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12
교랑의경 112화
한편 교교가 있는 곳은 아무도 없는 듯 조용했다. 동씨 가문 사람들이 병자를 데려간 후, 밖에서 펼쳐진 떠들썩한 일들은 이곳과 무관한 듯했다. 여종 하나가 문밖에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무슨 일이야?”
안에 있던 여종이 얼른 손을 내저으며 물었다.
“부인께서 깼냐고 물으셔서.”
여종이 나지막이 물었다. 이제 아랫것들은 따로 주의를 주지 않아도 이곳에 오면 절로 목소리를 낮추게 됐다. 동 내한이 실려 나간 일로 놀란 것은 바깥세상의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주씨 가문 사람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죽을 사람을 살려내다니!
진 노태야의 경우에는 직접 본 게 아니었다. 은근히 놀라긴 했지만 엄청난 충격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엔 모두가 직접 목도한 것이다. 정말 신의야! 정녕 신선의 제자였어!
“아직.”
여종이 대답했다.
“이틀이나 주무셨잖아.”
소식을 알아보러 왔던 여종은 놀란 눈치였다.
“황천길에서 사람을 끌고 왔으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겠지.”
여종은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하고는 손을 내저었다.
“어서 가, 가라고.”
씩씩거리며 돌아서던 여종은 몇 보 걷기도 전에 주육낭과 부딪쳤다.
“아직 안 일어났다고?”
주육낭이 다짜고짜 물었다.
“네, 의원이라도 부를까요?”
여종이 얼른 되물었다. 죽은 사람도 살리는 의술을 가진 신의가 의원을 부른다? 주육낭의 표정이 괴이해졌다.
“불러!”
진 공자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딱 잘라 말했다.
“의원을 부르라고?”
주육낭이 우습다는 듯 물었다.
“그래. 지금 당장 의원을 불러.”
진 공자는 주육낭을 보며 말을 이었다.
“육낭, 귀신이니 신묘니 하는 말은 과하면 못써. 아둔한 백성이나 하는 소리지, 성인군자는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지. 전에는 명성을 얻기 전이니 사람들이 호기심에 떠들어대도 상관없었지만, 이번 일로 정 낭자는 경성에서 명성을 얻었잖아. 뒤에서 어떤 말이 돌든 공식적으로는 떳떳한 명성이어야 해. 안 그럼 정 낭자에게 안 좋아.”
주육낭은 잠시 침묵하다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 좋은 뜻을 알아주기나 할지 모르겠네.”
진 공자는 빙긋 웃으며 차를 빻는 공이를 집어 들었다.
“좋은 뜻이면 다 알게 돼 있지.”
여종이 의원을 부르러 나가려 하자, 진 공자가 무언가 생각난 듯 덧붙였다.
“아씨가 이틀이나 못 일어났으니 서둘러 의원을 부르도록 해라. 유명한 의원을 데려올 필요는 없고, 가장 유명하고 큰 약포에서 아무나 하나 데려오면 된다. 서두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주씨 가문 하인들은 동작이 잽쌌다. 차 한 잔을 채 마시기도 전에 의원이 주씨 저택의 대문을 넘어 정교랑의 거처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에요?”
문을 여는 시녀의 얼굴에 분노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녀는 여종을 훑어본 후 노인에게 시선을 두었다가 마지막으로 대문 밖에 뒷짐을 지고 선 주육낭을 쳐다봤다.
“아씨께서 오래 안 일어나셨잖아. 노야와 부인께서 걱정이 크시거든. 그래서 의원을 모셔 왔어.”
여종이 조심스레 말했다. 시녀는 눈빛을 번뜩이며 두 사람을 훑었다.
“기다려 봐요. 아씨께서 깨어나셨나 보고 올게요.”
시녀가 문을 닫고 들어간 후 얼마 안 가 다시 문이 열렸다.
“들어오세요.”
시녀가 공손하게 말하며 옆으로 비켜섰다. 대문 밖에 서 있던 주육낭은 의원이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후 뒤돌아 가 버렸다.
실내에는 휘장이 드리워져 있고 어두컴컴했다. 안내를 받은 노인이 침실로 들어가자 침상에 옆으로 누운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노인은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아씨, 의원이 왔어요. 맥을 짚을게요.”
시녀가 휘장을 들어 올리고 손을 꺼내자 꿇어앉은 의원이 손을 쳐다봤다. 소녀의 작디작은 손은 앙상했다. 어둠 속에서 보니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생기가 없고 거칠어 보였다. 굳은살이 있는 손가락까지 있었다.
늙은 의원이 얼른 옆으로 시선을 돌리며 맥을 짚고 잠시 후 손을 바꿨다. 방금 전 오른손과 마찬가지로 왼손 역시 몇몇 손가락에 굳은살이 있었다. 어떤 연유로 왼손과 오른손 손가락 모두에 굳은살이 난 거지?
“안색을 보도록 휘장을 걷어 주시오.”
시녀가 네 하고 대답한 후 휘장을 걷었다. 비단 이불을 덮은 왜소한 소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진지하게 살피고 난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녀가 휘장을 내렸다.
밖에는 벌써 소식을 들은 주 부인이 와 있었다. 주 부인은 의원이 밖으로 나오자 미처 앉기도 전에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부인, 조용히 해 주세요. 저희 아씨께선 아직 주무세요.”
시녀가 말했다.
“다 너 때문이다. 이게 무슨 일이야. 왜 진작 말 안 했어?”
주 부인은 눈썹을 치켜뜨며 호통을 쳤다.
“자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란 말이 나와? 이러니 내가 마음을 못 놓지. 교교가 잘못되면 네가 책임질 수나 있어?”
시녀는 주 부인을 흘겨본 후 고개를 돌리고 상대하지 않았다.
“의원, 어때요?”
시녀가 의원을 보며 물었다. 의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아씨께서는 심신이 피로하여 호흡이 약합니다. 아마 어지럼증 때문에 일어나시기 힘들 겁니다.”
시녀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색이 창백하고 손톱의 색도 옅습니다. 맥박에도 힘이 없고요. 기혈이 허한 증세입니다.”
정말 병이 났다고?
“그 애는 신의인데? 어찌 병이 난단 말인가?”
주 부인이 뜻밖의 말에 놀라 소리쳤다.
신의? 의원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침상 쪽을 바라봤다. 드리워진 휘장이 시선을 가렸지만 의원의 눈엔 방금 전 본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열네다섯의 나이에 창백하고 초췌한 안색은 맥을 짚을 필요도 없이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주씨 가문의 한 낭자가 죽어가던 사람을 살린 일은 약포에서 이미 들은 터였다. 기인이 비방을 얻은 일은 신기할 것도 없었다. 성 밖에 사는 한 노파는 의술을 전혀 모르면서도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술로 머리에 난 독창을 고치는 법을 알았지만, 의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주씨 가문에서 의원을 모셔 가는 것만 봐도 의원들의 추측엔 틀림이 없었다.
“의원도 스스로 고칠 순 없는 법이지요.”
의원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밥을 먹는 사람인 이상 병이 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신선이 아니고서야.”
의원은 일부러 주 부인을 힐끔 쳐다보며 마지막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의원의 의도를 알아들은 주 부인이 눈썹을 치켜떴다. 이 늙은이가 감히 우리 교교의 명성을 망치려 들다니!
간신히 신의로 이름을 알리게 됐는데, 이 보잘것없는 돌팔이 의원 나부랭이가 가타부타하는 꼴을 어떻게 봐?
“본인의 의술이 보잘것없으면 함부로 말하지 말게.”
주 부인은 콧방귀를 뀐 후 냉담하게 말했다. 의원의 의술을 폄훼하는 말은 최대의 금기였으니 의원으로서는 성이 날 수밖에 없었다.
“내 의술은 보잘것없으니 고명한 분을 찾아보시든가요.”
늙은 의원이 옷소매를 뿌리치며 대꾸했다.
“여봐라, 당장…….”
시녀가 주 부인의 말을 끊으며 발을 굴렀다.
“부인, 저희 아씨께선 병이 나셨는데 의원을 내쫓으시다니, 대체 저의가 뭐죠?”
내가 저의를 품어? 그냥 자는 것일 뿐 괜찮다고 했잖아? 왜 갑자기 내가 무슨 저의를 품은 게 돼? 주 부인은 부아가 치밀었지만, 시녀는 주 부인을 아랑곳하지 않고 의원을 붙잡았다.
“저희 아씨는 불치병만 고치지 다른 건 못하세요.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주세요.”
이 말엔 그래도 진심이 담겼군. 의원의 표정이 다소 누그러졌다.
“진정하시오.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고 푹 쉬면 나을 거요.”
의원이 약을 처방해 주며 말을 이었다.
“기혈을 보해야 하오. 인삼영양탕을 적절히 복용하는 게 좋소.”
시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의원을 모셔 가 약을 지어 와요.”
시녀가 옆에 있던 여종들과 몸종들에게 말했다. 여종들과 몸종들은 멈칫하여 주 부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지 말고 교교가 직접 약을 처방하도록 하는 게 어떨까?”
주 부인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부인, 저희 아씨 상태를 보고도 그런 말씀이 나오세요?”
시녀의 말에 주 부인은 벌컥 화를 냈다.
“너희 아씨가 저 꼴이 됐는데 이제야 알려? 그러고도 이리 당당해?”
“어머니,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닙니다.”
주육낭이 문밖에서 말했다.
“우선 약부터 지으시죠.”
주육낭은 여종을 시켜 마차를 준비해 의원을 배웅하도록 했다. 의원이 못마땅한 얼굴로 작별을 고하고 나갔다. 더 머물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진 주 부인도 씩씩거리며 돌아갔다.
“이게 사람을 놀리는 게 아니면 뭐야? 이건 안 고친다, 저건 안 고친다 하다가 죽을 사람이 아니면 안 고치겠다더니, 이젠 사람을 고쳐 놓고는 자기가 병이 났대. 아주 사람을 들들 볶아!”
“어머니, 이것도 좋은 듯합니다.”
주육낭이 진 공자의 말을 전하자 주 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이게 더 좋구나, 이게 더 좋아. 귀신이니 신선이니 하는 말은 황당하지 않느냐. 우리 주씨 가문은 떳떳하다고.”
주 부인은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여인네로서는 귀신이니 뭐니 하는 얘기에 더 믿음이 가기 마련이었다.
“하여간 여인네들이란. 저들이야 뭐라 하든 저들 일이고, 어쨌든 우리 교교가 죽은 사람을 살린 건 명백한 사실이오. 그거면 충분해. 일이 생기면 저들이 와서 빌게 돼 있어.”
약을 받고 진료비를 낸 후 주씨 가문의 여종이 자리를 떴다. 그러자 약포가 들썩거리며 늙은 의원 주위로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정말 그 낭자를 치료해 줬어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더니, 죽은 사람도 살리는 의술을 가졌으면서도 자기 병은 못 고치나 보죠?”
“몇 살이나 됐어요? 어때 보여요?”
각종 질문이 쏟아지는 통에 늙은 의원은 간신히 몸을 빼냈다.
“병자의 일을 어찌 함부로 말하겠소. 그런 얘기들은 관두시오.”
의원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늙은 의원은 예를 지켰지만, 주씨 가문의 정 낭자가 의원을 불러 약을 지었다는 사실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소문은 정 낭자가 귀신과 소통한다는 풍문과 금세 뒤섞였다.
“귀신과 소통하니 죽은 사람을 살리겠지.”
“웬 헛소리요? 그럴 리 없소. 자기 병도 못 고치는데 무슨.”
“그야 귀신과 소통하느라 기혈을 소진해서 그렇지.”
“마치 본인이 귀신과 소통한 것처럼 말하는군. 뭘 안다고.”
찻집 점원이 정 낭자 얘기를 꺼내자 여기저기서 말들이 나왔다. 얼굴이 시뻘게진 채 아예 싸울 기세로 달려드는 이도 있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새로운 추측을 내놓았다.
“그 낭자는 신선을 만났잖소. 신선에게서 죽은 사람을 살리는 비술을 전수받았을 뿐, 자신은 신선이 아닌 거요. 그러니 죽을 사람만 고칠 수 있고, 나머지 병은 못 고치는 게지. 자기 자신도 못 고치잖소.”
그 말은 양측 모두에게서 인정을 받았다. 귀신설을 믿지 않는 이도 비술이라는 관점엔 동의했고, 귀신설을 믿는 이도 신선을 만났다는 점에서 만족을 표하면서 이 이야기가 최종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설득력을 얻었다.
몇 번의 우여곡절과 반전이 이어지면서 주씨 가문의 정 낭자는 정월이 채 가기도 전에 경성에서 열에 다섯은 아는 인물이 됐다. 사람도 많고 매일 새로운 소식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경성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 모든 일을 야기한 정교랑 본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주씨 저택에서 일체의 외부 접촉을 끊은 채 요양에 힘쓰고 있었다.
회랑 아래에 선 시녀가 여종이 가져온 채소며 고기를 하나하나 점검했다.
“싱싱한 시금치는 없어요?”
“이것도 이 겨울에 간신히 찾은 거야.”
여종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 찾았어야죠. 성 동쪽 점포엔 있을걸요?”
여종은 숨이 턱 막히는 듯 우물쭈물 대답했다.
“가 봤는데 다 팔렸대.”
“다음부턴 일찍 가요. 이것 때문에 국물 맛도 제대로 안 나겠어요.”
여종은 고개를 숙이며 알았다고 하고, 안으로 들어가는 시녀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