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Alter ego RAW novel - Chapter 27
분신으로 절대무신 27화
-철퍽…….
어느새 고여 든 피 웅덩이를 짓밟으며 주방을 나선 장일은 짜증 어린 눈빛으로 흑점의 객들을 바라보았다.
“더럽게 많네.”
이 작은 객점에 객으로 온 이가 스물하나였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인육이라는 특식을 즐기러 이곳까지 온 이들답게 하나같이 범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공을 다루는 자만 열다섯이었는데 저마다 험악한 인상에 살기 등등한 기색을 보이는 것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너무도 잘 어울렸다.
그에 반해 상인과 관리로 나누어지는 여섯은 잘 못 온 것이라 생각될 만큼 어울리지 않았다.
하나같이 사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나 하나 있는 관리의 경우는 누가 보아도 청렴하고 엄중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광경을 마주하였음에도 의외로 장일은 놀라 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혈마대전에서 혈교와 관계를 가졌던 배신자들이 저러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철저히 사람들을 기만하며 광기를 심중에 품었던 그들은 어떤 적보다도 더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였다.
그런 면에서 겨우 인육 따위에 정체를 드러낸 관리는 순진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주 지랄들을 하는구나.”
장일은 가지각색의 객들에게 그 말을 씹어 뱉으며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놈!”
그러한 장일에게 먼저 칼을 들이댄 것은 어느 상인의 호위로 온 중년 무인이었다. 실력은 일류라 할 만한 자로, 그는 장일에게서 느껴지는 기도나 그가 어린 외모를 지녔다는 점에서 자신만만하게 크게 칼을 휘둘렀다.
-카아앙! 차아아아악!
장일 또한 식도를 마주 휘둘렀고, 그 결과 칼 하나가 부러져 튕겨 날아갔다.
보통은 칼의 정련 정도를 살필 때 식도가 부러지는 것이 맞았으나, 막상 나타난 결과는 달랐다.
부러진 칼날의 조각은 식도가 아닌 호위 무사의 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 날아간 칼날에 신경을 쓰는 이는 없었다.
-차아아악!
뒤늦게 호위 무사의 몸이 세로로 나누어지며 피를 비롯해 온갖 내장 따위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역겨운 피 냄새가 모락모락 열기를 보이며 흑점을 가득 채워갔다.
보통 이러한 모습이면 겁을 먹거나 인상을 찌푸리게 마련인데, 그들 중 누구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혈향에 입맛이라도 도는 듯 오 척 단신의 노강호인 하나가 혀를 널름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마 요리사도 죽였을 터. 이렇게 된 거 어린 네 녀석을 산 채로 회를 쳐 먹어야겠다.”
그러며 스산한 살기를 드러내는 그의 두 손에는 어느새 붉은빛을 띤 단검 두 자루가 있었다.
“하하! 오랜만에 광천혈마 님의 혈루비(血淚匕)를 보겠구나.”
유독 살집이 많은 상인 하나가 기대가 된다는 듯 탄성을 보였다. 그에 대한 감상은 대다수가 다르지 않은 듯 저마다 기대 어린 시선을 보였다.
그처럼 누구도 장일이 광천혈마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식도로 일류 무인의 칼을 부수고 두 쪽으로 내버린 장일의 재주는 대단한 것이라지만 지금 나선 이는 최근 오나라에서 유명세를 보이는 사파 고수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단검 두 자루로 정파 무인 수십을 상대로 몰살시켰던 광천혈사로 인해 그의 악명은 이미 여느 거마 못지않았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약관 정도에 불과한 어린 사내와는 급이 다른 것이다.
“흥!”
-휘익.
장일은 거드럭거리는 그에게 콧방귀를 끼더니 이내 그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식도가 공간을 좁히며 광천혈마에게 날아들었다.
-퍼걱!
그리고 믿기 힘든 결과가 펼쳐졌다.
그가 날린 식도에 광천혈마가 절명한 것이다. 그것도 제대로 된 방어도 하지 못한 채 어깨부터 심장까지 박살이 나버린 모습은 과연 그가 광천혈마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아무리 거리가 가까웠다지만 암기도 아닌 날아오는 식도를 막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막는 것도 아닌 피하려 했던 광천혈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믿기 힘들어하는 그들과 달리 장일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혈루비라고? 뭐 나름 쓸 만해 보이긴 하군.”
그는 광천혈마가 무너지기도 전에 다가오더니 그의 무기 혈루비 한 쌍을 거두었다.
단도는 그가 주로 다루는 무기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한들 식재료를 다루는 식칼에 비하면 선녀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혈루비는 거마의 무기답게 명도의 반열에 든 무기라 장일의 활검을 묘를 쉬이 담아냈다.
-우우웅!
심상치 않은 울음이 혈루비에서 흘러나오자, 그제야 흑점의 객들은 긴장 어린 눈빛으로 장일을 노려보았다.
우연이든 뭐든 간에 어느새 둘이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지금 그들도 위기감을 느낀 모양이다.
“죽여라!”
순간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달려들었고, 이런 그들의 흉흉한 모습에도 장일은 긴장한 모습 없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일단 두 명만 남기겠다.”
-후우우웅!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칼날이 번쩍이며 장일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특히나 정면에서 장일을 노리는 유독 뾰족한 칼은 대단히 매서웠다.
광천혈마에 미치지 않지만, 그 칼날의 주인 또한 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라서다.
-까가가강! 까강!
장일에게 쏟아지는 공격은 그야말로 칼날의 그물이나 다름없었으나, 놀랍게도 장일이 아무렇게나 휘두른 혈루비는 철옹성의 모습을 보였다.
모든 공격이 허무하게 막혔는데, 더욱 무서운 것은 그것이 한 자루의 혈루비에 의해 벌어지라는 점이다.
그 말은 아직 여유가 있다는 것이었고, 이내 펼쳐진 결과는 그들에게 절망을 주었다.
-서걱, 서걱…….
붉은빛이 번쩍일 때마다 팔이든 머리든 가릴 것 없이 떨구어져 나갔다.
-푹, 푹!!
자연 간간이 비명 소리가 들렸으나, 그 또한 어느새 숨통이 끊겨 제대로 잇지도 못한 채 절명하고 말았다.
그렇게 열셋이었던 자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어 아홉이 되고 다섯이 되더니 어느새 마지막 하나만이 남았다.
-끄르륵!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은 자를 두고 누구도 운이 좋다고 말할 이는 없을 것이다.
등껍질 속에 숨은 거북이처럼 팔다리가 모두 잘린 채 버둥거리고 있는 모습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장일은 그런 기괴한 몰골을 무심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나…….”
갑자기 하나를 말하는 장일이었지만 그 자리에 살아남은 이들 중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앞서 장일은 두 명만 남기겠다고 이야기했으니, 그 말대로라면 이 살아도 산 게 아닌 자가 그중 하나라는 말이다.
“으아악!”
그때까지도 가식으로 무장하며 장일을 상대할 수를 떠올려 보려 했던 상인들은 그의 잔혹함에 미쳐 버린 듯 악을 쓰며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숫자가 다섯이었으니,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이었지만 이들의 바람은 헛된 것이었다.
-휘이이익- 파바바바박! 푸우욱!
장일이 아무렇게나 던진 혈루비 하나가 마치 살아 있는 듯이 꿈틀거리며 그들 모두를 꿰뚫어버렸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각기 뚫린 부위는 머리와 심장이 아닌 자가 없기에 당연히 살아남은 이도 없었다.
-저벅저벅.
장일은 이제 하나 남은 혈루비를 든 채 처음과 마찬가지로 흔들림 없는 태도를 보이는 관리에게 다가갔다.
-푹. 푹. 푹!!
“으음!”
장일은 잔악한 어린아이처럼 인형을 가지고 놀 듯 관리를 찔러댔다.
혈루비라는 이름이 괜히 난 것이 아닌 듯 그때마다 혈루비가 찔린 상처 부위에서는 피가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혈루비의 구조가 화살촉처럼 빼내었을 때 상처를 크게 헤집는 구조이다 보니 생긴 형상이었다.
대단한 것은 그런 혈루비에 벌써 수십 번이나 찔렸음에도 크게 비명을 지르지 않는 관리의 태도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그처럼 대범한 태도를 보이면 감탄을 하게 마련. 그러나 장일은 오히려 그 손길이 더욱 거칠어졌다.
그는 관리의 두 다리를 완전히 작살을 낸 뒤에야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혹시나 했건만, 네 녀석 혈교 쪽 놈이구나.”
“!!!”
그때까지 고통 속에서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던 관리가 장일의 그 말에 흠칫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내 그 안색을 고치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이만하면 원한은 어느 정도 푼 것 같은데 그만 죽여주는 게 어떤가?”
“죽이기는 무슨. 이제 흑점이 문제가 아닌데.”
-툭, 툭!
장일은 점혈을 펼쳐 출혈을 멈추게 한 것과 동시에 그를 잠재웠다.
혈교가 만들어낸 첩자라는 것을 확인한 이상 그를 심문하려면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장일은 대충 자신이 만들어낸 상처에 주변에 널린 옷을 찢어 쑤셔 넣는 것으로 응급처치한 뒤, 아직도 숨을 거두지 않은 또 다른 생존자에게 다가갔다.
“이대로 몇 달이고 살고 싶지 않으면, 흑점에 대해 아는 대로 불어.”
-꿀꺽.
당장 머리를 날려 버리겠다는 말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발언이라 그는 요란히 침을 삼키는 것을 끝으로 자신이 아는 대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이제 죽여, 죽여주…….”
그렇게 한참을 떠들던 그는 죽여달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며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사실 장일이 달리 손을 댈 필요도 없이 이미 그는 워낙 많은 피를 흘린 탓에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자신이 깨어났던 인육 푸줏간 같은 창고 못지않게 흑점 전체를 피로 더럽힌 장일은 그제야 객잔을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과거의 본신이 지녔던 물건들을 찾을 수가 있을까 싶어서다.
다행히 외진 곳이라 그런지? 아니면 생각보다 일찍 부활을 하여서인지 장일은 자신의 물건들을 모두 찾을 수 있었다.
덕분에 칼을 빼고는 그의 품에 있던 짐이 두 개가 되었다.
사문에서 받은 물건들이 모두 두 개가 된 셈이었는데, 일이 이리되자 장일이 가장 반겼던 것은 다름 아닌 적단이었다.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던 적단이 3개에서 6개가 된 것이다.
이번 흑점에서의 일로 하루빨리 본신의 무위를 찾으려 했던 장일로서는 나름의 기연 아닌 기연을 맞이한 셈이다.
그다음으로 그를 반긴 것은 역시나 돈주머니였다.
금으로 스물세 냥에 달하는 돈이 든 돈주머니가 두 개가 되면서 이제 그의 재산은 금 마흔여섯 냥을 손에 넣은 셈이다.
“일이 이렇게 된 거 정말로 도시로 이사를 생각해 봐야겠어.”
성주에게 받은 고루성의 저택은 그냥 놔두기에는 너무도 크고 좋았으나 문제는 유지비였다.
이만한 저택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세금 등을 다 합해서 연간 금 한 냥은 들어갈 것이다.
이렇다 보니 장일은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 가격이 올랐을 때 팔아버리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했는데, 이만한 돈이 들어온 지금은 도시로 이주하는 게 나았다.
고향의 논밭이야 소작을 주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 것이니, 때마다 찾아가 관리를 하면 될 일이었다.
“자세한 것은 어머니하고 이야기를 좀 더 해봐야겠지.”
장일이야 동생들의 교육을 비롯해 생활 수준을 따져도 도시에서 사는 게 이득이라는 것을 아니 이쪽으로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평생을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던 그의 어미에게는 그의 제안은 생각보다 곤욕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물론 고루성과 고향이 가까우니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넉넉잡고 이틀 만에 갈 수 있다지만, 이는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평생 몇 번 고향으로 발길을 들이지 못한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렇게 챙겨야 할 것을 다 챙긴 뒤에야 장일은 처음 떠올려야 했던 일에 대해 우려를 보였다.
“그러고 보면 분신은 어느 시대에 떨어진 거지?”
그저 그가 당장 알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같은 존재가 같은 시간대에 있을 수 없다고 했으니, 분신이 떨어진 곳은 첫 번째 분신이 살았던 시대와는 다른 시대일 것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