물로 가는 중이야. 거의 다 왔어.”
내 말에 유리가 소리쳤다.
“어째서?”
[지금 선배 왔다는 소문 퍼지는 바람에 강의고 뭐고 다 중단되고 학생들 이쪽으로 몰려와 있어요. 여기 오시면 빠져나가지도 못할걸요.]그 말에 난 깜짝 놀랐다.
“뭐?”
괜히 복잡한 일 생길까봐 김명준 교수님께만 말씀드리고 찾아왔다. 설마 학과장님께서 소문을 냈을 리는 없을 텐데.
“누가 소문낸 거야?”
[혜미 선배가요.]“응? 이혜미?”
걔가 여기서 왜 나와?
[학과장님 만나고 나오는 모습을 봤대요.]“…….”
정말이지 걘 내 인생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구나.
난 재빨리 고개를 숙인 다음 몸을 돌렸다.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
그 순간, 누군가 내 팔을 붙잡았다.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자 손에 핸드폰을 든 유리가 서있었다.
유리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여기 있었네요, 선배.”
“하아. 놀랐잖아.”
“오랜만이에요.”
금발을 포니테일로 묵고, 무릎까지 오는 티어드 스커트에 흰색 목폴라를 입고 있었다. 여전히 귀엽고 발랄한 모습이다.
유리는 핀잔을 주듯 말했다.
“학교에 오면 온다고 미리 연락하지 그랬어요?”
“안 그래도 연락하려는 순간 전화가 온 거야.”
“정말요?”
처음 만났을 때는 1학년이던 애가 어느새 3학년이 되었다. 시간 참 빨리 가는구나.
마침 한 무리의 학생들이 우리 옆을 지나갔다.
“무슨 일이야?”
“강진후가 학교에 왔데.”
“진짜야? 경영학과 그 강진후?”
“그래. 오타쿠컴퍼니 CEO.”
“OTK컴퍼니 아니야?”
“대박이다. 어서 가보자!”
“…….”
내 인기가 이 정도였어?
누가 보면 할리우드 스타라도 온줄 알겠다.
사실 인기라기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웠다. 강진후가 누군지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심정이겠지.
유리는 내 손을 붙잡고 이끌었다.
“붙잡히면 큰일이에요. 빨리 도망가요.”
우리는 재빨리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난 운전석에 올라탔고, 유리는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올라탔다.
“바로 회사로 갈 거죠?”
“응?”
“전에 회사 구경 시켜준다고 했잖아요.”
“…….”
내가 그랬었나?
“너 수업은 어쩌고?”
“다 끝났어요.”
“진짜야?”
유리는 슬쩍 내 시선을 피했다.
“그럼요.”
“…….”
왠지 땡땡이치는 것 같은데.
“자자, 강 기사님. 얼른 출발하시죠.”
“알았어.”
난 차를 출발시켰다.
* * *
회사로 가는 동안 유리는 학교 일에 대해 이러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민영 선배는 방산업체에 취직했어요. 경일 선배는 카투사로 갔구요.”
“둘 다 당분간 고생 좀 하겠네.”
그래도 병장 전역한 사람으로서 말하는데, 그냥 군대 가는 것보다 백배는 낫다.
“혜미 선배가 후배들한테 선배 얘기 엄청 하는 거 알아요? 신입생들은 다들 둘이 썸 타던 관계인 줄 알아요.”
“…….”
이런 건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소 안 되나?
“걘 졸업 안 한데?”
“학점 구멍 난 게 많아서 올해까지 다녀야 된데요. 졸업하면 OTK컴퍼니 입사할 거라고 자신하던데요.”
이건 또 뭔 소리야?
“아! 선아 선배는 졸업해서 GH건설에 취직했어요.”
“그래?”
그쪽으로 간 걸 보니, 아직 잘 만나고 있는 모양이다.
“저도 빨리 졸업해서 취직하고 싶어요. 잘하면 내년 1학기까지만 다니고 조기졸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에 난 적잖이 놀랐다.
“의외로 학점관리 잘했나 보네.”
“의외라니요? 저만큼 열심히 하는 학생도 없어요. 나중에 취직할 때 잘 부탁드려요, 대표님.”
“…….”
진짜 OTK컴퍼니에 오려고?
유리는 슬쩍 말했다.
“아빠랑 철균 아저씨가 선배랑 술 한 잔 하자고 하시던데.”
“나야 영광이지.”
“저도 껴도 돼요?”
“비즈니스자리 아니면, 상관없지 않나?”
“헤헤, 선배는 허락했으니까 아빠한테 말해봐야겠다. 그런데 무슨 일로 학교에 온 거예요?”
“그냥 오랜만에 학과장님도 뵙고…….”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 일이라 난 솔직하기 얘기했다.
“배터리 연구소를 설립하려고 하는데, 화학과 교수님 한 분을 연구소장으로 모셔오려고.”
“아하, 그것 때문에 직접 설득하러 온 거예요?”
“그런 셈이지.”
“자동차회사 인수하고, 배터리공장 세우고, 이제는 연구소까지. 일을 너무 크게 벌이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말이다.”
처음에는 그저 카로스에 투자했을 뿐인데, 어쩌다보니 자동차산업에 전방위적으로 손을 뻗치고 있다.
이게 과연 어떤 결과로 나오게 되려나?
“그런데 기초과학 연구면,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지 않나요?”
기술이나 특허가 그 자체로 돈이 되는 건 아니다. 그것을 상용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수한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중간에 더 나은 기술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장기적 안목으로 보고 투자하는 거지.”
빨리 되면 좋은 거고, 늦게 되어도 노벨화학상을 받을 만한 연구결과를 손에 넣을 수 있으니 좋은 거다. 투자해도 손해 볼 건 없겠지.
“정부는 수소차를 밀기로 한 것 같던데.”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덕분인지 수소차 육성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 벌써부터 지자체는 충전소 부지선정에 들어갔고,관공서는 수소차를 300대 구매하겠다는 계약을 맺었다.
지금 국내에 출시된 수소차라고는 은성차의 포텐HY밖에 없으니, 당연 포텐HY가 대상이었다.
수소차가 미래차로 급부승하기 시작하며 관련 주식들은 일제히 상승세를 나타냈다. 가장 혜택을 받을 거라 예상되는 은성차 역시 주가가 3퍼센트 가량 올랐다.
반면 전기차 관련주들은 약세를 보이는 중이고. 서성SB 주가 역시 다시 30만 원 아래로 떨어졌다.
만약 이대로 수소차가 대세가 되면, 전기차에 투자한 회사들은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내 손해도 엄청날 테고.
운전을 하는데 옆에서 유리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래?”
유리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요.”
* * *
회사까지는 금방이었다.
난 주차를 한 다음 바로 최상층으로 향했다. 유리는 CEO실을 둘러보며 연심 감탄했다.
“와아! 테헤란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여요. 선배 엄청 좋은 데서 일하네요.”
“아버지 집무실도 비슷하지 않아?”
RCK브로스 사옥도 강남에 있고, 빌딩 크기도 엇비슷하다.
“에이, 이 정도는 아니에요. 택규 오빠도 여기서 같이 일하는 거예요?”
“COO실은 아래층에 따로 있어. 구조는 거의 동일하고.”
“그럼 지금 아래층에서 일하고 있어요?”
“글쎄.”
요즘 e스포츠팀 창단한다고 나름 바쁘게 돌아다니는 중이다.
“가자. 다른 곳도 구경시켜줄게.”
난 유리를 데리고 다니며 회사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었다. 그러다가 홍보실 쪽에서 기홍 선배와 마주쳤다.
기홍 선배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 신유리?”
유리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앗! 안녕하세요, 선배님.”
“여긴 어쩐 일이야?”
내가 대신 변명하듯 말했다.
“얘가 회사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요.”
기홍 선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렇군요.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
무슨 의미야?
대충 구경을 끝마친 뒤 난 유리에게 물었다.
“점심 아직 안 먹었지?”
“예.”
“나가자. 맛있는 거 사줄게.”
“그래요. 배고프니까 어서 가요.”
건물 밖으로 나가는데, 마침 택규와 엘리가 같이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헤이, 진후! 학교 잘 다녀왔어요?”
날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던 엘리는 옆에 있는 유리를 보았다.
“이분은……?”
난 당황하며 말했다.
“아! 이쪽은 학교 후배에요.”
“그래요?”
엘리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요, 전 엘리 킴이라고 해요.”
유리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신유리예요.”
웃으며 인사하던 둘은 멈칫했다. 서로의 이름에서 뭔가를 떠올린 모양이다.
“예전에 방학 때 진후 선배랑 같이 학교에 왔다던 외국인이……?”
“집까지 따라갔다던 후배가……?”
“…….”
“…….”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택규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네, 친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