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43
* * *
“이름은?”
시큰둥한 얼굴로 손가락으로 붓을 굴린다.
천계대전의 참가자 명단을 작성하는 병사는 눈앞에 선 새로운 참가자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얼굴은 잘생겼군.’
흔치 않은 검은 머리의 남자.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은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 걸 보면 그리 대단한 녀석은 아닌 듯했다.
아마 변방의 작은 길드에서 활동하던 수준 낮은 랭커 정도로 보였다.
“김유…….”
잠시 멈칫하던 참가자가 이어서 말을 이었다.
“김유훈입니다.”
“김유훈?”
특이한 이름이라는 생각에 병사는 이름을 명부에 받아 적었다.
“됐다. 대회는 내일 정오부터니까 늦지 말고.”
“예.”
그렇게 몸을 돌린 남자를 보며, 병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도 역시,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 * *
‘천계대전이라.’
막 명부를 작성하고 나온 유원이 이번 대회의 간판을 보며 생각했다.
‘천계도 많이 변했네.’
그 콧대 높던 천계가, 참 많이도 달라졌다고.
천계가 빠르게 달라지기 시작한 기점은 두 군데에 있었다.
하나는 옥황상제의 죽음. 그리고 두 번째는 십 년 전에 있던 아우터와의 전쟁이었다.
그 일을 겪으며 천계는 변화를 도모했다.
유원은 이랑진군이라면 그걸 훌륭하게 해낼 거라 믿었지만, 그게 이런 식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천계대전은 천계에 있어서 지우고 싶은 치부였던 데다, 무엇보다 우승에 따른 직위가 파격적이었다.
“대장군 자리라…….”
대장군.
분명 상제 자리와 함께 천계에 있어서 매우 상징적인 자리였다.
천 명에 달하는 천계의 장군들을 부릴 수 있으며, 백만에 달하는 천계의 병사들을 통솔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게 바로 대장군이라는 자리였으니 말이다.
또한.
현재 천계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이랑진군의 자리와 같기도 했다.
‘결국 받아들이기로 한 건가.’
십 년.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한 가지 일을 고민하기에는 터무니없이 긴 시간이었다.
이랑진군.
그가 대장군의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즉, 그가 다음 상제의 자리에 오르기로 결심을 굳혔다는 뜻이었다.
유원의 주머니에 있던 키트가 울렸다.
손오공이 보낸 메시지였다.
[손오공 : 혼자 재밌냐?]천계대전에 유원이 참가한다는 걸 알고 보낸 문자였다.
싸움 좋아하는 녀석의 성격이라면 당연히 참가하고 싶었을 테지만, 유원은 손오공과 떨어져 혼자 이곳에 온 상태였다.
“전장에 돌아간다는 건 뭔 소리냐?”
“이름을 다시 만들 생각이다.”
“이름을?”
“김유원이 아니라, 다른 이름을 만들어야지.”
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이름을 알려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김유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순 없었다.
그 이름을 사용하려다가 자칫 또다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지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김유훈은 어때?”
비슷하지만 다른,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물론 김유원이라는 이름도 언젠가 모두 기억은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누가 기억하게 될지는 기약이 없었다.
“이상한데 좀.”
“두 글자는 같잖아.”
“이름은 또 어떻게 날리게?”
“여기 오는 동안 검색을 좀 해 봤지.”
유원은 플레이어 키트를 꺼내 화면을 보였다.
‘천계대전’이라는 단어를 확인한 손오공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뒤질래?”
천계대전은 천계의 입장에서도 지우고 싶은 흑역사였지만, 그것은 사실 손오공에게 더 민감한 단어였다.
어쨌거나 승자로서 기록된 천계와는 달리, 손오공은 그 전쟁에서 패자로 알려져 있었으니깐.
“잘 좀 봐라. 그거 아니니까.”
“그럼?”
“천계에서 새로 여는 대회다. 무림대전 같은.”
“대회?”
더 크게 구겨지는 얼굴.
이젠 아예 화안금정까지 꺼내 보이며 눈을 부릅뜨던 손오공이 중얼거렸다.
“이 개자식들이, 감히 대회에 이딴 이름을 갖다 붙여?”
“기뻐해야 하지 않냐?”
“뭘 기뻐해?”
“천계가 대회에 이 이름을 사용했다는 건, 너와 싸워 이겼던 역사를 그만큼 자랑스러워 한다는 거니까. 어찌 보면 널 그만큼 인정한다는 거지.”
이대로 두면 손오공이 다짜고짜 천계로 쳐들어가 여의봉을 휘두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유원은 그를 살살 달랬다.
씩씩거리던 손오공은 이내 진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래서? 그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그래. 랭커나 플레이어 가리지 않고 참가할 수 있다니까.”
“천계에서 주최하는 거 보면 제법 사람 좀 모이겠네. 근데 그런 허접한 대회에 나가서 뭐, 갑자기 이름 좀 날리고 그럴 수 있겠냐?”
“허접한 대회가 아니지.”
“처음 열리는 대회에 뭐 얼마나 대단한 놈들이 참가한다고.”
“우승 상품이 오백만 포인트에 대장군 자리다.”
“……대장군?”
제아무리 바보 같은 손오공이라 해도 대장군이라는 자리 정도는 알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천계의 대 장군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이랑진군.
투신과 옥황을 제외하면 천계에서 가장 강한 장수이자, 제천대성이 인정하는 몇 안 되는 강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 자식이 왜?”
“이제 상제 자리에 올라갈 생각이겠지. 마땅한 임자도 없으니까.”
“태상노군도 있잖아?”
“그 녀석은 활동을 접은 지 오래니까. 벌써 오천 년이 넘게 활동하지 않은 하이랭커에게 갑자기 상제 자리를 맡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어?”
태상노군.
그는 이랑진군과 견줄 만한 랭킹을 지닌 천계의 하이랭커였다.
하지만 비교적 낮은 랭킹은 너무 긴 세월 동안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뿐, 실질적으로 그의 실력은 옥황상제에 버금간다고 알려져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짓하고 있어.”
“이랑진군 나름대로의 각오일 거다. 천계를 수호하는 대장군으로서가 아닌, 이제 천계를 다스리는 왕의 자리에 앉기로 말이지.”
“그 녀석이 상제랑 어울리기나 하겠어?”
“자리가 사람은 만들든, 사람이 자리를 바꾸든 어떻게든 어울리는 법이다. 네가 걱정할 건 없어. 중요한 건, 천계대전의 상품에 대장군 직위가 걸려 있다는 거지.”
대장군 자리는 천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위직이었다.
사실상 부재나 다름없는 태상노군을 제외하면 상제의 다음가는 권력과 힘을 가진 자리.
그런 대장군 직위를 노리는 랭커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굳이 대장군 자리를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 상품이 걸린 이상, 천계대전의 우승자는 천계의 대장군과 버금가는 명성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유원이 노리는 게 바로 이것이었다.
대장군에 버금가는 명예.
말에 실리는 힘은 명예와 힘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지금의 유원은 그 힘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좀 이상한데.”
“뭐가?”
“뭔가 너답지 않아. 돌아가더라도 확실하게 하던 녀석이, 너무 급해 보인단 말이지.”
“너야말로 좀 이상한데.”
“내가? 왜?”
“너답지 않게 웬일로 예리해.”
부웅-.
곧장 여의봉이 날아오자, 유원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비틀어 그걸 피해 냈다.
“그렇게 급한 거냐?”
“그런 이유도 있고.”
“그런 이유도?”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단순히 대회에 참가해서 우승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도 같이 있다는 듯한 뉘앙스.
머리가 복잡해진 손오공은 특유의 버릇대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물었다.
“넌 뭔갈 안다고 했지? 관리자들에 대해서.”
“그래.”
아자토스의 기억이긴 했지만, 유원은 그들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손오공은 평소답지 않다고 했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질주할 때였다.
우웅-.
다시 한번 키트가 울렸다.
또다시 손오공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손오공 : 재밌냐고.]굳이 답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메시지였다.
재밌을 리 없었다.
대회는 시시할 테니까.
무엇보다.
‘아마 그쪽이 훨씬 재밌을 거다.’
* * *
천계대전의 날이 밝았다.
비슈누의 죽음으로 탑이 혼란스러운 와중.
50층의 분위기는 그런 복잡한 이슈와는 관련이 없다는 듯,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어마어마한 규모구먼.”
“천계의 격투장을 몇 배로 확장시켰다더군.”
“이 벽 안쪽이 전부 대회장인 셈인가?”
하늘에 뜬 거대한 스크린이 대회장 안에 들어가지 못한 관중들을 위해 준비되었다.
대회장의 규모는 아스가르드의 결투장의 다섯 배는 되는 규모로, 그 안에서 전쟁을 치러도 될 정도였다.
콜로세움처럼 높은 벽으로 이루어진 경기장 안.
수십만 명의 관중들 속, 경기장 위로는 첫 번째 시드의 참가자들이 올라가 있었다.
“쟁쟁한 얼굴이 많네.”
“숫자도 많고.”
참가자들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시합이 시작되면 언제 서로가 적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했다.
띠링-.
그때 였다.
키트에 메시지가 도착할 때 나는 익숙한 알림과 함께, 경기장의 하늘 위에 숫자가 떠올랐다.
[1071 / 1071]1071.
1번 시드 참가자들의 숫자였다.
[지금부터 룰을 공개합니다.]머릿속에 들려오는 메시지에 참가자들이 감탄했다.
“벌써 시스템까지 개입할 정도였나?”
“천계가 대단하긴 한가 보군. 첫 번째 대회 만에 벌써 시스템이 움직일 정도면.”
시스템이 움직이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관리자에 의한 인위적인 개입이었다.
이 경우, 많은 시간과 포인트를 필요로 했다.
관리자와 심부름꾼들을 움직일 때에는 그만큼 막대한 양의 포인트가 소모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탑이 조율해야 할 만큼 규모가 큰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였다.
탑은 자의적인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백 개의 세계를 유지하는 무한하고 위대한 힘.
그것은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때때로 의지를 지니고 움직이기도 했다.
그리고 두 가지 경우는 이유는 다를지언정 공통된 형태를 이루 었다.
시스템이 개입된 이상, 그 무대는 어떤 식으로든 ‘시험’의 형태 를 띠게 된다는 것이다.
[1071명의 참가자 중, 다음 시험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인원은 모두 8명입니다.] [기절하거나 사망 시, 시험에서 탈락합니다.] [‘포기’를 선언할 시, 자동으로 경기장 밖으로 소환됩니다.] [이 시험에는 어떤 반칙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합을 시작합니다.]띵-!
마치 종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참가자들은 이 시합에서 통과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을 깨달았다.
어떤 반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말은 즉.
‘여덟 명이 한 팀을 이룰 것.’
꼭 이 시험을 혼자서 치를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누구, 나랑 팀을 이룰 사…….”
“그럴 필요 없다.”
쨍그랑-.
맑은 소리가 울렸다.
참가자들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바닥으로 향했다.
아름답고 반짝이는 금화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값비싼 금화를 바닥에 떨어뜨린 장본인은.
“이 시험은 내가 살 생각이니.”
실로 오만한 표정과 목소리로, 수많은 참가자들을 좌우에 거느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