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틱. 틱.
기계의 작은 소음이 공간에 울려 퍼졌다. 부글부글하는 소리가 기계의 소음 뒤로 들려왔다. 나는 일단 앞에 보이는 광경에서 눈을 떼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카메라는 없고.’
다시 고개를 내렸다.
투명한 유리관 안, 형태가 겨우 잡힌 듯 보이는 괴생명체들이 호흡기를 착용하고 있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단순한 괴생명체면 몬스터를 만들어 내고 있나 싶었겠으나, 몬스터의 형태가 조금… 사람과 비슷해 보였다. 팔이 비이상적으로 길다거나 얼굴이 기괴할 정도로 비대 한 등의 차이점은 분명 있었으나 기본적인 몸의 구조가 우리와 같았다. 그리고 목뒤, 사이비들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데이비드가 느낀 사람의 기척이 이거였을까. 지나치게 많긴 한데.
‘부숴 버리고 싶다만.’
참아야 한다. 부수면 곧바로 들킬 테니까.
데이비드가 주변을 돌아다니며 책상 위의 서류 뭉텅이들을 눈으로만 훑어봤다.
“이거 무슨 글자인지 알아?”
“전 통역기가 아니에요.”
“그건 나도 알아. 근데 우리 나라 말을 잘하길래, 다른 나라 언어도 알까 싶어서.”
“저라고 모든 언어를 아는 건 아니에요.”
“일단 봐 봐.”
그러며 데이비드가 옆으로 몸을 치웠다. 도대체 뭔 글자길래 저러는 걸까 싶어 서류 하나를 내려다보니… 진짜 이게 무슨 글자인가 싶었다.
그것은 꼭 영화에서 보았던 고대 문자 같았으나, 왠지 모르게 몇 글자는 친숙했다. 이걸 어디서 봤지 하고 내가 곰곰이 생각하는 사이 데이비드가 쫄랑쫄랑 움직였다.
“이런 실험실이 진짜 있을 줄은 몰랐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뭐… 세상은 넓으니까요.”
나는 데이비드의 말을 적당히 흘려듣고 답하며 글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모르면 그냥 넘어가.”
“아뇨. 뭔가 알 것 같은데…….”
“이런 언어를 쓰는 나라가 존재하긴 해?”
“아뇨. 그건 아닌데…….”
“그럼 고대 문자 해석이 가능한 거야?”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냥 뭔가 익숙해서요.”
데이비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흥미를 잃고 주변을 배회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서류의 글을 몇십 번 반복해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알았어요.”
“응? 뭐가?”
“여기에 적혀 있는 글, 던전의 언어예요.”
“던전의 언어?”
검은 탑에서 보았던 소원을 들어주고 살을 취해 가는 비석. 그곳에 적혀 있던 언어와 글자가 겹친다. 그렇다면 이 서류에 적힌 것은 필시 던전의 언어인 것.
‘…던전의 언어까지 알고 있는 거면…….’
확실해졌다. 사이비들은 던전과 손을 잡았다. 그게 아니라면 이자들이 던전에 대해 깊게 파헤친 것.
하지만 아마 전자일 확률이 높았다. 이렇게 몬스터를 배양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교배를 통한 몬스터 개체 수집은 가능했어도, 이런 식의 몬스터 배양은 연구원들도 손을 뗀 상태였다. 안 해 본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몬스터 배양이 가능하다는 건, 그리고 문서에 던전의 언어가 적혀 있다는 건, 사이비의 간부 혹은 교주가 던전의 놈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손을 엄청나게 뻗었는데.’
나는 카메라로 조용히 영상과 사진을 찍어 냈다. 서랍이 여러 개 있고 로커도 있었지만 거기에 손을 대기는 힘들었다. 지문이 남거나 물건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눈치를 챌 수 있었으니까. 책상에 쌓인 서류 뭉텅이들을 하나하나 보고 싶지만 건들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넓기는 더럽게 넓네.’
실험실의 구조는 복잡했다. 허물 수 있는 벽은 다 허물어 공간을 억지로 만들기라도 했는지, 애매하게 꺾여 있는 벽이나 못생기게 튀어나온 벽 등 원래는 벽으로 막혀 있었을 것 같은 부분이 많았다.
조심스레 영상을 찍으며 돌아다니던 와중, 웬 철문 하나가 뜬금없이 눈앞에 나타났다.
‘열어 봐야 하긴 할 것 같은데.’
잠시 고민하다 나는 인벤토리를 손가락장갑으로 변형시켜 문고리를 잡았다. 잠겨 있지는 않았는지 문고리는 쉽게 돌아갔다. 나는 문고리에서 손을 놓고 고개를 돌렸다.
“데이비드 헌터.”
“으응?”
내가 부르니 데이비드가 성큼 다가와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움직였다. 이동을 위해 데이비드가 온 걸 확인한 후에 다시 문고리를 잡아 돌리려던 찰나. 철커덕! 문고리가 알아서 돌아가 열렸다.
문고리가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나는 곧장 손을 떼고 문을 연 존재를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문이 완전히 열리자마자 손을 뻗었는데.
“지언아.”
“…형?”
문양 개방을 완전히 한 상태의 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이 어떻게 여길 어떻게 들어왔어?”
“그… 이렇게.”
그러자 형은 흰 반가면으로 눈이 가려진 상태에서 흰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렸다. 그러니까 형 말은 흰 가면이 없으니 마스크로 보완했다 이 말인가? 뭐 이런 거로 뚫려. 너무 허술한 거 아니야?
“사람이 있는 거 알고 문을 연 거야?”
“너인 걸 알고 열었지. 계속 말하고 있었잖아.”
“여긴 어떻게 찾았는데?”
“유주한 헌터가 뭔가 이상한 게 느껴진다 해서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누가 이곳에 들어갔다 나오는 걸 봤어.”
“누가?”
“그냥… 안내인?”
“흰 가면 쓴?”
“응.”
“…그 사람이 왔다 간 지 얼마나 됐어?”
“내가 들어오기 바로 전에 여기서 나갔어.”
“…….”
형이 들어온지 조금 됐다는 가정하에… 시간을 두고 이곳을 살피러 오는 거면. 그 말은 또 올 수 있다는 뜻 아닌가?
“안쪽은 다 본 거지?”
“어? 어.”
“그럼 나가자.”
“왜? 나도 안쪽 한번 보고 싶어.”
“데이비드 헌터. 헛소리 말고 따라와요.”
“지언아, 저 사람은 왜 같이 있는 거야.”
“둘 다 조용히 하고, 일단 나가야―”
자박. 자박.
누군가가 계단을 통해 올라오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곧장 두 사람을 붙잡고 형이 열었던 문 안쪽으로 몸을 던지듯 집어넣었다.
텁. 문소리는 다행히도 작아 각종 기계 소리에 먹혀 들어갔다.
문 안쪽으로 들어오니 사람 한 명이 설 수 있는 폭의 복도가 쭉 이어져 있었다. 안쪽은 이미 형이 다 살펴보았으니 나가기만 하면 된다. 저 바깥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빨리 가라.
사락. 사락. 종잇장 넘기는 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렸다. 몇 분 동안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기계를 만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다룰 줄 아는 사람인 건가?’
그렇다면 나가서 제압해야 하나? 아니. 위험하다. 우리가 이곳에 왔다는 흔적조차 남기면 안 됐다. 이곳이 사이비의 본거지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수없이 많이 퍼져 있는 사이비의 연구실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 흔적을 남기면, 그 뒤에는 본거지를 더욱 철두철미하게 숨겨 찾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뿌리를 뽑아야 하나 줄기에 난 잎 하나만 뚝 뗀 격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지익. 지익. 들어왔던 존재가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멀어지고 멀어져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쯤, 형이 몸을 움직여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나는 형의 손목을 붙잡고 검지와 중지를 치켜들었다. 2분 정도 뒤에 나가야 완전히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이해를 한 건지 못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형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우리는 그렇게 2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데이비드가 흰 가면을 벗었다.
“스릴 넘친다, 이거!”
“…….”
“따라다니길 잘했다!”
나는 데이비드를 뒤로하고 형에게 물었다.
“형, 안쪽엔 뭐가 있었어?”
“…식물?”
“유리관 안에서 키워지는 식물이었는데, 움직였어.”
“…몬스터네.”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얻을 건 다 얻었으니 돌아가자. 데이비드 헌터는… 이만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벌써 끝이야?”
“벌써고 자시고 수색하려고 온 거예요. 실마리를 잡았으니 수색을 끝내는 건 당연하고요.”
“그래? 그럼 나중에 또 봐!”
또 볼 일이 있을까.
데이비드가 재빠른 속도로 저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게될 무렵. 아까부터 날 계속 쳐다보단 형이 물었다.
“영어는… 어쩌다 그렇게 잘하게 된 거야?”
“영어? 그냥… 좀 많이 쏘다녔지?”
“쏘다녀?”
“국적을 통으로 바꿔 버리는 방법도 있었으니까.”
“…아.”
“궁금한 건 그때 다 물어본 거 아니었어?”
“그럴 리가 없잖아. 그때는 당황스러워서 물어보고 싶은 것도 별로 못 물어봤어.”
“그래? 근데 왜 더 안 물어봤어?”
“…굳이 기억을 들쑤시고 싶진 않아서.”
“별로 그렇게까지 신경 안 써도 되는데.”
굳이 괴롭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내가 지나온 기억이고 내가 한 모든 행동들은 상황이 어쨌건 내가 선택한 거니까.
“우선 가자.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래.”
우리는 곧장 걸음을 돌려 홀로 향했다. 경매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태였다. 다만 경매보다… 다른 한쪽이 조금 시끄러웠다.
소란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지화연 씨와 승현 헌터가 네 명 정도 되는 사람들과 말씨름을 하고 있었다. 나는 류천화 씨와 가만히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아한 씨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타이밍 안 좋게 오셨네요.”
“네?”
“아!”
말씨름이 뚝 끊겨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지화연 씨와 승현 헌터와 싸우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왜.
“너 드디어 찾았다!”
뒤에서 류천화 씨가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헌터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한지언 헌터에게 본때를 보여 주려고 했는데 어디로 갔는지 못 찾았다더군.”
“…아.”
휴게방 복도에서 나를 찾던 그 사람들인 건가.
성큼 다가오는 모습들이 어째서인지 전혀 위협적이지 못했다. 나는 미간에 찌푸린 흔적이 가득한 남성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싸우시게요?”
“허? 자신 있다 이거야? 능력도 없는 사람들 가지고 싸움 놀이 하던 놈이!”
“상관은 없는데요. 여기서 저랑 싸우시면 방금 말씀하셨던 그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시고 덤비시는 거죠?”
말 그대로였다. 이곳에는 문양 발현자만 있는 게 아니라 문양이 없는 일반인도 가득했다. 그런데 싸운다? 그야말로 본인 이미지 실추시키기지.
“저는 이미 갈 데까지 다 갔으니 상관없는데요, 그쪽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다음으로 미루죠?”
“그럼 저쪽 공터에서 싸우면 된다. 이곳에 넓은 공간은 얼마든지 많으니까.”
“여기 처음 와서 안내를 받았을 때 물건을 부수는 등의 싸움은 자제해 달라고 들어서요.”
“그러니까 이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해변가에―”
“맞습니다. 될 수 있으면 자제해 달라 부탁하였죠. 능력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따각. 지팡이를 든 흰 가면의 주최자 K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저는 이 파티를 즐기려 연 것이지, 여러분들의 개인적인 화를 푸시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싸움은 안 하셨음 좋겠군요.”
“주최자. 이 자식이 한 짓을 몰라?”
“압니다. 다만 되도록 지성인으로서 장소를 가리시라는 뜻이죠. 또한, 이곳에서 싸움을 벌이면 피해를 보는 사람은 당신이 아닌 이곳에 모인 손님들이니까요.”
남성은 혀를 차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곤 무거운 발걸음 소리를 내며 홀을 가로질러 사라졌다.
주최자가 나를 보더니 흰 가면 아래 늘어진 눈을 휘어 웃었다.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아뇨, 아뇨. 주최자인 만큼 손님의 신변 보호는 저의 역이니. 오롯이 제 잘못입니다.”
그러며 주최자는 악수를 하자는 듯 내게 손을 건넸다. 손은 갈색 가죽 장갑으로 가려져 있었다.
나는 적당히 웃어 보이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장갑의 가죽은 매끄러우면서도 살의 주름처럼 자잘하게 패 있었다. 그 감촉이 매우… 기분 더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