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53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53화
* * *
“마담 드웰른이 야심 차게 준비한 의상입니다. 금실을 박아 새겨 넣은 화려한 무늬와…….”
“이건 무슈 트보앙이 클로드 님의 보석 같은 백금발을 확실하게 살릴 수 있도록 밤하늘 같은 실크 원단을 공수해서…….”
암브로시아 저택에서는 클로드를 가운데 두고 사용인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황실 파티에 참석하기 위한 의상이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용인들은 암브로시아 공자가 파티에 참석한다는 소문을 듣고 저택으로 밀물처럼 밀려오는 상인들 가운데 몇몇을 골랐다.
그중엔 다른 귀족들은 몇 달, 혹은 몇 년 전부터 약속을 잡아야만 만나 볼 수 있다는 유명한 디자이너도 있었다.
하지만 암브로시아 저택은 공작의 허락 없이는 제아무리 유명한 상인과 상단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드나들 수 없는 법.
그들은 클로드의 발끝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했다.
물론, 클로드가 마음에 쏙 들어 할 만한 의상 샘플을 놔둔 채 되돌아갔다.
“저는 이 두 분의 의상 중에 최종적으로 결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둘 중 뭘 입으시든 클로드 님께서는 단연 돋보이실 겁니다.”
론다 또한 신이 났는지 은근히 들뜬 목소리로 말을 보탰다.
마담 드웰른과 무슈 트보앙은 크롬벨 제국에서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디자이너였다.
대대로 마담 드웰른은 황제의 의상을 담당해 왔고, 무슈 트보앙은 황후의 의상을 담당해 왔다.
황족들이 입는 모든 의상은 두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만큼 두 디자이너의 콧대는 마치 하늘을 찌를 만큼 높았고, 사교 시즌에 그들이 디자인한 의상을 입고 등장하느냐 아니냐가 능력의 척도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 두 디자이너가 열 일 제쳐 두고 클로드의 의상을 맡겨 달라며 암브로시아에 보낸 아이 의상들만 해도 벌써 스무 개가 넘어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경쟁하듯 새로운 디자인을 보내오는 탓에 사라가 공작에게 암브로시아의 문을 걸어 잠가 달라고 할 정도였다.
“이건 아기 고양이 같고, 이건 아기 강아지 같고. 아……, 정말 어쩌면 좋지.”
어쨌든 클로드가 파티에 참석할 때 입을 의상은 최종적으로 마담 드웰른의 의상과 무슈 트보앙의 의상 중 하나를 입기로 하였다.
“유모, 그냥 아무거나 입으면 안 돼?”
“안 되죠! 클로드 님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자리란 말이에요.”
그 두 의상을 바쁘게 클로드의 몸에 대 보며 사라는 깊은 고민에 잠겼다.
“저는 마담 드웰른의 의상이 좋을 것 같아요. 화려한 문양이랑 딱 보아도 실 한 올 한 올 장신구 하나하나에도 엄청난 금액이 들어갔다는 게 보일 정도예요! 그야말로 암브로시아의 위상을 보여 주기에 정말 딱이죠!”
“전 다르게 생각해요. 무슈 트보앙의 의상은 마담 드웰른의 의상과 비교해 보면 단정한 감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클로드 님의 외모가 더욱 돋보일 거예요! 의상은 그저 거들뿐!”
사라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사용인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의상을 추천하느라 분주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는 마담 드웰른의 의상을, 하루는 무슈 트보앙의 의상을 입히고 싶었지만 클로드가 파티에 참석하는 것은 고작 하루였다.
에단은 절대 그 이상은 허락하지 않을 테니 사라는 아쉬움을 삼키며 결국 하나를 골라야만 했다.
“유모오……, 나 졸려.”
몇 번이나 이 옷 저 옷을 갈아입었던 클로드는 이제 피곤해졌는지 눈을 비비며 칭얼거렸다.
희미하게 울음기가 묻어 나오는 것을 보니 자고 싶은데 못 자는 것이 서러운 모양이었다.
“이리 오세요, 클로드 님. 제가 안아 드릴게요.”
“으응…….”
클로드는 사라에게 두 팔을 뻗으며 다가왔다.
그 모습에 사용인들은 물론이고, 사라까지 심장을 부여잡았다.
“읏차. 우리 착한 클로드 님, 고생하셨어요. 이제부터 저희가 정할게요.”
“응.”
클로드는 사라의 품에 폭 안겨서 그녀의 어깨에 뺨을 대고 편히 기댔다.
축 늘어지는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무게와 뜨끈한 온기에 사라는 잠시 눈을 감고 몸을 떨었다.
“우리 클로드 님 귀엽기도 하셔라……. 평생 이렇게 안고 다니고 싶게.”
“그럼 클로드 님의 의상은…….”
“일단 낮잠을 조금 재우고 마저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론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용인들을 전부 데리고 방을 빠져나갔다.
“히…….”
고요를 되찾은 방에서 클로드는 기분이 좋았는지 작게 웃으며 사라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사라는 그런 클로드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쓸어내려 주며 숨을 죽여 웃었다.
요즘 들어 그녀는 너무나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젠 완전히 경계를 푸신 것 같아.’
클로드는 요즘 사라에게 이렇게 먼저 스킨십을 요구할 때가 많아졌다.
먼저 안아 달라고 하고, 사라의 목덜미에 코를 비비고, 자기 전에 꼭 그녀의 품에 안겨야 잠이 들기도 했다.
애늙은이처럼 강박적으로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려 했던 클로드가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을 보니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여 주는 클로드가 사라는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공작님도 이제 클로드 님에게 닿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매일같이 클로드와 아침 식사를 해야 한다는 사라와의 약속을 에단은 충실하게 지켰다.
항상 식사를 마치고 다시 집무실로 가기 전, 에단이 클로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 가는 것도 이제 일상이 되었다.
아직 포옹을 한다든가, 손을 잡는 것은 무리였지만 클로드가 다가가는 것조차 두려워하던 에단에게는 큰 발전이었다.
에단이 아무렇지도 않게 클로드의 머리를 처음으로 먼저 쓰다듬어 주었을 때, 그는 놀란 사라를 보며 이렇게 말했었다.
‘믿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내 곁에 있는 대마법사를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손가락에 있는 사라의 반지를 보여 주며 작게 웃었다. 그날 에단이 보여 준 신뢰와 호의가 아직도 손을 뻗으면 잡힐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정말 좋았었지…….”
그때를 떠올리던 사라의 입술에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공작이 조금씩 그녀에게 믿음을 줄 때마다 알 수 없는 성취감이 들었다.
생글생글 웃으며 사라는 클로드의 등을 두어 번 더 토닥이다가 이내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클로드는 금세 잠들어서는 새근새근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으응.”
사라의 체온이 멀어지자 잠든 클로드가 몸을 뒤척이며 투정했다.
그런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 주며 고사리처럼 작은 손을 꼭 잡아 주자 다시 부드럽게 얼굴이 풀리며 깊게 잠이 들었다.
“귀여운 우리 클로드 님.”
사라는 침대에 걸터앉아 클로드가 자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디엘린은…….”
‘어둠의 꽃’에서는 디엘린의 행방이 묘연하다고만 적어 둔 채 그 이후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디엘린은 소설에 적힌 ‘디엘린’이라는 캐릭터의 운명처럼 단 한 번도 아이를 보러 오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이대로 영영 클로드와 디엘린이 평생 만나 보지도 못한 채 살아도 괜찮은 걸까.
클로드는 애정을 퍼부어 줄수록 날로 사랑스러워져 갔다.
원래라면 어머니의 품 안에서 더 행복하게 살았어야 할 아이였다.
사라는 그런 아이가 고작 유모인 그녀의 애정만으로도 이렇게 밝아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조이듯 아파 왔다.
“……클로드 님이 보고 싶지 않은 걸까.”
사라는 그동안 계속해서 디엘린과 휘겔 암브로시아의 행방을 쫓았다.
휘겔 암브로시아는 그를 찾아온 디엘린을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이내 받아들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머나먼 외국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작은 상단을 함께 운영했고, 둘 사이에서는 클로드의 동생인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이름은 클로이. 암브로시아의 특징은 하나도 타고나지 않은, 오롯이 디엘린만을 닮은 아이였다.
“…….”
사라는 그 소식을 마지막으로 디엘린의 삶을 알아보는 건 그만두었다.
아마도 디엘린은 행복할 것이다. 남편과, 그 사이에서 낳은 예쁜 딸과 함께.
클로드의 존재는 가슴에 묻어 두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사라가 오롯이 신경 써야 할 사람은 클로드 하나뿐이었다.
자신을 잊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 어미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클로드만이 사라가 지켜야 할 존재였다.
‘언젠가 내가 클로드에게 진실을 말해 줄 날이 오겠지?’
사라는 클로드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떠올렸다.
예쁜 것만 보여 주면서 충분히 사랑받았다고 느끼게 해 주면서 키워야지.
진실을 알았을 때 클로드가 상처받지 않을 수 있도록, 그렇게 키워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사라는 몸을 일으켰다.
“잘 자요, 내 아기님.”
클로드의 이마에 입을 맞추자 아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 모습을 아프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사라는 클로드의 방문을 닫고 나왔다.
“사라 님!”
그러자 방문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메이가 빠르게 다가왔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