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49
디아블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유원이 뽑아 든 검을 바라보았다.
-괴짜는 괴짜군.
츠츠츠-.
두 개의 뿔이 길어지며, 산양의 뿔처럼 둥글게 말린다.
핏빛 기류가 그의 피부를 통해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붉게 변한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유원은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누군지도 알면서 감히 도전을 다 하고.
[‘디아블로’의 오염된 성역에 입장하였습니다.] [감각이 마비됩니다.] [‘상태 이상 : 지배’에 저항합니다.]디아블로의 지배력으로 점철된 공간.
녀석은 사방을 온통 자신의 영역으로 선포하고는 삐걱거리는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험을 시작하지.
‘상태 이상 : 지배’는 자신의 영역 안에 들어온 모든 것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특별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사실상 상태 이상이라기보다는 꼭두각시를 만드는 최면에 가까웠다.
‘거슬리는군.’
본체라면 모를까, 이 정도 지배에 당할 리는 없다. 하지만 성역으로 지정된 공간 안에서 싸우는 건 역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당장 시스템은 알려 주고 있지 않지만, 성역의 효과는 단순히 지배 효과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악마들을 위한 공간.
이곳은 악마들에게 물고기가 마음껏 헤엄칠 수 있는 바다나 다름없다.
‘일단 성역을 부순다.’
[‘화안’이 ‘오염된 성역’에 저항합니다.] [저항에 성공합니다.] [‘성화’가 ‘오염된 성역’을 불태웁니다.]화르르륵-!
공기 중을 타고 번진 불길이 성역을 가득 메운다. 핏빛 기류를 집어삼키는 불길에 성역의 효과가 사라져 간다.
츠츠츠-.
퀴네에의 눈이 열리며, 그 안에서 마력이 쏟아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럼…….”
파지지직-!
유원의 손에, 검은 벼락이 만들어졌다.
“시작하자.”
콰릉-!
* * *
온통 보랏빛으로 이글거리는 숲.
화악-.
그 속에서 주먹 하나가 뻗어 나온다.
쉬익-.
쾅-!
검과 주먹이 부딪친다. 순간, 보랏빛의 불길이 흔들리며 그 사이로 핏물이 튀었다.
픽-.
갈라진 주먹.
하지만 거기에도 개의치 않고, 디아블로의 꼬리가 움직인다.
후우웅-.
콰앙, 쩌저저적-!
꼬리가 떨어진 땅이 움푹 꺼지고, 순식간에 주위에 자욱한 먼지가 일었다.
순간적으로 주위를 감싸고 있던 성화가 사라졌다. 꼬리를 피해 위로 몸을 날린 유원은 디아블로의 머리 위에서 다시 검을 내리쳤다.
쩌엉-!
단단한 금속을 때리는 듯한 소리.
틱-.
동시에 디아블로의 피부가 베어지고, 또다시 피가 새어 나왔다.
파지지지-!
흑신석에서 뿜어진 마나가 디아블로의 피부를 갉아먹는다. 디아블로는 눈을 부릅뜨며 입을 벌렸다.
화아아악-!
디아블로의 입 안에서 심상치 않은 양의 마나가 응축된다.
그 직후, 용암보다 뜨거운 불길이 그의 입에서 뿜어졌다.
콰아아앗-!
입에서 뿜어진 불길은 절벽을 녹이고, 성화를 집어삼켰다. 디아블로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유원을 찾았다.
-또 어디로 도망친 거냐?
퉁-.
유원은 하늘을 걸으며 디아블로를 내려다보았다.
과연.
시험을 위해 만들어진 분체라고는 하나, 역시 길드 마왕의 수장다웠다. 그는 성화의 힘에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천하의 디아블로가 이런 거에 두려움을 느낄 리 없다는 건가.’
낯선 힘이라고는 하나 디아블로가 한낱 불 따위에 겁을 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육체는 다를지 몰라도 그의 정신은 본체와 다를 게 없으니까.
하늘걸음의 지속 시간은 5초.
유원은 그 시간 동안 하늘을 날며 손에 벼락을 생성해 냈다.
파지지지지-!
손안에서 터져 나오는 마력.
그것이 뭉쳐지기 시작하자, 디아블로가 그제야 유원을 발견했다.
-네놈!
고개를 들어 올린 디아블로가 유원을 향해 입을 벌린다.
곧이어 그의 입에서 뜨거운 불길이 뿜어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유원의 벼락이 아래로 떨어졌다.
콰릉-!
화아아악-!
벼락과 불, 두 개의 힘이 충돌했다. 검은빛의 전격은 새빨간 불길을 반으로 가르고, 디아블로의 몸에 적중했다.
파지지지직-!
-크아아아!
디아블로가 비명을 질렀다.
온몸을 까맣게 태우는 전격의 힘.
거기에 더해, 유원의 벼락은 단순히 전격의 속성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퀴네에의 속성은 어둠.
벼락을 얻어맞은 디아블로의 몸이 부식되며, 근육이 파열되기 시작했다.
탁-.
벼락을 던진 유원이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디아블로는 벼락을 얻어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힘을 실어 유원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콰아앙-!
구웅-.
지천을 흔드는 충격.
하지만 아무리 강한 힘이더라도 맞추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다.
디아블로의 눈동자가 옆으로 돌아갔다.
그 순간이었다.
[거인의 힘이 전신에 깃듭니다.]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팔이 가벼워졌다.
툭-.
힘없이 땅에 떨어진 두 개의 팔.
디아블로는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팔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놀랍군.
파지지-.
디아블로의 몸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부식된 몸. 잘려 나간 팔. 부러진 두 개의 뿔까지.
디아블로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나 마찬가지였다. 41층 시험의 최종 보스로 설정되어 있었던 그가, 이렇게 죽어 가고 있었다.
그는 싸움을 포기한 듯, 하나 남은 팔을 축 늘어뜨렸다.
-시험을 치르는 걸 보면 분명 플레이어일 텐데, 대체 넌 뭐지?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다. 왜냐면 난, 네가 아주 마음에 들었거든.
유원을 바라보는 디아블로의 눈동자가 끈적하게 일렁거렸다.
기분 나쁜 눈빛이었다.
가지고 싶은 건 무조건 차지해야만 하는 본성. 그것은 마왕 디아블로의 특징 중 하나였다.
-길드 마왕에 들어라. 랭커가 되는 순간, 네게 다음 번 마왕의 자리를 주마.
인간에게 마왕의 자리를 내린다.
굉장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최소한 유원이 알기로 지금껏 ‘마왕’에 이런 경우는 없었다.
마왕은 악마들만으로 이루어진 길드.
또한, 마왕이라는 자리는 길드를 이끌어가는 핵심이 되는 악마를 의미했다. 마왕 자리에 앉는 순간 수만 악마들을 거느릴 수 있게 된다.
“난 인간이다.”
-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악마이기도 하지.
그 말에 유원은 잠시 멈칫하며 한숨을 뱉었다.
귀찮은 일에 휘말릴까 봐 사용하지 않았던 힘이었다. 마기는 오로지 악마들만의 전유물로 알려져 있었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디아블로는 유원이 마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니.”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유원의 대답은 똑같았다.
“난 인간이다.”
-……거절인가?
“그래. 그리고 비슷한 제안을 너무 많이 들어서 말이지. 미안하지만 난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아.”
그 말에 디아블로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그러더니 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그렇군. 네가 김유원인가.
그 이름이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지 않았던 건, 디아블로가 인간들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였다.
그는 악마족 플레이어나 랭커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 다른 이야기는 듣더라도 한 귀로 흘려버리거나 무시했던 것이다.
-소문도 믿을 게 못 되는군. 이 경우는 반대로 소문이 너무 축소된 거지만 말이야.
“칭찬으로 듣지.”
디아블로는 호전적이고 파괴적인 악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은 아니었다.
악마족.
그들은 늘, 투쟁과 전투를 전전하며 살아간다. 악마족이 관리자와의 계약을 통해 이곳에 소환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악마족에게 싸움과 죽음은 생활이나 다름없다.
또한, 그들은 누군가에게 패하거나 간접적인 죽음을 경험한다 한들 원한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의 수장인 디아블로 역시 마찬가지.
유원은 디아블로와 굳이 척을 질 생각이 없었다.
‘이 녀석과 척을 지게 되면 곤란하지.’
화르르륵-.
디아블로의 몸에 새빨간 불이 붙었다.
그것은 유원이 다루는 성화가 아닌, 디아블로의 불이었다.
불길 속으로 사라져 가는 디아블로의 모습.
-혹시 생각이 바뀌거든, 언제든 좋으니 마왕을 방문하거라. 제안은 잠시 유보해 둘 테니.
툭-.
작은 뿔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유원은 그것을 주워 들며 물었다.
“뿔갈이라도 하나?”
-……넌 어디 가서 농담 같은 거 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불길 속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한바탕 뜨겁게 타올랐던 불길은 한 점에 응축되어 사라졌다. 유원은 잠시 손안에 들어온 디아블로의 뿔을 바라보더니 그것은 인벤토리에 넣었다.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어쨌든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디아블로가 자신에게 품은 감정은 원한이나 복수심이 아닌, 순수한 호감이었으니까.
언젠가 마왕의 힘이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이것을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기의 상승.
스탯의 상승은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던 유원에게는 꽤 유의미한 보상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시험의 보상은 디아블로라는 최종 보스와 관련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것도 보상의 일종이었나.’
유원은 인벤토리 속에 집어넣은 디아블로의 뿔을 떠올렸다.
그저 디아블로가 자신이 마음에 들어 준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실망과 동시에 기대가 함께 들었다.
디아블로의 분체를 쓰러뜨리고 얻은 보상.
단순한 호감으로 준 선물이 아니라면, 필시 그 가치가 작지 않을 터.
탑의 시스템은 결코 큰 업적에 작은 보상을 내리지 않는 법이었다.
“어중간한 스킬이나 아이템보다는 낫겠지.”
보상은 확실하게 챙겼다.
시험은 다 끝난 게 아니지만, 디아블로를 처치함으로서 조건은 최대치까지 충족되었다.
이제 여기 더 머물 이유는 없었다.
“이동한다.”
* * *
42층에 도착하고 처음 느껴진 건, 퀴퀴하고 답답한 공기였다.
주위는 낡은 대리석으로 둘러싸여진 넓은 신전이었다.
하늘은 뻥 뚫려 있었다.
유원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까맣고, 빛이라고는 하늘에 떠 있는 작은 원 하나가 전부인 세계였다.
그나마도 그 빛은 너무 희미해, 지구에 있던 달보다도 못했다.
공간을 비추고 있는 건 곳곳에 피어 있는 횃불이었다.
“언제 와도 별로네, 여긴.”
유원은 가슴까지 답답한 기분은 미간을 찌푸렸다.
42층의 세계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그리 인기가 좋지 않았다.
이 답답한 공기는 물론, 이 세계에는 낮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인기척은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큰아버지는 이런 곳에 어떻게 계속 사시는지 몰라. 다른 것보다, 너무 습하지 않냐?”
스윽-.
거리가 가까워지자, 횃불에 얼굴이 밝혀졌다.
익숙한 얼굴.
그림자가 낀, 억지로 만들어 낸 유쾌한 말투.
하르간이 유원을 보며 인사했다.
“잘 왔다, 지옥에.”
지옥.
그것은 수많은 랭커들이 42층의 세계를 가리켜 부르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