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옥면홍조(玉面紅潮) (2)
옥면서 백옥상, 강동오서 중 셋째로, 그 무공은 물론, 잘생긴 얼굴로도 한참 이름을 떨쳤다.
오죽하면 별호에 옥면이 붙었을까.
그런 백옥상의 옥빛 얼굴이 지금 한껏 일그러졌다.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서 불안한 기색으로 계속해서 주변을 서성거렸다.
잠깐이면 모를까, 하루 온종일을 저러고 있으니 같이 있는 사람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누워 있던 강저가 더 참지 못하고 목을 세웠다.
“아니, 왜요! 왜 그러고 있는 건데요!”
“뭐? 뭐, 뭐!”
백옥상은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강저를 향해서 오히려 언성을 높였다.
목에 핏대까지 세우는 모습이었다. 강저만이 아니라, 강소도 그만 움츠러들어서 눈만 끔뻑거렸다.
“아니, 뭘 그렇게 화는 내고 그러셔.”
“화는 무슨! 내가 무슨 화를 냈다는 거야!”
“지금 화내고 있잖아요…….”
“시끄럿!”
덜컥 큰소리가 터졌다. 금강쌍서, 두 쌍둥이는 그만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지경이면 무슨 말을 한들 좋은 꼴은 보지 못하겠다.
저렇게 안절부절못하는 옥면서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연유를 조금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뭔 일이 있었나?’
‘아니, 딱히 뭐…… 개방이랑 종남에서 사람 온 것 정도?’
‘그런 것 가지고, 저럴 리가 없잖아?’
‘흐음…….’
쌍둥이들은 입 모양과 눈짓으로 속닥거렸다.
백옥상은 버럭 성을 내고서 창가 앞에 섰다. 옆모습은 노을빛을 받아서 붉게 보였다. 아니, 노을빛 때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눈시울이 한층 붉었다.
“으음, 역시 모르겠네.”
강저, 강소는 동시에 중얼거렸다.
백옥상은 자신을 이상하게 보고 있는 두 의제의 눈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괜히 가슴이 초조하고, 스멀스멀 짜증이 솟아서, 뒷목을 뻣뻣하게 했다. 그 순간, 창틀 위에 올린 두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빠직!
“윽, 이런.”
손안에서 창틀이 그대로 바스러졌다. 쪼개진 창틀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괜히 눈치를 살폈다.
강저, 강소는 못 본 척, 못 들은 척, 다들 고개를 돌리고 딴청이었다.
백옥상은 마른침을 삼키고서, 쪼개지고 튀어나온 창틀을 톡톡 두드려서 조각을 대충 눌러놓았다.
멋쩍은 일이었다.
그래도 치미는 한숨과 짜증은 조금도 덜하지 않았다.
백옥상은 입술을 꽉 깨물고서 창밖을 멀뚱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방구석에서 키득거리는 어린 웃음이 튀어나왔다.
“키히히히!”
병상을 따로 구분하기 위해서 늘어뜨린 백포 너머에서 들리는 웃음이었다.
백옥상은 예리한 눈초리로 너머를 노려보았다. 섬뜩한 눈초리였다. 강저와 강소는 번뜩이는 안광을 보고서 흐익, 놀라 숨을 삼켰다.
난리가 나도 아주 큰 난리가 날 판이다.
일단 서서히 예리한 기파가 일어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키득거리는 웃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백포가 홱 걷히면서 아이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왜 엉뚱한 곳에서 성질내고 있는 거예요?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요?”
“너어…….”
싱글싱글 웃는 목소리가 앳되었다.
혈사의 제자라고 하는 도우빈이었다.
아이는 장난기가 가득한 웃는 얼굴로 백옥상을 빤히 바라보았다.
제법 혈색이 돌아와서 안색이 한층 좋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병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백옥상이 내내 서성거리고, 금강쌍서와 입씨름하는 것도 고스란히 들은 터였다.
백옥상은 얼굴을 구겼지만, 그래도 발하는 기파는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도우빈은 침상에서 걸터앉아서는 턱 끝을 치켜들었다. 그래도 하루, 이틀 사이에 혈색도 회복하고 공력도 조금은 돌아왔다고, 한층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그냥 가서 말하지 그래요. 혼자서 속 끓인다고 달라질 건 하나도 없잖아요.”
“신경은 무슨…… 그리고 뭘 말해!”
“헤헤, 뭐기는 뭐겠어. 우리 진무 형이지.”
“…….”
도우빈은 아주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금강쌍서에 이어서 이번에는 백옥상이 덜컥 말문이 막힐 차례였다. 그는 힘주어 입을 꾹 다물고서, 실실 웃고 있는 도우빈을 빤히 노려보았다.
이번에는 또렷하게 마주하는 눈초리였다. 무시무시할 정도였지만, 도우빈도 예사 아이가 아니다.
“에고, 에고고.”
도우빈은 괜히 앓는 소리 내면서 병상에서 스르륵 내려와 섰다. 다른 아이들은 개방에서 온 어른 때문에라도 여기에 없었다.
백옥상은 흠칫 정신을 차렸다.
“뭐야? 너 어디를 가려는 거냐?”
“으음, 히히히.”
도우빈은 실실 웃었다. 의미심장한 웃음이라서, 백옥상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도우빈이 주랑(柱廊)을 따라서 종종 걸었다. 그러다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중얼거렸다.
“나 혼자 가도 되는데.”
“시끄러워…….”
그 옆에서 백옥상이 부축하듯이 같이 걸으면서, 쯧! 혀를 찼다. 지금 도우빈은 다른 게 아니라, 자신을 놀리고 있었다.
느닷없이 고진무를 찾아가겠다고 하는 것부터가 절반쯤은 그것을 위해서일 리가 분명했다. 그렇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으니.
‘요 녀석, 요거. 혼자 가게 했다가는 무슨 헛소리를 할지도 몰라.’
모르는 게 아니라, 하고도 남을 터였다. 백옥상은 도우빈을 새삼 하얗게 흘겨보았다.
도우빈은 이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다가 히죽 웃었다.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마요. 또 모르잖아. 내가 도움이 좀 될지도.”
“도움? 네가?”
백옥상은 별로 믿지 않다는 듯이 되물었다. 찌푸린 얼굴이 풀어지지 않았다.
“에헤이, 뭘 모르시네. 이런 일에는 중간에서 말을 전해 주는 사람 역할이 생각보다 중요하다니까.”
“으, 으응?”
“진무 형은 딱 보기에도 무공일로예요. 무공 말고는 다른 생각이란 게 없어. 그리고 손에 닿는 일이라면 절대 마다치 않는 성격일 게 뻔하죠.”
“뭘, 그렇게 다 안다는 듯이…….”
말할수록 백옥상은 도우빈에게 말리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 자신만만한 모습이라니. 그런데 도우빈은 딱 멈춰 서 백옥상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하아, 그렇게 계속 답답한 소리만 할 거예요? 그러다가 시간은 훅훅 간다고요.”
“…….”
타박하는 소리에, 이번에는 백옥상이 덜컥 말문이 막혔다.
그는 큰 눈동자를 연신 깜빡거렸다.
도우빈은 당황하는 백옥상을 유심히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흐음, 그렇구나. 아직 자기 마음을 못 정했구나.”
“너어…….”
“크크크.”
도우빈은 알았다는 듯이 소리 죽여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성큼성큼 걸었다. 아이의 상태는 확실히 부축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이기는 했다.
고진무는 창백한 얼굴로 앉아 있다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두 사람의 방문에 잠시 당황했다.
도우빈은 쪼르르 병상 옆으로 와서는 냉큼 기대었다.
“헤헤, 진무 형!”
“너무 친근하게 구는 거 아니냐!”
“어허, 생사를 같이 나누었잖아요. 이 정도면 십 년 세월 의리에 비견할 만하지!”
대뜸 형, 형, 하는 모습에 백옥상이 한마디를 했지만, 도우빈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히죽거리면서 넉살 좋게 대꾸했다.
장난스럽기도 하고, 참 무구한 웃음이겠지만, 백옥상은 그 웃음조차 못마땅했다.
“하하, 저는 괜찮습니다. 백 소협.”
“으, 으음.”
“확실히 네 말대로 십여 년 세월에 비견할 만하겠다.”
고진무는 쓴웃음을 지었다. 도우빈은 그거 보란 듯이 턱 끝을 치켜들었다.
“하하, 두 사람은 괜찮은 모양입니다.”
“저야, 뭐. 고 소협에 비하면 부상이라고 할 것도 아니지요.”
그러고 있다가, 백옥상은 곧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한데 도 검객께서는 자리에 아니 계시는군요.”
“예, 이후의 일은 아무래도 본파와 만검산장 간의 일이 될 테니까요.”
“그렇지요.”
백옥상은 퍼뜩 진지한 눈초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진무의 말대로, ‘교’라고 하는 곳은 세상에 숨어서 거대한 일세를 갖춘 자들이었다. 단지 몇 사람의 의기로 감당할 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만검산장에서 벌어진 일도 따지고 보면 ‘교’에게 넘어간 내부에서 벌인 일이었다.
혹여 ‘교’라고 하는 자들이 그 무리를 이끌고서 움직인다고 하면, 과연 어떻겠는가.
아무리 크고 작은 분쟁이 거듭하는 게 무림이고, 강호라고 하지만, 이제까지와 비할 바가 아닌 수많은 목숨이 걸린 크나큰 겁난(劫亂)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뭐, 언제쯤이라고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내내 손 놓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가 없군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고진무는 불현듯 침상 옆에 기댄 도우빈과 문가에 있는 백옥상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무슨 볼일입니까?”
“아, 저는 그게…….”
이게 본론이라고 하겠지만, 준비된 답이 없는 백옥상이 퍼뜩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빛이 정신없이 요동쳤다.
저기 있는 도우빈이 허튼소리를 할까 봐 쫓아 왔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말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도우빈이 고개 세우고서 말했다.
“진무 형, 나 만검고에 좀 들여보내 줘요.”
“만검고를? 그곳은 이제는 폐검만 가득할 텐데?”
고진무는 도우빈이 무슨 일로 여기 복우산, 만검산장까지 왔는지를 떠올렸다.
확실히 ‘보검’을 찾아서 여기까지 온 도우빈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칠신가의 한 사람, 혈사의 혈도가 직접 지시한 일이었다.
확실히 중차대한 일이라고 하겠지만, 지금 만검고에서 무슨 검을 찾을 수가 있을까.
“알아요. 그래도, 뭐 찾아보는 시늉이라도 해 봐야죠. 에효.”
도우빈은 입술을 닷발이나 내밀고는 불평하듯이 중얼거렸다. 한숨이 푹푹 튀어나올 뿐이었다.
“비취 무슨 검이라고 했던가?”
“취옥보검(翠玉寶劍)이요.”
“그래. 그런 일이라면.”
고진무는 곧 침상 머리에 손을 뻗어서 힘주어 일어섰다.
“어엇, 조심!”
문가에 있던 백옥상이 한달음에 다가와서 어깨를 붙들었다. 휘청하는 모습이 위태하게만 보였다.
고진무는 어색하게 웃었다.
“괜찮습니다. 백 소협. 이렇게 부축 받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 소리 마세요.”
백옥상은 사뭇 엄한 기색으로 말했다. 갑자기 움직이는 것만큼 부상자에게 안 좋은 것도 없다.
도우빈은 문득 눈매를 가늘게 뜨고서, 부축 받아 일어나는 고진무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잠깐이었지만 눈초리가 예리하게 번뜩였다.
‘흠, 뭔가 종남파의 비전 같은 걸 펼친 건가? 뭔가 검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도우빈이 어린 나이에도 혈도조사의 눈에 띄어서 적사연도를 받았다는 것은, 인정을 받을 만큼 무공을 갖추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연배에 어울리지 않는 뛰어난 공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도우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없는 것을 느끼는 특별한 이능을 타고났기 때문이었다.
“흐음…….”
슬쩍 입술을 삐죽거리는데, 앞서 나아가던 백옥상이 홱 돌아보았다.
“뭘 멍청히 있어?”
“갑니다!”
도우빈은 언제 고민했느냐는 듯이 밝게 대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