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 the Dragon RAW novel - Chapter (169)
* 169화 *
#26 반격
끼릭, 끼릭.
옥토의 제3기술팀은 의수제작 작업으로 바빴다. 의수는 드래곤의 뼈와 합금을 깎아서 만들었다.
“손가락 움직임은 염동력으로 하겠다고? 그렇게 싸울 수 있겠어?”
옥토가 이한에게 물었다. 이한은 염동력으로 나사를 돌려서 홈에 끼워 맞췄다. 이 정도로 세밀한 염동력을 구사가능한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가능해요. 그렇게 싸우는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사이먼은 심지어 두 다리와 두 팔을 염동력으로 자연스레 조종했다. 그런 몸으로 전투까지 치렀다.
‘사이먼도 했던 일이다. 나도 가능해.’
옥토는 염동력 컨트롤을 전제로 의수를 만들었다. 덕분에 강도가 뛰어나고 가벼운 의수를 만들었다. 복잡한 손가락 움직임을 위한 기계장치가 의수 안에 없었다. 간단한 구조 때문에 잔고장이 날 리가 없었다.
사흘 만에 의수가 완성됐다. 합성섬유를 덧씌워서 언뜻 보면 목이 긴 장갑을 낀듯했다. 일상생활용이 아니기에 살색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색상은 파랑에 가까운 남색. 아크의 유니폼과 비슷한 색이다.
“간단하게 칼날을 내장했어.”
옥토가 의수를 매만지며 말했다. 손등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라이트닝은 적용하지 않았다. 호신용이나 비장의 수로도 가치가 있었다.
“좋은데요. 무겁다는 느낌이 없어요.”
이한은 의수를 장착했다. 접촉면을 팔뚝에 고정시키고, 어깨걸이를 엮어서 빠지지 않게 고정했다.
“팔뚝 뼈와 칼날 부분만 드래곤 뼈야. 손가락과 나머진 플라스틱으로 만들었어. 무거우면 염동력의 부담도 클 테니까.”
“플라스틱이면 잘 부서지지 않아요? 불안한데….”
“네가 지금까지 사용했던 언더아머와 총기들도 다 플라스틱이야. 인마. 플라스틱 종류가 한 두 가지인 줄 알아?”
이한은 옥토의 핀잔을 들으면서 의수에 염동력을 사용했다. 관절부에 염동력을 걸었다. 실제 손가락과 똑같은 움직임을 재현하려면 10군데가 넘는 관절을 조종해야 했다.
‘이건 의식적으로 조종한다고 가능한 게 아니야. 이걸 일일이 의식하면서 사용하는 건 불가능해. 진짜 팔다리를 사용하는 것처럼 무의식중에 염동력을 사용해야 된다. 에어비트처럼 말이지.’
강화병들은 에어비트를 자신의 손발처럼 사용했다. 다른 물체보다 에어비트에 염동력을 걸 때에 반응속도가 훨씬 빠르다. 의수조작은 반복숙련도가 요구되는 일이다.
끽.
이한은 왼쪽 의수로 물잔을 잡다가 놓쳤다. 오른손으로 떨어지는 물잔을 잡았다.
“쯧, 그냥 레드처럼 압력식으로 할래?”
옥토가 다리를 떨며 말했다. 이한의 움직임이 영 불안하게 보였다.
“아뇨. 금방 적응할 겁니다. 고마워요. 옥토.”
이한은 다시 윗옷을 입었다. 옷을 입으니 의수라는 티가 거의 나지 않았다. 이한은 밖으로 나왔다. 일어서니까 가벼웠던 의수도 무게감이 있었다. 팔의 균형이 달라서 걸음걸이가 살짝 불편했지만, 균형 감각이 좋은 강화병답게 금방 똑바로 걸어 나갔다.
‘아크의 상황이 수습될 때까지는 재활훈련에 집중한다.’
유르겐 사령관의 이상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진실과 조금 달랐지만, 유르겐의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건 사실이다. 아크는 유르겐 사령관과 20년 가까이 함께해온 조직이다. 그 기둥이 이제 무너졌다. 새로운 기둥이 필요했다.
‘아크 승무원들은 레드 중사를 사령관으로 추대하고 싶어하지만, 레드 중사 본인과 토비아스 대령의 생각은 달라.’
토비아스 대령은 스스로 사령관이 되길 원했다. 그는 애초에 아크를 완전히 집어삼킬 생각으로 온 사람이다. 반면, 레드 중사는 사령관이 되기에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느꼈으며 권력욕도 없다.
‘레드 중사는 사령관 같은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 이번에도 날 도와준 것처럼, 정말 중요한 선택에서 이성보다는 감성을 따르는 사람이야. 오라클 때도 그랬듯이.’
이한은 재활훈련을 꾸준히 했다. 3일 만에 의수로 젓가락질을 할 정도였다. 타고난 컨트롤 덕분이었다.
혼란스러운 아크는 토비아스 대령의 사령관 임시대행으로 결정 났다. 반발과 여론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임시대행이기에 적임자가 나타나면 교체가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만약 정식으로 사령관 취임했다면 많은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토비아스 대령이 기껏 차지한 사령관 자리를 넘겨줄 리가 없지. 임시라지만 스스로 물러나진 않을 거야.’
아크는 시타델보다 복잡한 상황이었다. 시타델은 오메가-1이 완벽하게 통제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아크는 여러 부류의 집단이 존재한다. 다양한 의견과 집단이 공존하는 만큼 불안정했다.
치익.
이한의 방문이 열렸다. 크누트가 찾아왔다. 전투 이후로 얼굴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크누트는 이한을 피해 다녔고, 이한도 굳이 크누트를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 크누트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무슨 일이야?”
이한이 담담하게 말했다. 크누트가 눈을 피하며 움찔했다.
“날 때려.”
“내가 왜?”
“내가 잘못했으니까, 네 속이 시원할 때까지 때려. 그 상처가 나을 때까지 힐링팩터를 쓰지 않겠어. 이것 말고는 도저히 사과할 방법이 없어….”
크누트는 이한의 왼팔을 바라봤다.
‘나 때문에 팔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야.’
크누트는 죄책감에 시달려서 견디기 힘들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사령관의 정체를 밝혔어도, 마음이 홀가분해지지 않았다. 이대로는 이한과 영영 얼굴을 마주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내가 널 때려서 얻는 건 없어. 내 주먹만 아플 뿐이지.”
이한은 냉소적으로 말했다. 크누트의 표정이 굳었다.
“미안해. 한. 난 널 마지막까지 믿었어야 했는데….”
이한은 머리를 긁적였다. 크누트를 탓해야할까 말아야할까 그도 고민했다. 크누트에 대한 원망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는 팔을 잃었으며 죽을 뻔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철천지원수가 되고도 남았을 터다.
“나라면 널 믿었을 거야. 크누트.”
이한이 날카롭게 말했다. 크누트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렇겠지.”
“하지만 넌 내가 아니지. 널 더 탓하지는 않겠어. 난, 아니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돼. 크누트. 이제 멈춰서거나 망설일 시간이 없어. 내가 왜 도망가지 않고 널 구했겠어? 죽이고 싶을 만큼 밉지 않아서다. 그러니까 사소한 일은 잊어버려. 더 중요한 일이 앞으로 많이 남았잖아.”
크누트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한도 옅게 웃었다.
“그럼 사과는 더 안 해도 되지? 이대로 OK?”
크누트가 말했다. 이한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대답했다.
“크누트, 한 발자국만 더 가까이와 봐. 새로 만든 의수 때문에 시험해볼 게 있어.”
이한이 크누트를 불렀다. 크누트가 고개를 갸웃하며 한 발자국 내딛었다. 그 순간 이한이 번개처럼 일어서더니 왼쪽 의수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콰-직!
이한의 의수 주먹이 크누트의 관자놀이를 관통하듯 후려쳤다. 크누트가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머릿속이 얼얼할 정도였다.
“안 때린다면서….”
크누트가 머리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니 한 대 정도는 때려야 분이 풀리겠더라고.”
이한이 손을 뻗었다. 크누트가 그 손을 잡으며 일어섰다.
어느 정도 회복된 이한은 아크의 회의에 참가했다. 사령관은 바뀐 뒤로 처음 열리는 회의였다. 가장 큰 주제는 여전히 이한이 가져온 정보였다.
“이 창으로 현재 실버 하이브를 찾아서 찌르면 된다는 거군.”
토비아스 대령이 말했다. 사령관 자리에 올라섰지만 복장은 여전했다. 복식을 새로 맞출 정도의 여유조차 없었다.
단상에는 드래곤제 창 하나가 있었다. 전대 실버 하이브의 송곳니로 만든 창이다. 전쟁을 끝내기위한 유일무이한 수단이다. 실버 하이브를 부활시키지 못하면 아무리 무력으로 압도해도 인류는 패배한다.
“부활을 막으려면 실버 하이브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한이 대답했다. 이한의 말이 사실인지 증명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아크에서는 더 이상 그를 의심하기보다 믿기로 결정했다. 아크를 비롯해 인류는 오랜 전쟁으로 지쳤다. 아무리 싸우고 버텨도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전쟁을 끝낼 방법이 있다면 그들은 무엇이라도 할 작정이다.
“현재의 실버 하이브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지. 우리의 정보망을 동원하더라도 언제 발견할지는 몰라.”
“시타델의 정보망과 합치면 됩니다.”
이한이 빠르게 대답했다. 회의실의 분위기가 서먹하게 변했다.
“우리가 받아들인다 해도, 시타델 측에서 받아들일 것 같나? 그 놈들은 절대 우리와 손을 잡지 않을 거네.”
토비아스 대령이 말했다.
“제가 간다면 받아들일 겁니다. 시타델도 바보가 아닙니다. 전쟁을 끝내고 싶은 건 모두 똑같습니다. 전쟁을 끝낼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면 시타델도 협조할 겁니다.”
이한은 단호한 말투로 계속 말했다.
“그리고 시타델은 또 다시 거하게 뒤통수를 때리겠지.”
다른 간부가 말했다. 동조하는 이들이 있었다.
“뒤통수 맞을까봐 겁나서 이대로 함께 죽는 걸 택할 겁니까? 여긴 전부 겁쟁이들만 모여 있습니까?”
이한이 공격적으로 말했다.
“확실히 자네의 말에는 일리가 있어. 결국 우린 힘을 합쳐야 돼. 따로 행동했다가 각개격파를 당하면…. 정말로 우스운 꼴이지.”
이한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가 고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시타델의 쿠로는 드래곤의 사이킥 코어를 흡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회의장이 소란스러웠다. 이한은 쓰게 웃었다.
‘아크의 정보망도 시타델과 크게 다르진 않아. 서로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게 많다. 서로에게 첩자 하나도 심어두지 못했단 이야기지.’
시타델에 첩자라도 하나 심어뒀다면, 쿠로의 변화를 모를 리가 없다.
“놀랍군. 분명 과거에도 사이킥 코어를 이식하는 수술을 한 적이 있었지. 피험자는 모두 피폭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지만 말이야.”
안경을 쓴 간부가 말했다. 과학연구 관련인사인 듯했다.
“장담컨대, 여기 있는 사이커들이 전부 덤벼도 쿠로 하나를 이기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저는 가능합니다. 제 안티 사이킥 능력은 쿠로를 무효화시킬 수 있습니다. 만약 시타델이 먼저 배신한다면…. 제가 아크의 편에서 싸우겠습니다. 반면, 제가 쿠로를 막지 않으면 아크의 그 누구도 쿠로를 막지 못할 겁니다.”
“쿠로가 사이킥 코어를 흡수했다는 게 사실인가? 믿기가 힘들군.”
“저번에 만났을 때는 드래곤 4마리 분의 사이킥 파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회의장에서 바쁘게 말이 오갔다. 쿠로가 정말로 드래곤을 능가하는 사이커가 되었다면 비상사태였다. 드래곤이 사이코프레임을 장착하고 싸우는 셈이다. 감히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간부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이한의 안티 사이킥 능력은 이미 연구실에서도 증명됐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사이킥 능력을 원천봉쇄한다. 사이킥 중화와는 다른 개념의 ‘무효화’였다. 아무리 사이킥 파워의 격차가 심하더라도 이한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
“건방지군. 자네가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건가?”
“우리가 살아남는데 필요하다면 하겠습니다.”
이한은 오만하게 굴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숙이고 있어봐야 얻는 게 없었다. 모든 카드를 동원해서 아크와 시타델을 억눌러야 했다. 그들을 모아서 드래곤과 싸워야 한다.
“정말로 쿠로가 드래곤급 사이커의 위치에 올라섰다면…. 우리는 자네에 휘둘릴 수밖에 없겠군.”
토비아스 대령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쿠로를 잘 모른다. 하지만 특출하게 뛰어난 사이커라는 건 안다. 수많은 사이커들 중에서도 비정상적인 사이킥 능력을 지닌 강화병이다. 아크를 떠날 쯤에도, 이미 등급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었다.
“그게 걱정된다면 심해 속에서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사이좋게 손잡고 죽으시면 됩니다.”
이한이 차갑게 말했다.
‘이대로 공멸을 택한다면 그게 우리들의 운명이겠지. 하지만 이 사람들도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 지금까지 충분히 그 대가를 치루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니까.’
토비아스 대령은 10분의 휴식을 선언했다. 이한은 회의실 밖을 나갔다. 물을 마시며 벤치에 앉았다. 레드 중사는 이한을 힐끗 보다가 다른 간부들과 함께 움직였다. 레드 중사는 아크의 2인자다.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 발언이 가능했다.
‘이들은 협력을 할 거야. 그것 밖에 방법이 없으니까.’
이한은 홀가분한 심정이었다. 그는 아직도 낯선 왼손을 바라봤다. 이물감을 종종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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