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74
* * *
할리만은 공포 체험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언제 어디서 B팀의 플레이어들이 자신을 노릴지 모르는 상황. 그래도 다행히 지금은 유원에게 집중하고 있어서인지 꽤 조용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할리만은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어버렸다.
언제 아까처럼 활이나 창 따위가 날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할리만은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꿀꺽-.
지익-.
다리가 조금 움직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원.”
그럴 때마다, 유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리는 듯했다.
“벗어나지 마라.”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할리만의 시야에 바닥에 그어져 있는 원 모양의 선이 보였다.
그 선에 걸쳐 있는 자신의 발.
망설여졌다.
여기서 도망쳐야 할까.
아니면 유원의 말대로, 이 자리에 서서 기다려야 할까.
“어서 돌아와 달라고요…….”
할리만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슈욱-!
할리만을 향해, 마침내 스킬이 날아왔다.
퍼엉-!
“헉!”
머리 위에서 터진 불꽃.
황급히 몸을 숙인 덕분에 할리만은 불꽃을 피할 수 있었다. 허공에서 터진 불덩어리에서는 잔해가 튀었다.
툭, 투둑-.
치이이-.
할리만의 등에 불꽃의 잔해가 묻었다. 뜨거움에 소리라도 지를 뻔했지만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
“뭐야, 피했네?”
“그래도 반사 신경은 좀 있네.”
“그런데 이 녀석, 왜 여기 이러고 있데?”
“나도 몰라. 죽여 달라는 건가 보지, 뭐.”
바스락-.
수풀에서 다섯 명의 플레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B팀의 플레이어들.
그들은 도망치지 못하도록 순식간에 할리만의 주위를 둘러쌌다.
“서둘러 끝내자고. 저쪽도 심상치 않은 것 같던데.”
“설마 진짜 한 명을 못 잡고 있는 거야?”
“김유원이 진짜 대단하긴 한가 보네.”
다섯 명의 플레이어들이 하는 말에 할리만은 반대쪽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정말 혼자서?’
자신만만하게 혼자 움직일 땐 설마 했는데, 정말 혼자서 B팀과 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아무래도 승기는 유원 쪽에게로 기운 모양.
‘대단하긴 한데…….’
할리만은 울상을 지었다.
‘난 어떻게 하냐고요!’
속으로 아무리 울부짖어 봤지만 소용없었다.
플레이어 키트로 연락을 취하려 해도 그럴 시간도 없고, 유원도 싸우고 있는 상황이니 연락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거리가 멀어서야 유원이 제때 오는 건 불가능했다.
‘도망쳐야…….’
척-.
할리만은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할리만의 발이 뒤쪽의 선을 밟았다.
유원이 그어 놓은 선이었다.
빌어먹게도 그 순간에도 유원의 말이 떠올랐다.
“젠장…….”
어떻게든 이 선 안에만 있으라던 말.
할리만은 어리석게도 그 말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어차피 눈앞에 있는 다섯 명의 플레이어들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래, 좋아. 어디 한번 붙어 보자, 이 새끼들아!”
차앙-!
할리만은 호기롭게 칼을 뽑아 들었다.
무모한 승부였다.
눈앞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남궁훈이나 로엔 같은 실력자는 아니더라도 11층에 올라온 플레이어 중에서는 꽤 상위권에 속한다.
반면 할리만은 벌써 11층의 시험만 해도 몇 번이나 떨어진, 말하자면 낙제생.
오대일이 아니라 일대일의 상황이라 하더라도 이기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할 수 있다.’
꽈악-.
할리만은 이를 악물었다.
‘할 수 있어!’
시간만 벌면 된다.
분명, 유원이 구하러 와 줄 것이다.
“꼴값은.”
“야, 얼른 끝내고 가자.”
“공적치는 균등하게 나누기. 알지?”
“알아. 이따가 깃발 분배나 잘해.”
공적치에 눈이 먼 플레이어들이 할리만을 향해 다가왔다.
어느새 거리는 불과 몇 걸음.
할리만은 원 안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있는 힘껏 칼을 휘둘렀다.
부웅-.
칼은 허공을 지나쳤다.
가장 가까이에서 다가오던 플레이어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용쓴다.”
실력에 차이가 있다고 해서 다른 플레이어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에게 있어서 이건 정정당당한 승부 같은 게 아니었다.
“잘 가라. 재수 좀 없었다고 생각하고.”
우우우웅-.
아까와 같은 불의 구체.
이번에는 피할 수도 없을 만큼, 바로 코앞에서 날아온다.
‘주, 죽는……!’
그 순간.
할리만은 자신의 끝을 직감했다.
퍼엉-!
불꽃이 튀었다.
바로 눈앞에서.
그리고 할리만은 똑똑히 보았다.
치이이이-.
할리만과 플레이어들의 사이를 가로막은 큼지막한 손 하나.
할리만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등 뒤를 보았다.
연기처럼 뒤틀려 있지만, 마치 사람의 형상을 띄고 있는 무언가.
그 무언가의 손이, 할리만을 지켜 주었다.
“뭐, 뭐야 저게?”
“귀신?”
“저 자식 스킬인가?”
위압적인 마나에 플레이어들이 주춤거렸다.
손쉬운 사냥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난제가 튀어나온 것이다.
스르르-.
할리만은 유원이 바닥에 그려놓은 원을 바라보았다.
그다음으로 이어, 자신을 지키듯 등 뒤에 서 있는 형상으로 시선이 움직였다.
“하, 하하…….”
할리만은 어색하게 웃었다.
긴장이 풀리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천마령]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살았다.
* * *
시험이 시작되기 열흘 전쯤.
히프노스는 올림포스로부터 한 가지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전달된 메시지는 짧지만 충격적이었다.
또한, 그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누구보다 잘 아는 히프노스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시험 감독관은 어디까지나 시험 중에 발생될 사고나 불합리한 것들을 배제하는 역할이었다.
또한, 시험을 관리하고 판을 짜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올림포스의 명령은 시험 자체를 조작하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미친 거라고 생각했지.’
다행히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11층의 시험 특성상, 팀의 배치만 손보면 될 일이니까.
물론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의심은 받겠지만, 고작 이 정도 일로 큰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히프노스에게는 올림포스라는 배경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헤라 님께서도 관심을 가지시다니.’
시험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
올림포스의 하이랭커, 헤라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김유원을 죽여라. 방법은 상관없다.]메시지의 내용은 크게 다를 게 없지만 무게는 달랐다.
그저 윗선에서 도착한 명령과는 달리, 이건 헤라가 직접 보낸 메시지였다.
히프노스는 반드시 이 명령을 따라야 했다. 또한, 실패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판단을 내렸다.
자신이 직접 움직이겠다고.
조금 과한 게 아닐까 했는데…….
‘그럴 만하군.’
검게 변한 풍경.
히프노스는 자신의 마나 속에 서서 버티고 있는 유원을 바라보았다.
아마 보통의 플레이어들은 벌써 잠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꽤 실력 있는 플레이어라 해도 마나의 영향을 받아 눈이 반쯤 풀려야 했다.
반면, 유원은 멀쩡했다.
둘 중 하나다.
자신의 마나에 저항할 만큼 마력 스탯이 높거나, 정신력이 그만큼 뛰어나거나.
전자일 경우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
‘아마, 정신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거겠지.’
그래봤자 아직 저층 구간의 플레이어였다.
제아무리 패널티가 있다고 한들, 싸움이 될 리가 없었다.
츠으으-.
사방에 흩어진 마나의 색이 더 검게 짙어졌다.
이윽고 히프노스의 스킬이 발현되었다.
[검은 밤]그 순간, 유원의 몸이 비틀거렸다.
히프노스는 씩 웃었다.
‘걸려들었군.’
검은 밤.
그것은 지금의 히프노스를 있게 한,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스킬이었다.
검은 밤은 환각계 스킬로 공간 안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강제로 꿈에 빠지게 만들었다.
아마 지금쯤 유원은 쏟아지는 잠을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다.
“힘들지?”
히프노스가 유원을 향해 다가갔다.
“버티지 말고 포기해라. 잠깐 눈만 감으면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거다.”
달콤한 말이었다.
대부분은 이 말에 넘어간다.
유원도 다르지 않았다.
스르륵-.
눈꺼풀이 조금씩 감긴다.
휘청거리던 유원의 몸이 멈췄다.
히프노스는 미소를 지었다.
유원은 그 자리에 선 채로 잠들었다.
‘끝이군.’
수면에 대한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리고 히프노스는 그 욕망을 자극하고, 강제로 꿈속으로 이끄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시간도 나쁘지 않았어. 지금 시간은 검은 밤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시간이니…….”
저벅-.
히프노스는 유원을 향해 걸어갔다.
꽤 넓은 범위에 마나를 퍼뜨려 사용한 탓인지 조금씩 패널티가 시작되고 있었다.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었다.
히프노스는 품에 넣어 둔 짧은 단검을 꺼내 들었다.
“제아무리 칼 좀 쓰고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결국 아직 저층 구간의 플레이어일 뿐.”
날카로운 예기를 지닌 칼날이 유원의 목을 향해 겨눠졌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너무 원망하지 마라. 올림포스의 눈 밖에 난 게 잘못이니.”
히프노스의 칼날이 빛을 뿜었다.
“그럼 이만 끝…….”
그때였다.
슈악-.
“……!”
히프노스가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미 한 발 늦은 때.
촤아악-!
가슴이 길게 베어졌다.
“큭…….”
치리리, 치릭-.
사방에 퍼져 있던 마나들이 히프노스의 몸에 모여들었다.
급히 마나를 움직여 상처를 수습해 봤지만, 그 정도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
상처는 꽤 깊었다.
웅, 웅-.
어느새 유원의 칼에는 짙은 마나가 둘러져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꽤 상급에 속하는 마력검.
랭커인 자신의 몸을 이렇게 깊이 베어 낼 정도면 보통 스킬은 아닐 것이다.
“얕았군.”
유원은 오히려 아쉽다는 투였다.
칼을 가볍게 휘둘러 피를 털어 낸 유원은 방금 전과는 달리 멀쩡해 보였다.
잠이 들긴커녕, 졸음도 없어 보였다.
“네놈…….”
히프노스는 이를 뿌득 갈았다.
“연기였나?”
유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히프노스는 그것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하긴.
자신의 스킬에 걸린 거였다면 이렇게 검을 휘두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유원은 처음부터 거리를 좁히고 한 방을 노리고 있었다.
“비겁한 짓거릴…….”
“그쪽이 할 말은 아니지.”
유원의 말에 히프노스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들자면 할 말은 없었다.
제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 해도 상대는 이제 막 11층에 올라온 플레이어다.
반면, 자신은 올림포스라는 거대 길드를 등에 업은 랭커. 그리고 이 시험이 공정하게 치러지도록 감시할 의무를 지닌 시험 감독관이었다.
누가 더 비겁한지는 재고 따질 필요도 없었다.
“상관없다.”
한 손으로 상처를 억누르던 히프노스가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플레이어일 뿐.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
“아니.”
유원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주위는 어두웠다.
검은 밤.
환각계 스킬을 사용하는 랭커, 히프노스를 상징하는 주력 스킬.
“달라진다.”
츠츳, 츠츠츠-.
유원의 손에 쥐어진 검에서 검은 마나가 흘러나왔다.
심상치 않은 마나의 흐름.
검은색을 띈, 어둠 속성의 마나.
흑야검(黑夜劍).
[‘스킬 – 검은 밤’의 영향으로 체력 회복 속도가 증가합니다.] [체력 회복 속도 : + 200%] [‘스킬 – 검은 밤’의 영향으로 마나 회복 속도가 증가합니다.] [마나 회복 속도 : + 100%] [‘스킬 – 검은 밤’의 영향으로 마나 증폭률이 증가합니다.] [마나 증폭률 : + 100%]밤은, 히프노스의 시간만이 아니었다.