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8
28화. 조산만 공방 (1)
태건은 팔지령 전투 결과 보고서를 꾸며 북병영에 보냈다. 아울러 그편에 국왕이 하사한 관리 추천권을 행사한 결과도 첨부했다.
태건은 팔지에 상각진이란 병영을 신설하고 별동군 제1대대장 송찬황을 상각진 만호로 추천했다. 또한 정강빈과 최철주를 각기 팔지령과 납고평 만호로 천거했다. 이에 따라 정강빈은 상각산 동편, 저령 쪽 산기슭에 조성 중인 새로운 병영을 근무지로 삼게 되었고, 최철주는 팔지령 중앙에 건설되고 있는 책루와 후방의 병영 책임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공석이 된 기존 아오지보와 무이보의 경비 책임자를 토관들로 교체했다. 이하륜은 여전히 대외적으로 조산보 만호로 남았지만, 내부적으로 조산만 공방 관리와 수군 개편 임무를 맡고 있었다.
아울러 경흥부 내의 명망 있는 선비와 번호 마을에서 추천한 인재들을 하급 관리로 대거 발탁했다. 그래서 이들을 팔지의 삼호평 ― 세 번째 호수 근처의 평야 지대 ― 과 시전평의 악양곶으로 보내 현지 콜칸 주민들을 돌보게 했다. 현재 이 두 곳에선 행정 관청 건설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태건은 병력 또한 대거 이동시켰다. 방어선이 두만강 너머로 올라가는 바람에 방어 진지로서 전략적 가치가 떨어진 아오지보와 무이보의 수성군 병력 대부분을 빼서 삼호평과 악양곶으로 보내 관청과 병영 신축 공사를 돕게 했고, 전방에 배치되어 있는 별동군의 예비대 역할도 담당하게 했다.
병영이 완성되면 앞으로 무이보와 아오지보 소속 병력들은 교대로 남콜칸과 기존 병영을 오가며 근무하게 된다. 남콜칸 지역의 근무 환경이 열악하므로 교대로 휴식을 취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특히 준비 기간이 적다 보니, 이번 겨울은 남콜칸에서 근무할 병사들이나 관리들에게 매우 혹독한 계절이 될 게 분명했다.
팔지령 전투 수습과 여러 행정 절차를 마무리한 태건은 동료들과 함께 말을 타고 노구진에 있는 비밀 공방으로 향했다.
공방에 가까워지자, 주변 풍경도 구경할 겸, 모두 하마해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포석까지 꼼꼼히 깔아두었네요? 길 만드느라 꽤나 힘들었겠습니다.”
송화상단주 김명신이 도로 상태를 보고 크게 감탄했다. 이들이 지금 이용 중인 도로는 경흥 본읍은 물론 조산보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태건은 지역 개발 사업에서 도로 건설만큼 우선시해야 할 건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 도로 정비부터 서둘렀다. 수레 두 대 정도가 동시에 지날 수 있을 정도로 길을 넓혔고, 도로 모양새도 되도록 직선 형태가 되게끔 곧게 펴 주었다. 아울러 노구진 훈련소 뒷산에 채석장을 조성, 여기서 채취한 돌을 잘게 부순 다음 도로에 깔아, 길이 비에 젖어도 통행에 문제가 없게 했다.
“이것도 송화상단 덕분입니다. 그 자금으로 만든 거니까.”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나중에 다 돌려받으실 거예요.”
홍은이 웃으며 대답했다. 두 사람은 같은 개성 출신이라 여러모로 잘 통했다. 김명신도 마침 생각난 게 있어 홍은에게 물었다.
“덕산동 숯가마촌에 가봤더니, 목초액을 모아 놓으라고 지시하셨던데··· 장인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으나 답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연유로 그런 지시를 했는지 물어도 될까요?”
목초액은 숯을 만들 때 나오는 부산물이었다.
“아, 그건 약재로 쓰이기도 하고 또 다른, 그러니까······.”
홍은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말을 더듬었다.
“새로운 재료를 만들어 볼 참이오.”
태건이 대신 나서서 답해 주었다.
“고무··· 흠,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할 것 같군.”
태건 역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고무의 어원이 프랑스, 일본을 거쳐 온 외래어이기 때문이다.
“말랑이라 해야 하나?”
김명신은 태건의 말랑이를 다른 말로 알아들었다.
“말랭이라면 무말랭이 같은 겁니까?”
“음. 그와 비슷한 재질이란 말이지요. 말랑말랑하면서도 질기고 탄성이 있는.”
“목초액으로 그런 걸 만들 수 있습니까?”
“그걸 증류하면 술 비슷한 게 나오는데, 그걸 갖고······.”
태건은 목초액에서 알코올을 얻은 다음 그걸 부타디엔으로 만들어, 합성고무의 일종인 부타디엔고무를 개발할 생각이었다. 숯 생산량이 빠르게 늘고 있고, 앞으로 수요가 계속해서 늘어날 예정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에휴! 오빠, 나중에 만들어 놓고 설명해 주자고요. 지금은 설명하기 너무 어려워서······.”
오빠란 말에 김명신이 살짝 놀라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자 태미가 대신 나서서 해명해 주었다.
“은이가 우리 집안 막내로 들어왔거든요.”
“예에? 그럼 의동생이 된 겁니까?”
“칫! 의동생 아니거든요. 그냥 오빠랑 각별한 사이일 뿐이죠.”
홍은은 좋은 기회라 여겨, 다른 방향으로 오해를 증폭시켰다.
“김 단주님.”
태건은 김명신의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이제 고려상단을 출범시키시지요.”
“오오!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야인들은 우리 조선을 여전히 고려라 부르고 있어요. 그러니 고려상단이란 이름을 걸고 상행을 시작하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일단 남콜칸 땅에서 시작하란 말씀이지요?”
태건은 팔지와 시전평, 납고평을 묶어 임시로 남콜칸이라 명명했다. 앞으로 강외 영토가 더 늘어나면 바꿔 부를 지명도 만들어 두었다. 바로 납고평과 시전평 중간에 자리한 악양곶의 이름을 딴 ‘악양군’이었다.
드넓은 두만강 하구 평야 지대에 자리해 있어 이 남콜칸 땅의 가치는 타지에 비해 높을지 몰라도, 전체 콜칸 부족의 거주지 면적으로 보면 2할 정도에 불과했다. 콜칸인은 수렵과 함께 어로도 주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그 거주지가 슬해 해안을 따라 북동쪽으로 길쭉한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예. 남콜칸 주민들이 교역을 간절히 원하고 있어요. 마을마다 모아둔 모피가 꽤 많은 모양이던데.”
태건은 이번 정벌 과정에서 콜칸 인들의 가치관은 물론 생활 형편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 모피가 언급되자 김명신이 다소 흥분된 어조로 물었다.
“호, 혹시 표피나 호피, 초피도 있습니까?”
표피는 표범, 호피는 호랑이, 초피는 담비 가죽을 말하는데, 이 중 무늬가 무척 유려하다 보니 표피가 호피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 담비 가죽, 즉 초피 역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모피 제품답게 비싸게 거래되었다. 이들 세 종류의 모피가 여진인과 조선 상인 간에 주로 거래되는 품목이었다.
“예. 농기구나 식량, 면포 따위와 교환하면 될 겁니다.”
태건은 남콜칸 땅에 활력을 북돋우기 위해 고려상단부터 투입할 생각이었다. 콜칸 추장과 촌장들도 태건의 이 계획을 듣고 크게 기뻐한 바 있었다.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런 귀한 기회를 주신다니······.”
“예전에 약속한 바니까. 남콜칸을 토대로 계속 사업을 확장해 보시지요.”
“당연히 그래야죠.”
김명신은 크게 기뻐했다. 태건이 고려상단이란 상호를 만들어 주었을 때만 해도, 먼 훗날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게 반년 만에 그 사업의 단초가 보였기 때문이다.
* * *
비밀 공방의 정식 명칭은 조산만 공방이었다. 동쪽에 있는 동산 하나를 넘으면 나오는, 조산만이란 바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조산만은 훗날 퇴적작용으로 인해 동번포와 서번포라는, 두 개의 석호로 변모한다. 아울러 이웃한 만포와 분리되어, 두만강 하구 남쪽에 만포를 포함 세 개의 커다란 짠물 호수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만포와 조산만이란, 이중으로 활처럼 구부러진 형태의 바다만 있을 뿐이었다.
조산만 공방은 아직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창고와 작업장, 숙소 등 작업자가 기거하며 일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은 모두 들어선 상태였다. 여기서 확장할 필요성이 대두되면 근처 부지를 활용할 계획인데, 직선거리로 대략 8㎞ 정도 떨어져 있는 조산보까지 공장 지대로 연결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현재 공방이 만포 해변에 자리해 있음에도 조산만 공방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실제로 장인들 가족이 기거할 민가 역시 조산만 해변에 조성되고 있었다.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얻는, 자염 공방도 민가 근처에 들어섰다.
“이번에 정말 큰일을 하셨습니다.”
태건은 공방촌이 가까워지자, 김명신에게 진심으로 사의를 표했다.
김명신은 이번에 경흥으로 돌아오는 길에 꽤 많은 물품을 실어 왔다. 상단이 보유한 재화나 물품 재고를 내년 봄까지 꾸준히 경흥으로 옮겨 놓을 계획이라, 활동하기 좋은 가을에 무리해서 많이 실어 온 것이다. 상단 구성원도 몇 차례에 걸쳐서 이주시키기로 했다.
김명신이 들여온 물품 중에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 건 당연히 쌀과 잡곡 등 곡물류였다. 상단의 대표적인 자산이기도 하지만 전란에 대비해 되도록 많이 확보해 둔 덕에 그 양이 엄청났다.
아울러 태건의 주문에 따라, 옥수수도 눈에 띄는 대로 사들였다. 옥수수가 조선에 전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확보된 양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식용이 아닌 종자로 쓰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또한 면화 역시 예상보다 많이 들여와 그걸 소화할 책임이 있는 태건과 이하륜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태건이 특별히 고마움을 표한 사안은 김명신이 조선 기술자, 즉 조선장을 대거 섭외해 왔다는 점이었다.
“공장을 데려오는 일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아시다시피 공장들에 대한 관리가 매우 느슨해졌으니까요.”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관에서 수공업 장인들을 엄격히 관리했으나, 중기에 이르자 무기 화약류나 도자기 분야 정도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장인이 민간 경제 체계로 편입된 상태였다. 그러므로 대우만 잘해 준다면 장인들을 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태건 일행은 공방 입구라 할 수 있는 경계 초소를 지나 비밀 공방촌에 들어갔다.
“부사 나리 오셨습니까?”
전체 공방의 책임자로 임명된 야장 박기수가 장인들을 이끌고 나와 태건을 맞아 주었다. 개성에서 머물던 그는 이번 가을에 몇몇 장인들을 데리고 김명신과 함께 들어왔다. 태건 일행은 화승총을 제작하고 있는 장인들을 격려한 뒤, 박기수와 함께 조선장들을 만났다.
“어떻소? 선소가 들어설 만합니까?”
태건은 조산만 서안에 조선소를 만들 생각이었다.
“괜찮습니다. 삼림이 울창한 노구산과 가까워 목재를 얻는 데 어려움이 없고, 수심도 괜찮은 편입니다.”
“수군이 쓸 판옥선을 만들 수 있을까요?”
“물론입죠. 제가 소싯적부터 하던 일이었습니다.”
조선장의 대표는 손원표란 인물로 환갑에 가까운 이였다. 태건은 그의 대답에 만족해하는 미소를 짓더니 품에서 종이 한 뭉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손원표는 그걸 펼쳐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 그림 아닙니까? 이것들 모두 생전 처음 보는 건데······.”
“그럴 수밖에. 이건 내가 왜국에 갔을 때 본 배들이지요. 동행한 화원이 그려 주었소.”
“그럼 이 괴상하게 생긴 배는 왜국에서 만든 겁니까?”
손원표가 손가락으로 짚은 배 그림은 포르투갈의 범선 카락이었다. 태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남만배요. 전장이 스무 장 정도 된다고 하더이다.”
스무 장은 약 60m로, 이게 일반적인 카락선의 크기였다.
“헉! 그렇게 크단 말입니까? 그럼 길이만 판옥선의 두 배란 말인데······.”
손원표는 깜짝 놀라더니 이내 수긍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래서 이렇게 돛대가 많았군요. 그런데 이 삼각형 돛은 뭡니까?”
조선통신사 소속 화원은 정박한 상태의 카락선만 그렸는데, 막바지에 마침 돛을 펴고 출항하는 모습을 보고 돛까지 그려 넣을 수 있었다.
“역풍을 받고도 전진하게 해주지요. 사각 돛은 순풍 항해 때 쓰고.”
“예에? 역풍을 받고도 앞으로 나아간다구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요?”
손원표는 또 한 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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