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68
교랑의경 668화
경 공공이 직접 장궁을 벽에 걸자, 진안 군왕이 무심한 듯 말했다.
“기예는 부지런히 갈고 닦아야 조예가 깊어지는 법이니, 하루도 거를 수 없지요. 대충 하나 고른 겁니다. 일단 이걸 쓰고 있다가, 마음에 드는 걸 찾아봐요.”
대충 하나 고른 거라니······.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여차하면 진 상공 댁으로 쳐들어가 장궁을 도로 갖고 나올 기세로 점포를 하나하나 돌아다니며 찾아낸 활을 두고 대충 하나 고른 거라고?
화장을 마치고 낭군에게 나지막이 속삭이며, 눈썹 그린 것이 잘 어울리냐고 묻는다더니(粧罷低聲問夫壻, 畵眉深淺入時無 – 주경여).
경 공공이 입술을 삐죽였다.
“제나라의 흰 비단은 이제 귀하지 않아도, 채릉가 한 곡은 만금을 쳐주지요(齊紈未足時人貴, 一曲菱歌敵萬金 – 장적). 대충 하나 고른 건데도, 마음에 쏙 드네요.”
정교랑이 진안 군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경 공공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젓가락을 들고 느릿느릿 밥을 먹는 여인의 입가로 미소가 번지는 모습이 보였다. 여인은 맞은편에 앉은 진안 군왕을 보고 있었다.
진안 군왕의 손에도 젓가락이 들려 있었으나, 진안 군왕은 다소 멍한 표정으로 보였다.
전하께서 마음 쓰신 걸 알고 정확하게 짚어 주었어. 게다가 마음에 든다는 말까지 하고.
마음에 든다?
이거, 전하를 놀리는 말인가?
경 공공의 시선이 진안 군왕에게로 향했다. 군왕은 어느새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그렇긴 하죠.”
군왕은 부러 털털하게 말하며 팔을 살짝 벌렸다.
“보잘것없는 선물이지만 마음이 담겨 있잖아요.”
정교랑은 빙긋 웃고, 별다른 대꾸 없이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었다. 진안 군왕 역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식사를 계속했다. 다만 국을 먹느라 소매로 입을 가리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는데, 이쪽에 서 있는 경 공공의 눈엔 그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낑낑거리던 경 공공이 결국 못 참고 웃음을 터트리자, 진안 군왕은 머쓱한 듯 그릇을 내려놓고 경 공공을 노려보았다.
“난 작은 서재를 쓸게요.”
식사를 마친 진안 군왕이 말했다.
“바깥에 있는 걸 쓰겠다고요. 이제 군왕부 내에서 돌아다니는 건 괜찮죠?”
진안 군왕이 웃으며 묻자,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지금은 당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예요.”
지금은 다들 온 신경이 태자의 혼례에 가 있으니까.
진안 군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는 뭐라고들 얘기하나 들어 볼게요.”
정교랑은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들과 함께 나가는 진안 군왕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정교랑이 서재에서 이제 막 글씨 한 장을 썼을 무렵, 진안 군왕이 돌아왔다.
“뭐라고들 해요?”
정교랑이 물었다. 진안 군왕의 안색은 어두웠다.
“뭐라고 하겠어요. 밀고 당기고, 불을 붙이고 기름을 붓고 난리죠. 아무튼 들들 볶이는 건 진 상공이에요. 당신은 고능준 그자의 수완을 모를 거예요. 명석하고 유능한 데다 고생도 해 봤고 복도 누려 봤죠. 욕도 먹어 봤고, 칭찬도 받아 봤고요. 군자라고 하기엔 소인배처럼 굴고, 소인배라고 하기엔 또 군자의 면모를 갖추기도 했죠.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은 인물이지만,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진안 군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바깥에선 다들 그러더라고요. 진 상공이 먼저 딸을 태자비로 들이려고 했는데, 집안에서 아내가 반대하여 번복하게 됐다나요.
참, 황궁 소식도 들었는데, 태후가 병이 나서 태의원이 난리인가 봐요.”
거기까지 말한 진안 군왕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가, 정교랑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태자비 간택에 뜻이 있어 입궁했던 집안들은 딸의 혼사를 정하느라 바쁘고요.”
정교랑이 고개를 들어 진안 군왕을 쳐다보았다.
“남들이 괜한 추측을 할까 봐, 자신들에겐 사심이 없었다고 증명하려는 거죠.”
진안 군왕이 말했다. 진 상공도 태자가 바보라며 딸을 보내지 않으려 하는데, 여식을 태자에게 시집보낸다면 진 상공 눈에 어떻게 보일까.
진 상공은 권력을 휘두르는 외척이 되고 싶지 않다는데, 여식을 태자에게 시집보내는 건 마음이 올곧지 못하단 뜻이잖아.
상황이 그러하니, 그 누구도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들이고자 하는 이가 없게 되었지.
“그래도 그럴 사람이 있을 거예요. 기다려 보면 알겠죠.”
정교랑의 말에 진안 군왕이 한숨을 쉬었다.
“진 상공은 군자예요. 군자는 홀로 있을 때도 몸가짐을 바로 하죠(君子愼獨). 그럴듯한 말로는 속일 수 있어도, 도에 어긋나는 말로는 속이기 어려워요(君子可欺以其方).”
이제 진소의 마음에 뽑을 수 없는 가시가 박혔다. 다른 이가 더 이상 이 일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본인 스스로가 이 관문을 통과하기 힘들 것이다.
원체 말수가 적은 정교랑은 더욱 말을 아꼈고, 대청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잠시 머뭇거리던 진안 군왕이 정교랑의 팔을 툭툭 치며 불평하듯 말했다.
“우리 나가서 좀 걸어요. 종일 안에만 갇혀 있으려니 따분하네요. 처가에 다녀올 때 거리 구경도 좀 했어야 하는데.”
“그러게 그날 좀 크게 돌지 그랬어요.”
정교랑의 말에 진안 군왕은 멈칫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경 공공이 마차를 세울 수도 없고 아무 곳이나 마구 돌아다닐 수도 없어, 잔머리를 굴린 끝에 군왕부를 빙빙 돌던 그날 일이 떠올랐다.
우리가 마차에서 그런 행각을 벌이는 줄로 오해하다니,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그 생각을 떠올리자 진안 군왕의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또 날 놀리는군요.”
진안 군왕의 말에도 정교랑의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아니에요.”
정교랑이 진지하게 대꾸했다. 정색하는 정교랑의 모습을 보자니 진안 군왕은 쿡 웃음이 나왔다.
“당신은 정말 재미있어요.”
진안 군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요. 우리 마당이라도 좀 걸어요.”
진안 군왕은 정교랑이 거절할까 봐 겁난다는 듯, 손을 뻗어 정교랑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직도 몸이 별로 안 좋아서, 혼자 걷기엔 마음이 안 놓여요. 이 태의도 출타해서 집에 없고요.”
두 사람이 차례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 반근과 소심은 얼른 예를 표했다, 그러고는 두 사람이 먼저 걸어가게 한 후, 멀찌감치 떨어져 뒤따랐다.
“언니, 전하께서 아씨더러 정말 재미있는 분이라고 하시는데, 아씨가 정말 재미있는 분이야?”
반근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소심이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하는 사람의 눈엔, 당연히 재미있겠지.”
좋아한다라······.
좋아하는 건 좋은 거지.
반근은 마음이 놓였다. 그러면서도 군왕이 말한 진소의 일을 떠올리자 마음이 답답해졌다.
아씨의 말씀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다니까. 잔인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잖아.
“경성에 막 올라왔을 때, 아씨께서 날 데리고 마차로 거리를 지나가신 일이 있어.”
소심이 갑자기 옛일을 이야기하자, 반근이 영문을 몰라 하며 쳐다보았다.
“아씨께서 나보고 밖을 보라고 하셨는데, 마침 신선거 옆을 지날 때였지. 그때의 신선거는 아직 우리의 신선거가 되기 전이었어. 아씨께서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셔서 인기가 예전만 못해 보인다고 대답했어.
그랬더니 아씨께서 또 뭐가 보이냐고 하시는 거야. 그땐 아씨의 심기를 건드린 두칠 때문에 아씨께서 낙득자재를 만드셨을 무렵이라 신선거의 손님이 확 줄어들 때였지. 아씨는 두칠이 과로신선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도 개의치 않아 하셨지만, 두칠 그자는 믿지 않았지. 끊임없이 의심하다가 결국 스스로 화를 초래한 거야.”
반근도 그때 일이 생각나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난 사람은 됨됨이가 훌륭해야 한다고 대답했어. 남을 속일 수 있다고 여기지 말아야 하잖아. 남을 속이는 건 곧 자신을 속이는 거기도 하니까.
그런데 아씨께서 또 뭐가 보이느냐고 물으시지 뭐야.”
가만히 듣고 있던 반근은 조금 부끄러워졌다.
아씨께서 그렇게나 많이 물으셨구나. 나였다면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을 텐데. 아니지, 아씨는 함부로 말씀하시는 법이 없잖아. 아씨는 분명 반근 언니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걸 알고 물으셨을 거야. 그러니 나한텐 이런 질문을 던지실 리가 없지. 내겐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 던지셔.
반근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소심의 팔짱을 꼈다.
“한 번 본 건데, 그렇게 많은 문제가 보인단 말이야?”
반근의 물음에 소심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 문제는 하나였어. 내가 대답하지 못하자, 아씨께서 알려 주셨지. 힘겨움이라고.”
“힘겨움?”
“일을 하나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고, 자리를 잡으려면 제대로 잡아야 하는데, 그건 힘겹고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셨어.”
선악과 상관없이 천도는 무정하고 세상살이는 힘겨운 법이다.
그래, 세상살이는 정말 힘겹지. 진소가 이런 일을 맞닥뜨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반근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단랑 아씨께서 아시면, 얼마나 슬퍼하실지 모르겠네.”
단랑은 이제 겨우 열한 살이었다. 이번 일로 혼사가 결정되면, 이성을 동경하는 소녀의 마음을 품어 보기도 전에 혼례를 치를 것이다.
이성을 동경하는 소녀가 꿈꾸는 낭군은 결코 바보일 리 없었다.
“그게 차라리 낫지.”
소심이 눈을 내리깔며 대꾸했다.
희망이 없으면, 절망도 없으니까.
진 노태야의 마당에는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전에도 종복이 얼마 없었지만, 오늘처럼 한 사람도 없는 날은 없었다. 얼핏 보기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처럼 보일 정도였다.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대청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그는 마당에 꿇어앉은 진소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노야, 어서 일어나십시오. 노태야의 성정을 아시잖습니까.”
노복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처연한 표정의 진소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뭐 하자는 게냐. 네 자식의 거취는 네가 결정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아비의 거취까지 네가 결정할 수 있을 성싶으냐?”
대청 안에서 진 노태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진 노태야가 걸어 나와 노복을 보며 말했다.
“마차에 짐은 다 실었느냐?”
노복이 고개를 숙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진소가 땅에 머리를 쿵쿵 찧었지만, 진 노태야의 목소리는 냉담하기만 했다.
“내게 머리를 조아릴 것 없다. 우리 부자는 서로를 잘 알지 않느냐.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너 또한 내 생각을 잘 알 테니, 위선적인 빈말은 집어치워라.
내 다시 한번 물으마. 신하의 도리를 따르겠느냐, 사람의 도리를 따르겠느냐?”
“아버지.”
진소는 붉어진 눈으로 고개를 들고,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자가 처한 상황을 아버지도 잘 아시잖습니까. 소자가 이런 결정을 내리면 장차 어떻게 될지, 소자가 무엇을 위해 이러는지, 아버지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그렇다면 이 혼사에 동의하지 않는 게, 이 혼사에 동의하는 것보다 더 쉽다는 사실도 알겠지?”
진 노태야의 물음에 진소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소자, 알고 있습니다.”
다들 이러쿵저러쿵 떠들며 욕하고 조롱하겠지만, 이 악물고 버티면 지나갈 일이었다.
“그렇다면 너는 지금의 이 지위와 권세를 포기하는 게 정녕 그리도 아쉽단 말이더냐?”
진 노태야가 물었다. 진소는 다시 머리를 조아린 뒤, 고개를 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대답했다.
“아버지.”
진소가 목멘 목소리로 말했다.
“소자가 정녕 권세를 탐하였다면, 당초 경왕을 보필하여 태자로 세우는 일에 동의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바보를 보필하여 태자로 세우고 고씨 가문을 축출하며, 태후를 압박하여 물러나게 하는 일들을 벌이는 동안, 진소는 오만방자하게 횡포를 부린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한 말들은 그의 권세와 지위를 보장해 줄 수 없었고, 조정 대신들에게 눈엣가시가 될 뿐이었다. 이제 진소는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할 것이고, 그가 얼마나 큰 위험과 압박을 맞닥뜨릴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그에 비해 장강주 등 유림과 손잡고 종친을 양자로 들여 대통을 잇게 했다면, 황제를 옹립한 공으로 새 황제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관운이 트이는 건 물론이고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으리라.
“폐하께서 중병으로 쓰러지신 후, 소자는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습니다.
소자는 폐하께서 소자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 고금을 논하던 때를 자주 떠올리곤 합니다. 폐하께서 큰 포부를 펼치시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요.
소자는 이대로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진소는 납작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