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427
427화
32장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Peace for our time)
인노첸시오 4세의 말대로 카르피니 사절은 최우선의 목표를 실패한 것은 물론, 차선의 목표도 실패했다. 하지만 다른 추기경들은 인노첸시오의 말에 순순히 동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교가 순순히 될 것이라고 기대한 이들도 몇이나 있었습니까? 적어도 이번 사행으로 저들이 유럽 전역을 치려는 의도가 없으며 타타르의 왕 또한 개종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확인한 것은 큰 성과가 아니겠습니까?”
그 말대로 몽골인들이 선교를 허락하지 않았으나, 교황령의 안전, 그것도 알프스산맥 이남의 비 교황령까지 교황령이라고 오인하여 불가침을 선언해준 것이다.
거기에 카르피니 신부의 노력에 대칸을 움직여 가톨릭에 대한 반감도 덜해지고 다시 보며 개종의 희망도 남겼으니 마냥 비판할 것도 없었다.
이른바, 목표 달성은 실패했으나 최악의 상황은 면했고, 예상치 못한 소득도 얻었다는 것이 이번 사절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였다.
그러나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애매모호하다는 말이기도 했고 그런 평가인 만큼, 예상외로 소득에 기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당연히 인노첸시오 4세처럼 분노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신자도 아닌 타타르 왕의 말을 무슨 근거로 믿는단 말입니까? 그저 입만 번지르르하게 말하여 제 욕심을 채우고 있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좋습니다. 신성로마의 문제도 문제지만, 그것은 그렇다고 합시다.
하면, 헝가리 왕국을 초토화시킨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한단 말입니까? 저들이 진정 복수만을 위한 것이라면 헝가리는 어째서 그렇게 가혹하게 학살을 벌였단 말입니까?”
“이제껏 주님의 가르침을 모르던 이민족입니다. 그게 이제야 개종의 조짐이 보인 것이니 그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닙니다. 저들이 진정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고자 한다면 적어도 선량한 신자들은 죽이지 않겠다고 하고, 붙잡은 이들도 돌려줘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것은 저들에겐 다른 속내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맞습니다. 애당초 이민족의 말에 무슨 신의가 있고, 신뢰를 가져 따라야 하는 것입니까? 저들이 저렇게 주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도 모두 신의 힘을 경험해 보지 못하여 그런 것입니다.”
인노첸시오 4세 같은 극렬한 가톨릭 신자들에게 몽골의 반응과 구유크 칸의 답장은 광오했고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십시오. 제국이 저렇게 당하고 있어 우리들은 저 야만족이 강하다고 떨고 있지만 실상 황제(프리드리히 2세)가 당한 것은 야만족들의 기습 때문이고, 제국이 저렇게 초토화된 것도 병력이 제대로 모이지 못해 일어난 것입니다.
제국은 타타르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저들은 제국을, 유럽을 두려워서 우리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듯이 구는 것입니다! 하여 악마의 유혹처럼 우리를 현혹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자신들은 그동안 북쪽에 있는 신자들을 처리하려 드는 것입니다. 교황 성하! 저들의 말을 따른다면 우리는 신자들을 버리는 것이 됩니다. 당장 성전을 선포하여 십자군을 규합하여 저 무식한 야만족들은 토벌하여야 합니다!”
인노첸시오 4세를 필두로 극렬한 추기경들의 열변에 장내는 더욱 소란스러워지며 갑론을박이 심해졌다. 여러 의미로 몽골의 화전양면전술이 먹힌다고 할 수 있었다.
“우선, 사태를 지켜보며 새로운 사절을 보낼 자를 준비해 봅시다.”
소란 끝에 내놓은 교황 첼레스티노 4세의 현 상황을 선고하는 답변에 장내의 사람들의 얼굴은 명암이 뚜렷해졌다.
지금 이미 몽골군이 판치고 있는 알프스산맥 이북의 행보에 대해 일단은 묵인하고, 프리드리히 2세의 폭정과 실책을 강하게 규탄하며 몽골에 대한 선교와 칸과의 대화의 시도를 다시 준비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신성로마제국 북방을 치고 있는 것에 대해 지금 당장 십자군을 소집해서 대응하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
사실 갑론을박과 별개로 교황청의 답은 사실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구유크의 요구나 답장이 무엇이든, 교황청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권위나 권력에 많은 피해를 입은 교황청에서 동일하게 프리드리히 2세와 전쟁으로 피해 입은 이탈리아반도 귀족들에게 군대를 동원하여 친다거나 타국에서 십자군을 소집한다 한들, 얼마나 모일지 몰랐고, 시간도 촉박했다.
무엇보다 지금 십자군을 선포한다면 이탈리아 북부에서 십자군을 소집하는 에첼리노가 주도할 가능성이 높은데, 여기서 교황에서 주도해야 한다는 말을 저들이 순순히 따를 리 없고 그렇다고 에첼리노를 지휘관으로서 인정하여 보내는 것도 불만과 불안함이 적지 않았다.
제대로 모였을지도 모르는 십자군의 병력으로 몽골을 쳐서 진다면, 교황청은 겨우 대화의 빛을 내보여준 몽골에게 스스로 대화는 필요 없다고 손을 내친 것이 된다.
반대로 십자군이 대승을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에첼리노를 처리하기 힘들뿐더러, 프리드리히 2세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는 그가 제2의 프리드리히 2세 황제 같은 위치에 오를지 모른다는 걱정이 든 것이다.
에첼리노의 잔혹함을 아는 이탈리아의 귀족들과 사람들은, 신자들은 그가 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여기에 반전론에 더 기름을 뿌린 것은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베네치아 상인들과 인근 도시 귀족들이었다. 그들도 몽골이 산맥 이남을 칠 생각이 없고 대화의 뜻이 있다는 것을 듣고는 즉시 평화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가자고 교황청에 편지를 보내고 찬성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신성로마제국과 사이가 나빠 자주 프리히드리 2세를 비롯하여 에첼리노와 전쟁을 벌였던 베네치아의 도제(Doge=통령 統領) 야코포 티에폴로(Jacopo Tiepolo)는 신성로마를 돕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몽골이 남하한다면 자신들도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이유에 더해, 1232년 몽골과 체결한 무역협정으로 얻을 이득 때문이라도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 하는 것이 좋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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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르족은 본래 캅치크와 알란 보다 더 멀리, 이곳에서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우리가 있는 유럽에 온 것은 지난 전쟁에서 자신들을 친 키예프와 루스 인들, 그리고 캅치크 인들의 문제로 온 것입니다. 헝가리와 폴란드 또한 그들에게 죄를 지은 자들을 자신들에게 송환하지 않아 치게 된 것으로 제국이나 우리에게 원한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지금 제국을 치고 있는 것은 모두 황제가 외교의 예를 무시하고 그들의 선왕을 독살하고 아끼는 왕자를 죽여서 생긴 일입니다. 황제가 그런 짓을 하기 전까지는 타타르인들은 제국과 치지 않았고, 제국민들도 타타르와 전쟁을 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성하께서도 아시겠지만 황제는 가히 그러고도 남을 무도한 자인 것은 세상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황제에게 가족을 잃은 타타르 왕은 아버지와 형제의 복수에 사무쳐 제국을 치는 것으로 즉, 저들이 죄가 있고 없음을 떠나 그 분노 자체는 정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의 분노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고 일방적으로 강요를 한다면 저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주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듣겠습니까? 아니면 곡해하여 오해하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수많은 피가 흘리는 것만이 아니라… (중략) …
만일 저들의 학살과 무도함을 막고자 한다면 힘이 아니라 성(聖) 레오 4세 교황 성하처럼 말을 설득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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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포 티에폴로가 보낸 글에는 타타르인들은 생각 이상으로 강력하며 은원관계를 중요시하니 섣불리 무력으로 대응하려고 한다면, 정말로 많은 피를 볼 것이며 거기서 가장 이득을 볼 것은 황제와 같은 족속인 에첼리노 4세라고 하였다. 이는 교황청에서도 이미 염두에 두던 부분들이었기에 더욱 전쟁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글 내용 중간에는 지난날 신성로마제국과의 전쟁에서 희생당한 자신의 아들 피에트로 티에폴로를 언급하면서 그런 황제의 인성을 언급하며 야만족을 배격한다는 이유로 황제를 옹호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을 한 것이며, 교황청에도 좋을 것이 없다고 경고하였다.
반대로 만약 몽골과의 화평과 협상을 원한다면 자신들도 그 자리를 만드는데 협력할 의향이 있다고 적은 것이다.
“인노첸시오 추기경은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오?”
“성하. 제 주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베네치아인들은 타타르인들에게 돈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 십자군을 모아 성전을 벌여 이민족들을 치고 불쌍한 사람들을 구해야 합니다.”
“하면 에첼리노 장군의 요청을 허락하고 그가 십자군을 소집하도록 두고 성전을 명하면 되겠소?”
교황의 반문에 인노첸시오 4세는 처음으로 기세를 잃으며 당황했다.
“아닙니다. 따로 제대로 된 경건한 장수를 선별하여….”
“지금 이곳 근방에서 당장 싸울 수 있고 능력도 갖춘 장수는 그밖에 없소. 다른 영지가 있는 귀족들이나 영주들은 타타르와의 일전을 회피하면서 대화를 하자고 하고 있지 않소.”
“그, 그들을 설득하여 데려오는 것이….”
“지금 십자군을 소집하여 조금이라도 병력을 모으고자 한다면 에첼리노 그의 요청을 승인하고 우리가 정식으로 도와야 하는 것이오.”
교황의 반문에 인노켄시오 4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 또한 프리드리히 2세 황제에 붙어서 자신들을 괴롭힌 에첼리노에 대한 반감은 결코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자 외에도 정의로운 신도들은 많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도 정의가 어느 쪽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다. 우리 십자군들이 수가 적다고 하나 그 용맹함과 무력은 이민족들 따위에게 지지 않을 것이며 주님께서도 그들에게 축복과 가호를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니 성전을 당장 선포하는 것이….”
인노첸시오 4세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성전을 주장했지만 그때 어느 추기경이 끼어들어 되물었다.
“하면 여태까지는 주님께서 황제에게 축복과 가호를 내리셨다는 말이오?”
“지금 그 무슨 불경한 말이오!”
“그대야말로 주님의 뜻을 단순한 힘의 강약으로 재단하지 마시오!”
프리드리히 2세 황제는 죽기 전까지 교황청을 압박했는데 그때 황제가 정의냐는 말에 인노체시오 4세는 발끈하며 되물었고, 그 말을 한 추기경도 지지 않고 따졌다.
그렇게 점점 열이 오르는 분위기가 폭발하지 않게 만든 것은 적절히 끼어든 교황이었다. 교황은 차분한 목소리로 달래듯 물었다.
“경의 말대로 십자군을 소집하든, 대화를 하든, 타타르의 병력이 대군일지 모르는 이상 그에 상응하는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소? 이 시간이야말로 주님께서 내리신 축복일 수도 있으니 우선은 타타르 왕을 선교하는 것을 이어 하도록 합시다.”
며칠 후 교황의 이름으로 카르피니 사절단의 공적을 최대한 좋게 퍼뜨리며, 몽골의 칸이 교황청의 뜻을 듣고는 알프스 이남과 서쪽으로 불가침을 선언했음을 알렸다. 그리고는 교황청은 나아가 몽골 칸을 설득하여 신성로마제국에서 물러나게 한 후 칸을 개종시키고 저들의 땅에도 복음을 전파할 계획도 알렸다.
사실상 무력 대응에 대해선 일단 유보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 선언에 북쪽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몽골과 대치하고 있는 신성로마제국의 사람들과 그곳에서 피난 온 이들은 그런 교황청의 뜻에 경악하고, 실망하고 이윽고 비탄과 규탄의 소리를 내뱉었다. 그들 입장에선 자신들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맥 이남, 특히 몽골의 지척에 있어 공포에 떨던 이들은 교황의 선언에 전쟁을 벌이지 않아도 좋다는 것에 기뻐하는 이들이 많았다. 전쟁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당할 위험이 있는 것이 자신들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은 옳으시니 저 멀리서 온 이민족들도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구나.”
반대로 신자들에 이르러선 몽골에서 멀리 있는 이들일수록 이번 카르피니 사절단의 위업을 높이 평가했다.
수많은 나라들을 멸망시킨 제2의 훈족 같은 야만족들을 창과 칼이 아닌 주님의 가르침과 복음으로 전쟁을 막았다는 것 위업과 그들의 원한이 교황청에 대립하는 프리드리히 2세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참작된 것이다.
“신부님. 제가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이것은 저 타타르인들이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란 말입니까?”
“예.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Peace for our time)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다 건너 영국에 있던 신부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재진행형으로 약탈과 학살을 당하고 있는 신성로마제국의 백성들이 들으면 극대노 할 발언이었지만 그 말을 한 신부는 진심으로 조만간 개종 되어 평화롭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건한 신부들의 생각과 달리, 몽골에서 떨어져 있고, 몽골의 불가침과 교황청의 불가침 선포에 당황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으니 바로 영국왕 헨리 3세, 그리고 에첼리노 4세가 이에 포함된다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