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46
346화
59장 테무케의 야망(2)
원 역사에서 테무케 옷치긴은 자신의 조카 오고타이칸이 과음으로 죽자 그 누구보다 빨리 ‘대칸의 유궁을 지킨다’라는 명목으로 군대를 이끌고 오고타이의 카툰(황후)들이 거처하는 ‘오르도(행궁)’로 오는 등 사실상 대칸 자리를 차지하고자 정변을 시도한 자이다.
물론 그 시도는 오고타이칸의 아내인 퇴레게네 카툰의 현명한 대처와 때마침 돌아오고 있던 구유크의 군대 소식에 자신의 울루스로 돌아가며 허망하게 끝이 났다.
하지만 노물은 대칸 자리에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형이 죽고, 누가 봐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노년까지 대칸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않은 노물이다.
‘이미 일어난 불화는 둘째 치더라도 야욕이 큰 노물과 손잡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하지.’
초장부터 구유크 대신 손잡았으면 옷치긴 입장에선 강동성 전투 때처럼 동등한 입장의 동맹 세력이 아니라 갈취와 수취 대상인 속국으로 불릴 것이 분명했다.
지금이야 몇 번 패줬으니 그럭저럭 대등한 상태로 협력관계가 될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역시 노물의 야심이 걸린다.
야심 어린 노물이 있는 강력한 세력을 지근거리에 두는 것은 좋지 않다.
실제 중국에서는 나라의 외교를 원교근공(遠交近攻)으로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하지 않던가?
테무케의 욕심은 끝이 없고, 테무케의 나이는 이미 고령이다.
테무케의 욕심이 언제 문제를 일으키고 그 후폭풍이 얼마나 빨리 수습될지 모르는 이상 테무케가 죽기라도 한다면 옷치긴 왕가는 이빨 빠진 호랑이다.
명석한 손주 타카차르가 있긴 하지만 걔가 두각을 드러낸 것은 몽케가 죽은 후였으니 아직 수십 년은 남았다.
거기다 툴루이계의 핵심인 몽케 형제들도 툴루이 울루스의 계승권을 잃은 이상 타카차르가 쿠빌라이의 편을 들어 떡상을 하게 되는 전개가 일어날지도 의심스럽고 말이다.
쉽게 말해 옷치긴 왕가는 강력한 세력이긴 하나 테무케 옷치긴의 야심은 정말 위험하다는 점이다.
내 추측과 달리 현 테무케가 대칸의 자리까지는 욕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고 해도 그 욕심이 고려와 마지막 담판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리는 없는 것이다.
그것을 몽케의 입으로 확인받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이번 사고를 빌미로 돌려보낸 것이다.
“하지만 전하. 이렇게 시찰단을 보낸다면 결국 노왕이 노린 대로 가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겠지.”
그러나 어떤 이유가 있든 시찰단을 돌려보낸 것은 이건 옷치긴이 바라는 대로 고려의 의심을 증폭시키고 그가 원하는 전쟁 명분을 공고히 하게 만들어주는 격이다.
평상시라면 하지 않았을 우행(愚行)이고,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시찰단 자체는 받아야 한다 판단한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지금 몽고 내 노왕의 입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태로운 듯하구나.”
“예?”
“그 늙은 노물을 경계하는 것은 구육 황자나 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것이 이 정도로 드러날 정도라면 지금까지 우리의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진 않았던 것 같구나.”
그리 말한 나는, 나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몽케의 정사 테케가 내 예상 이상으로 나의 반응에 크게 걱정하며 이 사태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이렇게 나왔다는 점에서 몽골 제국 내에 고려의 입지가 예상보다 높다는 뜻이다.
동시에 대칸과 구유크가 떠난 상황에서 다소 적극적으로 견제를 할 정도로 옷치긴 왕가의 위상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파투 낼 시찰단이니 이쪽에서 먼저 돌려보내는 것이 숨길 것은 숨기고 접대비도 아낄 수 있으며 몽케 일가를 비롯한 반옷치긴 왕가 측의 손을 잡겠다는 제스처를 보이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의 선택이다.
그래서 몽케도 내가 완곡히 돌아가라는 뜻을 태연히 받아들인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속으로 내가 자신들의 손을 들어준 것에 기뻐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튼 결과적으로 이번 시찰단의 문제는 나나 테무케를 포함해 모두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테무케는 바란 대로 파투 시키는 데 성공했고, 나는 최대한 적은 손해로 껄끄러운 시찰단을 돌려보내 정보를 숨기고 접대비도 아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장 승리자는 나도, 테무케도 아니다.
* * *
시간을 거슬러 소르칵타니가 고려에 시찰단을 보내자는 의견을 내놓았을 때.
“그러니 고려에 시찰단(視察團)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시찰단이라고?”
“예. 시찰단을 보내 이번 소문의 진위여부(眞僞與否)를 조사하고, 그 진위를 차치하더라도 고려로 하여금 불미스러운 소문이 나지 않도록 책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이 일에 관망한 것은 아니며, 이후 대칸이 돌아온 후 혹은 고려에서 소문을 제대로 막지 못한다면 그것을 책하며 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르칵타니의 의견에 게르 내에서는 감탄의 소리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퇴레게네는 그것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것은 이 소문이 거짓인 것이 맞을 경우이고, 만약 사실일 경우에는 딱히 좋은 수가 아니다. 무엇보다 예케 몽골 울루스 내에서 이번 소문으로 고려에 대해 의심과 적대하는 이들이 적지가 않아 위험하다는 것은 그들 중에는 분명 이번 소문을 빌미로 나서려는 자도 있을지 몰라 그러한 것이다. 그들을 시찰단만으로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퇴레게네의 말에 담긴 나서려는 자들이 누구인지 소르칵타니는 눈치채고는 대답했다.
“그럼에도 되지 않는다면 관망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관망하라고?”
예상 못 한 답인지 퇴레게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고, 그런 반문에 소르칵타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은 어차피 어르신께서는 끼어드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시찰단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어르신이 움직일 때 어르신의 말을 따르는 이들이 자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에서는 관망하고, 다른 이들까지 강제로 끌어들이는 것만을 막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르신의 세력은 이미 대칸과 부군께서도 인정할 정도이며, 어르신 개인으로서도 고려와는 인연이 있습니다. 하여 이번 일에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 낫다 생각합니다.”
“…….”
소르칵타니의 말에 퇴레게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뜻 들으면 옷치긴 왕가가 고려가 격돌하는 것만을 노리는 것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단순히 옷치긴 왕가와 고려의 충돌로 힘을 줄이는 것이 아니었다.
끼어들자는 세력은 놔두는 것으로 조정보다 옷치긴 왕가를 더 따르는 이들을 색출하고, 정적들을 지우고 나아가 이번 전쟁의 승패를 떠나 고려에 대한 경계심을 강화시키는 것은 물론, 고려를 통어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자는 속셈이 깃든 것이다.
‘소르칵타니가 구유크의 처가 된 것이 새삼 다시 천만다행이라 느껴지는구나. 지금이라도 구유크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만들어 구유크를 내조하고, 그사이 나온 아이를 가장 아껴주기만 한다면 내가 바랄 것은 더 이상 없는데….’
그러한 소르칵타니의 의도를 간파한 퇴레게네는 그녀의 능력에 감탄하면서도 아까웠다.
만약 그녀가 지성으로 내조만 해준다면 구유크가 다음 대칸에 오르는 것은 문제도 아닐 것이 뻔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퇴레게네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퇴레게네를 비롯한 오고타이계의 카툰들의 만남이 끝나고 헤어질 때 오굴 카미시는 게르 밖까지 쫓아와 소르칵타니에게 말하였다.
“소르칵타니. 오늘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소. 여러 수를 살피고 선택하는 행동. 과연 현모의 귀감이었소. 주변에서 그대를 현모라고 하는데 오늘 그 평가가 틀린 말이 아니란 것을 알았소.”
“감사합니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오굴 카미시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에도 소르칵타니는 일말의 불만도 가지지 않았다. 아니, 표현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일찍부터 몽골인들 사이에서 의연함과 몽골의 율법을 성실히 지키던 그녀였다.
그런 여인이 구유크의 처가 되고 나니 먼저 처가 된 오굴 카미시가 자기보다 어리다고 불만을 표한다는 것은 기존 지켰던 명예마저 부정하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조카의 처 자리를 두고 투기를 부린다는 모습을 주변에 드러내는 것 또한 그녀의 체면과 평판은 물론 자존심을 건드리는 꼴이기도 하였다.
그것을 알기에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고 그러는 것인지 오굴 카미시는 더욱 다가와 손을 잡고 말했다.
“부디 그 지모를 구유크 님께 사용해 주시오. 나 또한 같은 구유크 님의 처로서 협력을 아끼지 않겠소.”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오굴 카미시는 웃으며 말했고 소르칵타니도 웃으며 고개를 받아들였다. 웃고 있는 그 속내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그 광경은 처첩의 훈훈한 모습으로 보일 뿐이었다.
* * *
“내 몽가(몽케)와 대화를 하면서 느끼건대 이번 일은 오로지 그가 떠올렸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조언대로 움직이는 것 같다. 내 듣건대 몽가의 어미 사로합첩니(唆魯合貼尼 소르칵타니)가 무척이나 지모가 뛰어난 여인이라 하는데, 만일 이번 일이 정말 사로합첩니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고, 아조에서 일어난 일들까지 전부 염두에 둔 것이라면 실로 무서운 요녀가 아닐 수 없다.”
정말 그녀가 보낸 것이 맞는다면 옷치긴 왕가의 승패를 떠나서 이번 시찰단 파견부터 귀환까지 일어난 일들에서 진정한 승리자는 그녀다.
솔직히 몽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존재와 이 생각에 도달한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구유크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계사지주 이전 최우와 3차 여몽전쟁에서 테무케의 전략에 빠졌다는 것을 자각한 이후 처음으로 상대가 짜둔 계획에 소름이 돋았다.
최우의 경우에는 최충헌 시절부터 짜놓은 공고한 권력 구조와 정치력으로 정공법으로는 방도가 없던 외손녀와 나를 약혼시켜 나의 수족을 봉쇄&흡수시키려는 방도에서 소름과 절망을 느꼈다.
테무케의 경우에는 3차 전쟁에서 이전부터 틈틈이 대비한 국경 방어 책략과 인재들로 이긴 승리들, 전부 의미 없게 짜둔 전략의 방향성과 스케일에 소름이 돋았다.
이번 소르칵타니 경우에는 앞선 둘과 달리 고려를 주 대상으로 만들어진 책략이 아니라 부가적으로 들어간 경우에 가까워 앞서 두 경우에 비하면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의 절망은 아니다.
그러나 소르칵타니의 (진짜 의도한 것이 맞는다면) 그 작전에 꼼짝도 못 한 채 이용되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 것이다.
‘시찰단을 파견한 자가 옷치긴을 얕보긴 개뿔. 내가 오판했다. 과연 소르칵타니. 옷치긴의 대응과 고집을 예상하고 시찰단을 파견하여 내게 손을 벌린 것이구나. 그리고 옷치긴 왕가의 전쟁이 우선인 고려에선 그 손길을 거절하기는 힘드니 결국 옷치긴 왕가 전부가 그녀의 손바닥 안에 놀아난 꼴이 되었고.’
귀환한 시찰단 문제로 몽골 제국 내부에서는 옷치긴은 고려를 더욱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시선을 받을 것이다.
몽골 제국 내에 친옷치긴과 반옷치긴이 강하게 나뉠 것이고, 이후 척결할 때 빌미가 될 것이다.
그리고 툴루이 울루스에서 벗어난 그녀 일가는 이번 몽케와 나의 대화로 나와 얼굴을 트게 되며 나름의 줄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녀가 이후 원 역사처럼 자식들을 칸에 오르게 할 때 그 관계를 이용하려 들지 모른다.
그래도 여기까지라면 그냥 감탄하는 수준에서 멈췄을 것이다.
내가 진정 소름을 느낀 것은 끝나고 보니 몽케의 회담에 내가 받아들여 귀환시킨 것으로 소르칵타니 모자들은 어떤 식으로 전개되더라도 이득을 얻을 수 있게 판이 깔렸다는 점이다.
무슨 뜻이냐면 이번에 나는 몽케의 말을 듣고 그와 손을 잡겠다는 제스처를 보이고자 상국의 시찰단을 축객령을 내려 돌려보낸 것이다.
여기에는 내가 이렇게 함으로써 이후 몽골 내부에서 고려에 대한 적대와 경계로 나의 입지가 고립될 경우, 그녀들이 반옷치긴 측 혹은 반전파들을 이용하여 적대감을 덜어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 모자들이 안면몰수하고 모른 척한다면 적대감이 오르는 것을 내버려 두거나 반대로 고려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긴다면?
김방경이 걱정한 대로 서정군이 돌아온 후 ‘고려가 감히 몽골 제국의 시찰단을 돌려보냈다’라는 것을 구실로 내세워 몰아붙이는 전개도 일어날 수 있다.
즉, 그런 협박을 당하지 않으려면 고려는 그녀 일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래 봤자 지난번 구유크에게 걸렸던 목줄에 비하면 가벼운 편이라서 감안하여 응한 것이지만 이번 사건에서 가장 득 본 것은 그녀임이 명백한 것이다.
‘일단 각자 바라는 대로 결과를 얻긴 했으니 최악은 아니긴 하더라도 그녀만이 전혀 손해 없이 목적을 달성했으니 말이야. 제대로 한 방 먹긴 했어.’
“그대들은 이후 몽가 형제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 사로합첩니를 반드시 기억하고 있도록 하라!”
또다시 눈치채고 나니 손바닥 안이라는 경험에 소름은 돋았지만 그래도 이전과 달리 피해 없이(혹은 최소한의 피해로) 명성이 자자한 소르칵타니의 편린을 미리 보고 그녀를 단단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위안이 된다.
‘놀라기는 했지만 진짜 무서운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존재의 개입으로 허를 제대로 찔렸을 때지. 일단 인지하게 되면 어떻게든 피해를 덜게 대응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