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33
교랑의경 533화
“어이, 뉘시오?”
정씨 저택의 문지기가 다짜고짜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소년을 황급히 막으며 소리쳤다.
평범한 옷차림에 어깨에는 커다란 짐 보따리가 하나 걸려 있었다. 빠지는 외모는 아니었지만 먼 길을 달려온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 그런지 젊은 나이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험상궂어 보였다.
소년은 문지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쾅 소리가 나도록 대문을 발로 차고,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놀란 문지기들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소리를 질러댔다.
“여봐라.”
하지만 짐 보따리를 짊어진 소년은 벌써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온 후였다.
아, 아니······.
“왜들 보고만 있소?”
문지기가 고개를 돌려 한쪽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그쪽에는 시종 넷이 팔짱을 끼고 서서 이야기 중이었다. 웃고 떠들던 시종들은 이쪽에서 일어난 일을 전혀 모르는 듯 계속해서 웃고 떠들었다.
문지기는 정 이부인이 친정에서 데려온 자였다. 문지기는 편한 자리인 만큼 정 이부인이 특별히 배정해 준 터였다.
손님을 맞이하고 배웅하며 명첩을 확인하는 일은 체면이 서는 일이었고, 저택을 방문한 이들이 상으로 주는 돈을 은밀히 챙길 수 있으니 이점이 많았다.
정월인지라 찾아오는 이가 적지 않았지만, 다들 문지기를 무시한 채 곧장 시종들을 찾는 바람에 문지기는 장식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국 문지기는 대문 앞을 청소하는 일을 맡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 온 사람은 아예 시종도 거치지 않고 대뜸 안으로 난입하는 게 아닌가.
아니 저 시종들은 눈이 멀었나, 왜 보고만 있어?
“누군지 몰라? 문지기 노릇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났으면 사람 얼굴부터 익혀라. 저분은 주씨 가문 도련님이야.”
저쪽에 있던 시종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주씨 가문?
문지기가 멈칫했다.
“정씨 가문으로 시집왔던 주씨 가문 부인께서 돌아가신 후, 주씨 가문 사람이 정씨 저택을 찾아올 땐 문을 두드리는 법이 없다. 발로 뻥뻥 차면서 들어오지.”
시종이 웃으며 설명했다.
“어엇, 주 공자님? 돌아오셨네요!”
회랑 아래에 있던 시녀가 소리를 듣고 나오며 반갑게 맞이했다. 시녀의 웃는 얼굴과 스스럼없는 진심 어린 환대가 어색한 듯 주육낭은 도리어 멈칫했다.
“난······.”
주육낭이 입을 열려 했지만 시녀는 벌써 뒤돌아 대청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씨, 주 공자께서 오셨어요. 아씨께 드릴 선물도 한 아름 안고 오셨네요.”
시녀의 말에 주육낭은 더욱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뭐,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선물을 가져오긴 누가!
반근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차를 우리자, 시녀는 반근을 향해 손짓하며 자신이 남아 시중을 들겠다는 뜻을 표했다. 반근은 시녀의 호의를 눈치채고 고개를 살짝 까닥이며 고마움을 전한 후 물러났다.
“이, 이건 내 선물이 아니야.”
주육낭이 대뜸 해명부터 하자, 찻잔을 들고 있던 정교랑이 주육낭을 쳐다보았다. 시녀 역시 쿡 웃음을 터트리며 옆에 놓인 커다란 짐 보따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공자님께서 우리 넷째 도련님을 대신해 가져다주신 거예요?”
시녀가 웃으며 물었다.
결의를 맺은 오라비들은 모두 떠났고, 제대로 된 형제들은 없으니 많이 상심했겠지?
무릎 위에 올려 둔 주육낭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 사람 걸 가져온 거야. 너무 많아서, 내 건, 못 가져왔어.”
주육낭이 굳은 얼굴로 말하자 시녀가 깔깔거리고 웃었다.
“반근, 놀려서 뭐해.”
정교랑이 찻잔을 내려놓고 시녀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순간 주육낭의 눈빛에 분노가 서렸다. 시녀는 입을 가리고 웃음을 꾹 참으며 일어나 물러갔다.
“오라버니는 잘 지내죠?”
정교랑이 물었다.
오라버니!
시녀에게 놀림을 받아 일었던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라버니! 날 오라버니라고 불렀어!
너무나 급격한 감정 변화에 순간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응. 너, 너는 잘 지내지?”
주육낭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하자, 정교랑이 주육낭을 힐끔 쳐다보고 웃었다.
“잘 지내요.”
정교랑이 손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들어요.”
주육낭은 으응, 하는 소리를 내며 찻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이번에도 다시 돌아갈 거예요?”
정교랑이 물었다.
“가야지. 보름이나 한 달쯤 후에, 갈 거야. 그 벽력탄인지 뭔지 나오면.”
주육낭의 말에 정교랑은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차를 마셨다.
실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주육낭은 그만 일어나 작별을 고하고 싶기도 하고, 또 그러지 않고 싶기도 했다. 주육낭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로 옮겨 왔네. 여기서는 좀 지낼 만해?”
주육낭이 불쑥 물었다.
“네. 어디서 지내나 똑같아요.”
정교랑이 대답했다.
하긴, 그렇겠지. 미련한 질문을 했네. 내가 일부러 말 걸고 싶어 물어본 것 같잖아.
주육낭은 자신의 멱살이라도 잡아 흔들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이만 갈게. 그 사람한테 전할 물건 있으면 준비해. 내가 가기 전에 한 번 들를게.”
정교랑은 좋다고 대답하며 배웅을 위해 일어났다.
“공자님, 왜 이렇게 서둘러 가세요.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마당에 있던 시녀가 말했다.
이 망할 것이! 방금 날 놀렸다 이거지?
주육낭이 눈을 부라리며 시녀 쪽으로 걸어갔다.
“육공자님, 전 공자님을 위해 그런 거예요.”
시녀는 얼른 손을 내저으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실까 봐, 입을 열도록 도와드린 거라고요.”
또, 또!
주육낭이 시녀를 노려보았다.
“신경 꺼라.”
주육낭은 협박조의 한마디를 일갈한 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정씨 저택의 대문을 나와 말에 오른 주육낭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든 얼굴이었다.
오라버니라······.
주육낭이 곧 입을 삐죽거렸다.
근데, 좀 이상한데.
순간 주육낭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오라버니? 날 부르는 게 아닌 거 아냐? 서사근에 대해 물은 거였나?
주육낭은 순식간에 얼굴이 확 달아올라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어쩌자고 그렇게 대답을 빨리 한 거야!
이런 망신이 있나! 다시는 보러 가지 말아야지!
주육낭은 채찍을 매섭게 후려갈기며 질풍처럼 달려갔다.
집으로 돌아온 주육낭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조용히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려는데 주 부인이 사람을 시켜 불렀다.
“또 거기로 달려갔었던 거야?”
주 부인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그러더니 또 안쓰러운 듯 덧붙였다.
“이 얼굴 튼 것 좀 봐.”
“어머니.”
주육낭이 자신의 뺨을 만지며 말했다.
“동상 걸린 거 아닙니다. 바를 연고가 있거든요. 손도 하나 안 텄어요.”
주육낭이 손을 뻗어 자신의 손을 모친에게 보여 주고, 자신도 쳐다보았다.
이 연고도 그 애가 준 거지. 일부러 나 주라고 챙겨 보낸 건 아니지만.
아, 진짜 성가셔 죽겠네. 왜 빠지는 곳이 없어.
주육낭이 손바닥을 벅벅 비볐다.
“······육낭!”
주육낭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 모친을 바라보았다.
“돌아온 김에 혼사를 정하자꾸나. 다음에 돌아왔을 때 혼례를 올리도록.”
주 부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말했다. 순간 주육낭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 아직 어립니다. 무슨 혼례를 올려요.”
주육낭이 벌떡 일어나 가려 했다.
“어리긴 뭐가 어려. 열아홉이나 됐으면서!”
주 부인이 초조한 듯 소리쳤다.
“스물아홉도 안 늦습니다.”
주육낭이 고개를 홱 돌리고 가 버렸다. 그때 밖에서 들어오던 주 노야가 주육낭을 막았다.
“찾고 있었는데, 어딜 다녀온 게냐?”
“물건을 좀 전해 줄 게 있어서요.”
주 노야의 물음에 주육낭이 답했다. 주 노야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응 하고 대꾸하고는, 마중 나오던 주 부인 쪽으로 서둘러 다가갔다.
“당신 말이 맞았소. 그 두 내외가 교교의 재산을 몽땅 차지했다는군.”
걸음을 옮기려던 주육낭이 다시 걸음을 우뚝 멈췄다.
뭐라고?
“내가 뭐랬어요. 정 이부인이 자랑하고 싶어 아주 몸살을 앓더라니까요. 내가 모임에 안 나갔어도 얼마나 우쭐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아요.”
주 부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분수를 모르고 무모하긴.”
주 노야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버지.”
주육낭이 두 사람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육낭, 정가네 이방 놈이 교랑의 재산을 몽땅 차지했다. 명의까지 제 후처 이름으로 바꿔 놨다는구나. 그런 바보가 또 있나 몰라.”
주 노야가 껄껄 웃었다.
“아버지, 지금 웃음이 나오십니까? 가서 뭐라 말씀이라도 하셔야죠.”
주육낭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우리까지 나설 게 뭐 있어? 그 애가 좀 대단하니? 대처할 방법이 있겠지.”
주 부인이 대꾸했다.
그 애가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맬 때도 우린 그 애 재산을 빼앗기는커녕 죽도록 시달리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어. 그런데 병도 없이 멀쩡한 데다 명성까지 자자한 지금 그 두 내외가 대놓고 그 애 재산을 빼앗았잖아. 죽고 싶어 환장한 게 아니면 뭐겠어?
“대처할 수 있다 해도, 어쨌든 일이 생긴 거 아닙니까. 가서 괜찮은지 안부라도 물으셔야죠.”
안부?
무려 귀판관도 내쫓고 마는 신선의 제자인데, 무슨 안부를 더 물어?
주 노야와 주 부인이 잠시 멍해 있는 사이, 주육낭이 홱 뒤돌아 가 버렸다.
“아니, 너 어디 가는 게냐?”
주 노야가 소리쳤다.
“그자들한테 따지러 갑니다!”
주육낭이 대답했다.
“거기 서!”
주 노야가 소리치며 따라가 붙잡았다.
“따지긴 뭘 따져? 이건 그쪽 집안의 일이야! 네가 저들의 죄를 묻겠단 거냐? 딸의 재산을 가로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딸의 재산은 본디 부모의 재산인 것을 빼앗을 게 뭐 있어? 부모님께 드리지 않는 게 도리어 죄거늘!
지금은 일이 잠잠해졌으니 괜히 가서 소란 피우지 마라. 소란을 피워 일을 키우는 날엔 교교가 가장 먼저 피해를 볼 거야.”
“그래, 그래. 그쪽 집안의 일에 우리가 관여할 거 없어. 관여할 수도 없고.”
주먹을 부르쥔 채 서 있던 주육낭은 결국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주 노야가 몇 번 소리쳐 불렀지만 주육낭을 붙잡을 순 없었다.
“정말 악연이라니까.”
주 부인이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저 녀석이 아주 푹 빠져 정신을 못 차리네. 이러다 정말 야차를 며느리로 들이는 거 아니야?
“어이, 어이! 거기.”
정씨 저택의 문지기들이 벌컥 열린 문을 향해 놀란 눈으로 소리쳤다. 문지기들이 문을 열고 들어선 사내를 알아보고는 흠칫 놀랐다.
“아니, 또 그쪽이오?”
문지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쿵 소리가 또 한 번 들리더니 한쪽 문짝이 아예 부서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기겁한 문지기들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게 지금 무슨 일이야!
“주 공자님, 지금 아씨께서는 글씨 연습을 하고 계세요.”
서재의 문이 열리면서 시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교랑이 붓을 멈추고 고개를 들자, 서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 주육낭이 보였다.
“짐 챙겨. 나랑 가자.”
주육낭이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또 저 소리잖아!
저 말을 못 들은 지 벌써 사 년이 다 됐네. 이제 다시는 들을 일 없겠다 싶었는데, 또 아씨를 강제로 어디에 데리고 가려고 저러는 거야?
시녀와 반근이 미간을 찌푸린 채 주육낭의 앞을 가로막았다. 뒤늦게 주육낭의 뒤를 쫓아온 시종들도 주육낭을 향해 전투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지금은 사 년 전과는 달라. 지금은 그때처럼 쉽게 아씨를 데려가긴 힘들걸?
“어디로요?”
정교랑이 물었다.
“우리 집에 가서 지내.”
주육낭이 짧게 대답했다. 정교랑이 아,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정교랑이 거절할 것이라 예상하고 정교랑을 설득할 말을 한가득 준비해 왔던 주육낭은 말문이 턱 막혀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
또 이러네! 이 여인은 어쩜 이렇게 말에 앞뒤가 없어? 그때도 괜히 저런 짤막한 말만 듣고 오해했잖아.
“말하기 전에 밑밥 좀 까면 안 되나.”
주육낭이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도 밑밥 같은 거 안 깔아주잖아요.”
정교랑이 붓을 내려놓고 문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반근.”
시녀와 반근이 웃으면서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네, 당장 짐 쌀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