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ake a Bath Together, Duke!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헤르잔에게 말했던 것처럼 클로드와 네펠리 영애, 에이포드를 데리고 의사 협회를 찾았다.
붉은색 벽돌에 푸른색 넝쿨이 우거진 의사 협회의 앞에는 순수와 헌신, 그리고 명예를 상징하는 천사의 조각상이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었다.
자신의 옷을 찢어 다친 이를 감싸고 화살에 맞은 상태에서도 환자에게 약을 먹이는, 피에타와 비슷한 형식의 조각상은 고귀해 보이기까지 했다.
상당한 수준의 조각상을 보며 내가 작게 감탄을 하고 있을 때쯤, 뒤에서 따라오던 에이포드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참, 여긴 여전히 쓸데없이 웅장하네. 꼴값을 떨어요, 아주.”
“짐머 선생님, 공녀님과 각하의 앞입니다. 말은 조심하세요.”
투덜거리는 에이포드의 말을 들은 네펠리 영애가 따끔하게 충고했다. 매서운 그녀의 눈빛을 본 에이포드는 투덜거리던 것을 멈춘 채 꾹 입을 다물었지만, 그의 눈은 불손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 온천에서 그를 봤을 때 잔뜩 겁을 먹었던 것과는 천지 차이인 모습이었다. 나는 에이포드가 왜 저렇게 구는지 알고 있어 네펠리 영애에게 괜찮다는 듯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영애. 나를 생각해서 해준 말인 거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정말 고맙지만, 오늘은 편하게 말하게 놔둬도 좋을 듯해요.”
“하지만 나디아 님! 꼴값이라니요. 아끼시는 사람인 건 압니다만, 그저 오냐오냐해서는…….”
대쪽 같은 그녀의 성정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걸 안다. 나는 엄하게 표정을 굳히는 네펠리 영애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과거에 의사 협회에서 수모를 겪어서 저러는 거예요. 환자들이 죽는 원인으로 의사들이 너무 더럽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가 쫓겨났거든요.”
“…그건 저 역시도 공녀님이 만드신 비누를 보기 전까지는 위험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제죠. 그것도 손가락질을 받을 대로 받으며, 이뤄왔던 모든 것을 땅에 처박히면서 쫓겨났다면 더더욱이요.”
단호함을 담고 있던 네펠리 영애의 눈이 다소 누그러졌다. 더 말을 잇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확인하며 나는 힐끗 눈을 굴려 에이포드를 바라봤다.
이제 더는 깨지지 않은 안경을 쓴 그는 의사 협회 앞에서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도 그랬다.
“의사 협회요? 제가 거기를 왜 갑니까?”
“아, 싫습니다. 공녀님이야 당연히 가서 사과도 받고 그러셔야 하지만, 그놈들이 제게 사과 따위를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거 받아봐야 의미도 없습니다. 지긋지긋해.”
날카롭게 쏘아붙이던 그는 마지막까지도 고민하다 나와 함께 협회에 왔다.
물론 나는 이 자리에 사과를 받기 위해 온 것이지만, 혹시라도 비누에 관해 누군가 나를 공격하면 나서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니까, 전문가로서 말이다.
에이포드의 서투른 표현법을 아는 나는 그게 단순한 핑계가 아니라는 것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식, 내 사람으로 낚아 오길 참 잘했단 말이지.’
괜스레 장한 마음이 들어 검지로 코끝을 문지르는데, 팔짱을 끼고 있던 클로드가 엄지로 내 손목을 건드리며 내 신경을 돌렸다.
“나디아, 너무 오래 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누구요. 아, 에이포드를?”
“내가 아니라면 그게 누구든.”
이전에 그렇게 울음을 터트린 이후 클로드는 나름대로 정상 궤도로 되돌아왔다.
‘나름대로.’
나는 여전히 은은한 집착이 깔린 그의 말을 들으며 묘한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참지 않은 채 그에게 말했다.
“음, 아직이군요.”
“아직이라니?”
“여전히 불안감이 있는 거 아닌가 해서요.”
“설마.”
클로드는 알 수 없는 대답을 내어주며 실없이 짧은 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의아함이 가득 담긴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팔짱을 꼈던 손을 들어 손등 위에 입을 맞췄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지극히 농염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인 그가 슬쩍 눈웃음을 지었다.
“예전이라고 달랐을 리가. 그냥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클로드는 사람 심장을 쿵 떨어트릴 말을 사실만을 고하듯 담백하게 말해놓고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이만 들어가야 할 듯한데. 제법 시간을 지체했습니다.”
“아. 어, 네…….”
그, 그래. 그렇지. 지금은 내 연애사가 중요한 게 아니다.
또 홀라당 넘어갈 뻔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나는 의사 협회로 걸음을 옮겼다. 방문에 관해 사전에 고지한 덕에 협회장에는 이미 많은 의사가 모여 있었다.
“아, 저분이.”
“뒤에 있는 이가 에이포드 짐머인가? 실물로는 처음이야.”
전형적인 인텔리의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들 사이에서 한 젊은 여자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헤이즐넛색의 맑은 눈을 한 여자는 긴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채였다. 벨트로 고정한 길고 검은 치마 위로 구겨진 셔츠가 눈에 띄었다.
따로 갖춰 입은 차림새가 아니었던 터라 네펠리 영애가 불만스레 한쪽 눈썹을 밀어 올릴 때였다. 정확히 예법에 따라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인사를 한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비록 이런 모습으로 만나 뵙게 되어 민망할 따름입니다만, 그래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각하, 그리고 두 영애님. 부족하지만 이번에 의사 협회의 협회장이 된 미첼 워커입니다. 편하게 미첼이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닥터 미첼. 저 역시 이렇게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선, 자리로 안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다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산뜻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클로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통로를 걸어갔다.
자연스럽게 네펠리 영애의 에스코트를 맡게 된 에이포드는 예법에 엄격한 네펠리 영애의 타박으로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협회장의 통로를 지나가는 내내 의사들의 시선이 끊기지 않았던 탓이다. 마련된 자리로 안내한 협회장은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기까지 기다렸다.
‘뭐지.’
고요하기 짝이 없는 협회장의 분위기와 우리 앞에 선 닥터 미첼.
부담스러울 정도로 관심이 쏠리는 상황에 슬쩍 눈을 굴리던 찰나,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골드게이트 영애께서 오늘 왜 이 자리를 요청하셨는지 잘 압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집안을 나와 학문만 팠던 터라 그 외적인 감각에는 크게 소질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이 정도 사안을 이해할 눈치는 있어서요.”
“제가 정치적인 이유로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옅게 미소를 지은 그녀가 단번에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석고대죄하는 사람처럼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에 비장하게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나디아 골드게이트 영애님, 이번 사태에 관해 전체 의사를 대표해 사죄를 드립니다. 물론 지금 이 자리에 직접 음모에 가담한 연루자들은 없습니다만, 저희라고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
“뭘 잘못하셨는데요?”
호락호락하지 않은 내 질문에도 미첼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까지 꿇고 사죄를 드려야 하는 상황에서 숨길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의사 협회는 과거 전염병 사태를 종결지으면서 큰 위상을 얻게 되었습니다. 자리는 사람을 만들고, 오래도록 고인 물은 썩어가기 마련이지요.”
“…….”
“지식은 진리가 아닙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아카데미를 나온 이들은 모두 알고 있는 그 사실을 위상과 권력이라는 이름 앞에서 어느 순간 내려놓았다는 걸 인정합니다. 지식의 추구에 태만했고, 오만했습니다. 그깟 알량한 자존심으로.”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턱에 힘을 준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익에 따라 옳은 말을 하는 자의 입을 막고, 안전을 위한 방어선을 무너트리면서까지 공포를 조장하며, 영애님을 납치하는 것에 가담하는 지경이 되도록 제대로 된 자정도 하지 못한 것이 저희의 잘못입니다.”
“내가 이렇게 요구하는 게 억울하지는 않아요?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그래도 제가 새로 펼친 사업과 변화에 긍정하는 편이라고 들었는데요. 본인들이 잘못한 일도 아니잖아요.”
“직접적으로는, 네. 아니겠죠. 하지만 글쎄요. 이곳에 있는 모두가 완전무결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특히나 에이포드 짐머, 당신의 이름과 사건은 저 역시 익히 알고 있지요. 이 자리를 빌려 당신에게도 함께 사과를 건넵니다. 당신의 직언이 이 순간을 만들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해요.”
미첼의 말을 들은 에이포드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무렇지 않다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미세하게 앙다문 그의 입술과 떨리는 손끝을 보고는 다시 닥터 미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모든 일에 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그녀가 그 말을 한 것과 동시에 협회장에 모여 있던 수십의 사람이 동시에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들 모두가 진심일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미첼의 말마따나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을 뿐, 여전히 지금의 상황에 불만을 가진 이들 또한 있겠지.
내 사건이 제국 전체에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배워서 얻어낸 지식과 시야를 깨는 건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나는 태연하게 그들의 사과를 받아들이고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신전과 황실을 통해 제가 이곳이 아닌 다른 차원을 경험했다는 건 아실 겁니다.”
“네, 물론이죠.”
“저는 그곳에서 의학을 전공하지 않았어요. 천재도 아니죠. 하지만 아주 작은 영감만 있어도 이곳에 있는 선생님들이 더 찬란하게 의학을 발전시키리라는 걸 알아요. 그것도 지금 이곳, 우리에게 더 알맞은 방식으로.”
“…….”
“그래서 나는 이곳에 계신 분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어요. 그게 내가 사랑하는 이곳을 더 좋은 변화로 이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내 말을 들은 미첼이 작게 입술을 달싹거렸다. 어릴 때 집을 뛰쳐나와 학문만 팠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그녀의 얼굴에서 옅게나마 새로운 영감에 대한 갈망이 엿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모른 척하며 말을 이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가담한 모든 의사에 대한 처분권을 모조리 넘기세요.”
“예? 하지만 처분권은 이미…….”
“제가 이들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그대들이 가진 직업 역시 모욕당할 수 있다는 소리예요. 직접 시인하며 사과까지 하셨으니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잠시 멈칫하던 그녀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협회장인 미첼의 승낙을 받아내고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를 더 요구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여러분에게 협조를 요청할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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