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 the Dragon RAW novel - Chapter (70)
* 70화 *
“사실 너도 궁금하지 않아? 그 안에 얼굴 말이야.”
이한도 조금 궁금하긴 했다.
‘항상 중요한 것처럼 얼굴을 가리지만…. 사실 별거 아닐 수도 있지. 레드 중사의 말대로 정말 단순히 겉멋일 지도….’
이한은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사일런스와 지킬 의리가 있었다. 이한은 남이 싫어하는 행동은 어지간해선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아.”
이한은 단호하게 말했다. 크누트는 결심했다는 듯이 벌떡 일어섰다.
“나는~ 네가 필요할 때~ 13분대에~ 들어갔는데~. 뭐, 그 때 빚을 딱히 갚으라는 소리는 아니고. 그랬던 적이 있었다는 거지. 하지만 내가 아니었으면 분대창설을~ 어떻게 했을까~ 뭐, 너야 워낙 유능하니까~ 어떻게든 했겠지~.”
크누트가 노래를 부르듯이 흥얼거렸다. 이한은 식은땀을 살짝 흘렸다. 당시 크누트는 호세와 쿠로와는 전혀 다른 입장이었다. 호세와 쿠로는 이한을 친밀한 사이였지만, 크누트와 이한은 안면만 있는 사이었다. 크누트는 흥미와 호기심만으로 이한의 13분대에 들어왔다.
‘이한은 책임감이 강하다. 이런 말을 하면 부탁을 안 들어줄 수가 없겠지?’
크누트는 연기하듯 그 때 상황을 중얼거렸다. 이한의 가슴을 쿡쿡 찌르는 말들이었다.
“그만, 그만! 알았으니까.”
이한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미안, 사일런스.’
이한은 속으로 사과하며, 크누트와 스모 회원들을 쳐다봤다.
“좋아, 도와줄 거지?”
크누트가 싱글벙글 웃었다. 이한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딱 한 번이다. 내 모든 능력을 다해서 도와주지. 그래도 못하면 포기해.”
“알았어.”
이한은 크누트와 소년들을 불러 모았다. 이들 중에서는 분대장적성을 받은 소년이 없다. 분대장적성은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 중 하나가 정신연령이다. 분대장적성을 받은 소년들은 또래보다 정신연령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 자리에는 이한보다 3학년이 먼저 된 소년들이 있어도, 자연스레 이한이 선임자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각자 특기를 말해봐. 사일런스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들도.”
이한이 말했다. 스모 회장이 망설였다.
“끄응. 우리 조직이 힘들게 알아낸 건데.”
“싫으면 말고.”
이한이 차갑게 말하자, 스모 회장이 당황하며 손을 휘저었다.
“아니, 아니! 그, 그렇진 않아.”
이한은 펜을 꺼내서 메모를 했다. 스모의 정보는 의외로 양질의 정보였다. 사일런스를 스토킹하듯 일과가 습관을 빽빽하게 적었다.
‘이거 거의 스토킹 수준인데.’
아크에서는 소년들을 위한 놀이거리가 없다. 스모 회원들에게는 사일런스의 가면을 노리는 게 일종의 놀이였던 셈이다.
“오늘은 해산해. 작전은 내일 짜서 알려줄 게. 다시 말하지만 딱 한 번이다. 실패해도 내가 또 도와주지 않을 거야.”
다른 소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갔다. 혼자 남은 이한은 펜을 데굴데굴 굴렸다. 처음에는 별관심이 없었지만, 막상 작업에 착수하자 오기가 솟았다.
‘과연 내 능력으로 사일런스를 또 잡을 수 있을까.’
이한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 싶었다. 그의 장기말은 4명. 잡아야할 자는 사일런스. 4대1이지만 지금까지 실패한 쪽은 스모다. 오롯이 이한의 능력에 다음 결과가 달렸다.
촤악!
이한이 홀로그램 패널에 손을 뻗었다. 아크의 3학년 구역 지도가 투사됐다. 이한은 눈을 크게 뜨고 세세하게 골목과 지형을 관찰했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다양한 이동경로가 보였다.
‘사일런스라면 어떻게 이동할까….’
이한은 자신이 블링크 능력을 가졌으면 어떻게 이동했을까하며 상상했다. 블링크 능력을 경우의 수에 넣자마자 무수히 많은 이동경로가 새롭게 보였다.
‘이게 사일런스가 보는 길인가.’
사일런스는 이동방법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다른 사람은 불가능한 이동경로도 사일런스는 가볍게 넘어버린다. 이한은 갑자기 흥미가 잔뜩 생겼다. 사일런스의 시점으로 지도를 보니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이한은 하나씩 체크하면서 웃었다.
‘잡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군.’
다음날, 이한은 크누트와 다른 소년들을 불러 모았다. 스모 회장이 조심스레 이한에게 말했다.
“좀 더 조용한 곳에 모여야 되는 거 아닐까?”
이한은 듣기도 싫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도 우리들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걱정 마. 내일 바로 작전을 시작할 거야. 내일 스케줄은 비워둬.”
“당장 내일?”
“그러면 언제까지 이런 시시한 일에 시간을 보내려고 했어?”
“시시한 일이 아니야! 우리한테는 중요한 일이라고.”
“알았어, 알았어. 일단 내일을 위한 사전준비가 필요해. 지금부터 할당량을 나눌 테니까. 내일까지 설치해야 돼.”
이한이 말했다. 얌전히 듣고 있던 크누트가 반문했다.
“설치? 함정?”
“그래. 부비트랩과 장애물들이야. 기동력으로는 우리 다섯 명이 모여도 사일런스를 쫓아가기 힘들어. 기동력이 딸리는 우리가 무작정 쫓아가려고 하니까, 항상 주도권이 사일런스에게 넘어가는 거지.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일런스를 열심히 쫓아가는 게 아니라, 움직임을 미리 제약하는 거다. 단말기로 내가 표시한 지도를 보내줄 테니까. 각자 표기된 지역에 덫을 설치해둬. 꽤 양이 많으니까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할 걸.”
이한은 단말기를 꾹 눌렀다. 나머지 네 명에게 지도가 전송됐다. 어젯밤에 만들어둔 지도들이다.
“와.”
다른 소년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하룻밤 사이에 준비한 지도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세했다. 어떤 장애물을 설치해야하는지조차 나와 있다. 다양한 예상이동경로가 붉은선으로 보였다.
“거봐. 한에게 맡기면 된다니까.”
크누트는 마치 자신이 해낸 것 마냥 뿌듯해하며 말했다. 이한은 차분하게 소년들에게 계속 말했다.
“다들 경로를 숙지해. 함정과 장애물들은 사일런스의 기동력을 제한하고 발을 묶어둘 거야. 나를 제외하곤 2인1조로 다녀. 그리고 사일런스 주변으로 20미터 이내로 먼저 접근하지 마. 20미터 이내라면 블링크 한 번만으로도 뒤가 잡힐 확률이 높아. 크누트를 제외하고 너희들 근접전능력으로는 뒤를 잡히면 끝장이야. 만약 근접거리에서 사일런스가 너희 시야에서 블링크로 사라지면… 바로 앞으로 굴러. 운이 좋다면 공격을 피할 수 있겠지.”
“오. 그러네. 너 엄청 똑똑하잖아.”
이한은 다른 소년들의 능력이 이번 작전에 별 쓸모가 없다는 걸 안다. 동료에게 발화처럼 치명적인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단순히 불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 하나를 태워죽일 수 있는 무시무시한 파워의 발화능력이다. 3학년들은 실전투입 가능한 사이커다. 당장은 바보처럼 보여도 다들 실력자들이다.
“자자, 다들 움직여.”
이한은 손뼉을 치며 소년들을 재촉했다. 대부분의 함정위치는 옥상이나 구석진 골목이다. 다른 사람들이 걸려서 해체될 위험이 적은 곳들이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지만 함정을 설치해야하는 장소들이 몇몇 있었다. 이한은 임의로 공사 중이라는 푯말을 앞에 세워 놨다.
‘어쩐지 군인들이 바빠 보이는군.’
이한은 건물옥상에서 장애물을 설치하며 생각했다. 밑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옥상에 올라오니 아크의 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 알았다.
‘남들이 일하는데 우리들만 노는 기분이야.’
이한은 머쓱해졌지만 하던 일은 계속했다. 가벼운 타박상 정도로 끝날 함정들로만 설치했다. 사일런스의 반사신경이라면 다치지도 않을 터다.
‘고작 잠시 머뭇거리게 만드는 정도겠지.’
이한은 할당구역을 해치우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안에 다른 군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포커를 치고 있을 텐데, 오늘은 늦게까지 다들 들어오지 않았다. 이한은 의문을 가졌지만 궁금증을 풀만한 단서는 없었다. 이한은 평소처럼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
“작전을 시작한다.”
이한이 통신기를 귀에 장착하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쓰지 않는 회선을 개통했다. 다들 통신상태를 확인했다.
-스모-2 잘 들림.
-스모-3 이하동문.
-스모-4 완벽.
-스모-5 가자.
이한은 쾌적한 통신 상태를 확인했다. 하늘이 돕는지 오늘은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어제부터 묘하게 아크의 군인들이 줄어들었다.
‘일단은 이 일부터 해결하고 나서.’
이한은 단말기 화면을 바라봤다. 지도가 평면으로 출력됐다. 이한은 스모 분대원들은 위치를 확인했다.
“스모-2는 좀 더 뒤로 빠져. 거기서도 시야 확보 가능하지?”
-알았어. 이동완료.
“좋아. 60초 후에 목표물이 나올 거야. 스모-4와 5는 밀어붙여.”
스모-5는 크누트다. 유일하게 사일런스가 대치하기 싫어하는 상대다. 크누트를 멈추려면 다리라도 부러뜨려야 한다. 이한은 크누트를 사냥개로 삼아서 사일런스를 몰아갈 생각이었다.
-목표물 발견.
“좋아. 움직여. 예상이동경로는 A7이다. 2와 3은 각각 B2 경로로 앞서나가. 차벽해서 목표를 C2로 몰아간다.”
-알았다.
이한은 차분하게 상황을 기다렸다. 멀리서 소란이 일었다. 크누트와 사일런스가 추격전을 벌였다.
-목표가 C4로 들어갔다.
보고가 들렸다. 이한은 지도를 보면서 말했다.
“예상범위 이내다. 같이 따라 들어가.”
-젠장, 옥상으로 올라갔어.
“괜찮아. 밑으로 돌아가도 충분히 쫓을 수 있어.”
아마 첫 번째 함정은 사일런스도 대응을 빨리 못할 터다. 이한의 예상대로 사일런스는 날아오는 깡통에 머리를 맞았다. 사일런스가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추적대들이 따라잡았다. 사일런스도 슬슬 평소와 상황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이 녀석들… 조직적이야.’
추격대들은 사일런스가 공격할 거리를 주지 않고, 교묘하게 몰아붙이기만 했다. 사일런스는 지금까지와 다른 답답함을 느꼈다.
‘또 함정.’
사일런스는 무릎 높이로 설치된 철선을 바라보며 높게 점프했다. 그 순간, 눈앞에 밧줄 하나가 보였다.
‘이중함정!’
사일런스는 머리를 밧줄에 부딪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는 가면의 매무새를 똑바로 맞춘 다음에 벌떡 일어섰다.
‘설마….’
사일런스는 딱 한 사람이 떠올랐다. 교묘한 함정설치, 전체를 살펴보는 조직적인 움직임. 3학년의 두뇌솜씨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일반군인이라면 소년들의 장난에 참여할 리가 없다. 소년들 중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사람은….
‘이한?’
사일런스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는 반대편 건물까지 블링크로 단번에 도약했다.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착지지점에 그물 함정이 있었다.
위잉!
사일런스는 급하게 블링크를 한 번 더 사용했다. 불안정한 자세로 땅바닥을 한 번 굴렀다.
타닥타닥!
추적대들이 더 가까워졌다. 그들은 4명이서 동시에 덮칠 생각이었다. 평소처럼 사일런스가 쉽게 기습할 거리를 주지 않았다.
‘교활해. 한.’
단지 지휘하는 머리만 달라졌을 뿐인데, 만만했던 소년들이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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