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Alter ego RAW novel - Chapter 130
분신으로 절대무신 130화
42장. 흑객(黑客)
사들였던 어린 소가 이제 밭일을 나가지 못할 만큼 늙어버렸다.
나는 힘겹게 울어대는 늙은 소를 매만지며 그간 많은 시간이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어지간히도 평화롭긴 평화로웠던 모양이다.
이처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 나의 생각이 보이기라도 했는지 나를 따라 논일을 하러 온 장이는 나에게 묘한 웃음을 지었다.
말하지 않아도 장이의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지 않았기에 나 또한 그와 마주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운명은 내가 이런 평화를 누리는 것을 마냥 두고 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해 겨울.
첫 번째 흑객(黑客)이 나를 찾았다.
장일은 노랑과의 혼인을 더는 끌지 않았다.
이미 약혼을 통해 천지신명께 고한 바가 있었으니, 달리 기일을 잡을 것도 없다 본 것이다.
장일이 그라 뜻을 보이자 가장 반긴 것은 노추심이었다.
이제 가주로서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노추심은 과거 그랬듯 어린아이처럼 이를 크게 반겨댔다.
갑작스럽게 뜻을 보인 장일이었으나, 그의 가족들은 의외로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뭐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혼인을 하려고 가족들을 다 데려오려는 거 아니었어?”
“하하하! 참으로 좋은 생각입니다. 혹시나 하여 예물을 챙겨오긴 하였습니다.”
“그간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이제야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네요.”
“잘 생각했느니라. 안 그래도 사람을 보내 날을 잡았건만 생각보다 크게 이른 날짜라 아쉬워하던 차였다.”
“축하드립니다. 형님.”
“크흠.”
기다렸다는 듯한 가족들의 반응에 장일은 헛기침을 흘리며 자신이 그간 안일한 태도를 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천하의 일이 우선이었다고 하지만, 확실히 약혼을 치르고 8년을 넘게 떠난 일은 실로 사람이 할 짓이 못되었다.
그는 다시금 자신을 묵묵히 기다려주었던 노랑에게 그 마음을 다할 것이라 여기며 혼인을 준비했다.
당장이야 혼인이야 하고 싶었지만, 장일의 어미의 말대로 기일이 곧 코 앞이라 그날로 잡혔다.
코앞이라고 하지만 보름 정도의 여유는 있어, 그 준비를 하는 것에는 문제는 없어 보였다.
오히려 급한 것은 장일이 아니었다.
생각지 못한 시기에 이르게 잡힌 무신의 혼인식에 참가하고자 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큰일이 난 셈이었다.
다른 이도 아닌 고금제일인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는 셈이니, 그럴 만도 했다.
강나라 왕실에서도 사람을 보낸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였는데, 아마 장일이 시일을 넉넉히 잡았다면 천하 모든 왕실에서 사람을 축하 인사를 보냈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씨세가의 위치는 다시금 높일 수 있겠구나!”
우충은 장일의 혼인 사실을 생각 이상으로 크게 기뻐했다.
그간 우씨세가는 무신의 집안과 사돈 관계라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장일이 실종하던 당시에 맺어진 집안이기도 한 데다, 이후에도 장일의 성향을 알기에 나서지 않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는 달리 나서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니,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우씨세가는 강나라 제일의 세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처럼 강나라 전체가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장일은 정작 여유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혼인에 나서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정작 주인공인 장일이 해야 할 일이 없어 생긴 일이었다.
-야옹!
장일은 어리광을 부리는 백호의 턱을 긁적이며 그의 하소연을 듣고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당. 내가 직접 죽인 대물급만 열 마리였당.”
대물급이라고 하면 초절정 무인이 상대해야 할 요괴를 말한다.
그런 대물급이 열 마리나 되었으니 그 아래의 요괴들이 얼마나 바글바글했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일이다.
아마 수백 마리가 들끓었을 것인데, 백호는 그런 요괴들 대부분을 상대해야 했다.
이들 요괴들이 노랑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의 정수를 품은 노랑은 요괴들에게 있어 상당히 먹음직스러운 영약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평소라면 그를 노리는 요괴들은 없을 것이다.
그 철없는 언행과 달리 어찌 되었든 백호는 대요괴라, 그 체취가 주변에 맴돌고 있는 것만으로도 크게 위협이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율에게 이지를 잃고 힘을 취한 요괴들이 그런 사고를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덕분에 백호는 밤이 되면 그 요괴들을 처리하기 위해 날뛰어 다녀야 했다.
이 부분은 장일도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고, 이 점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던 장일로서는 그의 투정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호가 마냥 억울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비록 강제적이기는 했다지만 대물급 요괴 열 마리를 비롯해 수백 마리의 요괴들을 잡아먹었던 백호의 격은 올라섰으니 말이다.
‘격만 놓고 보면 이 녀석의 어미 못지않구나.’
장일의 지도 아래 소화 못 한 기운을 온전히 다 채우고, 그 기운을 정순화 시킬 수만 있다면 백호는 전설의 구미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머, 백호가 여기 있었어요?”
“크흠.”
장일이 백호의 하소연에 질려갈 때쯤 마침 다미가 그를 찾았다. 그 뒤에는 조한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그간의 여정에 관계를 회복한 탓인지 조한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야옹!
다미가 얼마나 집요한지를 알고 있던 백호는 자신에게 손을 뻗는 다미에게서 서둘러 도망을 가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장다미의 손에서 벗어난 것이야 어렵지 않다지만 그 뒤를 이은 솥뚜껑만 한 조한의 손길에는 벗어날 재간이 없던 것이다.
-야옹! 야오오옹!
“그래그래. 나도 좋아!”
누가 봐도 살려달라는 몸부림을 치고 있는 백호였으나, 다미는 그런 모습이 그저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장일은 그런 백호의 요청을 슬그머니 넘겨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고라고 합니다.”
강나라 왕실에서 사람을 보낸다고 했는데, 의외의 거물이 찾아왔다.
다음 대의 왕으로 확정된 왕세자 강고가 이 축하 인사의 대표자로서 찾은 것이다.
그것도 급한 시일이었음에도 마차 열 대에 달하는 축하품을 가져온 것이라 이 점만 보아도 강나라 왕실에서 장일을 어찌 보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강고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일대에 이름난 많은 명사들이 그 혼약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들었다.
그렇게 몰려든 이들 중 대표자들만 모여들었음에도 수백에 달했으니, 남오가 이 혼인식으로 인해 다시금 혼란해진 것은 쉬이 유추할 수 있을 일이다.
그렇게 모여든 대표자들은 저마다 무신을 사로잡은 여인에 대해 궁금증을 드러내었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무신께서 이처럼 급히 혼인을 치르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던 것이다.
그런 이들의 의문은 노랑이 붉은 예복을 입고 등장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허! 저런 절세가인이 이런 곳에 숨어 있었단 말인가?”
“소문보다도 더하군!”
“과연 대영웅의 짝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구나!”
“무신께서 급히 혼인을 치르시려는 것도 이해가 되는군. 저 하늘의 선녀가 저러할까?”
이곳에 모여든 이들은 저마다 그 권력과 부가 대단한 자이니 미인들이 수없이 만나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그 누구도 노랑에 비할 만한 여인을 보지 못했다.
하기야 안 그래도 합이 잘 맞은 백호의 정수를 무려 10년을 넘게 취하고 있었으니, 노랑의 미모는 단순히 아름답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야말로 범접할 수 없이 지나쳐 성스러울 지경이었다.
“이거 첩으로라도 다섯째를 밀어 볼까 했건만, 이래서야 말도 꺼낼 수 없겠군.”
강고는 어떻게든 무신과 연을 맺어보려 했던 일이 무산되어 버리자 그 아쉬움을 쉬이 감추지 못했다.
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꿩 대신 닭이라 무신의 집안에 아직 혼인을 하지 않은 동생들이 둘이나 있음을 보았던 그들은 이를 노려보고자 했다.
그것은 그 옆에 있던 무왕도 다르지 않았다.
아마 이 혼인식이 끝이 나면 수많은 혼인첩들이 장씨세가에 몰려들 건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무오 전체가 들썩거리는 혼인식은 해가 지기도 전에 그 끝을 맞이했다.
하지만 온전히 그 행사가 끝이 난 것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뒤였다.
아무래도 몰려드는 손님들을 대접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장일의 명성이라면 이들을 일일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었으나, 처가인 노씨세가를 위해 장일은 이처럼 시간을 내었다.
이것으로 그가 처가를 어찌 여기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아마 이 혼인식이 끝이 나면 우씨세가와 더불어 노씨세가 또한, 강나라 너머로 이름이 알려질 것이다.
장일이 노랑과 부부가 된 그해, 그 이름만 들어도 놀랄 만한 많은 혼처들이 장씨세가의 문을 두드렸다.
이 중 가장 많은 혼인첩을 받은 이는 장이였다.
본래라면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조한이 그랬어야겠지만, 그리 쉬이 다가가기에는 조한의 위치가 낮지 않아서다.
무신인 장일에 가려져서 그렇지, 무왕이라는 별호가 가지는 의미는 여느 대국의 왕과 비할 만한 것이었다.
욕심이 난다고 해서 쉬이 혼인첩을 보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에 반해 장이와 다미는 이렇다 할 명성이 없었으니, 그나마 다가가기 쉬운 존재였다.
이 중 다미는 아직 나이가 어렸으나, 장이의 경우는 혼인을 할 시기에 맞아떨어졌으니 이처럼 혼인첩이 몰려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장이가 선택한 여인은 따로 있었다.
“난감하군요. 저는 이미 혼인을 약속한 이가 있습니다.”
“지효를 말하는가 보구나.”
“어라? 알고 계셨습니까!”
장일이 대번에 이를 알아보자 장이는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게 지효는 그의 고향에 있는 지 씨 아저씨의 셋째 딸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워낙 활발하여 사내처럼 옷을 입혔던 아이였고, 하여 한때는 장이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지효가 치마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는 알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내였을 줄 알았던 친구가 여인이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어딘가 선머슴 같은 지효의 모습이 장이의 취향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지효를 보기 위해서라도 마을로 종종 찾아들었던 장이였고, 그 과정에서 그의 형이 그랬던 것처럼 둘만의 혼약을 했던 모양이다.
아직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일을 오랫동안 집을 떠났던 형이 알고 있었으니, 장이로서는 그리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일은 이미 그에 대한 소식을 벌써 두 차례나 들어본 바가 있었다.
화선 때 그의 가족들이 어찌 지냈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도 장이는 지효와 혼인을 했으며, 이는 지난 다섯 번째 분신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이를 보며 지효와 장이의 연이 그와 노랑만큼이나 짙은 모양이다.
“일이 이리된 거 올해가 가기 전에 네 혼사도 치르는 게 옳겠구나.”
“네? 그리 빨리 말입니까?”
“뭘 그리 놀라느냐. 너도 좋고 그 아이도 좋으니 혼인을 약속한 것 아니더냐? 무엇보다 사내인 너와 달리 그 아이는 적은 나이가 아니다.”
“……그걸 아시는 분께서 형수님을 그리 홀로 두셨습니까?”
“크흠.”
장이는 장일의 마지막 말에 황당하다는 듯 그리 말했고 그 말에 장일은 할 말이 없다는 듯 그저 헛기침만을 해댈 뿐이었다.
어찌 되었든 장일이 그리 말을 꺼내자, 장이의 혼사도 빠르게 진행이 되어갔다.
마침 지효의 아비 또한 지효의 혼사에 고민을 하던 차라 누가 더 말할 것도 없이 말을 맞춘 것이다.
덕분에 그해 겨울이 넘기도 전에 장이는 지효와 혼인을 하게 되었는데, 급한 게 아니라는 말을 한 것과 달리 장이는 종종 실실 새어 나오는 미소를 잡지 못한 걸 보면 어지간히도 좋은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