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65
교랑의경 165화
큰길에 갑자기 사람들이 이리저리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주육낭이 물었다.
“무슨 일 났나?”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도, 마차를 끄는 사람들도 모두 한 방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자네도 참 오지랖이야.”
진십삼이 손에 쥐고 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주육낭에게 핀잔을 주었다.
“내가 밥 한 끼 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
주육낭은 휘장 너머를 내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저 사람들이 뛰어가는 방향이 어째…….
“밥을 사? 태평거는 오늘 휴업이라던데, 거기서 뭘 먹겠다고.”
“내가 언제 태평거 가서 먹겠다고 했나? 쉴 만한 사정이 있겠지, 쓸데없는 걱정 좀 그만해.”
진십삼이 웃으면서 주육낭을 쳐다보았다.
“내 누이인데, 걱정되는 게 당연하지. 고작 하루 문 닫은 건데, 자네는 장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어떻게 안 거야?”
진십삼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태평을 원하거든.”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마차는 사람들 무리에 더욱 가까워졌다. 허겁지겁 뛰어다니면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슨 일이야? 왜들 그러는데?”
“어서 가 봅시다. 태평거에서 살인이 났대요!”
태평거? 살인!
주육낭과 진십삼은 깜짝 놀란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내가 말했잖아! 걔는 매번 골칫거리만 만들어낸다니까!
주육낭이 채찍을 휘두르자 마차는 인파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같은 시각 보수사. 두 승려가 명해선사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태평거에서 온 이가 뭐라고 하던가?”
명해선사가 손에 쥐고 있던 붓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듣기로는 누군가가 태평거의 두부 비법을 훔치려고 하다가 충돌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한 승려가 정중하게 대답했다. 명해선사가 의미심장하게 미소지었다.
“그건 피치 못할 일이지.”
실내에 침묵이 흘렀다.
“가 보거라. 우리는 속세를 떠났으니 속세의 예법을 따를 필요 없지만, 속세의 일에 얽혀 있는 건 어쩔 수가 없지.”
나서겠단 뜻이었다. 두 승려가 명해선사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물러났다.
“진만당, 이 사람아. 자네가 또 부처님께 빚을 지는군. 언젠가는 꼭 갚아야 할 것이야.”
노승의 웃음 섞인 혼잣말이 끝나자 실내는 다시 조용해졌다.
경성의 관아에 소속되어 있는 관아 관졸들은 벌써 경성 바닥을 십수 년째 구르는지라 노련했다. 별별 사건이 벌어지더라도 대충 눈치껏 영민하게 처세해 왔다.
하지만 오늘 일어난 일은 그간 그들이 봐 왔던 사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관졸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태평거 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미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서 모인 군중이 사방에 빽빽했고, 바닥에 누워있는 몇 구의 시체들은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채로 사람들 앞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앞장서 있던 관졸이 외쳤다.
“나리, 좀 전에 이 도둑놈들이 우리 태평거의 비법을 훔치려고 쳐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손에 쥔 것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서무수가 관졸들의 앞으로 다가가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헛소리, 저건 더 헛소리야. 관졸이 속으로 외치며 자신 앞에 서 있는 우람한 사내를 두려움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저들이 와서 훔칠 게 뭐가 있다고.”
관졸이 저도 모르게 서무수의 말을 받아쳤다. 그 말에 서무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멀지 않은 곳에서 보고 있던 주육낭과 진 공자 역시 짚이는 게 있는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현장을 살펴보지도 않고 대뜸 질문부터 던지는 모습을 보니, 관졸도 이 사건에 대해서 이미 아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누이 말이 맞았어. 감히 식당까지 찾아와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자들이라면, 분명 배후가 있었을 터. 무뢰배를 시켜서 단순히 소란을 피우려던 게 아니라, 필시 우리를 관아로 끌고 가 옥살이를 시키려고 했던 게 틀림없어. 일단 감옥에 들어가면…….
귀신같이 시간을 맞춰 온 관졸을 보니 배후가 있다는 게 더욱 확실해졌다.
아무리 큰일이어도 남들 앞에서 공명정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면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의 뒤에 숨어 떳떳하게 설명할 수 없는 자만이 이 상황을 두려워할 것이다.
“나리,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서무수의 물음에 관졸은 험상궂은 얼굴로 대답했다.
“식당 아니더냐.”
본디 동네에서 종종 일어나는 패싸움처럼 가벼운 사안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살인 사건으로 바뀌었다. 예상했던 상황과 너무 달라진 나머지, 관졸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적어도 누구 하나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결론에는 변함이 없으니, 돈만 받고 일을 제대로 못 했다는 소리는 안 틀을 터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식당 옆에 작은 공방이 있습니다. 태평 두부방이죠.”
공방!
공방이라 함은 진귀한 예술 공예나 대대손손 내려오는 비법을 지키고 계승해가는 곳이다. 공방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비법을 훔치거나 몰래 엿보는 것이다. 경성에서는 아무리 귀한 손님이 와도 공방에는 절대 들이지 않는 공공연한 원칙이 있다. 행여나 한밤중에 몰래 공방에 들어가려는 이가 있다면, 그게 누구든 죽여도 된다는 게 관례였다.
관졸의 얼굴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 모두가 아시겠지만, 태평거에서 만들어내는 태평 두부는 다른 두부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특별합니다.”
주위에 서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웅성거렸다.
“맞아, 맞아. 나도 안다고. 이 집에서 만든 두부는 남다르지.”
3월 20일의 선다회에서 이대작이 두부를 조각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접하기 어려울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커지는 법이다. 보수사에서 양두부를 절밥으로 제공하기 시작하자 태평 두부는 금세 유명해졌다. 경성 안에서는 너도나도 두부를 팔기 시작해 두부를 만드는 집들이 순식간에 많아졌지만, 태평 두부만큼 맛있는 두부는 없었기에 태평거의 경쟁자가 되기는커녕 그 명성만 높여 줄 뿐이었다.
서무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이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 대충 짐작했다. 그리 훌륭한 비법인데, 훔치려는 사람들이 많긴 하겠지.
“정말 못됐군. 대낮에 와서 훔치려고 하다니, 국법이 지엄한데!”
구경꾼 중 한 명이 목청을 높였다.
“그러게, 정말 몹쓸 놈들이군.”
“이 무뢰배들은 얼마 전에도 행패를 부리러 왔었다네. 역시 못된 심보를 가지고 있었어!”
아직 관졸들이 나서서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서너 마디로 벌써 죄가 판명 났다. 관졸들은 당황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호통을 쳤다. 사람이 너무 많아 구경꾼 중 누가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찾아내기 힘들었다.
주육낭이 진십삼을 쳐다보자 진십삼은 눈을 찡긋하며 웃고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도로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네 이놈! 허튼소리 마라. 설령 이들이 훔치려고 했다 한들, 누가 이 벌건 대낮에 오겠느냐!”
관졸은 서무수에게 호통을 치는 한편 다른 관졸들에게 사람들을 쫓아내라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동료를 더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항상 밥 먹듯이 해 오던 간단한 일이 이 지경까지 될 줄이야!
이 흉악한 놈들이 정말로 사람을 죽이다니! 무려 살인을, 감히 어떻게!
서무수는 냉소를 보이고 관졸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리, 소생이 어찌 감히 낮과 밤도 구분할 줄 모르고 헛소리를 지껄이겠습니까. 이는 도둑들에게 직접 물어 확인한 것입니다.”
서무수는 낭랑한 목소리로 말하며 한쪽 구석에 모여 벌벌 떨고 있는 무뢰배 몇을 지목했다.
“못 믿겠다면, 직접 물어보시지요.”
서봉추가 무뢰배 중 하나를 발로 차면서 호통쳤다.
“네놈에게 묻잖아!”
겁에 질려서 정신도 못 차리고 있는 듯한 무뢰배는 좀 전에 자신의 눈앞에서 형제들이 차례로 화살에 맞아 죽는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을 발로 찬 사내가 아직 사람을 덜 죽였다는 듯이 자신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던 모습이 생생했다.
무뢰배는 허둥지둥 바닥을 기면서 서봉추를 향해 살려달라고 절하려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말해, 주오가 시킨 거 맞지!”
서무수가 외쳤다. 주오라는 이름이 나오자, 관졸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정말로 말해버린 거야? 그럴 리가!
“너희 우두머리한테 누가 훔치라고 시켰는지 물어보니, 분명히 그 입으로 주오라고 말했다. 네놈들도 똑똑히 듣지 않았느냐!”
서무수가 다시 고함을 치면서 물었다. 바닥에서 기고 있던 무뢰배들은 머릿속이 웅웅 울렸다.
듣지 않았냐고? 듣지 않았냐고?
함께 어울려 다니던 세 사람이 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죽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뒤이어 왕대의 오른팔도 말 한마디 했다고 죽임을 당했다. 이어 활을 든 세 사내가 한 발 한 발 다가오며 그들을 압박했다.
“말해. 누가 보냈지?”
“주오, 주오입니다!”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화살은 왕대의 목구멍을 뚫어버렸다. 오랜 세월 경성 일대에서 행패를 부리며 걱정 없이 살던 무뢰배의 우두머리가 말 한마디도 남기지 못하고 눈을 뜬 채 죽어버린 것이다.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다섯 사람에게 서무수가 한 걸음 더 다가서서 눈을 치켜떴다.
“말해라. 도대체 누가 너희를 시켜 우리 비법을 훔치라고 했는지!”
“입을 열어라! 누구냐고!”
무뢰배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고 있는 힘껏 외쳤다.
“주, 주오입니다! 주오가 시켰어요!”
무뢰배들이 외치는 소리에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야유했다. 얼굴색이 잿빛이 된 관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벌건 대낮에 발생한 사건이다. 심지어 두 눈 부릅뜨고 현장을 둘러싼 이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서무수의 질문에는 어떠한 협박이나 회유도 없었고, 대답을 한 사람은 왕대가 직접 데리고 온 이들이었기 때문에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들 스스로 주오라고 외치는 순간, 의심할 여지 없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셈이다.
이런 빌어먹을! 옥에 가두어야 할 사람들은 멀쩡하고, 도리어 저들은 반이나 죽은 데다 죽을죄를 지었다고 실토까지 하다니?
서무수가 꽉 쥐고 있던 두 주먹에 힘을 풀었다. 양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됐어, 해냈어!
무뢰배 몇 명쯤이 무슨 대수라고요. 그럼 때려죽이죠.
서무수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이 말을 뱉던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무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무뢰배 몇 명쯤이 무슨 대수라고, 때려죽이면 그만이지.
“할아버님, 할아버님.”
두칠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엎드리다 못해 기다시피 하며 유 교리의 소매를 잡고 늘어졌다.
“할아버님,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두칠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유 교리는 성가시다는 듯 두칠에게 잡힌 소매를 휙 내뺐다.
“어찌하냐고? 네놈도 모른단 말이냐?”
굳은 표정의 유 교리가 비아냥대는 말투로 말했다.
“너 아주 유능한 거 아니었어?”
두칠이 바닥에 엎드려 울음을 터트렸다.
“아주 잘났더구나! 돈 써서 무뢰배들한테 사주하는 건 언제 배웠더냐? 네 놈은 아직도 경성 밖에서 구멍가게 장사하는 줄 알고 있는 게냐! 철딱서니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구나! 이 소문이 경성에 퍼지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웃다가 아주 배꼽이 다 빠지겠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분수가 있지! 머리는 왜 달고 사느냐?”
유 교리는 말을 하면 할수록 화가 더욱 치솟아 호통을 쳤다.
“할아버님, 할아버님. 도저히 울분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두칠이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소매로 아무렇게나 닦으면서 호소했다.
“거긴 우리 집안의 땅이고 제가 일궈낸 곳이라고요. 이대작도 우리 집에서 배운 요리 비법을 태평거로 가져가서 명성을 날리는 겁니다! 태펑거는 제 덕에 거저 누리고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