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82)
182 갈비 한 대
이른 저녁을 먹으러 찾아간 곳은 깔끔해 보이는 고기 집이었다. 판교라 그런지 식당도 최첨단을 달리는 듯한 느낌이다.
“와우, 고기 한번 비싸네요.”
메뉴판을 보고 나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졌다. 생갈비 1인분에 85,000원? 이 가격이면 돈 좀 더 내고 그 비싸다는 벽지갈비를 먹고 말지. 제아무리 한우라지만 판교 소고기는 금테를 두른 것도 아니고.
“판교 물가가 강남보다 더 높다고 하잖아요. 오늘은 강 사장님께서 사 준다고 하니 맘 편히 먹자구요.”
“내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 가격에는 마음껏 못 사 주겠는데? 하하하.”
“사장님 왜 그렇게 나약한 말씀 하세요.”
의부녀의 만담을 듣고 있자니, 때깔 좋은 갈비가 대령됐다. 예술적인 칼집에 가려졌지만, 마블링이 아주 좋다. 침이 또 질질 나오는구만.
“사장님, 이제 입찰은 경쟁으로 치러질 것이 빤한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경쟁입찰 들어갈 것이야 이미 전부터 확정이었지. 중전기조합 그놈들이 위장회사 차린다고 했을 때부터 가만둘 생각은 없었어.”
“그럼 오늘 왜 가신 겁니까? 굳이 안 가셔도 될 듯했는데요.”
“그놈들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역시나야. 여러 번 기회를 줬는데도 작년에 장난치려고 한 것에 대해서 여전히 실수라고 잡아떼더만. 못된 놈들 같으니라고. 그놈들하고는 좋게 얘기해서 해결할 생각을 말아야 해.”
“거기는 박 상무부터 재수가 없어요.”
강 사장과 대화에 박 사장이 껴들었다. 박 상무 재수 없는 것은 나도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우리 이 상무 봐. 얼마나 일 잘하고 사람이 좋은가? 하하.”
“하하. 월급쟁이가 뭐 별겁니까? 묵묵히 할 일만 하면 되죠 뭐.”
나이로는 강 사장 다음이지만, 다들 사장이라고 자신이 굳이 고기를 굽겠다고 나선 우리 조합 이호영 상무.
누구처럼 거들먹거리지 않고 조용히 일 잘하는 사람이다. 서로 얘기는 몇 번 안 해 봤지만, 얼굴에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과하게 표시하고 다닌다.
“이 상무님이 회사 퇴직하실 때도 직원들이 다들 아쉬워했어요. 제가 아무 사람이나 추천하지 않잖아요.”
이 상무가 금성전기 출신이다 보니, 박 사장이 칭찬에 칭찬을 더하고 나섰다. 과한 칭찬에 이 상무가 안절부절못한다. 지난 1년간 조합 일 아무 탈 없이 잘 처리해 주셨으니 생갈비 많이 잡수셔.
“그래서 입찰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사장님께서 걱정 말라고 하셨지만, 궁금해 죽겠어요.”
박 사장도 나처럼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미인가? 나와 박 사장의 궁금증이 일치했다.
“허허. 걱정 말라니까 굳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겠다는 거야? 하하. 이 상무, 간략하게 설명 좀 해 주게나.”
강 사장이 이 상무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가위와 집게를 들고 있어 마이크 잡을 손이 없군. 지금부터 가위와 집게는 내가 맡겠다.
“일단 고기 좀 드세요. 빨리 안 드시면 금방 탑니다.”
“고기는 제가 구울 테니까 전략 좀 설명해 주세요.”
“이번 입찰이 총 25개 아닙니까? 최대 20개를 잡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개라. 급하게 가상 계산기 돌려 보니 업체당 120억 원 정도 떨어진다. 작년에 110억씩 가져갔으니 얼마 늘어난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엄청 늘어난 것이다. 업체도 늘어났고, 우선배정이 2개라 빠지는 물량도 많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가능하겠습니까? 중전기조합도 밀리기 시작하면 마구 지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25개 중에서 20개 가져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목표는 크게 잡아 놓는 것 아니겠습니까? 입찰 노하우야 이사장님이 잘 전수해 주셨습니다. 하하. 저는 예전 입찰 결과와 중전기조합 업체들 분석으로 뒷받침할 생각입니다.”
감과 데이터의 결합이라. 좋군.
“첫 번째 입찰 결과만 보면 답이 나오네. 첫 입찰을 내준다고 생각하고 저놈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면 그다음부터는 술술이지.”
이 상무에게 마이크를 넘겼던 강 사장이 결국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제가 부연하자면, 열 개 넘는 시나리오를 짜 놨습니다. 입찰 전까지 계속 준비할 생각입니다.”
“우리 꼼꼼한 상무님이 계시니 걱정이 안 되네요.”
“나는 뭐 걱정이 된단 말이야? 하하.”
다시 의부녀의 대화가 이어지며 입찰 전략 브리핑은 막을 내렸다.
입찰 전문가 강 사장의 직감과 꼼꼼한 데이터 분석가 이 상무가 이미 만발의 준비를 다 했다는 것이 확인됐으니, 고기나 먹자. 비싸긴 해도 맛있긴 맛있네. 쫄깃쫄깃한데 사르르 녹는 듯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 이게 한우지.
“그나저나 지 사장. 중전기조합 놈들이 자네를 어지간히 싫어하는 모양이야.”
“사장님은 작년 신년회 안 오셔서 모르실 거예요. 그때 아주 죽일 듯이 소리 지르더라니까요.”
“지 사장이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맞아요. 그때도 아주 따박따박 할 얘기 다 하고 나가 버리더라구요. 반할 뻔했어요. 푸하하.”
나한테 들어온 질문을 박 사장이 대신 잘도 대답해 준다. 그날 흥분해서 무슨 얘기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박 사장은 또렷이 기억하는 모양이다. 근데 반할 뻔했다니, 묘하게 뼈가 있네?
“보나 마나 김익환이 그놈이 난리쳤겠지. 그놈은 원래 그랬어. 최웅민이 따까리처럼 말이야. 근데 진짜 나쁜 놈은 최웅민이 그놈이야. 금덩어리에 환장해서 촌스럽게 금반지며 금목걸이며 덕지덕지 달고 다니는 것 봐. 양아치 같은 놈.”
중전기조합 최 이사장이 태양전기 창업주 최홍집이랑 형, 동생 하는 사이였다던데, 강 사장과 그렇게 악연이 된 건가? 또 박 사장이 치고 들어온다.
“맞아요. 최 사장님이 조합 이사장 맡으면서 말들 많았잖아요. 물량 배정하는 걸로 얼마나 말 나오게 했어요? 뭐라고 하면 박 상무한테 따져라, 다른 회원사들은 아무 소리 없는데 왜 자꾸 말썽이냐고 대꾸도 안 했잖아요.”
“천성이 양아치야. 예전부터 최홍집이랑 둘이 많이 해먹고 다녔지. 씹어 죽일 놈들.”
결국 최홍집이 거론됐군. 3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참 궁금한데, 괜히 물어봤다가는 전설 따라 삼천리가 될 것 같다. 궁금해도 참자.
“최홍집이라고 하면 태양전기 창업주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맞아. 자네는 잘 알겠구만. 그 두 놈이 이 바닥 다 버려 놓은 거야. 김익환이는 그 밑에서 따까리 노릇 하면서 회사 키운 놈이고.”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강 사장 말이 유독 거칠다. 대한전력 이춘배 부사장이 있었으면 ‘형님, 고운 말 좀 쓰시오’라고 타박했을 것 같다.
악연이었지만, 이쪽은 회사 잘 키워서 잘나가고, 저쪽은 한 명은 이미 망했고 나머지는 망할 운명이다. 그것만큼 최고의 복수가 또 있을까 싶다.
“비싼 고기 먹으러 와서 옛날 얘기 하면서 기분 잡치지 말고, 고기나 먹자고. 비싸긴 해도 이 집 고기 괜찮네.”
냉면까지 든든하게 먹고 고기 집을 나왔다. 정말 이른 저녁이다. 이제 6시를 막 넘겼다. 지금 부지런히 내려가면 달이 중천일 때쯤 도착하겠군.
“사장님, 잘 먹었습니다.”
“젊은이들하고 밥 먹으면 나도 젊어지는 기분이야. 자네랑 준희라면 얼마든지 살 테니까 부담 갖지 말게.”
“매번 신세만 지면 되겠습니까? 다음엔 제가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하하. 아까 조합에서는 거침이 없더니만, 이럴 땐 아주 예의가 발라. 어떤 게 진짜 모습인가?”
“하하하. 저는 존경하는 어른에게는 최선을 다합니다.”
“이거 지 사장 무서워서 언행을 바르게 해야겠구만. 하하. 자, 자, 갈 길이 머니 더 뭉그적거리지 말고 출발들 해.”
“사장님하고 상무님은 안 내려가십니까?”
“나는 서울에 볼일이 있고, 이 상무! 자네도 일이 있다고 그랬지?”
저 어색한 연기. 기어코 나와 박 사장 둘이 내려가게 하려는 혼신의 연기. 너무 티 난다.
결국 올라왔던 그대로 박 사장을 보조석에 태우고 나주로 내려갔다.
차에서 고기 냄새가 진동을 한다. 박 사장의 향수 냄새도 이기지 못하는 고기 향. 배고플 때는 냄새만 맡아도 침이 과다 분비되는데, 배부르면 냄새 맡는 것도 고역이다. 역시 사람이란.
“누나, 피곤하면 주무세요. 제가 안전하게 집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제가 피곤할 게 있나요? 정수 씨가 운전하느라 고생이죠. 제가 옆에서 부지런히 수다 떨어 드릴게요.”
대화는 서로의 체험을 얼마나 공감해 주느냐에 달렸다. 불우했던 내 어린 시절과 박 사장의 풍족했던 삶이 교집합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얘기를 하다 보니 기우였다.
“하하하. 정수 씨도 탁자에 턱 찍혔었어요? 저도 어렸을 때 위험하게 놀다가 탁자에 찍혀서 엄마한테 엄청 혼났거든요.”
“제가 태어나서 딱 두 번 꿰맸는데, 그중 하나가 입술 밑에 찍혀서 꿰맨 거예요.”
“또 하나는요?”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고, 꿰맬 곳은 턱만이 아니다. 남들은 돈가스에 넘어가 고래를 잡았다는데, 나는 돈가스도 못 먹고. 슬프다.
“아오, 썅!”
“어머! 어머어머!”
천안-논산 고속도로에서 신 나게 달리고 있는데, 미치광이의 칼질에 나도 모르게 거친 말이 터져 나왔다. 거북이 트럭을 지나치려고 속도를 내는데,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저 흰색 과학5호기. 칼질하려면 제대로 하든가! 뒤질 뻔했잖아!
“누나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휴우. 저 진짜 사고 난 줄 알았어요. 어휴, 너무 놀랐어요.”
SUV라 더 아찔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흰색 과학5호기의 명성을 다시금 확인하는구나. 뒈지려면 혼자 뒈지든가! 옆에 박 사장이 타고 있어서 쌍욕을 퍼붓지도 못하고!
급당기는 담배를 각고의 인내심으로 참고 다시 운전에 매진했다. 핸들은 왼손, 오른손은 기어봉 위에. 안정적인 자세를 갖추니 마음이 안정된다.
어라? 오른손 위로 따뜻함이 확 전해진다. 박 사장의 손이 왜 거기에 있는가?
“정수 씨, 미안해요. 진정이 안 돼서 잠깐 손 좀 잡고 있을게요. 어휴, 너무 놀랐나 봐요.”
“아, 네. 얼마든지요.”
손을 뒤집어 박 사장 손을 마주 잡았다. 박 사장이 내 손을 자기 쪽으로 끌고 간다.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지만, 차가 덥다. 과학5호기 이 자식!
충분히 안정이 됐을 시간인데도 여전히 손을 잡고 있다. 여자 손 잡는 것이야 늘 환영이지만, 이건 상황이 다르다. 먼저 빼기도 뭐 하고, 계속 이러고 있자니 그것도 이상하고. 난감하네.
“정수 씨 손은 되게 시원하네요.”
한참 뒤에야 박 사장이 말을 걸어왔다. 박 사장도 연착륙을 바라는 것이겠지?
“제가 혈액 순환이 잘 안 되나 봐요. 하하. 손이 차가운 사람이 마음이 따뜻하다고 하니, 그래서 그런 걸 수도 있구요.”
“여름엔 손잡기 좋겠네요. 하하.”
“그래도 이번 여름 같으면 제 손도 다 무용지물입니다.”
자연스럽게 손이 풀렸고, 내 손은 다시 기어봉 위로 올라갔다. 그럴싸한 퇴각이다.
박 사장과 묘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서로 호감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호감이 연애의 감정은 아닌 것 같다. 박 사장이 알게 모르게 전하는 신호는 아리까리하지만 말이다.
진선미를 다 갖춘 최고의 인재 박 사장이라면 결혼 정보 회사 최고 등급에 올라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문제는 나다.
박 사장이 나보다 3살 연상이라는 것, 지금이야 친구로 지내지만 미련이 남은 유리와 관계는 이미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 지 오래다. 다만, 박 사장과 관계를 지금 이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일로 엮인 사이라는 것이 나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이거 참, 운전하면서 별생각을 다 하네. 목마른 자가 우물을 찾는 법. 박 사장이 목마르면 더 강한 신호를 주겠지. 운전이나 하자.
“휴게소 있네요. 좀 쉬었다 가죠?”
뭐? 쉬었다 가자고?
“나주까지 한 큐에 가려고 했는데, 우리 누님께서 원하시면 휴게소 들러야죠.”
“하하. 누님은 또 뭐예요!”
어깨를 치면서 과하게 반응한다. 이젠 스킨십에 거침이 없으시군. 이 정도 신호로는 어림도 없지.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 배부르다면서도 휴게소에서 이것저것 많이도 산다. 가는 내내 먹으면서 가게 생겼네.
“누나, 이제 좀 진정됐어요?”
“그럼요. 아깐 진짜 사고 나는 줄 알고 그 찰나에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니까요. 정수 씨 덕분에 금세 안정됐어요. 고마워요.”
“별말씀을.”
이쯤에서 테스트 한번 해 봐야 될 듯싶다.
“이제 나주까지 안 쉬고 쭉 갑니다. 잠깐만요.”
진부하지만 벨트 매 주겠다고 몸을 트위스트 하듯 꺾었다. 1인분에 85,000원짜리 생갈비 냄새와 박 사장의 시그니처 향수 냄새가 뒤섞여 후각을 자극한다.
진부한 내 움직임에 박 사장은 눈을 지그시 감는 진부함으로 대응한다. 이 상황에서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역시 진부하게 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