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111)
특성 쌓는 김전사-111화(111/300)
돌연변이 -3-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마트에서 사온 가열병을 꺼냈다.
라면 스프와 건더기를 면 위에 뿌리고 물을 붓자 거수곰이 노골적으로 얼굴을 찡그린다.
“그걸 나 보고 먹으라는 거야?”
“맞습니다.”
“지금 나랑 장난해? 어?”
우어어엉!
거수곰의 포효가 재생된 고막을 또다시 터뜨렸다.
평범한 사람은 뇌가 터져서 죽었겠다.
나는 금강체와 결의로 견뎌냈다.
무심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골프백에 넣어 둔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거래소에서 샀던 그것.
미리 가루로 만들었던 그것을 면 위에 솔솔 뿌렸다.
뚜껑을 닫고 나무젓가락을 올려 놓자, 노호하던 거수곰이 코를 움찔거렸다.
“어어어?”
빡친 가운데 혼란스러운 표정.
그럴 것이다.
생전 처음 맡아 보는 냄새일 테니.
돌연변이들의 후각이, 또 미각이 사람과 같을까?
시각과 촉각, 청각은 어떨까?
당연한 말이지만 돌연변이마다 제각각이다.
사람과 비슷한 돌연변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돌연변이가 훨씬 더 많다.
“제 친구에게 들었습니다. 희망 마을에 사는 분들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가 힘들다고요.”
미각과 후각 때문이다.
“촌장님도 미각은 쓴맛밖에 못 느낀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약을 그렇게 좋아하신다고요.”
“흥. 어디서 듣기는 들은 게 있군.”
“어떻습니까? 처음 맡아 보는 맵고 얼큰한 냄새가.”
“맵고 얼큰한 냄새…….”
매운맛은 열감과 통증이 합쳐진 자극이다.
거수곰의 경우 온도 감각이 결여되어 있어서 매운맛을 느끼지 못한다.
후각으로도 마찬가지.
거수곰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화를 내고는 싶은데 이미 타이밍을 놓친 얼굴.
어느새 3분이 지났다.
나는 웃으며 나무젓가락을 떼어서는 컵라면과 함께 내밀었다.
“한번 드셔 보시죠. 인간들이 왜 그렇게 라면에 열광하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까?”
꿀꺽.
목울대가 넘어갔다.
거수곰의 얼굴에 또렷한 감정이 떠올랐다.
자기 자신도 정체를 모르는 감정, 혹은 욕구.
식욕이었다.
“흠, 흠! 나는 희망 마을의 촌장으로서 인간 문물에 대해 알아야 하기 때문에 먹는 거네! 이 냄새가 궁금해서 먹는 건 절대 아니야!”
“그럼요. 촌장님이 희망 마을에 헌신하는 건 저 같은 인간들도 다 압니다.”
“어디 한번…….”
거수곰은 그 큰 앞발로 능숙하게 젓가락을 집었다.
라면을 한 번 휘저어보고는 꿀꺽, 침을 삼킨 뒤 면발을 파스타처럼 똘똘 말아서 들어 올렸다.
젓가락질 한 번에 면발 대부분을 건진 거수곰.
한입에 집어삼킨다.
어린아이 주먹 크기 면발 덩어리가 입속으로 사라지고.
거수곰이 정지했다.
팔이 부르르 떨린다.
눈은 동그랗게 떠져선 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때?
현대 문물의 맛이?
짜고 맵고 얼큰한, 건강에는 절대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그 맛.
하지만 평생 한약의 쓴맛을 유일한 맛으로 알고 있던 거수곰에게 이건 신세계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이, 이건, 이건…….”
거수곰이 충격받은 얼굴로 비어 버린 컵라면을 내려다보았다.
이내 건더기 조금 남은 국물을 원샷 때린다.
목울대가 벌컥벌컥 움직이고 거수곰이 진저리를 떴다.
살짝 치뜬 눈, 벌어진 입은 거수곰이 천국에 다녀왔음을 웅변하고 있었다.
“더, 더, 더! 더 내놔! 더 내놓으라고!”
“진정하세요. 다른 분들도 드셔야죠.”
“음, 다른 사람들은…….”
거수곰이 갈등하는 표정을 짓는다.
너 왜 그래?
넌 콩 한 쪽도 다른 돌연변이랑 나눠 먹는 놈이었잖아.
컵라면 하나에 마을 버려?
동족 버려?
나는 컵라면 대신에 보냉팩을 꺼냈다.
드라이아이스를 한계까지 넣어 온 탓에 내용물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아이스크림.
원래 세계의 메로나를 꼭 닮은 물건.
곱게 포장지를 벗겨서 살살 가루를 뿌렸다.
벌써 냄새가 나는지 거수곰이 살벌하게 아이스크림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번 드셔 보시죠.”
“누누이 말하지만 이건…….”
“압니다, 알아요. 맛이나 보세요.”
거수곰이 혹시 떨어뜨릴세라 아이스크림을 받아들였다.
눈을 질끈 감고, 냄새 한 번 맡고, 손을 떨면서 마침내 아이스크림을 입에 가져간다.
그리고 한 입.
“흐어억!”
거수곰이 기괴한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길쭉한 혀를 내밀어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다.
아, 실수.
핥아먹지 못했다.
혀 근육에 힘이 들어가면서 아이스크림이 두 조각 난 것.
부러진 아이스크림이 낙하하는 것을, 거수곰이 개구리처럼 혀를 쏘아 낚아챘다.
“흐으윽!”
졸지에 두 입으로 아이스크림을 결딴낸 거수곰.
급살 맞은 것처럼 몸을 떨다가 나를 쳐다본다.
“하나만, 하나만 더 줄 수 없겠나?”
“그러죠.”
생필품 물가가 싼 세상이라 이깟 아이스크림은 500원도 안 한다.
아낌없이 아이스크림을 베풀었다.
덤으로 그 위에 살랑살랑 뿌리는 가루 한 줌.
가루가 아이스크림에 녹아들 때마다 거수곰의 얼굴도 녹아들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얼굴은 물론 전신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무슨 냄새야?”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이게 냄새야? 코 있는 놈들은 맡을 수 있다는 그거?”
“맞다…… 넌 코가 없었지…….”
“어허! 어딜 부르지도 않았는데 들어오나!”
거수곰이 호통을 쳤으나 돌연변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잡았다.
“아 거 구경이나 합시다.”
“촌장이라고 유세 부리기 있기요?”
“뭐지? 이건 도대체 뭔 냄새야?”
“인간들이 뿌린다는 향긴가? 기분이 좋아지는 냄새네.”
모두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다.
돌연변이들은 유독 단맛을 느끼지 못한다.
냄새 역시 마찬가지.
짠맛과 신맛을 느낄 수 있으면 다행. 거수곰처럼 쓴맛만 알고 평생을 사는 돌연변이도 많고 아예 미각이 없는 돌연변이도 꽤 많았다.
그런 이들이 생전 처음으로 단내를 맡았으니 코를 벌름거릴 수밖에.
나는 만면에 웃음을 짓고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맛들 보세요. 여러분도 즐기실 수 있는 아이스크림입니다.”
“아이스크림?”
“이거 그냥 차갑기만 하던데…….”
돌연변이라고 돈이 없고 현대 문물을 모를 리 없다.
당장 거수곰의 집에도 TV와 콘솔 게임기, 대형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같은 가전이 늘어서 있었다.
당연히 아이스크림도 컵라면도 먹어 보았다.
맛을 느끼지 못할 뿐.
돌연변이들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받았다.
녹색 직육면체 아이스크림.
저마다 눈치를 보다가 이윽고 입에 넣는다.
그리고 한 입씩 깨물.
“어?”
“응?”
“헉!”
“어엉?”
느낌표 떠오르듯 눈이 커진다.
사람 눈동자가, 짐승 눈동자가, 뱀 눈동자가, 식물 옹이구멍이, 카메라 조리개가 일제히 벌어지고 있었다.
얼빠진 표정도 잠시.
돌연변이들이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다.
“더, 더 내놔!”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있는 거 다 줘!”
거리낌 없이 촌장의 집에 밀고 들어올 정도의 강자들.
즉, 최소가 6레벨인 돌연변이들.
나는 손도 못 써 보고 보냉팩을 털렸다.
정확히 말하면 털려 주었다.
천둥새 돌연변이가 보냉팩을 낚아채서는 저 높은 천장을 향해 날아올랐다.
“아이스크림은 내 거다!”
“이리 내놔!”
“내 거야!”
돌연변이라 본능이 더 강한 걸까?
다들 나이 좀 들었을 텐데 애들 장난치는 걸 보는 듯했다.
심지어 거수곰까지 거기 끼어선 천둥새 돌연변이에게 앞발을 뻗는 걸 보니 웃음밖에 안 나왔다.
“이히히!”
천둥새 돌연변이가 콘 종류 아이스크림을 포장도 안 뜯고 깨물었다.
하얀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까만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진득하게 흘러내린다.
천둥새 돌연변이는 잔뜩 기대하는 얼굴이었지만…….
이내 배신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맛이 없잖아?”
“어? 정말?”
“맛이 없다고?”
“진짜네!”
“그냥 얼음 가루야! 얼음 가루!”
보냉팩이 찢어지고 분분히 떨어진 아이스크림.
그걸 주워 먹은 돌연변이들이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다.
달달 고소하던 조금 전과 다르게 얼음 가루 뭉치에 불과했으니까.
냉감조차 모르는 돌연변이들은 [이게 뭐임?] 하며 눈만 끔뻑거렸고.
나는 작은 주머니를 두 손가락으로 집어 들어올렸다.
“핵심은 이겁니다.”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하나 주워 뜯은 후, 가루를 살짝 집어서 뿌렸다.
나는 [개코]를 장착하지 않는 한 아이스크림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돌연변이들은 달랐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코를 벌름거린다.
평소 후각이 예민한 돌연변이도, 후각이 아예 없는 돌연변이도 똑같았다.
“이 가루를 뿌리기만 하면 어떤 음식이든지 여러분은 그 음식의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맛없는 음식도요.”
“그 맛없다는 게, 인간들이 말하는 맛없다는 뜻이야?”
“바로 그렇습니다.”
거수곰이 자연스럽게 내게서 아이스크림을 받으며 물었다.
한입에 꿀꺽 삼키는 것을 돌연변이들이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흐아아!”
근엄하던 괴물촌 촌장은 없다.
그저 아이스크림 먹고 행복감에 몸부림치는 곰탱이만 있을 뿐.
당장 성토가 쏟아졌다.
“저, 저, 저 곰 새끼 좀 봐!”
“지 혼자만 처먹고!”
“네 입만 입이고 우리 입은 주둥이냐?”
“나도 줘! 나도!”
나는 주머니를 통째로 거수곰에게 넘겼다.
거수곰이 주머니를 받고는 신중하게 안을 살폈다.
“이게 뭐지?”
“한번 맞춰 보세요.”
“거참. 평범한 조미료는 아닌데 도대체 뭐지?”
거수곰이 혀를 내밀어 가루를 핥았다.
동공이 쫘악 확장되더니 나를 홱 돌아본다.
“이 무슨! 지금 나를 죽이려고!”
0레벨 마력핵 가루.
거수곰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돌연변이에게 마력핵은 치명적이라고 알려져 있으니까.
선천적 돌연변이에게 후천적 변이가 더해지면 그건 걷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이미 정화한 물건입니다. 절대 부작용이 없습니다.”
“어떻게 장담하지?”
“정말입니다. 제가 드린 거 드시고 변이되는 분 계시면 절 죽이세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음…….”
“정 걱정되시면 최하급 성수에 담갔다가 드시면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맛이 더 좋아질걸요? 마력 반응성이 좋아지니까요. 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0레벨 마력핵만 쓰셔야 합니다. 1레벨부터는 위험합니다.”
내 말에 비로소 가루의 정체를 알아차렸나 보다.
돌연변이들이 여기저기 웅성거렸다.
“마력핵? 저거 마력핵이야?”
“마력이 느껴진다!”
“우웩! 우리한테 마력핵을 먹였다고?”
“정화했대잖아.”
“그래도 마력핵이야!”
“마력핵이건 뭐건 좋아. 난 아이스크림 다시 먹을 수만 있으면 마력핵이든 뭐든 처먹을 수 있어.”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
“우리도 이제 드라마처럼 아이스크림도 먹고 아이스크림 케이크도 먹고 팥빙수도 먹고 젤라또도 먹을 수 있는 거야?”
걱정하는 눈빛 반. 욕심에 찬 눈빛 반.
나는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여러분께는 수호신도 계시지 않습니까. 정 걱정되면 수호신께 한번 여쭤보세요. 예언의 능력을 가진 그분이라면 이걸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알려 주실 겁니다.”
“대모님에 대해선 어떻게 알았지?”
“말했잖아요. 친구한테 들었다고.”
게임으로 알았다고는 절대 말 못 하지.
거수곰이 날 내려다보다가 그 자리에서 엎드렸다.
거실 한쪽에 놓인 초대형 마도과학 TV.
그걸 향해, 정확히 말하면 초거대 원목 TV장을 향해 절을 열 번 하고는 괴이한 방언을 읊조린다.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초저주파와 초고주파가 결합하여 괴상하게만 들리는 소음.
이게 대모, 괴물촌의 수호신, 나무 신(神, god)과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한참을 엎드려 있던 거수곰이 일어났다.
날 한 번 보고, 돌연변이들을 한 번 보고, 자기 나무집을 한 번 보고는 입을 열었다.
“대모님께서 안전하다고 하셨다. 단, 반드시 직접 만들어서 먹고 정화하거나 성수에 담갔다가 먹어야 한다.”
“저, 정말이야?”
“대모님께서 그러셨다고?”
“마력핵을 먹어도 돼?”
“0레벨 마력핵이래잖아! 0레벨 마력핵! 우리 마을 사람이면 최소한 3레벨은 되는데, 고작 0레벨 마력핵에 변이될 약골은 우리 마을 사람 중에는 없어!”
“아암!”
“그딴 약한 놈들은 애초에 태어나질 못하지!”
돌연변이들이 침을 줄줄 흘렸다.
시선은 오로지 거수곰이 든 주머니에 꽂혀 있었다.
눈만 보면 소드마스터가 따로 없다.
시선이 마치 검강을 보는 것 같았다.
7레벨 초인인 거수곰이 잠깐 몸을 떨 정도.
나는 조용히 골프백을 열어 비닐봉지를 휙휙 꺼냈다.
“뭐야?”
“삼겹살이다!”
“치킨도 있어!”
“짜장면! 저거 짜장면 맞지?”
어지간한 자동차 트렁크 크기를 자랑하는 골프백.
오늘은 총과 유탄 발사기, 폭탄 대신에 음식을 꽉꽉 채워왔다.
말 그대로 마트를 탈탈 털었지.
봉투를 뜯고 음식을 내밀자 돌연변이들이 눈이 뒤집혀서는 음식을 약탈했다.
“고맙다! 인간!”
“넌 좋은 인간이구나!”
“왜 우리 마을 사람이 널 친구로 인정했는지 알겠다!”
“정말로 고맙다! 내 간이 필요하면 기꺼이 이식해 줄게! 나는 간이 네 개거든!”
여기에 주머니를 몇 개 더 건넸다.
거수곰에게 줬던 가루가 다가 아니었던 것.
돌연변이들이 침을 줄줄 흘리며 가루를 뿌렸다.
나는 맡을 수 없는, 그러나 돌연변이에겐 개미 페로몬보다 강력한 유혹.
“흐어어어…….”
“흐아아…….”
돌연변이들이 양초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어떤 무정형 돌연변이는 아예 자기 형체를 잃고 슬라임처럼 바닥에 퍼져 버렸다.
벌써 이러면 어떻게 해?
나는 비장의 무기, 자가 가열형 대형 냄비를 골프백 깊은 곳에서 꺼냈다.
물을 받아 끓이며 라면을 넣는다.
동봉된 라면 스프에 더해 추가로 후추와 소금, 고춧가루, 설탕을 아낌없이 투하.
거의 한 주먹씩.
겁나게 짜고 맵고 단 대혼종 잡탕 라면 완성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 숟가락 먹고 뱉을 라면.
하지만 돌연변이라면 어떨까?
맛을 혀로 느끼는 게 아니라, 마력 회로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끼는 이들이라면?
돌연변이들이 홀린 얼굴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한 숟가락, 한 젓가락.
“와…….”
“워…….”
폭풍이 불어닥쳤다.
그야말로 맛의 폭풍.
모든 돌연변이가 일거에 침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