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14)
114 귀한 시간
소고기 익는 냄새가 진동하면서 침샘에서 분비되는 침 양이 많아진다. 빨리 흡입해야 하는데, 젓가락질이 쉽지 않다.
사장 대 사장으로 시작된 게 누나 동생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박준희 사장의 머뭇거림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호칭에서 시작하는데, 친하게 지내자고 해 놓고 머뭇거리기는.
“그럼 정수 씨라고 부를게요. 어때요? 나쁘지 않죠?”
“네, 누나.”
누나라고 할 때마다 흘기는 눈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은근히 놀리는 재미가 있는 사람이네.
새로운 호칭이 결정되면서 고기가 빠르게 소진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안창살과 살치살이 녹아 사라져 버렸다. 게 눈 감춘다는 말이 고깃집에서 나온 말인가?
갈빗살과 등심이 대령됐다. 아직은 속이 느글거릴 정도는 아니다. 이거 다 먹고 양이랑 대창도 먹을 테다.
“정수 씨. 볼 때마다 놀라는데, 대체 그 많은 것들은 언제 준비하신 거예요?”
“쉬는 날까지 회사 일이라니요!”
“하하. 미안해요.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요.”
사업하며 만난 사람인데, 쉬는 날이라고 해서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뭐 좋은 직원 덕분이죠. 사장보다 뛰어난 직원이 많아야 회사가 큰다고 하잖아요? 제가 그냥 아이디어만 내면, 직원들이 척척 결과물을 만들어 오더라구요.”
“사장 자리는 전생에 큰 죄를 저지른 사람만 앉는다고 하는데, 정수 씨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길래 그런대요?”
나도 궁금하다. 우리 회사의 가장 유능한 직원인 문자님은 어떤 생각인지 말이다.
“저야 뭐 직원들 열심히 일한 거에 숟가락만 얹은 것뿐이죠. 제가 봤을 때 정말 전생에 덕을 쌓은 사람은 누나예요. 제가 고기 얻어먹는다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으로 누나가 제 롤모델입니다.”
“또! 또! 자꾸 누나 놀린다?”
“아니에요, 진심이라니까요. 태양전기에서 그 고생 하면서 금성전기 같은 회사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어요. 내가 혹시나 회사 차린다면 저런 회사 만들겠다고 다짐도 했고.”
“어휴, 이럴 줄 알았으면 정수 씨 바로 스카우트할 걸, 아쉽네요. 자재업체들한테서 정수 씨 얘기 많이 들었거든요. 진짜 일 열심히 하는 직원이라고. 아쉬워요, 아쉬워.”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고기 먹고 있지 않겠죠?”
그때 스카우트돼 금성전기 직원이 됐다면 평범한 월급쟁이로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대신 지금의 삶은 없었겠지. 나를 사업가로 키운 것 중 2할 정도는 태양전기 시절 느끼고 당했던 분노와 아픔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작년에 매출 얼마나 찍었어요?”
“겨우 300억 넘었습니다. 올해는 천억 넘기는 것이 목표예요.”
“천억요? 와우. 우리 회사 350억 넘었다고 자랑하려고 했더니, 이건 명함도 못 내밀겠네요.”
“뭐 우선배정 덕분이죠. 그나저나 금성전기 매출 늘어나는 것이 제가 돈 버는 길입니다. 하하.”
자동권선기 판매 조건으로 매출 1퍼센트 받기로 했으니, 3억 5천만 원이 떨어지네. 아휴, 등심 살살 녹는다.
“그러고 보면 자동권선기요, 제가 제일 비싸게 사는 것 같네요.”
자동권선기 첫 구매자인 금성전기는 대당 3억 원에 사용료로 5년간 매출 0.2퍼센트를 받는 조건으로 사 갔다. 그때야 적정하게 책정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가장 비싸게 구매한 업체가 됐다.
두 번째 구매자 안성파워 때문이다. 안성파워 변압기 부문 매출을 산정하기 어려워 금성전기와 비슷한 조건으로 맞추고자 6억 원을 책정한 것이 권장소비자가격이 돼 버린 것이다. 금성전기 매출이 이리 성장할 줄 누가 알았겠나?
어찌 됐건 비싸게 판 것이 맞으니, 따로 보상을 해 줘야겠다. 친한 사람에게 비싸게 파는 건 도리가 아니지.
“그건 죄송해요. 제가 손해 본다는 생각 안 들게 많이 도와 드릴게요. 누나 저 믿죠?”
“가만 보면 이럴 때만 누나 소리를 하는 것 같네요. 은근 못됐어.”
“고효율주상변압기 설계 자문해 드릴게요. 어때요? 엄청 큰 선물이죠?”
“정말요? 하하. 고마워요!”
“하나 더 있습니다. 이건 누나한테만 말씀드리는 건데, 내년에 패드변압기도 바뀝니다. 미리 준비할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예? 패드변압기도 바뀐다니요? 설마 그것도 개발한 거예요?”
박 사장 얼굴에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는 글자가 쓰여 있다. 아주 놀랐을 것이다.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할 텐데, 패드변압기까지 개발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말이다.
“하하. 이건 구매규격 변경에 시간이 걸릴 일이라 확정되지 않았는데, 확실합니다. 이미 대한전력이랑 얘기가 다 끝났습니다. 꼭 비밀 지켜 주셔야 합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제품 하나 개발하기도 힘든데?”
맞지. 고효율주상변압기 설계는 받은 것이니 제품 하나 개발한 것이 맞지. 후훗.
“말씀드렸잖아요. 우리 회사는 연구 개발 아주 많이 한다니까요. 고효율주상변압기 설계 자문, 패드변압기 외형도 제공. 이 두 가지면 충분한 보상이 되겠죠?”
아마 옆자리에 있었다면 끌어안고 볼뽀뽀라도 당했을지 모른다.
개발 과정에서 날릴 돈을 생각하면 넉넉한 보상일 것이다. 대한전력용 변압기 개발이 얼마나 지랄 같은지 아는 사람이니 아주 좋아 죽을 것이다.
금성전기 역량이면 어차피 개발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설계 넘겨줘도 되겠지만, 거기 설계 직원들 면도 세워 줘야지. 낚시하는 법만 알려 주면 알아서 물고기 잡겠지 뭐.
“와! 이런 선물을 받다니! 정수 씨 달리 보이네요. 하하. 자, 우리 짠해요!”
“술 드시면 이따 어떻게 올라가려구요?”
“기분 좋아서 원샷할까 하다가 그냥 입만 댔어요. 그래도 술 깰 때까지 있다가 갈 테니까, 어디 도망갈 생각 말아요.”
왠지 양기가 계속 빨리는 기분이다. 저녁까지 있으려면 얼마나 피곤하려나.
유리랑 있을 때는 더없이 편안한데, 박 사장이랑 있으면 자꾸 기가 빨리는 기분이란 말이지. 저 얼굴 보는 것이 그걸 만회해 주긴 하지만.
빼앗긴 양기는 양대창으로 만회하자. 냄새 너무 좋다.
“정수 씨. 그런데 아까 매출 천억 목표한다고 했잖아요? 너무 낮게 잡은 것 아니에요? 관수로만 해도 천억은 거뜬히 넘을 것 같은데요?”
인간 계산기 박 사장답네. 머리도 참 영특해.
“네, 맞습니다. 1,200억 목표로 잡았는데, 내심 1,500억까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와우! 안성파워 바로 밑까지 쫓아가겠는데요? 안성파워가 작년에 1,400억 정도 했고, 올해 1,700억 계획하고 있다던데.”
“아휴. 칭찬이 너무 과해요. 솔직히 대한전력 우선 배정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회사죠, 뭐.”
“대단해요. 제가 오히려 정수 씨 롤모델로 삼아야겠어요.”
고기도 얻어먹는데 칭찬까지 얻어먹으니, 정신을 못 차리겠다. 박 사장에게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꽤 좋다.
“그래도 제 영원한 롤모델은 누님이십니다. 누나 아니었으면 처음부터 자리 잡기 힘들었을 거예요.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휴, 누님은 또 뭐예요! 진짜.”
박 사장의 능력은 누님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돈 많거나 능력 있는 사람은 형님 아니면 누님이지.
경험이 일천한 사람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회사를 키울 수 있었을까? 이 자리에서 그 능력의 원천을 가늠해 보고 싶다.
“뭐 딱히 능력이랄 것도 없어요. 정수 씨, 저 독일에서 공부하다 온 것 알죠?”
“그럼요. 누나 소문은 업계에 파다해요. 제가 괜히 연예인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하여간 말은. 하하. 독일 경제학은 미국이랑 많이 달라요. 아무래도 영향 끼친 사람들이 무시무시하잖아요? 뭐 학업은 다 못 마쳤지만, 저는 배운 대로 하려고 했어요. 정수 씨 돕겠다고 한 것도, 그게 저한테 이득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선의가 더 컸지만요.”
막스 베버나 칼 마르크스 얘기 꺼내는 줄 알고 철렁했다.
대학 다닐 때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어쩌고 하는 책 읽다가 몇 번을 집어 던졌는지 모를 것이다. 이건 번역의 문제라 생각하며 원서들 펼쳤다가 얼마나 꿀잠을 잤는지.
“보세요. 정말 이득이 됐잖아요. 회사 간 관계도, 직원과 관계 설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좋은 말씀입니다. 앞으로도 서로 도우며 지내자구요. 그런 의미에서 악수 한번!”
“그거 알아요? 정수 씨가 악수하자고 손 먼저 내민 것 처음이라는 거?”
별걸 다 기억하는 여자일세. 악수나 해. 박 사장의 손은 늘 옳다.
“정수 씨. 중국 수출은 어떻게 추진하고 있어요?”
“제 사정 다 아시면서. 지금은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대한전력 물량 줄어들면 시작해 보려구요. 에이전트 소개해 준다는 말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중국 수출 도전해 보려구요. 자동권선기 돌아가는 것 직접 보니까 승산 있겠다 싶더라구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혼자 뛰어들어 리스크 몽땅 짊어지는 것보다 나누면 낫겠지. 어마어마한 중국 시장에서 업체 늘어난다고 경쟁이랄 것도 없고 말이다.
“좋은 생각입니다. 동남아에서 얼마 안 되는 물량 가지고 우리 기업끼리 싸우면서 제 살 깎아 먹느니 대륙에서 승부 보는 것이 천 번 만 번 낫죠.”
“동남아 수출로 재미 좀 보고 있는데 운이 좋아서 그랬지, 안 그랬으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중국이야 마진은 거의 없겠지만, 물량 생각하면 승산 있을 때 뛰어들어야죠.”
“솔직히 제가 동남아 시장 뛰어들면 점유율 확 늘릴 수 있겠죠. 근데 우리나라 회사들끼리 싸우면서 돈 퍼 주는 꼴 보기 싫더라구요.”
“맞아요. 동남아 시장은 진짜 너무한다 싶은 점이 많아요. 중국 진출, 저도 나름 준비할 테니까 정수 씨도 열심히 준비해 보세요. 준비 다 됐다 싶으면 저랑 같이 중국 한번 가요.”
입속에서 잘게 쪼개지던 대창 조각이 코로 넘어갔다. 놀래라. 중국 가자고? 둘이서? 어머.
“콜록콜록. 그래요. 같이 손잡고 업계 최초로 중국에 변압기 팔아 보자구요.”
“정수 씨가 중국 수출 얘기했을 때 반신반의했는데, 지금 보니까 정수 씨 하는 대로만 따라 하면 되겠더라구요. 호호.”
어림없을 텐데. 당신한테는 문자님이 없는데.
그래 뭐, 내가 좀 도와주지. 도움을 줘야 이득이 생긴다라. 박 사장에게 하나 배웠네.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인생이 잘 풀리는 법이지. 좋은 사람인 박 사장과 보내는 시간을 귀하게 여기자.
“누나! 자알 먹었습니다.”
소주 3잔 들어간 김에 팔짱 끼면서 어리광을 부렸다. 뿌리치지 않는다. 박준희 사장은 이런 건 아무렇지 않아 한단 말이지.
착각하게 만들기 딱 좋은 행동이다. 남자들아, 별것 아닌 행동에 의미 부여하며 혼자 이불 속에서 가족 계획 세우지 말자.
“배 좀 불러요?”
“육회를 못 먹은 것이 아쉽습니다. 하하.”
“그래요? 그럼 육회 먹으러 가요.”
영특한데, 이럴 때는 말귀도 어둡단 말이야. 역시 알다가도 모를 사람.
“육회는 됐고, 디저트나 드시러 가시죠. 돈 많으니까 제가 사겠습니다.”
“그래요. 돈 자랑 좀 해 봐요!”
이번엔 박 사장이 팔짱을 끼며 나를 이끈다.
팔짱 낄 때마다 느껴지는 뭉클함의 정체가 몹시 궁금하다. 궁금하지만, 아쉽게도 이내 팔짱이 풀렸다. 서로 어색하게 계속 그러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니.
“누나. 어때요? 좀 친해진 것 같아요?”
“은근 뒤끝 있다니까요. 푸하하.”
“옛말에 진짜 친해지고 싶으면 같이 술과 밥을 먹으라고 했죠.”
“엥? 그런 말이 있어요?”
우리 한덕준 부장님께서 한 말씀이십니다. 덕준이가 하는 말은 진리요 생명이지요.
“있다고 치죠. 안 춥죠? 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호수공원이거든요. 구경 좀 하실래요?”
“그래요. 배도 부른데 산책 좀 하죠.”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호수공원을 걸었다.
생각해 보면 믿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이야 매출 천억 돌파를 꿈꾸는 나름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처음 사업을 생각했을 때만 해도 금성전기는 바라보기조차 어려운 큰 회사였다. 매출 100억만 찍어도 대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300억짜리 회사는 마냥 선망의 대상이었지.
그런 선망의 대상이었던 사람과 사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그것도 금성전기를 그렇게 큰 회사로 만든 전설 같은 인물과, 혹시 내 월급 주는 사장일 수도 있었던 사람과 말이다.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거물로 성장했다는 사실이 머리에 들어오자 뿌듯해진다.
경제계에 날고 긴다는 사람이 무수히 많지만, 적어도 이 업계에서만큼은 거물이 됐다. 사장이 짊어진 짐이 무겁지만은 않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